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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저작권-저2-바둑4

060814 (바둑저작권-기보저작권) 3-2.관계


(3-1. i/E에서의 p에 이어)


다음 q.

좋다. 사상/감정의 표현이라 하자. 그렇다면 신수/신수법도 사/감의 표현일  터인데 신수/신수법도 보호된다고 해야 말이 되지 않겠나? 이거 바둑 두겠나?

정석은 어쩔 겨? 초반의 정형은?




 

. 악곡 바둑
대립당사자

창↔창(긴장관계 ○)

창↔감상자(긴장관계 ○)


창↔창(긴장관계없음)

창↔감상자(긴장관계 ○)

감상자  

서비스업자-공연(악곡재현),복제,전송


최종소비자-공연감상(대가지불),(복제),실연(연주,가창..)

 

서비스업자-공연(바둑재현),복제,전송


최종소비자-공연감상(대가지불),(복제) , 유사연주(복기)

후발창작자

작곡당시-(실연)

작곡후 기록등-표절(;복제),2차적 저작물 작성

대국당시-유사실연,(공연)

대국후 기록 or 컴대국-표절(;복제)

(전편인 3-2.저작물을 둘러싼 구조 에서 나왔던 표입니다.)



위쪽의 빨간색, 긴장관계 없음과 아래 파란색 유사실연,(공연), 표절(;복제)을 같이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또 표를 보십시다.(아래)



. to창작적이용자(긴장관계없음) to감상형이용자(긴장관계있음)
신수

권리불인정


좌와 同

정석

권리불인정


좌와 同

정형

실연:문제없음

공연:공연권제한(주의적규정

∵긴장관계없음)




실연:문제없음

공연:공연권제한?(실질적규정

∵긴장관계○ )

       



*신수는 신수/신수법입니다. 다시 말해  그냥 ‘신수’ 그리 말하더라도 신수법까지 포함된 것입니다.

*권리불인정:창작자의 권리자체를 부정한다는 뜻입니다. 법이 ‘권리자 연하는 자’의 보호요구에 불응하는 방식으로는 요건결여를 이유로 불응(권리 자체의 불인정)하는 방식과 권리 자체는 인정해주되 다른 이유(ex.형평성 기타)를 들어 권리를 제한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전자입니다.)


*정형:‘초반의 정형’입니다.

*저작권자에게 실연권‘은 없습니다. 우리가 비목을 부른다 해서 작곡가가 시비걸 수 없습니다. ’공‘연만 되지 않으면 괜찮습니다. 바둑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연권제한:저작자는 그 저작물을 공연할 독점배타적 권리를 가집니다. 공연권제한이란 저작자의 그런 권리의 행사가 제한된다는 뜻입니다. 위에서 말한 권리요구에 불응하는 방식 중 후자, 권리제한방식에 해당합니다.


*주의적 규정:해당 규정이 없다 하더라도 분쟁여지가 사실상 없다는 뜻입니다. 법적 체계의 완전성을 위한 규정입니다.

*실질적 규정:해당 규정이 실질적으로 분쟁을 조정하는 기능을 한다는 뜻입니다. 없다면 모순적 결과가 초래되는 경우입니다.

*공연권제한?(실질적규정 ∵긴장관계○ )  :공연권을 제한하는 규정을 둔다면 실질적 규정이 된다. 그런 규정을 둘 것인가? 말 것인가?  무엇이 타당한가? 를 잠정미해결상태로 남겨 놓은 것입니다.



긴장관계없음

바둑은 오성(悟性)과 승부를 동시에 추구합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건 이 ‘오성을 추구한 흔적’이란 놈을 어떻게 보아 줄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달리 말하면 바둑에서 승부(란 요소)만 남길 것이냐 오성(悟性)인지 미(美)인지 개똥인지도 함께 갖고 갈 것이냐, 나아가 전자가 가능하냐의 문제입니다. 하여튼 바둑은 승부를 추구안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국자는 승부를 위하여 기존의 ‘오성을 추구한 흔적’으로서, 뛰어난 것을 사용하게 되는 데 이게 표절이냐, 표절로 보아야 할 것이냐 이런 얘기이겠습니다.


‘표절’이란 무엇입니까? ‘선발자와 후발자의 긴장관계’를 달리 말해 본 것입니다.

일반적인 저작물에서는 예외 없이 선발자와 후발자 간의 긴장관계가 존재합니다. 그런데 바둑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긴장관계가 없습니다. 왜일까요?

 

저는 처음에 ‘오성과 승부’를 언급했습니다. 자 바둑에서 오성과 승부는 어떤 관계일까요. 과연 따로국밥일까요? 그래서 어느 하나를 버릴 수 있을까요? 버려도 바둑일까요?


[바둑에 창작/창작의지가 어디 있어 승부/승부의지만 있지.    창작능력이 어디 있어 오직 실력만 있]다면 바둑에 승부만 남겨도 괜찮을 것입니다. 물론 저작물이 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바둑에 창작/창작의지도 있고 승부/승부의지도 있으며,  창작능력이 곧 실력]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저작물이라 생각합니다.


오성과 승부는 따로국밥이 아닙니다. 최고도의 오성이 발현되면 최고도의 승부실력이 자연히 따라 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결국 오성과 승부는 동전의 양면인 셈이죠. 어느 하나도 버릴 수 없습니다. 억지로 하나를 버리는 순간 그건 이미 바둑이 아닙니다.


기국은 악곡이요 기보는 악보다. 그러므로 대국은 작곡이다.

작곡에 의해 리듬과 멜로디와 화음이 창조된다. 대국에 의해 수순과 모양이 창조된다.

리듬,멜로디,화음의 전체적인 조화에 인간은 미를 느낀다. 인간이 창조한 어떤 관념물이 소리를 매개로 나의 감성을 깨울 때 미를 느끼는 것이다.

수순과 모양의 전체적인 조화/결합에 역시 미(?아니면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이 역시 어떤 관념물이 공간적 구조(?)를 매개로 나의 悟性(오성)을 깨울 때 미를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작용은 바둑에 승부 이전의 그 무엇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바둑에서 미와 승부는 어느 것도 버릴 수 없는 요소이다. 

-棋局은저작물인가 중에서-


긴장관계를 두고 논하고 있고 이를 위해 동전의 양면을 언급했습니다. 그런데 동전의 양면과 긴장관계 사이에는 무언가 연결점이 있습니다. 어떤 연결점이 있을까요?


대국자는 승부를 추구합니다. 이는 다름 아닌 오성의 추구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승부이다 보니 대국자는 각자 나의 오성은 추구하되 상대방의 오성은 방해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이기지 않습니까?)  오성의 방해란 무슨 행위입니까?


내가 알되 상대는 모르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물론 (선발자의) 수에 대한 선악판단,기타를 위해 미리든 즉흥적이든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고 비트는 지점은 바로 그 지점이 될 겁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선발자의 흔적(기존수순)에서 언젠가 필연적으로 벗어난다는 것입니다.(바둑의 무궁무진한 경우의 수가 그것을 가능케 해 줍니다. 당연한 말이지만..요.)

벗어나는 즉시 다시는 되돌아 올 수 없는 길이란 건 두말 할 필요가 없겠지요.

선발자는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물론 후발자도 알고 있습니다. 바둑 두는 이라면 누구나 바둑의 이런 속성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이창호의 신수를 사용한다 해도, 또는 쎈돌-철한이 이-박 수순을 초반 수십 수 따라 둔다 해도 선발자는 빙긋이 웃어줄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 내 글 일부를 베껴서 지 글 속에 턱하니 집어놓고 있으면 불쾌합니다. 긴장관계 발생입니다. 

누군가 내 바둑 초반을 그대로 따라 둡니다. 어떻든가요?

까놓고 말해서,  뿌듯합니다. 어 좀 두시는데?

아닙니까?..

(일단 창작자 vs 창작자 문제의 99.9 % 해결했습니다.)

 

0.1%의 미친놈/감상형이용자

긴장관계 없다고? 알았다고, 근데 누군가 지 신수(수없이 ‘표절’되죠) 지꺼라고 우기면 어떡할 거야? 20~50수 짜리 초반의 정형(종종 ‘표절’되죠) 지꺼라고 우기면 어떡할 거야?


사람 긴장시키는^^, 0.1%의 미친놈입니다. 있을 수 있습니다.(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반론은, 0.1%의 미친놈을 해결해내라는 반론은, 상대이론의 완전성에 대한 요구는 지극히 정당합니다. 그래서 지금 그 반론에 대한 답변을 하고 있는 거고요.)


게다가 또 있지 않습니까? 원래부터 긴장관계 있는 당사자, 감상형이용자 말입니다.(관전기를 쓰는 이나 바둑을 해설하는 이도 감상형이용자에 포함됩니다. )


0.1%의 미친놈/감상형이용자, 다음 편 3-4.신수/정석/정형 편으로 넘어갑니다.


 

3-4.신수/정석/정형

3-5.승부

3-6.창작

.

.

끝이 보이는 듯 합니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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