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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實錄 속의 이야기) 1.주인은 부처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고, 중(僧)을 좋아하는 것이다

 

[재미로 보는 옛이야기]조선왕조실록 속의 어떤 인물 이야기입니다.(조선왕조실록, 原文의 저작권은 이미 소멸하였고 번역저작권은 아마 국가에 귀속/公有(공유)로 돌리지 않았나 짐작됩니다. 즉, 원하는 대로 퍼다 써도 좋다는 거지요.)

이번 글은 조선시대 ‘自由夫人(자유부인)’ 이야기입니다. 글쎄...요즘 세태로 보자면 평범하거나 그저 조금 거시기한 정도의 이야기일 뿐인데 당시 가치관으로 보면 '자유부인'이지요, 아무튼‘자유부인’은 시대를 초월하여 존재하나 봅니다.^^

두 개의 판본입니다.
윗글은 번역원문 그대로이고, 아랫글은 읽기 좋도록 약간 손본 것입니다. 편한 것을 골라서 읽으십시오.

재미 있을랑가?...
재미 있으십시오, 요즘 흔한 말로, 재미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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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종 6권, 1년(1469 기축 / 명 성화(成化) 5년) 6월 22일(갑술) 6번째 기사
고 단양 군사 남의의 아내 이씨의 졸기


고(故) 단양 군사(丹陽郡事) 남의(南儀)의 아내 이씨(李氏)가 졸(卒)하였다. 〈이씨는〉 영양군(永陽君) 이응(李膺)의 손녀인데, 10여 명의 아들을 낳고 갑자기 죽었다. 남의의 용모가 드러나지 못하여 이씨는 아내의 도리로써 섬기려 하지 아니하고, 남의가 죽자 이씨는 과부로 살았는데, 중[僧]의 권선(勸善)976) 하는 자가 그 문(門)에 운집하였다. 그의 노복(奴僕)이 선언(宣言)하여 말하기를,
“주인은 부처[佛]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고, 중[僧]을 좋아하는 것이다.”
하였다. 한 향사(鄕士)가 인근의 늙은 할미의 집에 임시로 거처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어떤 중이 와서 늙은 할미와 더불어 귀엣말을 하고 갔다. 늙은 할미가 향사에게 이르기를,
“오늘 어떤 여자 손님이 오실 테니, 그대는 마땅히 피해 주시오.”
하므로, 향사는 마음속으로 의심이 나서 거짓으로 〈그러라고〉 말을 하고, 나가서 문병(門屛)에 엎드려 살펴보고 있었다. 날이 저물자 그 중이 와서 말을 마굿간에 매어 놓고, 장삼을 벗고 드러누워 쉬다가 늙은 할미에게 이르기를,
“어째서 늦는가?”
하니, 늙은 할미가 말하기를,
“의심하지 말라.”
하고, 곧 등불을 밝히고 술을 마련히 놓고 기다리었다. 밤 초고(初鼓)에 한 여자가 자색 웃저고리에 머리를 감싸고 한 여종을 데리고 와서, 중과 늙은 할미와 더불어 〈세 사람이〉 솥발처럼 벌려 앉아 술을 마셨는데, 조금 있다가 늙은 할미가 나가고, 중이 여자와 더불어 바싹 다가앉아서 바야흐로 못내 그리운 정을 베풀고자 하였다. 〈이때〉 향사가 옆에서 뛰어나가 성난 목소리로 말하기를,
“이는 어떤 여자이고, 이는 어떤 중인가? 내가 이 여자를 보니 반드시 보통 사람이 아닌데, 어찌하여 여기에 왔는가? 내 장차 순관(巡官)에게 잡도록 고하겠다.”
하니, 늙은 할미와 중이 놀라고 당황하여 빌면서 애원하였다. 향사가 듣지 아니하고 장차 잡아 가두려고 하는 것 같자, 그 여자가 여종에게 은밀히 이야기하여 면포(綿布) 수십 필을 가지고 왔다. 늙은 할미가 향사의 옷을 잡아당기며 반복하여 달래며 타이르기를,
“그대가 만약 내 말을 들을 것 같으면, 마땅히 면포와 중이 타고 온 말을 주겠다.”
하니, 향사가 말하기를,
“이는 작은 일이 아니므로 밝히지 않을 수 없으나, 주인 할미의 청이 간철하여 좇지 않을 수 없다.”
하였다. 그리하여 중과 여자는 곧 함께 도망하고, 향사는 그 베[布]를 말에 싣고 갔다. 사람들이 그 여자 손님이 누구인지 의심하였는데, 이가 곧 이씨였다. 그후 수년이 되어 이씨가 다시 시집가고 싶었으나, 스스로 말하기가 어려워서 그 어미에게 말하기를,
“노비가 매우 사나우니, 어찌하면 이를 제어하겠습니까?”
하니, 그 어미가 그 뜻을 알고, 스스로 그 배우자를 택하도록 하였다. 이씨남의의 신주(神主)를 그 형(兄) 남윤(南倫)의 집으로 보내고, 중신[媒]을 맞아들여 구혼(求婚)하였는데, 첨지(僉知) 유균(柳均)이 남자의 도[陽道]가 있고 장위(壯偉)하다는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이미 허락하였으나, 그 용모를 보고자 하여 인근에 사는 족형(族兄) 이중석(李仲石)을 청해다가 술과 성찬(盛饌)을 베풀어 보내어 유균(柳均) 등 수인을 데려다가 사음(射飮)977) 을 하도록 하였다. 이씨가 이를 바라보고 여종에게 이르기를,
“저 키가 크고 건장한 사람이 누구인가?”
하니, 말하기를,
유첨지(柳僉知)입니다.”
하니, 이씨가 기뻐하며 마침내 정약(定約)하였다. 이 뒤로부터 날마다 거울에 비추어 보고 분을 발랐는데, 마침 남의의 유모[乳媼]가 내알(來謁)하였다. 이씨가 거울을 던지고 〈유모를〉 맞이하여 말하기를,
“어머니는 내 뜻을 빼앗지 마십시오.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였다. 또 늙은 노비 약간 명이 뜰에서 늘어서서 이씨를 보고 말하기를,
“주인의 재산이 넉넉하지 못합니까? 노비가 부족합니까? 무슨 까닭으로 새로 시집을 가려 하십니까?”
하며, 눈물을 흘리는 자까지도 있었으나, 이씨는 창문을 닫고 대답하지 않았다. 이씨유균에게 시집을 가자, 남의의 노비로써 이씨 집에 살던 자가 하루에 모두 떠나가며, 곡성(哭聲)이 길에 가득하였으나, 이씨는 조금도 슬픈 기색이 없이 꾸짖으며 말하기를,
“어찌하여 속히 떠나지 아니하고 도리어 우는가?”
하였다. 이씨유균을 사랑하여 매양 남에게 말하기를,
“우리 어른은 정말 남자이다.”
하였다. 이때 유균이 위장(衛將)이 되었는데, 동료 가운데 일을 만들기를 좋아하는 자가 ‘유씨이씨동뢰(同牢)978) 하는 상황’을 관청의 벽에 그려서 기롱하였으나, 유균도 부끄럽게 여기기 않았다. 그 뒤 수년이 못되어 유균이 또한 죽으니, 이씨가 또 다시 시집갈 뜻이 있었다. 이 앞서 이씨가 맹인(盲人)을 불러서 그 평생(平生)을 점치게 하니, 맹인이 말하기를,
“마땅히 세 남편을 맞이해야 되는데, 뒤에 만나는 사람이 반드시 백년 해로할 것이다.”
하였었다. 이때에 이르러 이씨유균의 시체 곁에서 탄식하며 말하기를,
“신(神)이여! 맹인의 말대로 저이가 또 죽었으니, 뒤에 만나는 자는 과연 백년 해로하겠습니까?”
하였으며, 성복(成服)하는 날에도 손님을 대하여 술자리를 베풀며 전혀 슬픈 빛이 없었다. 이씨유균을 위하여 중들을 그 집에 모으고 불사(佛事)를 행하며 창가에 임(臨)하여 보고 있는데, 한 중이 게송(偈頌)979) 을 창(唱)하며 빙빙 돌다가 창 앞에 가서는 반드시 옷소매로 창을 스치니, 이씨가 거짓으로 성내어 말하기를,
“괴이하구나! 저 화상(和尙).”
하고도, 역시 피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이 중을 의심하였는데, 이미 이씨와 사통(私通)한 것이었다. 이씨가 한쪽 눈이 멀었기 때문에, 이때 사람들이 한화(閑話)하는 자는 반드시 ‘애꾸눈 부인’이라 칭하여 말하였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8책 391면
【분류】 *인물(人物)










예종 6권, 1년(1469 기축 / 명 성화(成化) 5년) 6월 22일(갑술) 6번째 記寫(기사)

- 故 단양 君事(군사) 남의의 아내 李씨 별세에 부치는 글 - 

(고(故) 단양 군사(丹陽郡事) 남의(南儀)의 아내 이씨(李氏)가 졸(卒)하였다. 〈이씨는〉 영양군(永陽君) 이응(李膺)의 손녀인데, 10여 명의 아들을 낳고 갑자기 죽었다.)

지아비인 남의의 용모가 뛰어나지 못하여 이씨는 아내의 도리로써 섬기려 하지 아니하고, 남의가 죽자 이씨는 과부로 살았는데, 중[僧]의 권선(勸善:불가에서 선심 있는 사람에게 보시를 청함) 하는 자가 그 문(門)에 운집하였다. 그의 노복(奴僕)이 선언(宣言)하여 말하기를,

“주인은 부처[佛]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고, 중[僧]을 좋아하는 것이다.”

하였다. 한 향사(鄕士: 시골 선비 또는 有志)가 인근의 늙은 할미의 집에 임시로 거처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어떤 중이 와서 늙은 할미와 귀엣말을 하고 갔다. 늙은 할미가 향사에게 이르기를,

“오늘 어떤 여자 손님이 오실 테니, 그대는 마땅히 피해 주시오.”

하므로, 향사는 마음속으로 의심이 나서 거짓으로 그러라고 말을 하고, 나가서 문병(門屛: 집 바깥에서 집안을 들여다보지 못하도록 대문(大門)이나 중문 안쪽에 가로막아 놓은 담이나 널빤지)에 엎드려 살펴보고 있었다. 날이 저물자 그 중이 와서 말을 마굿간에 매어 놓고, 장삼을 벗고 드러누워 쉬다가 늙은 할미에게 이르기를,

“어째서 늦는가?”

하니, 늙은 할미가 말하기를,

“의심하지 말라.”

하고, 곧 등불을 밝히고 술을 마련해 놓고 기다리었다. 밤 초고(初鼓 :시간을 알리는, 첫 북소리)에 한 여자가 자색 웃저고리에 머리를 감싸고 한 여종을 데리고 와서, 중과 늙은 할미와 더불어 세 사람이 솥발처럼 벌려 앉아 술을 마셨는데, 조금 있다가 늙은 할미가 나가고, 중이 여자와 더불어 바싹 다가앉아서 바야흐로 못내 그리운 정을 베풀고자 하였다. 이때 향사가 옆에서 뛰어나가 성난 목소리로 말하기를,

“이는 어떤 여자이고, 이는 어떤 중인가? 내가 이 여자를 보니 반드시 보통 사람이 아닌데, 어찌하여 여기에 왔는가? 내 장차 순관(巡官; 순찰하는 관리)에게 잡도록 고하겠다.”

하니, 늙은 할미와 중이 놀라고 당황하여 빌면서 애원하였다. 향사가 듣지 아니하고 장차 잡아 가두려고 하는 것 같자, 그 여자가 여종에게 은밀히 이야기하여 면포(綿布) 수십 필을 가지고 왔다. 늙은 할미가 향사의 옷을 잡아당기며 반복하여 달래며 타이르기를,

“그대가 만약 내 말을 들을 것 같으면, 마땅히 면포와 중이 타고 온 말을 주겠다.”

하니, 향사가 말하기를,

“이는 작은 일이 아니므로 밝히지 않을 수 없으나, 주인 할미의 청이 간절하여 좇지 않을 수 없다.”

하였다. 그리하여 중과 여자는 곧 함께 도망하고, 향사는 그 베[布]를 말에 싣고 갔다. 사람들이 그 여자 손님이 누구인지 의심하였는데, 이가 곧 이씨였다.

그후 수년이 되어 이씨가 다시 시집가고 싶었으나, 스스로 말하기가 어려워서 그 어미에게 말하기를,

“노비가 매우 사나우니, 어찌하면 이를 제어하겠습니까?”

하니, 그 어미가 그 뜻을 알고, 스스로 그 배우자를 택하도록 하였다. 이씨가 남의의 신주(神主)를 그 형(兄) 남윤(南倫)의 집으로 보내고, 중신[媒]을 맞아들여 구혼(求婚)하였는데, 첨지(僉知) 유균(柳均)이 남자의 도[陽道: 남자로서 지켜야 할 도리]가 있고 키가 크고 건장하다는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이미 허락하였으나, 그 용모를 보고자 하여 인근에 사는 족형(族兄: 집안의 형뻘이 되는 남자) 이중석(李仲石)을 청해다가 술과 성찬(盛饌)을 베풀어 보내어 유균(柳均) 등 여러 사람을 데려다가 사음(射飮: 활을 쏘며 먹고 마심)을 하도록 하였다. 이씨가 이를 바라보고 여종에게 이르기를,

“저 키가 크고 건장한 사람이 누구인가?”

하니, 말하기를,

“유첨지(柳僉知)입니다.”

하니, 이씨가 기뻐하며 마침내 정약(定約: 약정)하였다. 이 뒤로부터 날마다 거울에 비추어 보고 분을 발랐는데, 마침 남의(죽은 지아비)의 유모[乳媼유온]가 방문하였다. 이씨가 거울을 던지고 유모를 맞이하여 말하기를,

“어머니는 내 뜻을 빼앗지 마십시오.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였다. 또 늙은 노비 약간 명이 뜰에서 늘어서서 이씨를 보고 말하기를,

“주인의 재산이 넉넉하지 못합니까? 노비가 부족합니까? 무슨 까닭으로 새로 시집을 가려 하십니까?”

하며, 눈물을 흘리는 자까지도 있었으나, 이씨는 창문을 닫고 대답하지 않았다. 이씨가 유균에게 시집을 가자, 남의의 노비로써 이씨 집에 살던 자가 하루에 모두 떠나가며, 곡성(哭聲)이 길에 가득하였으나, 이씨는 조금도 슬픈 기색이 없이 꾸짖으며 말하기를,

“어찌하여 속히 떠나지 아니하고 도리어 우는가?”

하였다. 이씨가 유균을 사랑하여 매양 남에게 말하기를,

“우리 어른은 정말 남자이다.”

하였다. 이때 유균이 위장(衛將: 五衛의 將)이 되었는데, 동료 가운데 일을 만들기를 좋아하는 자가 ‘유씨와 이씨가 동뢰(同牢: 부부가 서로 음식을 같이 먹는 일)하는 상황’을 관청의 벽에 그려서 기록하였으나, 유균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그 뒤 수년이 못되어 유균이 또한 죽으니, 이씨가 또 다시 시집갈 뜻이 있었다. 이 앞서 이씨가 맹인(盲人)을 불러서 그 평생(平生)을 점치게 하니, 맹인이 말하기를,

“마땅히 세 남편을 맞이해야 되는데, 뒤에 만나는 사람이 반드시 백년해로할 것이다.”

하였었다. 이때에 이르러 이씨가 유균의 시체 곁에서 탄식하며 말하기를,

“신(神)이여! 맹인의 말대로 저이가 또 죽었으니, 뒤에 만나는 자는 과연 백년해로하겠습니까?”

하였으며, 성복(成服: 초상이 나서 처음으로 상복을 입음. 보통 초상난 지 나흘 되는 날부터 입는다)하는 날에도 손님을 대하여 술자리를 베풀며 전혀 슬픈 빛이 없었다. 이씨가 유균을 위하여 중들을 그 집에 모으고 불사(佛事)를 행하며 창가에 다가가 보고 있는데, 한 중이 게송(偈頌: 부처의 공덕을 찬양하는 노래) 을 부르며 빙빙 돌다가 창 앞에 가서는 반드시 옷소매로 창을 스치니, 이씨가 거짓으로 성내어 말하기를,

“괴이하구나! 저 화상(和尙).”

하고도, 역시 피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이 중을 의심하였는데, 이미 이씨와 사통(私通: 남몰래 정을 통함)한 것이었다. 이씨가 한쪽 눈이 멀었기 때문에, 이때 사람들이 한화(閑話: 심심풀이 이야기)하는 자는 반드시 ‘애꾸눈 부인’이라 칭하여 말하였다.


【태백산史庫본】

【影印本영인본】 8책 391면

【분류】 *인물(人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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