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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090414 스승은 제자에게 무엇을 주었을까?


金秀俊(七단)은 조치훈의 제자이다. 조치훈은 김수준에게 지도바둑을 ‘많이’두어주었다고 한다. (10초 바둑은 더 많이 두었다고 한다. -연결임)

조훈현은 조치훈과는 다른 유형의 스승이다. 내가 알기로 조훈현은 제자인 이창호에게 '딱' 4판(8판인지도 모르겠다.)의 지도기를 두어주었다고 한다.


요즘 식, 한국형 '학원'은 지도사범이 원생에게 일대일로 달라붙어 두어주는 형태로 지도를 한다. 이는 말하자면「조치훈 방식」이다. 이와 달리 과거 일본의 徒弟식 사제관계, 예를 들어 조훈현의 스승인 瀨越세고에, 또 조치훈의 스승인 木谷기타니의 지도 방식은「남발하지 않는다 혹은 아낀다는 사고방식」이다. 바로 후일의 조훈현이 답습한 방식이다.

-조남철은 木谷에게 딱 두 판을, 반대로 근래의 신예 井山이야마는 스승인 石井邦生 九段에게 천 판 이상 배웠다.-


4판이라,.. '귀한 것은 드물게 마련이다' 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고작 4판'이라고 적은 판 수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까?

‘고작 4판’, 이 말인즉 기왕에 스승 된 자라면 좀 자상하게 지도해주어야 하지 않나? 하는, 다소간 마뜩찮아하는 기색이 담긴 말인데... (이런 현상은 바둑을 모르는 사람일수록 심하다.)


얼마 전에 조훈현 인터뷰에도 이 얘기가 나왔다.

(질문)‘한데 이창호 국수는 내제자 시절 스승과 지도대국 몇 번 둔 것이 전부였다는 말을 한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요?’(연결임)


인터뷰에서 위 질문에 조훈현의 대답은 이랬다.

‘제자가 배웠다고 생각하면 배운 것이고,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닌 것이죠.’ 
 

◇◇◇                                                           ◇◇◇
 

전문棋士에게 바람직한 스승상은 어떤 像일까. 내가 보는 바람직한 스승상은 이렇다. (조훈현은 스승 瀨越세고에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답을 주는 것이 스승이 아니다.')


수준에 따라 스승상도 달라진다.


수준이 낮은 제자에게는 스승이 답까지 챙겨 주어야 한다. (코가 나오면 코도 풀어주고 때를 맞추어 기저귀도 갈아주어야 하는 식이다.) 수준이 높은 제자에겐 그런 것까지 해줄 필요가 없다. 대신에 다른 걸 주어야 한다.

달리 말하면 낮은 수준의 제자에겐 그에 맞춰 낮은 수준의 것을, 높은 수준의 제자에겐 그 수준 이상의 높은 무엇을 주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이게 세상의 이치다.


‘고작 4판', 사람들은 말한다. 조훈현은 이창호에게 별로 준 것이 없다고. 나아가 이렇게 말한다, 스승을 만나지 않았어도 이창호는 이창호가 되었다 라고. 흠. 

이창호란 제자는 평범한 수준의 제자가 아니다. 최고급의 수준이다. (답을 챙겨줄 수준이 당연히 아니다.) 그렇다면 조훈현은 이창호에게 높은 수준의 무언가를 주었을까? 난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사람은 줄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긴 아무나 받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이창호가 조훈현의 제자가 아니었다면 그만큼의 大 棋士는 못 되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생각하면 그런 것이요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니겠지만... ^^



 

註:조훈현 자신이 전해주는 말에 의하면, 스승은 제자에게 「批評복기」를 ‘많이’ 해주었다고 한다.


(비평복기란 이창호가 일정 기간 -예를 들어 일주일- 중에 둔 바둑을 여러 판
왕창 가져와 복기해보이면 스승이 한두 수, 한두 수.. 지적해주는 방식의 복기이다. 이 와중에 좀 오래 되어서 기억이 안 되는 대국이 있을 수 있다. 이게 와전되다 보니 나오게 된 말이 '복기도 못하는 이창호'란 표현이다. '왕창'이란 사정을 감안해도 희대의 천재인 스승보다 기억력이 딸린 건 맞겠다. 그치만 '복기도 못하는 이창호'란 표현은 실로 잘못 알려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