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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050308 응씨배,쓰리군요


응씨배, 쓰리군요.


생각할수록 가슴이 아프군요. 응씨배가 어떤 배(盃)입니까?  일개 제후국 정도 취급을 받던 이 나라 바둑계가 열강 대접을 받게 된 계기가 이 응씨배였으며 나아가서는 그 정도를 넘어 일약 전국(戰國)의 패자로 발돋움하는 단초가 된 대회입니다. 게다가 이후 우리의 사천왕들이 돌아가며 이 배를 쟁취함으로써 바둑 패권국의 적통으로 공인받음을 대신하던,우리네 안방같은 그런 대회가 아니던가요?


또 최철한은 누구던가요? 이창호의 빛살이 아직 뜨겁지만 미래 언젠가 이창호가 ‘서산을 붉게 물들일’ 날이 왔을 때 이세돌과 더불어 중천의 자리를 다툴 자 아니던가요. 아아, 이세돌은 도요타배, 최철한은 응씨배라는 황금면류관을 쓰고 둘이 바둑천하 패권을 쟁투하는 광경을 그렸던 건 모두 헛꿈이었나요?



그런 응씨배요 그런 최철한인데...아쉽게도 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기에 응씨배를 내준 아픔은 앞으로 그가 1인자가 된다 해도  고스란히 남습니다.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말했지만 다름 아닌 응씨배이고 다름 아닌 최철한이기 때문입니다. 이 아픔은 응씨배에 미래 언젠가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것으로만 치유될 수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 때까지 그는 이 빚을 짊어지고 가야 합니다.


젊은, 그래서 낙관적인 최는 ‘기회는 또 온다’ 고 하였지만 76년 주기로 돌아오는 핼리혜성을 평생 한 번도 못보고 죽는 사람이 있듯이 바둑꾼에게 4년에 한 번이라는 기회는, 더구나 초일류 수준을 항시 유지해야만 겨우 붙잡을 수 있는 응씨배이기에 기회는 자주 온다 라고는 절대 할 수 없습니다.

도학자 서봉수가 그랬습니다. ‘지나고 나서 그것이 마지막 기회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고.

오히려 연속 결승에 오른 창하오가 대단한 거고 게다가 운까지 좋은 것이다 라고 할 수 있는 소이입니다.(준결승 송태곤과의 3국이 더욱 기억에 남는군요. 송폭이 올라갔으면 얼마나 화기애애했을까요?)

다만 최국수는 젊기에 앞으로도 기회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있기를 믿어야겠지만 어쨌거나 청산해야 할 빚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건 지켜보는 자로선 가슴이 아픈 일입니다.


오늘이 8일, 응씨배가 5일에 끝났죠? 속 쓰리기도 하고 한편으론 저만 그런 건지 남들은 어찌 생각하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목을 길게 빼고 이제나 저제나 관련 글을 기다렸는데 A님의 글도 B님의 글도 그 흔했던 번역글도 보이지 않는군요..(이 글을 거의 다 쓰고 나니 아래 다른 님의 글이 올라 왔군요. 수정하지 않고 그냥 두렵니다)  짐작컨대 모두들 흥이 안나셨겠죠.  참다못해 제가 이렇게 쓰고 있는데....ㅎㅎ 눈치코치 없어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창하오는 이번에 6전7기했습니다. 인간승리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듣자니 그의 인품이 썩 인정해줄만 하다던데 그의 인품이 이창호과든 마샤오춘과든 섭과든 무슨 과든 그런 걸 떠나서 저는 6전7기 그 자체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게 예의겠지요. 그러나 저로선 그게 다입니다. 더 이상은 없습니다. 무슨 말이냐믄...


삼성배,도요타배,농심배,응씨배,춘란배

작년 말부터 올 초까지 한/차이나간의 헤게모니 싸움이 치열합니다. 가히 아마겟돈에 비견할 만 하죠. 그동안 이세돌이 잘해 주었고 이창호가 잘해주었는데 그만 여기서 삐끗하고 마는 군요.


혹자는 우리도 우승하고 차이나도 우승하고 머 사이좋게 돌아가며 나눠 먹는게 흥미도 있고 나아가 전체바둑계의 발전을 위하여 바람직하다 하는데  물론 원론적으로 옳은 소리인진 모르겠지만 저는 속이 좁아서 그런지 몰라도 도저히 그런 생각이 들어지지가 않습니다. 아니 그리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가끔은 주긴 하되(LG배 위빈처럼) 그냥 50년,100년 계속 밟아 주었으면 하고, 적어도 저 살아생전만이라도 차이나가 세계바둑계의 헤게모니를 틀어쥐는 상황을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번 최-창 전을 앞두고 그렇게 말하고 다녔습니다. 부연하자면 개인 창하오를 축하해줄 수 있지만 기고만장하는 팬들, 차이나바둑계, 나아가 차이나라는 거대집단 자체는 절대 축하해줄 수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이야기가 좀 빗나가는 면이 있어 급히 마무리하자면 [미국이 혐오스럽긴 하지만 그렇다고 차이나에 기댈 순 없다.얘네들은 더할 놈들이다.]이렇게 보았을 때, 그래서인지 몰라도 차이나에 대한 본능적 경계심이 잠재해 있나 봅니다. 저 스스로 생각하기를 저는 국가주의자도 국수주의자도 민족주의자도 아니며 게다가 정치와 바둑은 무관해야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게 그렇게 되지 않더군요. 더구나 (바둑과 축구 이벤트 때마다)차이나 웹사이트 번역기사를 너무 보아서인지 더욱 그렇더군요. 그게 그네들 모습 전부도 아니고 그네나 우리네나 일본이나 미국이나 따지고 보면 피장파장인 면을 인정해야 하는 게 맞는 지도 모르죠.


최철한은 왜 졌을까요? 이창호도 이겨낸 그가 말이죠. 이유는 복합적으로 보아야 하겠습니다.

먼저 창하오의 운입니다.

도요타배 이후 화제가 되어서 알았는데 세계대회 준우승 횟수로 창하오와 마샤오춘이 6회로 공동 2위더군요. 마샤오춘은 대략 이창호 하나 때문, 창하오는 조훈현,이창호 거기다 이세돌에게까지 ‘돌림빵’이라는 차이, 하튼 누구든지 그 상황이라면 충분히 맛이 가고도 남을 상황이죠. 역시나 마는 35세무렵(99년 삼성배 결승이 마지막결승이죠 아마?)을 방점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창도 역시 2002(26세)도요타배 이창호와의 결승을 방점으로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잠수상태였었죠. 그러나 더 높은 비상을 위해서 더 깊이 잠수해야 한다던가요? 그는 2년여 만에 돌고래처럼 튀어 올랐습니다.  서른다섯의 마와는 달리 스물여섯은 그냥 시들어 버리기엔 너무 창창한 나이였을까요? 그것도 운이라면 운이겠죠.

 

그에겐 또 다른 운도 작용했습니다. 송태곤 과의 준결승 3국,마치 쎄도리(이세돌)가 도요타 배 준결승에서 콩쥐(콩지에)에게 건진 판하고 비슷하다 할까요? 미처 생각도 못한 송폭의 타작질에 대마가 배가 갈려 눈에 흰자위를 드러내고 늘어진 지경... 사실상 끝난 바둑이었는데 상대가 타작질만 하고 못질을 깜빡해 주는 바람에 다 죽은 시체를 살려내어 이긴 바둑이었죠. 그런 지경에서 침착을 유지한 것도 실력이지만 일이 되고난 후 시점에서 되돌아보면 가슴을 쓸어내릴 운이라 아니할 수 없죠. 우리에게 그런 추억이 얼마나 많은가요?  반추하면 두고두고 즐거운  추억들 말이죠. 이제 그네들도 그런 추억꺼리를 갖게 되었군요.


다음으로 창하오의 실력입니다.

도요타배를 마친 후 이세돌이 말하기를 ‘승부는 내가 이겼으나 실력은 창하오가 위였다’ 고 했는데 이번 승부를 보면서 그 말이 빈 말이 아님을 새삼 느꼈습니다. 전부터 그런 말이 있었지만 창하오는 전보다 강한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번 3,4국은 사실상 창하오의 완승입니다. 사이버오로 표현대로라면 창하오는 두 판 통틀어 ‘(판세가) 괴로운 순간보다 즐거운 순간이 많았’던 거죠. 다시 말하면 인고와 간난의 순간을 견디고 얻어낸 승리가 아니라 이길 판을 이겨갔다는 얘기입니다. 완승이란 그런 걸 두고 말하는 걸 겁니다. 어쨌든 사실이 그랬고 해설이 그랬고 탱아의 관전감이 그랬고 국후담이 그랬고 하여튼 모든게 그랬습니다.

 

돌이켜 보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게 결정적 고비의 순간마다 창은 최와 동등한 조건에서 동일한 암흑을 주시하되 한 치씩은 최보다 더 깊이 읽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들 기대했든 ‘새가슴’도 없었죠.)

 

어디까지나 하수의 짐작일 뿐이지만 정황으로 보아 3국의 (넉 점 잡는) 중앙끼움수(78수)가 그랬고 좌하에서 (타개의)'늘어진 호구'(140수)가 그랬고 4국의 초반 패공방 중의 좌상귀 끼움수(61수)가 또한 그랬습니다. (결국 두 번의 끼움수가 응씨배를 가져다 준 것 이지요.그 옛날 몇 번의 빈삼각이 조훈현에게 응씨배를 안긴 것처럼.)


3국의 치명타적인 중앙 끼움수, 만약 최가 보았다면 악수지만 단수 한방으로 선수로 방비할 수 있었고요. 같은 판에서 흑의  좌하 '늘어진 호구', 보았다면 불과 몇 수전 45분 장고 후 새삼스레 또 장고할 리 없었고 4국의 끼움수는 예상했는지 여부는 모르겠습니다 만은 하튼 그거 땜에 묘수빙자성 공배의 헛수(74수)를 두었으니 결국 승부는 거기에서 판가름났지요. 그 세 가지 순간 최는 창만큼 보지 못했다, 최소한으로 말한다 해도 그 수들로 인해 타격을 받았다 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리하죠. 창의 운과 실력을 언급했고, 상대방인 최의 정황(수를 간과했다)을 언급했습니다. 이제 분석(왜 간과했나?)만 남았습니다. (전자,즉 정황은 그나마 객관에 가깝지만 후자,즉 분석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으니 감안하시길 바랍니다.)


분석, 그럼 무엇이 둘간에 이런 차이를 만든 것일까요? 창이 갑자기 쎄도리와 둘 때 보다 수가 늘은 걸까요? 그럴 리가 있나요? 창은 두 달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창일뿐입니다. 하수이지만 제가 보기엔 문제는 최철한에게 있었습니다. 그럼 최철한이 ‘수가 딸린다’는 얘기일까요? 그건 아닙니다. 평소의 최라면 보았을 겁니다. 초일류라면 그 정도 수는 당연히 보아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해설당시 서능욱이나 유창혁은 끼움수든 늘어진 호구든 전혀 언급이 없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그러나 유창혁도 대국당사자라면 다를 일이고 더구나 최철한이나 쎄도리 정도면  보아야 합니다. (쎄도리의 거침없는 해설을 보았다면 참 좋을 텐데요. 행여나 제가 헛소리하고 있지 않나 ㅡ.ㅡ;;)


최철한은 그 세 가지 수를 왜 못보았을까요?....


경험담을 하나 늘어놓아 볼까요 친목성이지만 대회바둑에서 저는 선반 치수의 상수에게 쾌승하고 연달은 판에서 선반 치수의 하수에게 무력하게 진 적이 있습니다. 그 날 저는 도대체 컨디션이 좋았단 걸까요? 나빴단 걸까요? 둘 다이지요. 그게 바둑입니다.

 

묘한게 바둑이라 좋은 바둑을 위해서 대국자는 겸손해야 하나 한편으론 주눅이 들어서도 아니 됩니다. 자신감에 충만해야 하나 오만해서도 아니 됩니다. 좋은 바둑은 궁극적으로 이 모든 것에 초연할 때 나옵니다. 오로지 바둑 그 자체에 몰입하는 때(바로 반전무인의 경지입니다.)에 좋은 바둑이 나옵니다. 바둑꾼은 하시라도 이를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상수든 하수든 예외가 없습니다.

이젠 저의 그 날 승패의 이상스런 엇갈림이 설명이 되었을까요? 설명이 되었다면 최철한의 경우도 설명이 가능해지겠군요.


그렇습니다. 최의 임전 인터뷰를 보면 올해 들어 컨디션도 상승세고 이창호도 이겼고 이모저모 자신감에 넘쳐 있습니다. 주의 깊게 보면 이창호를 대하는 자세와는 뉘앙스가 조금 다릅니다.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국수전의 경우 인터뷰를 보면 최 자신에 대한 믿음과 이창호라는 대가에 대한 겸손이 조화롭습니다. 역시 제 느낌입니다.)

결과론에 불과하지만 이창호를 이긴 자신감, 그게 오히려 독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요는 자신감이 심리를 경직시키지 않았냐는 거죠. 심리가 경직되었다는 말은 사고가 유연하지 못하다는 말입니다. 평소에 보여야 할 수가 안보이고 웬만하면 대세가 비관적으로 보이고 생존본능보다는 올인심리가 발동합니다.  


저는 최국수에게서 그런 경우를 여러 번 보았습니다. 심하게 말하면 그가 진 중요한 판은 다 그런 식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게 실력이지 하고 돌아서고 말겠지만 다름 아닌 최‘국수’이기에 그럴 수가 없습니다. 현 바둑계 상황이 이이최 삼두체제인데 그만한 ‘두(頭)’를 어떻게 쉬이 포기하겠습니까. 그래서 이런 고생을 사서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경직사례’를 보겠습니다.(비판을 각오하고 용기를 내어 봅니다. 초일류 고수들의 수들은 우리 아마추어의 시각으로선 납득하기 힘든 장면이 많습니다. 그 순간 의아해 하지만 지나고 보면 아하!그래서 그렇게 두었구나 하게 되는 게 대부분이죠. 다시 말해 탱아의 눈에 의아해 보이는 수를 두는 건 당연한 거란 얘기죠. 그리고 99% 탱아가 틀린 거구요. 그러나 최국수의 바둑은 유독 다른 고수 바둑보다 탱아의 판단이 옳았던 적이 많았더란 말입니다. 물론 그 바둑들은 모두 최국수가 졌고 왜 졌는가는 티비의 해설,타이젬이나 오로의 집중조명 식 해설을 보고 저 나름대로 검증한 것이다 이런 얘기지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기억에 선명합니다. 화딱지가 남아서겠지요.)  

 

◇구리와의 한/차이나 천원전 3국-완승분위기, 셔터만 내리면 살짝이라도 이길 장면에서 더 챙기고 날 잡아봐~라 하다 정말 대마가 맞아 죽어버렸습니다. 띠잉~하더군요.

구리와의 삼성배 8강전-닦자모드로 돌입할 중대 국면에서 쓰리고 외치다 이번엔 상대가 한껏 챙겨 버리고 최는 집부족에 걸려 거꾸로 대마사냥을 강요당합니다. 하여 농락당하다 결국 던지고 맙니다. 띵디잉하더군요. 본인도 국후 한동안 바둑판을 못 떠날 정도로 후회했답니다.

응씨배2국-도저히 이해못할(쎄도리 표현) 패감불청, 불청한 순간 판 끝나버렸습니다. 그 순간은 (프로 수준에서는) ‘사고회로가 탔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응씨배3국-백 대마를 잡지 않고도 이기는 길이 있었으나(생중계를 보며 부르짖었습니다) 벌점을 불사한 45분 장고를 하면서도 오로지 잡아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습니다(국후 본인의 표현으론 ‘잡는 수가 보이지 않아 괴로웠다’). 그리하여 보일 듯 말 듯 드리워진 기회를 속절없이 떠나 보냈습니다. 이 장면에서 왜 이창호가 생각날까요?

응씨배4국-패 요물,이겨도 그만 져도 그만이라는 패의 허허실실(고수라면 당연히 알아야 합니다.)을 순간적으로 망각, ‘패감을 줄이는 묘수’를 두면서까지 패에 집착하다 초반 잘 짰던 바둑을 베렸다 보여집니다. 이후 창의 마무리가 돋보였습니다.

위 예를 든 네 판(마지막 건 제외한다면), 똑같은 장면에서 상대가 이창호였다면 최철한은 적어도 세 판은 이겼을 겁니다. 이게 제가 말하고픈 요지입니다. 최의 대국 심리 말입니다. 그의 실력 자체야 이미 검증된 거니까요.


2년 전 삼성배에서 조치훈이 박영훈에게 다 진 바둑을 ‘꼼지락’으로 이겨갔을 때 박영훈에 대한 연민과는 별도로 조치훈을 흔쾌히 축하해 줄 수가 있었습니다. 조치훈이 같은 한국인이었기도 하지만 정작 이유는 그의 우승이 의심할 여지 없이 ‘1회성’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바둑 헤게모니가 일본으로 넘어갈 걱정은 없었다는 거죠.

 

그러나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이번에는 창하오 개인은 축하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지지가 않고 어쩔 수 없이 ‘그 이후’가 남는 군요. 차이나의 바둑열기야 익히 알고 있는 바이고 그들에게 단 하나 부족한 게 국제대회 우승이었는데 창하오의 이번 응씨배 우승이 그 ‘물꼬’가 되지나 않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초일류들의 실력도 ‘이창호 빼고는 동급’이라는 게 4강 이하 단계로는 통계로도 이미 밝혀진 바 있고 작년에는 결승무대까지 ‘이창호 포함하여 동급’이었죠. 이젠 드디어 우승숫자까지 동급이 될까요? 이제부턴 너 한 번 나 한 번 이렇게 될까요? 이번 결승결과는 그 서막일까요?


*공배 메우기:마지막 질문에 이어 섣부른 예측을 간단히 하자면요. 앞으로 우승횟수는 한:차이나 간 2:1정도(일본은 별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공배는 메웠으니 계가는 세월이 대신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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