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환 두 번째로 어린 나이에 세계대회 우승 / 單騎 돌파에 중국 失色
출처 :☞蕭蕭風(소소풍) 搜狐체육(수호체육 sohu.com) 2011.08.14. 16:19
[失色실색][명사] 놀라서 얼굴빛이 달라짐
제24회 富士通(후지쯔)배, 공연은 끝나고 사람들은 흩어졌다. 최종 결과는 중국 바둑팬들에게는 극히 유감으로서, 이 대회 결승에 처음으로 올라간 ‘磨王(마왕)’邱峻(구준)이 죽 이어진 苦戰 끝에 결국 대마 도륙을 당하며 한국의 열여덟 소년 박정환에게 졌다. 이로써 한국의 부사통杯 우승은 열다섯 번째이다.
磨:갈 마, 魔 :마귀 마
세계대회 결승에 두 번 올라가서 모두 완패로 끝나, 구준의 수확은 세계대회 두 차례의 준우승으로 九단으로 승단함에 그친다. 헌데 현재의 세계 바둑계에서 九단은 단지 숫자에 불과할 뿐이니, 열 개의 九단이 세계대회 우승 한 개의 가치에 미치지 못 한다. (최고로) 근면한 구준이 결국에 바둑계 정상에 등극하지 못하다니,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은 최소한 현재 순간만큼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대회 시작 전에는 그 누구도 구준이 결승에 짓쳐 들어가리라 예측하지 못했으나 그는 한 판 또 한 판 승리하였으며, 더욱이 최고로 유력한 우승 후보인 이세돌을 탈락시킴에 우리의 기대는 갈수록 커졌다. 결승이 벌어지기 전, 비록 사람들은 박정환의 승산이 구준보다 높음을 모르지 않았으되, 최후 순간까지 갔는데 그 누가 (구준의) 성공을 갈망하지 않았겠는가? 어제 일본 바둑팬들이 井山裕太(이야마유타)의 실족에 극도로 유감스러워함과 딱 마찬가지로, 오늘 중국 바둑팬의 입맛은 더 한층 썼다.
구준은 온 힘을 다했다. 다만 승부세계에 온정이란 없으니 세계대회 우승을 해내지 못했고, 앞서의 모든 노력은 오롯이 창백해져버렸다. 만약 4강을 8강에 비교했을 때 두 등급이 높다는 얘기라면, 우승과 준우승의 차이는 곧 하늘과 땅이다. (그러나) 우린 구준을 절대 탓하지 않는다. 그의 예상 외 浮上(부상)은 근래 이년 동안 중국 바둑팬들에게 듬뿍 희열을 선사하였다. 우리의 유감인 즉, 中韓 쟁패의 고비 순간에 중국 棋士가 또 한 번 결승에서 한국 棋士를 당해내지 못했다는 점, (그리하여) 원래 균형 상태였던 天秤(천칭)이 이제 한국 쪽으로 분명히 기울게 되었다. 만약 오늘 구준이 井山에게 졌다면, 확신하건대 우리들은 대다수가 태연하였으리라.
1993년 1월 11일 生인 박정환은 이제 고작 18세 7개월, 오늘 승리로 그는 단번에 바둑 세계대회 역사상 가장 어린 우승자 대열에서 榜眼(방안 :甲科에 둘째로 及第(급제)한 사람 ;譯註)이 되었으니, 이는 16세 6개월에 동양증권杯를 우승한 이창호 바로 다음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지금까지 스무 살 이전에 세계대회 우승을 한 棋士는 다 합하여 4명인데, 모두 한국에서 나왔다. 우승 당시의 나이 순 배열은 아래 :
제1위 :이창호, 1975년 7월 29일 生
1992년 1월 27일, 제3회 동양증권杯 결승에서 3:2로 임해봉에게 승리하여 우승 -16세6개월
1993년 6월 8일, 제4회 동양증권杯 결승에서 3:0으로 조치훈에게 승리하여 우승 -17세 10개월
제2위 :박정환 -1993년 1월 11일 生
2011년 8월 14일, 제24회 부사통杯 결승에서 구준에게 승리하여 우승 -18세 11개월
제3위 박영훈 1985년 4월 1일 生
2004년 7월 5일, 제17회 부사통杯 결승에서 依田紀基(요다노리모토)에게 승리하여 우승 -19세 3개월
제4위 :이세돌 -1983년 3월 2일 生
2002년 8월 3일, 제15회 부사통杯 결승에서 유창혁에게 승리하여 우승 -19세 5개월
20세 5개월에 부사통杯를 우승한 강동윤과 21세 10개월에 부사통杯를 우승한 박정상까지 보태면, 한국의 어린 棋士들이 材木이 되는 속도는 확실히 우리를 앞선다. 그리고 이상 여섯 사람 중에 다섯 사람이 부사통杯에서 세계대회 첫 우승을 하였으니, 한국인과 부사통杯 간의 연분은 참으로 끈끈하다 하겠다.
박정환이 비록 지금까지 한국 바둑계에서 ‘前途(전도) 매우 유망’이라 인정되고, 최철한은 심지어 그를 ‘현 바둑계 최강 3인’으로 친다고는 하지만, 세계대회 고비 시점에서 쉽게 동요하는 까닭으로 중국팬들은 그를 ‘아직 미성숙’으로 치부했다. (그런데) 이번 부사통杯에서 박정환은 결코 괜찮아 보이지 않은 상태 下에서 착실히 전진하였고, 더욱이 중국 세계대회 우승자 박문요를 탈락시켰고 준결승에선 일본 名人 井山에게 역전승을 하여, 크나큰 자신감을 얻었다. 만약 결승 ‘심사관’이 古力(고력)이나 孔杰(공걸)이었다면 아마도 박정환은 역시나 꺼림칙하였겠지만, 위압감에 상대적으로 한계가 있는 구준을 만났기에 박정환은 주먹을 완전히 늘어뜨린 채, ‘세계대회 우승’이란 금테를 향한 유혹 下에, 압박감을 맞서 버티며, 평상시 技術(기술)에 달리 아무런 변화 없이, 大棋士다운 성숙한 자태를 보이며, 결국에 누에가 고치를 깨고 나오듯, 세계대회 우승자란 신분으로 현 세계바둑계 초일류 대열에 합류하였다.
전체적인 성적을 보자면, 이번 부사통杯에서 중국은 여덟 사람이 출전하여 합계 13승 8패 성적으로서, 일곱 사람이 출전하여 9승 6패란 성적을 거둔 한국보다 낫다. 다만 이세돌이 말한 바대로 ‘우승은 결국 한 사람이 하는 것’이라, 박정환 한 사람이 총 다섯 번 승리하여 한국 총 승수의 절반을 넘었고 이 한 사람의 눈부신 활약에, 이번 부사통杯는 곧 중국 棋士들의 워털루, 한국 棋士들의 戰勝地(전승지)가 되었다. (워털루, 최악의 패배에 중국인들이 즐겨 쓰는 말 :譯註)
BC배 춘란배 부사통배, 연속되는 中韓 棋士들간의 우승 쟁탈전이라는 국면에서 승리를 모두 한국이 차지해갔으니, ‘한국 맞서기’ 여정에 갈 길이 아직 한참 멀다고, 이 시점에서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우짜면 최고 관건 판을 승리하는지 배워 터득할 수밖에. 그래야만 중국바둑이 성장하여 세계의 진정한 王者가 될 수 있겠다.
-蕭蕭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