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 모든 글의 시간적 기준은 2014년 기준임, 즉‘올해’란 2014년***
고력(古力)이가 김지석을 이기는 순간(춘란배 4강전), 좀 보태서 말하자면 대륙은 지붕이 살짝 들썩거림. 이유는 중국사람들 휴우~ 안도하며 내쉬는 한숨 때문. 이 승부는 중국인 입장에선 그만큼 중요했고, (당사자인 고력은 말할 것도 없겠고) 상당히 절박한 승부.
만약 김지석이 춘란배마저 결승에 갔다면, 아무리 우기려 해도, 중국은 2014년을 ‘비겼다’라고도 평할 수 없게 됨. 딱 4개 대회 결과이니, 웬만한 바둑팬이라면 상세한 설명 필요 없겠음.
때문에, 어느 중국인 블로거는 고력 승리의 의미를 ‘變天(변천) 저지’라 표현. 중국말 變天은 왕조/정권교체를 의미. 만약 金이 이겨 ‘하늘이 韓으로 바뀌었다’면, 이게 무슨 말이겠음?
해서, 이 블로그는 동시에 金-古 전을 관도대전(官渡) 또는 적벽대전(赤壁)에 비교.
돌이켜보면 김지석은 對 고력 戰을 맞아 올해 어느 바둑보다도 더 신발끈을 단단히 조인다는 자세로 마음을 가다듬어야 했음. 십번기 이후 절치부심 중인, 상처 입은 맹수가 얼마나 무서울지, 두 말하면 입 아픔.
그러나, 승리 후 고력의 발언으로(‘金이 날 얕본 듯’) 유추하건대, 김지석은 그런 단단한 마음가짐을 못 만들었던 듯.
넘마 너는 맨날 이겸마, 하! 이런 주문은 물론 무리한 주문이겠으나, 그래도 좀 아쉬움.
결국 ‘힘든 한해였지만 그래도 비기는데 성공했다’가 중국인 입장에서의 나름 객관적 평가 -즉, 휴, 울리 살람 선방한겨.... 그들 입장에선 이렇게 2014년을 유종의 미를 거두게 만들어준 고력이 눈물 나게 고맙게 되었음. -해서,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퇴물 취급이던 고력이 인기가 아연 ↑↑↑ing, 칭찬 릴레이에 쏟아진 記事 또한 많고 더 눈에 띄는 점은 그런 記事에 달린 댓글이 이례적으로 많았다는 사실. 여러 개의 記事에 달린 댓글들이 수백 개씩이었음. 댓글 수가 그렇고, 그런 댓글에 추천한 사람까지 다 쳐서 집계할 경우 천 수백 개가 됨. 이 정도면 중국바둑팬들의 환호가 실감이 갈 것임.
간신히 빤스만 남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2013년(한국바둑), 즉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렸다가 인천상륙작전 이후 역으로 38선을 넘어 압록강까지 갔었겠다(삼성배 LG배),... 허나 중공군 대공세에 흐름이 역류하기 시작했다 -춘란배가 그런 식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측이 중국 쪽이고, 아 됐음 춘란배야 춘란배고 내년 일은 다만 내년 일일 뿐이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한국 쪽 입장이고.
고력이 칭찬 글은 위에 저렇게 분위기 소개 정도로 갈음하고,
아래 소개하는 글은, 지금까지 위에서 한 소리가 무엇이든지 간에 김지석의 2014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는 의미. -글이 전폭 맘에 들린 없지만.
껍질 깬 김지석 공포적 전적 -2010년 공걸만큼 압도적이진 못해
출처 :허남평(許楠萍) 여우찾아라체육(搜狐체육) 2014.12.30 ☜
만약 2014년도 바둑계 제일 찬란히 빛나는 스타를 뽑는다면, 아마도 한국棋士 김지석 말고는 없으리라. 어려서부터 유명했고 한때 ‘바둑 황태자’란 명성을 누렸던 이 한국의 희망이, 몇 년의 단련 끝에 결국 25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진정한 폭발을 이루어 국제바둑계의 그의 위력을 실감시켰다.
2011년 박정환이 후지쯔(富士通)배 우승을 달성하여 국제대회 우승을 처음 획득한 90後 棋士가 되면서부터 사람들은 朴이야말로 한국바둑계 미래의 최대 희망으로 인정했으며, 또한 중국의 수많은 90後 세대 高手들과 맞설 유일한 一人으로 보았다. 누가 알았으랴, 일찍이 박정환이 이름을 드날리기 몇 년 이전에 김지석은 이미 한국 일인자 이세돌이 자기 후계자로 ‘친히 점지(원문 欽點흠점:황제가 친히 지명 ;역주)’하며 반드시 그가 차세대 한국바둑을 이끌 얼굴로 보았으니, 그 ‘바둑 황태자’란 칭호가 당시 한국 내 바둑계에 울려 퍼졌다는 것을.
허나 이후 김지석은 한 차원 높은 실력이나 발전의 가능성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으니, 설령 한국 국내 대회에서의 성적은 계속 나아졌지만, 이세돌 최철한에게의 도전이나 더 나이 많은 이창호 등의 覇者(패자) 지위에는 아직 거리가 멀었고, 더 중요한 것은 국제대회에서 김지석은 내세울 만한 전적이 없었다. 누구나 알다시피 이창호 이래 한국바둑의 천재들은 다들 이른 나이에 유명해지고 세계대회 우승을 하였으니, 이창호의 16살 우승 기록은 아무도 깰 수 없었고, 박영훈 이세돌 강동윤 그리고 이후의 박정환까지, 전부가 20살이 되기 전에 세계대회 우승자가 되었다. 반대로 중국은 범정옥(范廷鈺) 출현으로 드디어 진정한 의미의 소년 천재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런 각도에서 말하자면, 25살이 되어서야 첫 세계대회 우승을 맞이한 김지석은 전형적인 한국 천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당시 한국바둑계가 한창 인재가 쏟아질 때였기에 김지석은 2008년이 되어서야 제대로 국제대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19살이란 나이는 이미 어리다고 볼 수 없지만 번번이 벽에 부딪치면서 내보일 만한 특별한 성적을 거두지 못하는 시기가 지속되었다. 또 지나치게 살상전에 집착하는 그의 棋風(기풍) 또한 대다수에게 인정받지 못했으니, 2,3년 전 국내 甲조리그 주전 棋士의 가감 없는 말이 있었는데, 김지석의 바둑은 대세관과 형세판단에서 뚜렷한 약점이 있다, 전혀 안 무섭다 고 했다. 이러한 평가는 어쩌면 완전히 객관적이진 않을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그의 급소를 제대로 찌르긴 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박정환이 국제대회에 선을 보이자마자 거의 곧바로 후지쯔배를 우승했을 당시에 김지석은 4강 문턱을 못 넘고 헤매던 현상이 설명이 안 된다.
사실 올해 (폭발을) 시작하기 이전에, 김지석은 2010년 제15회 삼성배에서 4강에 간 적이 있었다. 그건 또한 그의 그가 유일하게 결승 문턱에까지 간 기회였는데, 허나 고비였던 그 일전에서 그는 당시 전성기였던 고력(古力)에게 0:2 완봉패를 당하며 기가 꺾이고 만다. 이 준결승에 깊은 인상을 받은 많은 바둑팬들이 김지석의 청춘이 고력이 손에 의해 망가졌다고들 했다. 사실 이 0:2를 합쳐도 고력이 최대 4:0으로 앞설 뿐이고, 더 많은 경우에 김지석이 다른 사람에 의해 탈락되어 아예 고력 면전에는 뛰쳐나오지 못한 것이다.
국제대회에서 김지석이 왜 갑자기 폭발하였을까, 어쩌면 우리의 최대 흥밋거리이다. 필자가 보기에, 올해 국제대회에서 김지석의 바둑은 내용상 분명히 많이 충실해졌다. 국면 장악의 균형감, 戰端(전단)을 구하는 기회 모색 등 방면에서의 발전이 가장 인상 깊었는데, 삼성배 준결승과 결승에서 연속으로 2:0으로 시월(時越) 및 당위성(唐韋星) 격파가 가장 좋은 예이다. 김지석의 이런 변화에 대해 애기를 하자면, 그 하나는 그 자신 고유의 극강의 전투력이 기틀이 되었음이고, 다른 하나는 아마도 삼 년 연속 甲조리그 참전과 막대한 관계가 있는 듯하다.
김지석은 2012년부터 절강(浙江)팀을 대표하여 甲조리그에 참전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인물 잘 알아보기로 유명한 마효춘(馬曉春)의 力作인 셈인데, 절강팀의 감독이 바로 마효춘인 바, 김지석의 절강팀 가입은 미효춘이 추천해서였다. 甲조리그 첫해 김지석은 10전 전승이란 놀라운 전적을 내놓았다. 그게, 일단은 국내 棋士들이 김지석을 채 주목하지 않아서였고, 그리하여 김지석은 연전연승을 달리며 중국 棋士에 대해 큰 자신감을 얻었다. 뒤이은 2년 모두 김지석의 甲조리그 출전은 전체 일정의 절반을 넘겼는데, 해마다 절강팀의 甲조 잔류 성공에 최대 공신이 바로 김지석이었다. 또, 그가 출전할 때마다 기본적으로 주장 신분이다 보니, 金은 중국 정상급 高手들과 풍부한 교전 경험을 쌓게 되었다. 김지석의 技術(기술)상 변화가 반드시 중국 高手들과의 대결에서 왔음을 증명할 길 없긴 하지만, 적어도 중국 棋士들의 더 다양한 棋風은 김지석에게 어떤 정도만큼 영향을 주었다고 해도 지나친 논법은 아닐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든지간에, 김지석의 2014년 눈부신 활약은 부정할 수 없는 바이다. 올해 4개에 불과한 세계대회 중에 그는 두 번을 결승에 갔고 하나를 우승했으며(LG배 결승은 아직 진행 전), 나머지는 4강과 8강이 각 1회이다. 총 전적 17승2패, 중국의 세계대회 1회 우승자인 젊은 高手 여섯을 맞아 10전 전승하였으니, 이러한 활약을 ‘압도적’이라 평해도 지나치진 않을 것이다. 2010년 공걸(孔傑)이 반년 남짓한 시간 동안에 세계대회 세 개를 우승한 이후 몇 년 여, 김지석이 1년 기간 동안에 가장 뛰어난 활약을 한 선수이다.
하지만 2014년을 ‘김지석의 해’라고 말하기엔 아마도 이의가 있기 십상이리라. 결국, 현재 손에 쥔 우승은 하나뿐이며, 설령 승률이 극히 높긴 하지만 두 차례 중국 노장에게 차단당하는 바람에 결국 국제바둑계 진정한 통치를 완성해내지 못했다. 먼저 구준(邱峻)의 통쾌한 승리, 나중에 고력의 반격 역풍, 둘 다 김지석 2014년에 지울 길 없는 하자이고 유감이다. 중국바둑계로 보면 이런 견고한 노장을 보유해서 다행이고 기쁜 일이다. 다른 각도에서 따져보았을 때, 이 호랑이세대 棋士 둘이 棋風과 바둑 내용면에서 중국 젊은 高手들이 갖지 못한 특질을 갖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김지석이 ‘단관왕’들에게는 연전연승하는데 노장의 칼 아래엔 두 번을 쓰러졌을까?
이것은 어쩌면, 중국바둑계가 생각해볼 만한 문제, 미래 일 년 심지어 더 긴 시간 동안 김지석에게 도전할 생각을 가진 高手들이 생각해볼 만한 문제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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