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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090829 짜릿하기가 롤러코스터 뺨치는 바둑 -봉황고성 정상대결


후두두둑 한바탕 소나기가 이토록 시원할까. 순식간에 지나간 331방울의 굵은 빗방울은 내 온 살들을 뭉툭하게 두드려 묵직하고 깊은 여운을 남기며 흘러내린다. 龍爭虎鬪니 龍鳳相戰이니 그 무슨 말로 전달하려 하여도 표현의 부족이요 언어의 한계이다. 오늘 바둑은 그만큼 대단한 바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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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Tom.com


'고력이 아니면 나는 오지 않았으리라’ 이렇게 말해놓은 이세돌이다. 그리고 오늘 바둑, 판 내내 굶주린 맹수처럼 날뛰는 모습이 두 달에 가까운 승부의 공복감에 나 미쳐버렸소 시위하는 듯하다. 땡 소리가 무섭게 화등잔보다 큰 눈으로 쏘아보며 링 줄을 반탄력 삼아 튀어 나와서는 시합이 끝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어네스트 호스트를 밀어붙이던 'K1의 야수' 밥샙처럼, 이세돌은 제1手부터 331手까지 단 한순간의 뒷걸음질이 없었다.

어네스트 호스트가 밥샙에게 맞고만 있지는 않았듯이, 고력 또한 고력이었으므로 관객들은 무한히 즐거웠다. 長槍의 달인답게 ‘거리’만 맞추어졌다 싶은 순간이면 어김없이 絶藝를 펼친다. 긴 창대로 세돌을 구석으로 몰고, 창날이 번쩍 亂舞를 추고, 이세돌이 허리를 비틀어 창을 넘기고 아슬아슬하게 공중제비를 돌아 창날을 피한다. 


판 위에 묘수가 속출하고 관객들은 손에 땀을 쥐었다. 목진석이 입을 쩍 벌리고(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그랬으리라 믿는다.) 말하였듯이 鳳과 凰은 ‘산삼 한 뿌리씩 먹고’ 대결을 벌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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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Tom.com


서투른 표현에 식상하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 바둑이 보기 드물게 대단했음은 확실하다. 50분짜리 「시간 땡 바둑 땡」(시간 넘기는 순간 패배) 방식이 그렇고 무대에 오른 배우의 스타일이 그렇고, 오늘 무대는 최고의 안배라 말하기에 충분하다. 역시나 두 棋士는 최고의 볼거리로 관객들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실황으로 직접 보셨다면 내 말이 과장이 아님을 알리라. 못 보셨다고? 아이고 그걸 왜 놓쳤어요?..


형세가 유리하나 불리하나 판을 주도하는 쪽은 이세돌이었다. 특유의 ‘쪼오끔 무리하는 수’는 기본이고, 판이 나쁘면 (당연히) 불을 지르고 판이 좋아도 물러서지를 않으니까. 대조적으로 고력은 참는다 싶은 때가 없지는 않지만, 때가 되었다 싶은 순간이면 어김없이 ‘출동’을 한다.
그러고 보면 이세돌을 엄하게 말릴 사람은 고력 밖에 없고 고력을 이렇게나 진땀나게 할 사람은 이세돌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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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회전 종료순간

우상이 마무리된 순간, 초점은 우변 흑이다. 흑은 뭔가를 두어 이 부분 마무리를 해야 하는데 흑2가 그만 실착. 백5 자리에 먼저 두어야 했다. 그랬다면 하변의 흑 5점이 확실히 생동하는 모습이다. 흑은 선수를 뽑아 좌상으로 손을 돌릴 수 있었다. 실전은 흑이 후수로 하변을 보강하여야 하므로 거의 한 수 차이가 나게 되었으며 좌상은 백의 차지가 되었다.

평소의 고력이라면 간단한 수에 불과한데, 확실히 이때쯤엔 달아오른 상태였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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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회전-점입가경

‘재미있게 두려고 했다’ 는 이세돌, 좌상에 지른 불이 하변까지 번졌다. 여기서 확실한 팬서비스 백2. 이 수의 의도는 좌변 적진 속에 잠시 엎드린 백 석점을 빌미 삼아 하변 흑과 좌변 흑과의 얽기. ‘니도 미치고 나도 미치고 우리 같이 재미있게 놀아 보세.’대국자나 해설자나 관전자나 이 순간 모두 미쳤버렸다고나 할까.

마누라가 이쁘면 발꿈치까지 예뻐보인다고, 상변에서의 고력의 ‘허무개그’마저 재미가 있었다. 하긴 그래서 이겼으니까.






***                              ***                                ***

- 9승9패, 이러니 이벤트 대국조차 지고 싶지 않음이 대국자나 팬이나 인지상정 되겠다. 더구나 중국 매체들은 누가 두 자리를 선점하느냐 이런 소리를 하며 의미부여를 하더라만...


- 함께 벌어진 ‘중국 최고 바둑집안 가리기’ 시합에서는 상호 집안과 유빈 집안이 붙었는데, 상호 마눌 장선 아줌마만 이기고 아빠와 딸래미는 져서, 중국 최고 바둑家의 영예는 유빈家에 돌아갔다.


- 듣기로 주최 측은 이번 대회에 중국 돈 800만元을 썼다는데, 흐미 대략 15억이지?


- 요 며칠 타이젬에는 ‘외톨이’란 극강 殺手의 등장이 화제, 그의 바둑 또한 매판 ‘롤러코스터 뺨치는 바둑’이라 많은 사람들이 이세돌을 들먹이는데, 필자는 직접 28일 저녁 8시 조금 넘어 대국을 관전하였다.(그 바둑 죽여줬다.) 그런데 중국 매체에 의하면 이세돌은 28일 여덟시 무렵 봉황고성에 도착하였다. 한중 간 시차가 한 시간이라면 한국 시각으로 아홉시에 도착하였다는 이야기. 그렇다면 이세돌이 외톨이가 될 수는 없다는 이야기.


- 이세돌은 기자에게 사인을 해준 후 다른 사람에게는 거절하면서 무표정한 얼굴로 ‘오늘은 사인을 한 장만 합니다.‘라고 말하였다. () 


- 이세돌의 괴벽은 여전하였다. 저녁을 먹고 바로 ‘방콕’하였고, 이는 기사 작성에 바쁜 기자양반들을 급 당황시켰다. 주최 측의 요구 하에 이세돌은 어쩔 수 없이 방을 나와 취재기자를 맞았으나 그의 괴이한 발상은 즉각 기자들을 충격으로 웅성거리게 만들었다. 이세돌은 우선 기자들에게 함구령을 발하였는데, ‘휴직 件의 원인에 대해 새삼스레 꺼내지 말았으면 한다. 휴직 건에 대해서는 나에게 휴식과 조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고 이미 다 밝혔다. 기자들께서는 제가 말한 대로 해주셨으면 한다. 다른 이유는 없다.’

갑조리그 외에는 휴직 중임에도 유독 이 대회는 참가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세돌은 말하였다. ‘상대가 고력이기 때문이다. 고력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안 왔을 지도 모른다.’(


- 늘상 ‘단호 거절’인 이세돌 또한 바둑팬들의 요청에 응하여 부채에 자신의 한자이름을 사인하였다. 듣던 바 냉담한 구석은 없었다. ()

(같은 記事 중에서)

고력 :우린 적수이지만 또한 좋은 친구이다. 때문에 더욱 최선을 다하겠다. 이것이야말로 상대를 존중하는 최고의 방식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세돌 :이창호와 상호의 우정이 부럽다. 나와 고력 또한 그러한 모습으로 우정이 지속되기를 바란다. 비록 우리가 너 죽고 나 살자 식의 적수이기는 하지만.


(긍정적 기사와 부정적 기사의 엇갈림이 이채롭다. 그대로 소개하였다.) 
 

- 고력은 국후, ‘전반전에는 형세가 그만그만하였다. 후반전에 초읽기 독촉에 실수가 나와 최소 20집을 손해 보았다.(註;20집 손해란 상변‘허무 개그’를 말한다. 저번 BC배 조훈현과의 바둑도 그렇고, 이런 걸 보면 고력도 초읽기에 망가지는 모습이 있다. 어 그런데 50분 '시간 땡 바둑 땡' 방식인데, 초읽기 그런 거 없는데,..기사가 왜 일케 났냐~) 져서 유감이다.’라고 말하였다.


-  바둑이 끝나고서 이세돌은 기쁘게 손도장을 찍은 후 말하였다. 한 판 의미가 깃든 바둑이 되었으면 해서 강수 강수로 두었다. 거의 지기 십상인 바둑이다고 생각했는데 고력이 봐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