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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알파고] 누구도 이세돌보다 잘할 수 없다

 

내가 이세돌인가 이세돌이 나인가 싶을 정도로 빠졌던 일주일, 황홀했던 일주일이었습니다.

생일잔치가 지난 후 열 살 꼬마의 심정이 이런 것입니까?

일주일 동안의 황홀한 경험이, 막상 끝나버리니 후유증이 만만찮네요.
앞으로 언제 또 올까, 오기나 할까...

 

꼭 이기고 싶다는 생각에 과욕을 부렸다

 

(:5국은 너무 아깝다는 반응이다) ‘상대가 고수라면 인정하고 들어가지만, 그건 아니었다.’

 

‘4국부터는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5국에서 정말 제대로 붙어 보고 싶어서 준비를 가장 많이 했는데 정말 아쉽다. 3연패를 했을 때보다 5국에서 졌을 때가 더 마음이 아팠다.’

 


'제대로 붙어서',  즉 이세돌은 5국을 실력으로 이겨 보이고 싶었습니다. 4국 같은 전략의 승리가 아닌, 手法의 승리를 보이겠다, 오로지 正手로 정면대결을 하여도 이길 수 있다. 아직은 기계의 수법이 인간의 수법을 넘어섰다 할 수 없다. 이세돌의 생각이었고 자신감이었습니다.


증명 목표, 야심찬 도전 목표였습니다.

 

그리고, 그러나, 졌습니다. 覇氣(패기) 넘기는 도전, 단단히 마음먹은 도전에 실패하고서 많이 속상한 이세돌입니다.


(돌을 거두는 순간) ‘울컥했다. 울면 안 되니까 안 운거다. 울고 싶지 진짜..’

 

저는 이세돌의 판단(알파고 평가), 自信, 5국에 부여한 의미, 이것들에 터 잡은 5국 전략적 방향. 토를 달고 싶지 않습니다. 이건 선택의 문제에 가깝기 때문이죠. 그렇게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컴퓨터가 가장 잘 할 수 있다는 계산으로 알파고에 도전했다. 이겼으면 더 좋았겠지만 이세돌은 역시 대단한 승부사라고 느꼈다’(김성룡)

 

오판도 좋고 자만도 좋고 호기심의 發露(발로)도 좋습니다. 이 판이 월드컵 결승전 일본전이 아닌 한에야 이세돌의 선택은 오로지 이세돌의 몫입니다.


 

그림1 아버지의 관전평

초반 실수 후 추격 중’-데미스 하사비스,

한창 중반전 진행 중에 나온 알파고 아버지의 관전평에 한국 棋士들은 백58(그림의 백1)로 이해했다. 2로 응수함으로써 엄청난 손해수가 되었다.


 

그림2

백의 正手는? :애초에 아무 짓도 안 하든지(위에 그림1의 자리 선수 활용 맛 자체로 흑은 껄적지근하다) 또는 이왕 건드린 상태라면 저기까지만 교환해두고 실전과 같은 수순을 진행한다. 나중에 하변 두 칸 벌림이 백 일단의 탈출을 보아 거의 선수.

 

알파고의 ‘초반 실수는 어느 정도 손해일까요? 제가 보기엔 최소 3~4집 손해입니다.


 

그림3 14와 흑16의 차이는 몇 집일까?

흑은 16 오른쪽 자리를 절대 당해선 안 된다. 너무 아프니까.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실전처럼 상변 삭감을 못 가고 바로 하변을 지켜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 흑14로 못 가고 16으로 와야 하는, 딱 그 차이만큼 손해이다. ‘초반 실수의 손해가 바로 그 차이이다.

 

이세돌은 이른 시기에 3~4집의 우세를 잡았습니다.

 

초반에 유리해지면서 이기고 싶다는 욕심이 기어 나왔다.’ ‘나의 한계, 나의 실패이다

 

계가했으면 한집반, 역산했을 때 이세돌은 초반 이후 다섯 집 정도를 당했다는 거지요.

 

근데 어디서 당했을까요?

'아마추어의 정밀연구'를 해봅시다.


 

그림4

껴붙이는 수(한 칸 위 자리)와 갈등 끝에 이세돌은 초읽기 아홉에 저 수를 놓았다. 바꿔치기는 필연이고 이후 흑이 이길 기회는 없었다. 사실상 승부 끝. 만약 저 바꿔치기를 안 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프로의 정밀연구'가 필요.

 

제 느낌엔 저기서 역전이라 말하긴 힘들 듯합니다. 이미 져있어요. 그렇다면...


 

그림5 -만약 끼웠다면 승부는?

이세돌은 끼우지 않았다. 만약 끼운다면 이후 큰 자리는 하변 끊어잡는 것, 좌변 건드리는 거, 좌상귀 밀고 들어가는 자리. 해서 세 곳. 어떤 수순으로 마무리 하느냐 및 유불리 여부는 역시 프로의 정밀연구가 필요

 

거의 모든 해설자들이 끼우는 수를 일감으로 언급했는데, 이세돌이 그걸 몰랐을 린 없고, 결국 득실인데, 우선 하얀 스키장이 돼버린 우변 백집이 눈에 들어오네요. 과연, 저 그림이라면 흑승이란 결론이 가능한가요? 아닌 듯해요.

다만, 저 참고도는 맹점이 있습니다.


 

그림6

흑의 추궁에 백은 다 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백 입장에서 갈 수 없는 길.

 


그림7

끼움수에 백2 반발 필연, 3 반발도 필연. 이제 득실은? -이거는 백이 무너진 듯하다.

 

저는 조금 전 순간까지도, 끼우지 않은 세돌의 판단을 인정했는데, 이 참고도를 발굴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가령 끼우는 수가 원래 성립한다면 흑은 멀쩡히 손해를 본 셈, 어쩌면 이 바둑에 두 번의 문제 순간이 있다면, 패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딱 두 순간이 가장 아쉬운 순간인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 순간이 아닌가, 그렇게 봅니다. 이세돌은 과연 이 참고도까지 고려했을까요? 꼭 물어보고 싶은 장면입니다.

 

승패 입장을 떠나 바둑 자체만 놓고 보았을 때 이 근처, 즉 백이 밭전자로 짼 후 7,8수에는 참으로 다양한 변화가 숨어있고, 어쩌면 승패가 여기서 갈렸을지도 모릅니다. 제 생각엔 이 바둑의 하이라이트가 아닐까 합니다.

 


그림8

3이 아니고 맞끊느냐, 또는 아예 33으로 들어가느냐. 실전이 흑이 잘 됐다 말하긴 어렵지만, 또 실전보다 나은 참고도를 제시하는 해설자도 없다(못 봤다).

 

이 판뿐만 아니라 이번 5번기 전체를 봐도 해설자들이 자신 있게 대안을 제시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오히려 알파고의 비범한 착점에 놀라는 경우가 더 많다 싶을 정도죠. 이세돌 또한 해설자보다 나으면 나을 터이고 그래서 이래저래... 아무튼 좌하귀 장면도 별 혐의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한 장면 한 장면 놓고 보자면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한 판 전체, 5번기 전체를 봤을 때 누구도 이세돌보다 잘 할 수 없다.

 


그림9

흑1, 좋은 수. 이세돌이라면 저런 수를 놓치지 않는다.


57이 프로의 일감인 모양입니다. 이세돌은 5를 선택햇죠. 여기서 저 개인의 아쉬움을 느끼는데, 1~4만 교환하고 바로 좌하귀 33으로 들어갔으면 어땠을까요? 대신에 엄청나게 두터워진 백의 강공을 견뎌내야 하겠지만, 어떻든 전략의 하나로 고려해볼 만하다...

 


그림10 논란의 장면

가장 논란의 장면. 김성룡은 이후 흑 두 수를 정확히 맞췄다. 반면 송태곤은 움츠렸다며 비판했다. 중국 바둑티비(圍棋티비) 팽전(彭荃)은 송태곤과 비슷한 입장. 한국의 어떤 해설자는 실전을 제1감 송태곤의 주장을 2감으로, 또 어떤 해설자는 1, 2이 그 반대. 간단히 말해, 프로 10명에게 물어봐도 의견이 갈릴 듯하다. 거꾸로 말해 인간 수준에선 정답이 이거다 단정할 수 없다는 말.

 

앞에서 말했듯 5국에서 이세돌이 선택한 전략적 방향. 위 장면은 그 전략에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김성룡이 말했듯 그 전략 자체에 대한 아쉬움, 우리 역시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궁금증은 남지만...

 


그림11 과거 우주류의 파해, 사라진 우주류, 점점 굳어졌던 고정관념 -과연 우주류는 파해됐는가?

대부분의 프로가 짚은 일감. 그런데 이세돌도 고백했다시피, 이게 패착의 혐의가 짙다. 이세돌은 '욕심이 앞섰다'며 자책하지만, 대부분의 프로들이 저 수를 제일감으로 떠올리는 바에야 그건 이세돌의 문제가 아니라 그를 포함한 인간의 문제이다.


연장선상에서, 이세돌의 실패가 아니라 인간의 실패가 맞다.


(다음 수인 백의 강공은) 거꾸로 말해 알파고의 준엄한 꾸짖음이요, 대부분의 프로에게 남긴 과제이다. 어쩌면 20년 전쯤의 '우주류 파해' 이후 인간 프로들에겐 고정관념이 생겼을 게다. '우주류는 운영이 어렵다.'  아니, 그 정도를 넘어 '우주류는 틀렸다.'

반복하지만 이 장면은 알파고가 인간들에게 던진 질문이다.


 

꼭 이기고 싶어서 과욕을 부렸다.’

돌이 중앙으로 갔어야 했다.’

 

백의 저 모자 한 방으로, 초반 유리했던 바둑이 원점(어쩌면 그 이상)으로 돌아갔습니다. 우리가 흔히 '빡빡한 적수'와 바둑을 둘 때, 내가 이렇게 둬서 얘가 이렇게 받아만 준다면 이 바둑이 아주 풀리겠는데,.. 이러면서 강수를 불사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가장 걱정했던 그 수로 상대가 둬올 때 느끼는 가슴이 철렁하는, 그런 순간이 아닐까요.

 

자칭 '초반 50수 세계 최강' 섭위평, 이 장면에서 어떤 반응이었을까요? 네. 처음엔 별 말 없더군요. 근데 백의 모자 강수가 나오고 일련의 접전 후 섭위평은 '단언'합니다.


 

그림12

(섭위평) 흑의 어깨짚기가 패착이다, 마땅히 저곳으로 두어야 했다.

 

처음엔 반신반의했지만,... 결정적으로 당사자가 '과욕이었다' 말하는 데야 뭐.

흑이 적당히 선수를 뽑아서 하변이나 좌하귀로 갈 수 있다면 이상적이네요.

한편, 저렇게 선을 그어놓으니 저도 삭감할 때 저런 식으로 깊이를 재던 기억이 납니다.

 

이상으로, 승부와 관련된 순간은 거의 다 돌아봤습니다.



 

이번 5번기에서 뭐가 가장 인상적인가, 어떤 사람에겐 이세돌이 인상적이겠고 어떤 사람에겐 알파고가 그렇겠는데,

바둑전문가 입장에선 아마도 알파고일 겁니다. 알파고가 그만큼 비범한 수를 많이 보여줬거든요.

물론 아마추어에 불과합니다만 저도 마찬가지로 감탄했습니다. 다만, 우리 아마추어가 프로들과 하나 다른 점은, 인간프로와 알파고의 제1감이 왜 다른가 하는 점을 당사자 입장이 아니고 제3자 입장에서 흥미롭게 관찰한다는 겁니다.

 

어떤 장면에서 해설자들은 참고도를 제시합니다. 그런데 알파고는 전혀 의외의 착점을 합니다. 놀란 해설자가 곰곰이 再考(재고)한 끝에 알파고 선택의 합리성을 인정합니다. 이 과정을 우리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결국 바둑의 기본 원리를 알파고는 능란하게 구현하는데 인간은 그에 못 미친다는 얘깁니다. 인간은 스스로 축적한 지식의 선입관 때문에 자유로운 思考(사고)가 제한된다는 얘기죠.

 

그렇다면요!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의 불을 훔쳐 왔듯, 과연 알파고가 바둑으로부터 바둑의 불을 얻어왔을까요? 그건 아니죠. 알파고의 수법의 근원은 인간의 수법입니다. 알파고는 인간에게서 을 얻어갔어요. 그것도 허접한 성능으로요. 알파고는 아주 일부만 프로 棋譜가 포함한 자료를 가지고 독학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알파고가 놀라운 착상을 해낸단 말입니다. 그게 참 재미있죠.


 

그림13 똑똑한 기계의 비범한 착상 -평범에서 얻어간 비범

백의 강력한 젖힘에 흑의 딜레마, 끊기도 곤란 젖힘도 곤란. 결국 실전의 응대가 최선.

 

사정이 이러한데 대부분의 해설자들은 백이 늘고 그 다음 흑의 날일자를 제일감으로 떠올립니다. ‘이래서 흑이 순조롭다’, 즉 억지 같은 젖힘은 인간의 착상에 없다는 거죠. 근데 알파고가 그게 아니라 꾸짖습니다.

 

차라리 우리 아마추어는 저런 2단젖힘을 먼저 떠올립니다. 또한 실전에서도 거침없이 둡니다. 그렇기 때문에 알파고가 얻어간 불(컨닝페이퍼)에 그런 수가 실렸을 테고, 막강한 연산 능력으로 이 수가 최선이다. 결론을 내렸을 겁니다. 평범함 속에서 나온 비범함이죠.


 

그림14

인간 高手의 착상. 고된 수련(사활, 맥 등 수읽기 공부)를 거친 자의 본능.


 

그림15

인간 高手의 착상2 -예전에, 다름 아닌 이세돌이 저런 식의 '악독함'를 보여주며 쾌승한 바 있다.

 

알파고는 저런 거 다 필요 없다고 말합니다. 알파고가 만약 의사표현을 할 줄 안다면 긁어 부스럼이야라고 할지 모르죠. 여기서 요점은 알파고의 극강의 대세관입니다. 부분전의 의의를 하락시키는 극강의 대세관.

 

게다가 착상의 자유로움.


그런데 알고 보면 저 두 가지는 수백 년 전부터 강조되던, 바둑의 기본 원리입니다.

 

 

그림16 인간계의 결론을 거부하는 알파고

(왼쪽이 실전, 오른쪽이 인간계에서 유행하는 수) 알파고가 둔 실전은 이미 인간계에서 실험 끝에 거의 폐기된 수이다. 그런데 알파고는 태연히 두었다. 결과적으로, 이후 흑이 최선의 응접을 했다고 친다면 이게 성립된다는 얘기다(흑이 유리해진 건 우하귀 떡수 때문, 그건 별개의 문제).

정녕 그렇다면, 세력과 두터움에 대한 기존이론에 반성이 필요하다는 얘기.

 

 

5국의 초반은 앞으로의 연구과제죠. 어디 5국만 그렇습니까? 이런 연구과제가 전체 시리즈에서 꽤 많이 나왔죠. 이 정도만 해도 바둑인에겐 축복입니다.

 

알파고, 5국에서 두 번의 확실한 실수를 했죠. 초반의 그 실수, 중후반 중앙 밭전자로 찔러가기 전에 튀어나온 일련의 자충수. 아직 완전하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그렇든 간에 5국은 알파고의 명국입니다. 초반에 실리를 큼직하게 주고서 일견 모호해 보이는 세력을 밑천으로, 기어코 어음을 현금화. 제 생각에 현 인간계에 저런 바둑을 둘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엉망이었다.’

‘(초반 유리해진 이후) 정환이가 두었다면 이길 수 있었을 거다.’

 

이세돌은 자책합니다. 제 생각은 글쎄올시다,입니다. 박정환도 졌을 듯해요. 속 모르는 소리겠지만 제 생각에 5국이 바로 현재 시점 인간계에서 거의 극한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조금 더 나을 수도 있어요. 근데 그래서 과연 승부가 바뀔까요?

 

알파고의 현 실력을 한마디로 평하자면 '인간 최고수가 될 듯 될 듯 결국은 안 되는수준 아닐까요?

 

이세돌의 아쉬움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 똑같은 5번기를 다시 치른다 가정했을 때 과연 몇 판 이길까? 저는 여전히 한 판이 적정치라고 생각합니다. 두 판이면 아주 잘 싸운 거 아닐까. 어쨌거나 3:2(또는 그 이상)를 기대하긴 어렵지 싶습니다.

(몰론 알파고가 독학을 계속하여 더 진화한다면 아예 다른 얘기가 되고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同手 이상의 상대와 붙어서 한 판을 따냈습니다. 만약 같은 조건에서 다른 棋士가 붙었다면? 단정하긴 어렵겠지만, 그게 누가 되었든 저는 0:5 가능성을 가장 높게 봅니다.

 

아무튼요. 앞으로 과연 알파고가 '은퇴'를 할지 계속 독학하며 다음 대결을 맞이할지 큰 관심사인데요. , 두 말할 필요 없습니다. 혹여 그냥 은퇴해버린다면 너무 너무 아쉬울 듯합니다.





***방금 본 記事

사실 이번 챌린지매치 계약서에 재대결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구글은 알파고가 이세돌에게 패할 경우 반드시 재대결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계약서도 그렇게 작성됐다. 하지만 당시 우리는 이 9단이 패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재대결에 대한 내용을 계약서에 넣지 않았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참 아쉬운 부분이다”고 털어놨다.


아!!! 미치고 팔딱 뛰겠다. 우리 바둑인들은 오만함/순진함을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