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바둑

090822 우리가 이제, 다 컸어요


마악 욱일승천하던 당시의 古力이 이창호와의 첫판을 졌다면? (
이창호는 2003년 갑조리그에 외출 가서 3승4패를 했는데 그 4패 중의 한 판이 고력이었다.) 당금 천하제일인을 이김으로써 고무되는 자신감이란 것은 이래저래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이세돌이 고력과의 첫판을 이겼더라면? (이세돌 또한 갑조리그에서 고력과 첫 대면을 했고 졌다.) 이후의 센力 交戰史가 다르게 써졌을지 모른다.

이창호가 依田과의 첫 대면에서 이겼다면? 이창호가 예내위와의 첫 대면에서 이겼다면? 서봉수가 조훈현과의 첫 대면에서조차 졌다면? ...정선 치수인‘탐험대결’에서 유창혁이 조훈현에게 밀렸다면? 


번기의 첫판을 졌다 해서 그 번기를 반드시 지게 생겼다 하기는 물론 말이 안 되지만, 첫판을 지고서 흐름을 역전을 시키기란 반대의 경우보다 배로 힘이 듬 또한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첫 대면의 결과 또한 마찬가지, 첫 대면의 결과가 승자와 패자, 이 兩者에게 남기는 강렬한 印象이란 것은 번기의 첫판만큼이나 중요하다. 장래 라이벌이 될 사이라면 중요성은 배가된다. 「병아리 때 쫓긴 닭 장닭 되어 쫓긴다」 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강동윤과 진요엽陳耀燁의 첫판은 2002년 한중일 신예 대항전이었다. 이 첫판을 지고, 07년 同 대회 또 졌고, 06년 삼성배 32강전 졌고, 드디어 작년 WMSG에서 이겨 흐름 반전의 끈을 잡았는가 했으나  이번 통합 天元전을 지고 말았다.

한중 통합 천원전이 비록 상금이 작아 半 이벤트성 대회이기는 하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잘 기획된 이번 같은 경우에는 얘기가 다르다. 두 대국자를 마치 짜 맞춘 듯, 머리 박박 밀기 좋아하는 습성을 비롯하여 한중 양국의 닮은꼴 톱 신예로서, 미리 보는 정상대결이란 점이 부각되면서 다른 해보다 더 만인 環視리에 두어졌다. 때문에, 굳이 말하자면 둘 간의 실질적 첫판이라 해도 좋다. 이걸 졌으니 강동윤도, 팬도 속이 쓰리다. 흠.


바야흐로 때가 무르익었다. 바둑 판도에 신진 세대가 끼어들 때가 되었다는 말이다. 이 점은 韓中 공히 그렇다. 작년과 올해 중국에서는 진요엽(89), 박문요(88), 주예양周睿羊(91), 고령익古靈益(91) 등 소표(小豹)세대가, 한국에선 강동윤(89), 박정환(93), 김지석(89) 등이 ‘우리가 이제 좀 컸소’ 시위하는 중이다. 일본의 井山이야마도 마찬가지. 이들은 드디어 자국의 최정상과 거의 대등한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런 점으로 보아 확실히 바둑에서는 이십 세가 成名(명성을 떨침)의 기준점이다.)

해서, 정상과의 힘겨운 대결도 그렇지만 그네들 간의 미래를 담보한 자존심 싸움이 앞으로 더욱 볼만하게 생겼다. 이번 천원전 姜v陣 대결을 비롯, 앞으로는 朴-朴 대결, 古-金대결, 周-井대결,..등 흥미진진한 대결이 차츰 늘어나겠다.


신진세대 중에 가장 먼저 이름을 알린 棋士는 진요엽이다. LG배 결승에 가서 고력과 대결을 벌이던 때가 지금보다 한참 전인 2005년이었으니, 만 16세의 ‘박박동자’가 이창호를 이기고 고력과 최종국까지 가는 접전을 벌이는 모습에 누구나 강렬한 인상을 받았겠다. 그런데 이후에, 의외로 정체된다는 인상을 주었고 그래서 세인들의 초점에서 벗어났었다. 그러다 올해 초에 고력과 정면대결을 벌여 2:0, 천하의 고력을 영봉시키며 천원을 쟁취, 무대 한복판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陣은 중국 內 기사 중에서 고력에게 통산전적에서 대등하게 버텨내는 거의 유일한 기사인 점이 또한 인상적이다. LG배에서 2:0으로 끌려가다 2:2로 따라붙었던 경험이 이후 고력과의 대면에서 심리적 안정제로 작용하는가.

이 친구가 과연 「사철 푸른 소나무 像」인가 「여름 한철 피고 지는 꽃 像」인가. 진요엽을 두고 필자는, 분석 半에 바램 반을 보태 ‘여름 한철 꽃’ 명단에 억지로 밀어 넣었더랬는데,.. 이제는 별수 없이 원 위치 시켜야 하게 생겼다. 중국랭킹 공동 2위.


신진들 중 세계대회에 가장 뻔질나게 출입하는 기사가 박문요이다. 朴은 ‘참으로 무난히 8강을 가는구나’ 하는 인상을 주는데, 그는 작년과 올해 자신이 참가한 모든 대회 즉, 총 다섯 대회에서 모두 8강(8강 4회, 준우승1회)에 드는 희한한 기록을 가질 정도로 기량이 안정적이다. 문제는 결정타가 없다는 점인데, 더구나 올해 富士通후지쯔 8강전에서는 라이벌이라 할 강동윤에게 졌고 삼성배 예선에서 또한 의외의 탈락(송태곤에게 패배)을 당함으로서 잠시 주춤이다. 가만히 보면 고력을 참 자주 만나는 박문요, 곧 있을 LG배 8강전에서 고력을 또 만나는데 '8강 고정'이냐 고력을 극복해보느냐의 기로이다. 작년 말엽 중국 명인전 도전기에서 고력을 2:0으로 막판까지 몰아넣은 상태에서 타이틀을 결정지을 판을 어이없는 착각으로 놓치고 3連敗의 대역전을 당한 아픔이 있다. 중국랭킹 한때 4위, 지금은 9위.


정규 타이틀 무대는 아니지만 중국 서남왕전 3연패에 빛나는 고령익은 올해 서남왕전에서는 결승에서 고력을 이기고 우승하였다. 서남왕전에서만큼은 고력 이상 급이다. 지난 달(7월)은 이세돌의 갑조리그 빛나는 연승을 20연승 문턱에서 막았고, 엊그제 명인전 도전자 결정 3번기에서는 류성劉星을 2:0으로 일축하고 고력에의 도전권을 쟁취하였다. 따라서 이 '작은 古'도 향후 주시대상 되겠다. 국제 경험이 변변치 않은데, 언제나 랭킹이 낮아 예선을 거쳐야 했고, 본선에서 그를 본 기억이 없으니 아마 예선을 통과한 적이 없는 듯하다. 이번 삼성배 예선에서도 자국 선수에게 걸려 실족하였다. 자국 내 랭킹이며 국제전 성적이 모두 그의 과제인데, 이번 명인전 도전기가 진정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현 중국랭킹 13위.


주예양은 작년 삼성배 4강으로 해외에 자신의 존재를 알렸지만 인터넷상에서는 익히 알려진 강자이다. Tygem에서 금망치(Goldhammer)라 하면 오래 전부터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며, 한국 강자와 대결을 즐기며 빼어난 승률을 올리는 금망치의 바둑은 언제나 한중 바둑팬들에게는 최우선 관전감이다. 금망치가 대국실의 경주마로서 번 배팅머니로 순위를 매긴다 치면 세계랭킹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가지 않을까.

그러나 周는 강동윤, 진요엽, 고령익과는 달리 긴요한 승부에서 쎈力을 극복해본 경험이 아직 없는 것이 약점인데, 아무튼 더 지켜볼 필요는 있다 하겠다. 중국랭킹 6위.


고력을 이기고 우승(WMSG), 농심배 5연승, 천원 전에서 이세돌을 이기고 우승, 이창호에게 통산전적 우세, 신진들 중 가장 먼저 세계 타이틀을 딴 강동윤(한국랭킹 3위), 십대소년 타이틀 보유자로서 가능성 무궁무진의 최고단자‘10단’ 박정환(한국랭킹 16위), 놀기만 밝히다 한참을 때늦게(?) 폭발한다는 김지석(한국랭킹 8위), 재능에 비해 늦었긴 하지만 김지석은 올해의 다승왕 승률왕이 유력한데 역대로 신인이 치고 올라와서 다승왕 승률왕 뭐 하나 거머쥐었는데 불구하고 쉽게 사라진 예가 없으니 ‘사철 푸른 나무의 像’ 명단에 들어갈 자격이 충분하다 하겠다.


강동윤이 진요엽에게 선빵을 당하였다. 허나 바둑을 둘만 두는 것은 아니다. 누구도 있고 누구도 있고,.. 둘러보면 또래만 해도 바글바글하게 적수들이다. 依田요다나 예내위가 이창호를 곤혹스럽게 하였다. 허나, 세계바둑계가 과연 그들에 의해 굴러갔는가? 일본 바둑계에서 왕립성이 조치훈을 많이 괴롭혔지만 둘의 성적은 큰 차이가 나지 않는가. 소림小林이 주욱 상대전적에서 조치훈을 앞섰지만 조치훈의 대삼관을 그가 막을 수 있었는가? 나중에는 조치훈의 怪氣에 말려들었기는 하나, 조치훈이 교통사고 이후 잠시 헤맬 당시에도 대삼관을 해내지 못낸 이유는 조치훈 때문인가 소림광일 자신 탓인가?


1인자의 계보는 터울이 길다. 金국수가 43년생, 曺국수가 호적상 53년생이고 후계자인 이창호가 75년생, 그 사이에 66생 유창혁이 있다. 20여 개월 한국랭킹 1위를 지키는 중인 이세돌이 8살 어린 83년생이고 이세돌 자리에 있을 뻔 했던 최철한이 85년생이다. 희한하게 중국도 그러한데 진조덕이 김인 국수보다 한살, 聶이 조국수보다 한살, 마효춘이 유창혁보다 두살이 많으며 상호가 이창호 한살 아래이고 고력이 이세돌과 동갑이다. (적고 보니 좀 요상하다.) 기재가 일찍 꽃피는 시대가 도래함으로써 터울이 좀 짧아지겠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세돌-고력보다 최소 5년 이상은 어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이 글에서 언급한 기사들이 가능성이 가장 높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90년 근처 세대가 국내 무대에서, 세계무대에서 현 정상을 대체하고 다음 세대의 정상이 될 것이다.


강동윤은 자신의 일을 잘하면 된다. 무대는 앞으로 많다. 3국 신예들의 대결은 갈수록 본격화된다. 일단 코앞에 다가온 무대가 삼성배이다. 삼성배에 참가할 중국의 신진 세대는 주예양, 진요엽이다. 한국은 이달 초 예선 결승에서 호요우胡耀宇를 이겨 豫熱예열을 확실히 끝낸 김지석, 타이틀 보유자 자격의 박정환, 강동윤이 출전한다. 물가정보 배의 홍성지(87)도 신진에 가깝다. 일본의 ‘외로운 신진 강자’
井山이야마도 아마 나올 것이다.

이들은 어느 정도의 성적을 거둘까? 이번 姜v陳전처럼 同 세대간 대결이 성사된다면 누가 기선제압을 할까? 올해는 삼성배가 마지막이다. 삼성배 결과를 포함하여, 짝수해로서 조금 더 많이 벌어질 내년 세계대회는, 부쩍 덩치가 커진 신진세대와 기존 강자 그룹 간의 도전과 응전, 신진들 간의 각축이 한층 볼만해질 한해이다. 향후 몇 년 간의 판도에 있어 밑그림이 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