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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090516 金盆洗手 -笑傲江湖를 추억하며

 

금분세수 :쇠金, 대야盆 말 그대로 해서 금대야에 손을 씻는다는 뜻. 「동양적 환타지」라 할, 무협에서는 협사, 무사.. 강호인물들이 강호의 모든 은원을 끊고 강호에서 은퇴하고 싶다 했을 때 이 금분세수란 걸 한다. 간단히 말해 금분세수란 강호 은퇴의식.

 




특별한 작가 金庸김용, 내게 특별한 소설 笑傲江湖소오강호.


소오강호는 내 생각에 ‘호리병형’ 소설이다. 소설 작법? 창작론? 암튼 그런 측면에서 소오강호 총 6권의 소설 중 제 1권은 호리병의 목 부분에 해당한다. 인물과 사건이 빈약한, 호리병의 이 좁은 목 부분에서 웬만한 독자는 다 「북위표국의 소공자 임평지」 를 주인공으로 착각하게 되지만,..

지루한 모가지 부분을 지나 드디어 술병의 몸통, 볼록한 부분에 이르러서야  독자는 비로소 진정한 주인공과 쏟아지는 사건과 수많은 인물과 인상 깊은 스토리를 만나게 된다. 그리하여 답답함이 탁 트이는 느낌을 받으면서 이야기에 한껏 빠져 든다. 결국 독자는 남은 다섯 권을 단숨에 읽지 않고는 못 견디게 되는 일종의 가벼운 열병에 걸리는 셈인데, 소오강호의 이러한 구조 하에서 분기점 역할을 하는 장면이 바로 금분세수장면이다.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 장면, 소오강호의 금분세수 장면은 선악과에 농락당하는 존재들이  집단으로 연출하는 추태스런 춤이요, 하룻밤 새 벌어지는 가혹하며 슬픈 잔치이다. 장면에서는 인간 본성이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正정파’ 고수 유정풍은 우연한 인연으로 ‘정파와는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邪사파’의 곡양과 평생의 지기知己가 된다. 자신의 이러한 이면裏面과 떳떳한 정파인으로서의 처신을 둔 고민 끝에 유정풍은 금분세수를 하기로 결심, 뭇 강호인을 불러 모았고, 문제의 밤 군웅들 앞에서 의식을 행하려 한다. 허나, 정파 맹주는 진즉에 유정풍의 금분세수를 알고 강호통일 야망이란 맹주 제 맘대로 식의 잣대로 재단까지 마쳐놓은 상황, 일단의 고수들을 파견하여 의식을 저지한다.


우리 세상사에서, 대의와 명분은 분명히 필요한 것이며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일까. 우린 자신할 수 있을까. 자, 소오강호란 소설 속에서 대의와 명분은 正과 邪의 형태로 등장한다. 금분세수 장면은 예의 정과 사를 둘러싼 첨예한 갈등 현장이다.


正과 邪의 이름 아래 벌어지는 행태를 묘사하며 소설은 묻는다. 사람들이여 正과 邪인가? 다른 것인가?


‘정파맹주가 보낸 고수들’의 행태는 이랬다. 1차 좋은 말로 2차 강경한 협박으로 금분세수의 보류를 권함과 동시, 암암리에 유정풍 몰래 고수들을 요소요소에 심어두고서, 유정풍이 말을 듣지 않음에 대비하여 그의 식솔들을 감시,제압하려 한다. 일시 흔들렸으되, 이러한 숨은 대접을 알게 되자 오히려 모욕감을 느끼며 ‘기세파’유정풍은 마음을 바꾸어 의식을 강행하려 한다.

‘정파맹주가 보낸 고수’는 금분세수의 이면에 깔린 ‘추악한’ 곡절을 군웅들에게 폭로한다. 맹주냐 유정풍이냐, 人情이냐 正邪정사택일이냐, 정파군중들은 선택을 강요당하게 되고 1차 좋은 말로 유정풍에게 권면해보고, 2차 한숨을 쉬며 ‘정파맹주가 보낸 고수들’ 쪽으로 몸을 옮긴다. 무언의 의사표현이다. 이런 식의 의사표현은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마치 의식儀式처럼 행해진다.


과연 정과 사란 게 무엇인지, 의식에서 오고가는 대화를 들어보자. 들어보면 우린 정과 사란 걸 알 수 있을까.




(이하 소설 「笑傲江湖소오강호」에서)


악불군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유 아우! 그대가 고개만 끄덕인다면 악불군이 책임지고 그대를 위해 곡양의 일을 처리하겠소. 어떠시오? 그대는 사내대장부로서 친구에게 잘못을 저지를 수 없다고 했는데 천하에 곡양 한 사람만 그대의 친구이고 오악검파와 이곳에 많이 모인 호걸들은 그대의 친구가 아니란 말이오? 이곳의 천여 명이나 되는 무림의 동도들이 그대가 금분세수를 한다는 말을 듣고 먼 길을 멀다 하지 않고 달려왔으며 가슴 가득히 성의를 다해 그대에게 축하를 했으니 진정한 우정을 보인 것이 아니겠소. 그대는 집안의 나이 많은 노인과 어린애와, 오악검파의 사형제들의 의리, 이곳의 수천 명이나 되는 동도들의 우정을 함께 합친다 해도 곡양 한 사람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시오?”


 유정풍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악 사형, 그대는 선배이니 대장부가 해서는 안 되는 행위가 무엇인지 알고 계실 것이오. 그대의 충고에 이 유 모는 무척 고맙게 생각하고 있소. 그러나 곡양을 살해하라고 강요한다면 절대 들을 수 없소. 그것은 나보고 악 사형을 해치거나 이곳에 계신 한 분을 해치라고 강요했을 때 내가 거절하는 것과 같은 것이오. 이 유 모는 전 가족이 죽음을 당한다 해도 결코 허락할 수 없는 노릇이외다. 곡형은 나의 절친한 친구입니다.”


 그와 같은 말은 지극히 성의에 차 있어서 군웅들은 얼굴빛이 변했다. 무림에선 의리를 가장 중시했다. 유정풍이 곡양과의 교분을 중요시하는데 대해 강호인들은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한편 찬탄을 금치 못했다.

 악불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유 아우, 그 말은 틀렸소. 유 아우님이 친구와의 의리를 지키는 것은 탄복할 일이지만 정사를 가리지 않고 시비를 가리지 않는 면이 있구료. 마교는 많은 악한 일을 저질렀으며 강호의 정인군자들을, 무고한 백성들을 잔인하게 해쳤소. 유 아우님은 일시적으로 칠현금과 퉁소로써 의기투합한다고 하여 전 가족의 목숨을 그 자에게 맡긴다는 것은 의리라는 두 글자를 오해한 것이오.”


 유정풍은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악 사형, 그대는 음율을 좋아하지 않으니 동생의 뜻을 모를 것이오. 말이나 글은 거짓말을 할 수 있지만 칠현금이나 퉁소의 소리는 마음의 소리라서 결코 가장할 수가 없는 것이외다. 동생과 곡형이 서로 사귀게 된 후 칠현금과 퉁소 소리로 서로 화답하는 가운데 마음과 뜻이 통하게 되었소. 동생은 기꺼이 전 가족의 목숨을 걸고 거부하겠소. 곡형은 마교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이지만 손톱만큼도 사악한 구석이 없는 사람이외다.”


악불군은 길게 한숨을 쉬고 천문진인 옆으로 갔다. 노덕약, 악영산, 육후아 등도 악불군과 같이 행동했다...



무엇이 지켜야 할 가치일까. 사람들이여 正과 邪인가? 다른 것인가?


행태. 

모든 사람들이 나를 떠나도 내가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겠다, 이것이 유정풍이 보인 행태였다. 그래? 네가 그렇다면 우린 가차 없이 찌르겠다. 더한 짓인들 못할 소냐? 이것이 ‘정파맹주가 보낸 고수들’이 보인 행태였다. ‘정파맹주가 보낸 고수들’은 협박에 굴하지 않는 유정풍의 제자와 식솔들을 정과 사란 이름 아래 가차 없이 찌른다. 푹푹..

큰 아들과 부인, 사람들은 차례차례 죽어간다.


“이 흉악한 도적놈! 너희 숭산파(;正파)는 마교(;邪파)보다도 만 배나 더 잔악하다!“


굴복하지 않는  유정풍, 그러나 ‘정파맹주가 보낸 고수’의 생명 위협에 굴복하는 어린 막내의 참혹한 모습까지 견뎌내지는 못한다.


유근(막내아들)은 약간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러나...아, 아버님 그들은...저의 코를 자르고...저의 눈알을 뽑아내려고...“


유정풍은 소리 내어 웃었다.


“살려 줘요! 그리고 저희 아버님을 용서해 주세요!”


육백은 말했다.


“너희 아버지는 마교의 악인과 결탁을 했다. 너는 그가 잘 했다고 생각하느냐?”


유근은 나직이 말했다.


“잘...잘못했어요.”


육백은 말했다.


“그러한 사람은 마땅히 죽어야 되겠지?”


유근은 고개를 숙이며 감히 대답하지 못했다. 육백은 말했다.


“꼬마가 대답하지 않는다면 일검으로 죽여 버려라.”


사등달은 대답했다.


“네.”


그러나 그 말이 정말 죽이라는 말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칼을 들고 내리치는 시늉만 했다.

유근은 재빨리 말했다.


“죽어야...마땅합니다.”


육백은 말했다.


“잘 대답했다. 이후부터 너는 형산파의 사람도 아니고 유정풍의 아들도 아니다. 내 너의 목숨을 살려 주겠다.”


유근은 땅바닥에 꿇어앉아서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두 다리에 맥이 빠진 듯 일어서지도 못했다.

군웅들은 그와 같은 광경을 보고 참을 수 없는 수치를 느꼈다.

그들은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바라보지도 않았다.

유정풍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 육가야! 네가 이겼다.”



‘군웅들은 수치를 느끼고 외면하였다 끝’ 냉정히 마침표를 찍어버리는 작가. 그 냉정함이 못마땅하면서도 동의 안 할 순 없다고 생각하는 독자.


김용, 그의 다른 작품에서 작가 김용은 묻는다.

「사랑이란 무엇이기에 生과 死를 가름하느뇨?」


이 장면의 물음은 이것이겠지.

「正邪, 선과 악이 무엇이기에 사람을 가름하려 드느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