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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100101 세종대왕께서는 漢字 발음을 중국과 일치시키려 하셨군요

 

따뜻한 연말연시를 오로광장()에서 더 따땃허게 보냈다. 몇 개의 글을 올렸는데 그중 하나를 우리 블로그에 남겨놓는다. 본문에서 말하는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만든 목적’에 대한 전문가의 설명은 이곳()에 있다. 이하 파란색도 포함, 본문이다.




아침에 세종대왕 관련 이야기를 보고 정신이 번쩍 듭니다. 먼저 박타령님에게 감사드리고요.

생각하던 것을 이참에 또 써보았습니다. 살짝 격앙되이 읽힐 수도 있으니 너른 이해를 구합니다. (__)


그러니까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만득 목적이,


한자발음의 혼란 정리(1) 겸

한자 발음을 중국과 일치(2) 겸 여기까지는 발음기호로서이고, 또 겸사,

토박이말의 글자(3)로서의 기능을 위해 만드셨군요.


그중 2번이 (또는 3번까지 포함하여) 핵심이었고, 호.

세종대왕께서 원조파 원음주의자/'국제주의자'였다니,

2번의 의의는 시간을 두고 차분한 평가가 필요하겠지만 예상외는 예상외이군요.


2번 목적을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무리 생각해도요.

한국어 발음 ‘오렌지’를 영미 식 발음과 일치시키자 주장했던 현 정부 정권 인수위 '국제주의자' 이 모 여사가 제꺼덕 떠오르는데요. 뭐 동일선상에 놓을 순 없겠습니다만, 대강의 맥락에서는 명백히 같은 방향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동일선 상에 놓을 수 없는 이유는,


國子국자인 한자와 그 한자를 쓰는 나라와의 발음일치

                    vs.

국자인 한글과 그 한글과는 다른 문자를 쓰는 나라와의 발음일치.


조 차이 때문. 세종대왕은 그나마의 일부 합리적 이유가 있었고, 이명박 정권 인수위 이 모 아줌마는 그 '그나마'조차 없었죠.)


정통 유학이 고려 말부터 유입이 되었죠?

세종대왕께서는 一國의 왕자로서 일류의 스승을 모시고 정통 유학을 배운 분으로서 당시의 '선진문물'에, 뭐라 해야 할까, 아무튼 선진문물이란 것이 그것(儒學) 밖에 없었으니까 어느 정도 압도당할 수밖에 없었다 말할 수도 있겠고, 어쩌면 뛰어난 학식의 소유자로서 학자적 일면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죠. 후손들 각자 나름의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아무튼 조선 사대부들은 선진문물에 심취하며 점점 傾倒경도되기 시작합니다. 경도되었다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분위기에 보태어 결정적 사건이 겹치는데 임진왜란과 明의 참전입니다. 이래서 再朝之恩재조지은이라는 말이 생겨납니다. 조선 사람들이 명나라에 감격해버린 거죠.


1636년 12월24일, 진눈깨비가 내렸다. 이날은 명나라 황제의 생일이었다. 이른바 성절(聖節)이다. 인조는 여러 신하들을 거느리고 서쪽으로 북경 황궁(皇宮)을 향해 절을 올렸다. 충성스러운 조선이었다. 청군에 쫓겨 손바닥만 한 남한산성에 갇혀 버린 상황에서도 황제에 대한 망궐례(望闕禮)는 거르지 않았다.  -'병자호란 다시읽기' 중에서(서울신문)


受降壇수항단(항복을 접수하는 단)아래에서 ‘죄’를 고백하고 ‘개과천선’하겠다고 다짐한 뒤 세자와 신료들을 이끌고 三拜九叩頭禮삼배구고두례(三拜:세 번 절. 九叩頭: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기)를 행하기 대략 한 달여 앞둔, 남한산성의 풍경입니다. 북경 황궁을 향해 절을 올리던 조선의 왕과 신하들은 한 달 후엔 어떤 일이 자신들을 기다리는지 알았을까요?

'병자호란 다시 읽기' 연재를 읽던 당시 저는,
'치욕의 항복'은 이미 어느 정도 알던 바라 비록 참담하지만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 지경으로 치달아가는 막다른 상황 하에서도 望闕禮망궐례를 빼먹지 않는, 뼈속 깊이 침투한 慕華모화 의식意識을 접하자, 흔히 말하는 깨는 기분이었습니다. 항복은 불가피해서 하는 거지만 망궐례는 말이죠. 그럴 것까지는 없잖아요.
...

모화주의 意識의식이라는 완강한 집착이 유연한 사고를 막는 것이며, 드물게도 실상을 직시하고 주체적이며 유연한 외교를 펼치던 광해군을 죄악시하여 내친 결과를 만들었고 광해군을 내친 당사자가 삼배구고두...
하튼,  


세종대왕 당시보다 불과 몇 십 년 전, 신흥국 明이 북방 일대를 요동遼東에 귀속시키려 하자 요동정벌을 외치며 실제로 군대를 출동시킨 ‘황금보다 돌 좋아한다던’ 최 모 장군도 있었는데...


반도 사람들이 하나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인 지 대략 300년, 세종대왕 이후 대략 200여 년,.. 이 세월 동안에 일어난 변화,..

‘돌 좋아하는 장군’과 위의 궁핍하고 추운 산성에 갇혀서도 ‘望闕禮망궐례를 거르지 않던 왕과 신료’, 모두 우리의 조상입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를 압도하는 선진문물은 있고, 재조지은 역시 또 한 번 있었습니다. 60년 전 일이죠. 그나마 다행인 점은 재조지은이 아예 일치감치 있었다는 것이고, 이미 미국 바로보기 운동 또한 한차례 있었다(80년대 초)는 점이고,


그러나 여전한 건 선진문물에 세종대왕보다 더 심하게 경도된 사람들이 넘쳐흐른다는 것이고, 아린쥐..


이 모 아줌마의 ‘아린쥐’는 좌절되었습니다만, 100년쯤 후 일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죠. 언젠가 아린쥐가 인정받게 된다면, 누군가

‘그럼 우리 아예 그냥 영어 사용하는 게 어때? 표기는 한글로 하고, 한글에 영어 악센트 방점이랑 장단음 표기 도입하면 되지 않갔어? 응?..’

뭐 이런 엘레강스하고 환타스틱하고 시크하고 오리지날리티 파워풀한 서제스천이 섬타임에 어피어런스할지도 모릅니다. 에부리완 어그리먼트?


일부러 심하게 표현하였지만, 지금도 저런 식으로 대화에 영어 단어 섞기 좋아하는 자들이 한국 땅에 수두룩하고, 지금도 영어 공용화론자가 버젓이 존재하며,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지 못할 이유가 뭐냐고 버젓이 주장하는 자가 있는데 말입니다.


아니 ‘망望아메리카禮례’가 설마 있을까 싶지만, 지금도 ‘미국의 재조지은’을 들먹이는 세력이 제법 왕성하고,...


오늘날 우리가 필수적으로 ‘영어고문’을 받듯이, 세종대왕 당시 사대부들 역시 필수적으로 ‘한자고문’을 받았죠. 다만 우린 문자와 발음 양 측면 모두에서,

약 600년 전 당시에는 문자(한자)만 받는 고문이었죠.(고문이란 단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기를)


당시에 한자의 발음까지 외국어 그대로 배웠다면? 마치 오늘날 우리가 영어 배우는 것처럼.


말할 것도 없이 세종대왕의 원음주의 시도는 대성공이었을 겁니다. 또는 오늘날처럼 강력한 국가권력의 개입이 교육에도 가능했다면 즉, 초중고(=서당) 교육이 국가 주도 하에 시행되었다면?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럼 100중 99이상 오늘날 우리 후손들은 중국어를 쓰고 있겠죠.


한국인들이 영어 발음을 필수적으로 배우니 영미권 기타 고유명사의 영미식 발음이 무리 없이 한국민들에게 수용되는 것입니다. 이 예를 들이대며 ‘양놈 이름은 왜 원음대로 하면서 중국 사람 이름은 왜 원음대로 안 하냐’ 하는 것은, ‘나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요’ 하는 소리와 같습니다.


또, 포르투갈 사람, 스페인 사람, 러시아 사람, 네덜란드 사람,..이런 사람들 이름을 해당 언어 원음에 가깝게 발음시키려 애쓰는 해당 언어 전문가들, 이에 부화뇌동하는 언론 및 낯선 언어의 낯선 발음 억지로라도 따라 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아는 일부 사람들. 모두 역시 ‘나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요’


무엇보다도 그렇게 우기는 사람들 그 자신이 말이죠. 누군가 가르쳐주지 않으면 세계 모든 사람의 이름을 원음대로 발음할 수가 없어요. 왜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려고 하지요?


이런 이치는 중국사람 이름도 마찬가지에요. 누군가에게 ‘좀 갈쳐 주세요’하지 않으면 중국사람 이름 발음도 못해요. 말이 되나요?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제가 이 지랄이지만.


하튼 자긴 중국어 까막눈이면서 그래도 곧 죽어도 이걸 중국어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이죠. 뭐를 위해서? 예의를 위해서. 뭐를 위해서? 국제화 시대니까. 뭐를 위해서? 한글이 모든 언어의 발음 표기 가능하니까. 그럼 그렇게 말하는 당신의 혀/두뇌는 세상 모든 언어의 발음 가능하고 꼬부랑 꼬부랑 꼬아놓은 이름 단번에 암기 가능합니까? 칵 그냥...

제가 타가희는 단번에 외웠고 퉤지아시는 서너 번 이상 만에 외웠어요. 거짓말 아니에요.

냐오차오는 그해 여름 한국 야구 금메달 따는 게임 거의 다 테레비로 보며 냐오차오냐오차오 고문을 당했는데도 불구하고 세월 지나니까 결국은 까먹습디다. 그러니 퉤지아시는 그나마 제가 바둑꾼 아니면 이것도 세월 지나면 까먹기 십상이지요.

당신은 타가희는 못 외우겠고 퉤...퉤쟈시냐 지아시냐 아구 짜증.. 하튼 님은 뒈쟈시는 단번에 외워지든가요?

뭐를 위해서? 그 사람의 이름은 그 사람의 발음으로. 그러는 자신은 그거 누군가 갈쳐줘야 겨우 따라하는 앵무새 신세이면서. 뭐를 위해서? 하다하다 안 되니까 중국에 너무 쏠릴까봐. 아고 미처.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영어 까막눈이 아니니까 서양 이름을 영어(의 한국어 식) 발음으로 그나마 해주는 거지, 예의니 뭐니 따위가 아니라고요. 그러나 우린 중국어 까막눈이니까 중국사람 이름을 중국말로 해줄 수가 없다고요.


영화 대부 보니까, 미국인 Michael이 시칠리아에서 구애求愛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처자가 그리스인인가 그럽디다. 장인 될 사람을 만나 청혼을 하는데, 마피아 보스인 마이클을 수행하는 경호 겸 통역(현지인입니다.)이 미국식 이름‘ Michael’을 뭐라 통역할까요?

그리스어인지 이태리어인지는 모르겠으나, 뭐라뭐라 거 미수다의 이태리 처녀 비슷한 발음 속에 ‘미카엘’ 하고 나옵디다. 당사자가 앞에 있는데도 말이죠. 보스의 이름을 말이죠.


예의론에 의하면 이 경호원 ‘너 보스 이름도 몰라?’ 총살 감 되겠습니다.

하튼 이리하여 마이클은 성혼成婚을 합니다. 아내는 남편 마이클을 뭐라 부를까요? 영화 보신 분은 제 말이 맞다는 걸 아실 겁니다. 예의론에 의하면 ‘마이클’하고 불러야죠?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남편인데, 천만의 만말씀! 미카엘 이럽니다. 미카엘은 싸가지 밥말아묵은 아내와 사는 건가요?


물론 미국 땅으로 가서 산다면 얘기가 다르죠.

요는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은 그 땅의 발음대로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치라는 얘기입니다.


원음주의가 강력한 이유는 그 사람의 이름은 그 사람의 발음대로, 그래도 이것은 인간 본성을 향한 강력한 요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할 수 없는 걸 하자고 하면 안 되죠. 우린 중국어 까막눈이라니까요. 국어와 영어 중국어에 있어서 우리의 정체성은 이러한데...


오늘날 국어 시간에 국어의 정체성 교육을 팽개치고, 영어 시간에 영어와 국어의 정체성 구분을 팽개치고,..

이런 상황, 후손들은 ‘소중화를 자처 어쩌고' 하며 조상들을 비난할 자격이 없습니다.


먼 훗날 후손들이, 오늘 이 땅의 사람들을 비난하는 일이 있을지 누가 알아요?

小미국을 자처 어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