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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050809 철한,구리,세돌-갑조리그 대국에 부쳐


철한,구리,세돌


세상사 묘하다고 밖에 달리 표현하기 힘든 일들을 우리는 무어라 불러야 할까...운명?인연?우연?


여기 국경을 넘어 세 젊은이가 있다.

구리(古力):1983.02.03 95년 입단

이세돌     :1983.03.02 95년 입단

최철한     :1985.03.12 97년 입단(최연소 역대4위)


이력,실력,상징성.. 그리고 지난 일년,

특히 엊그제의 승부를 돌이켜 보면 이들 3인은 아무래도 연(緣)의 실타래에 얽혀 매인것 같다. 조/서,조/고바야시,이/유처럼...

앞으로 이들은 고비의 길목마다 우연히,그러나 운명처럼 필연처럼 서로를 마주할 것이다.




 

구리v.s.최철한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기사들은 개인의 차원에서도 ‘유행포석’이 있다. 특정기사들은 일정기간동안  한 가지 포석만(흑번으론 주도포석,백번으론 대응포석을) 두는데 왜냐하면 우선 익숙하니 승률이 좋고 또한 상대의 다양한 반응을 재료삼아 공부하기에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런 나만의 포석을 어느 정도 완벽히 공부했다 싶으면 다음으로 넘어가고...또 넘어가고 그런 식이다.


최철한도 그런 유형의 기사, 최철한의 요즈음 백번(으로 대응포석법)은

1.상대가 첫 수를 (우상귀)화점에 두면 자신은 좌상귀 화점,

2.상대가 첫 수를 (우상귀)소목에 두면 좌상귀 돌아앉은 소목

이런 식이다.

아래는 최철한의 백번으로 근래 가장 많이 나오는 판이다.


구리의 바둑에 위 기보 흑번1,3은 드물다.더구나 그는 목하 삼연성 연구중이다.흑번으로는 거의 삼연성이라 알고 있는데...

(CSK 대 요다,대 이세돌,   한중 신인왕전 대 박영훈,  TV아시아 대 요다, 후지쯔 대 송태곤,  중국 천원전2국 대 저우허양,   05.07.09갑조리그 모두 흑번 삼연성)


시간여유를 두고 미리 상대가 정해져 있으면 당연히 상대의 기보를 연구하게 마련이다.연구 끝에 전략의 측면에서 두 가지 길이 있다.

자 내가 흑이다 했을 때

1.‘나의 흑번(내 유행포석=장기로 삼는 포석)’으로 의연하게 갈 것이냐,

2.상대(철한)의 백번에 지뢰를 묻는 전술로 갈 것이냐.

물론 둘 다 일장일단이 있다.


아마 구리는 심사숙고했을 것이다.그런 끝에 그가 택한 건 보다시피 후자.

그는 상대가 자주 다니는 길,그러나 ‘익숙하되 익숙하지 않은’ 길에 지뢰를 묻기로 했다.자 이 길로 꼭 와라.


05.07.21한중천원전 2국


구리가 준비한 수는 우선 낮은 걸침, 이 수부터 흑은 상대를 익숙한 길로부터 익숙하지 않는 길로 견인한다.(최의 기보엔 흑의 높은 걸침뿐이다)

그 곳, 구리가 묻은 지뢰는 [‘책에 없는’ 수 1,(백의 2는 당연,)과  3,5 겹펀치.]

어떻게 되었을까?


수에는 감정이 없다.그래야 한다.그러나 상대가 저런 식으로 마치 테스트하는 듯한 수를  노골적으로(?) 두어오면 우선 끓는게 인지상정.

감정이 앞서면 볼 수 있는 수도 안 보이는 법이다.(나는 최철한의 실족을 이런 식으로 밖에는 도저히 달리 이해할 수 없다.)


백은 초반에 심하게 망한다.그리고 반 집.


05.07.22한중천원전 3국

최철한이 제발 흑을 잡길 바랬다.이세돌이 말하길 최철한의 흑번은 이창호보다도 강하다고 했다.하여 흑이면 이길 부가 높은 것이요.백이면 불안하다.구리가 삼연성을 들고 나오면 차라리 환영이겠지만.


들려온 소식은 최의 백번.

구리는 하루 전 그 길로 또 손을 잡아 이끈다.번기의 전형적인 흐름 동형포석반복.

그 속내를 짐작킨 어렵지만 최철한의 대응은 2,6콤비(이건 어쩌면 그 자신 이창호를 상대로 재미를 본 ‘최철한 포석‘의 발상법 3,5콤비와 닮은 구석이 있다.어쩌면 전략의 기본,’아는 길로 가자‘ 였을까.)


일단 방향이 잡히면 바둑은, 특히 고수의 바둑은 가야할 길로 가게 마련이다.하여 흑은 ‘최철한포석 파해법’을 전형적으로 보여 준다.(그 길이란 협공당한 한 점의 움직임을 보류하는 것.우상에 적의 응원군이 있으니 움직이면 좋지 않다.)


포석결과는? 중론은 ‘흑의 포석‘이란다...

그리고 또 반집.


번기를 끝내고 구리 왈,“최철한의 중반역량은 (나보다)낫지만 포석(만)은 좀 더 노력해야 할 듯하다.이번 세 판 모두 포석에 문제가 있었다.”



이세돌v.s.구리


이번에는 중국 갑조리그.

구리는 망설이다 주장전을 맡기로 자청한다.이는 곧 이세돌과 붙는다는 뜻.하긴 피하기엔 자존심이 허락않을 터.


05.08.06중국 갑조리그 귀주해속정 이세돌v.s.중경 구리 (주장전)

필연의 대결 성사,묘한 우연이 만들어준 이세돌의 백번.구리는 철한과 갔던 그 길로 간다.무슨 맘이었을까.세돌이 철한도 아닌데.


그런데 야릇한 건 이세돌도 순순히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따라간다.

오케,당신 맘대로 해보세요.

이 순간 세돌은 특유의 ‘눈쎄림’을 구리에게 날렸을까 날리지 않았을까...


흑2(최철한판,즉 천원전 2국과 비교하면 한 줄 멀다),4로 달라졌다.

꼬리를내린 걸까 다른 길로 이끈 걸까.

내가,국외자가, 하수 아마츄어가 알 수는 없다.다만 이 희한한 기싸움의 승부는 포석결과, 궁극적으론 이 판 종국의 결과가 말해 줄 뿐이다.


(포석완료국면-흑1로 중반 돌입)

 

흑은 빠르고 백은 두텁다.잘 어울린 판이다.

왜 백이 두터운지의 의문에는 일련의 그림 같은 수순,고수의 필연적 수순 진행이후 다음 장면이 답이 될 듯하다.

...

승부는 반집으로 판가름났다.구리가 철한에게 반집으로 이겼듯이 세돌은 같은 길을 마다않고 따라가 준 끝에 반집으로 되갚아 주었다.물론 결과가 그렇다는 말이다.


나는 알 수 없다.그 반집이 우연이었나 필연이었나를.세돌이 일부러 반집만 이겨갔는지를,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여부를.하수가 초일류의 경지를 어찌 가늠하겠는가.아쉬운 대로 기보를 보고 판단할 기력조차도 전혀 아니다.


다만 나는 말할 수 있다.

세돌에게 그런 맘이 없었다고 할 순 없다 는 것을.철한이 반집 두방으로 질 때 난‘돌아버릴 지경’이었으니까.나만 그랬을까.

또 말할 수 있다.

능력만 된다면 세돌은 일부러 반집만 남겨 이기고도 남을 기질이다.


우연에 묘한 구석이 있을 때, 그 묘함의 설명이 내 능력 밖에 있을 때,미력한 인간으로서 운명을, 하늘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일의 도모는 사람에게 ,성사는 하늘에게 있다’고 했다.


고맙다 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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