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년, 이세돌은 좋은 경험, 즐거운 나들이를 하는 마음으로 중국으로 발을 내딛는다. 허나 중국 리그는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첫해, 신고식을 단단히 치렀고 이것 봐라 신발끈을 바짝 조이고 나선 다음 해는 그런저런 정도의 성적은 올렸으되 판수가 적어 성에 차지 않...여전히 배가 고팠고, 06년 ‘나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판수를 늘렸으나 '만족할 만한 승수'에 2%(일승一勝)가 부족했다.
07년, 아직도 진행형인 이세돌의 중국리그 분투사(奮鬪史)를 전적(戰績) 중심으로 간략히 훑어본다.
04년
한국기원의 랭킹 3위 이내 갑조 리그 참가 불허 조치가 이미 풀린 03년 가을, 세돌의 중국 진출에 장애는 없었다. 다만 본인의 의지만이 문제였는데 처음엔 관심 없다던 세돌, 李국수의 동생 이영호의 주선과 이전부터 갑조리그에 꾸준히 참가해오고 있던 중국통 목九단의 꼬드김에 넘어가 ‘야 그거 재미있어요? 하며 귀주 해속정(貴州 咳速停)의 구애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여행 가방에,..산천 구경도 하고 중국 친구도 사귀고 용돈도 좀 벌고..였을지 어쩌면 익히 겪어 본 목九단의 경고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여행 가방 들었다고 다 여행인 건 아니라고.(그게 여행일 리가 있나)
중국리그 데뷔전 상대는 류성劉星류싱, 결코 만만하지 않은 상대였다. 득의의 백번이 아닌 흑번인 상황 정도야 늘상 있는 일이고 어쩔 도리 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6호 반이 아닌 7호 반이라는 제도상 차이가 유독 강조되는, 딱 반집으로 진 결과는 ‘나들이’가 나들이가 아님을 경고하는 전조(前兆)였다고나 할까.
훗날의 ‘두려운’ 상대 사혁(謝赫셰허)에게, 그리고 평생의 숙적이 될 고력(古力구리)에게도 -둘의 첫 만남이 바로 이때의 대국이었다 -지면서 아차 순간 3연패, 시작 바람에 톡톡히 ‘스타일을 구긴’다.
귀주 팀은 부랴부랴 ‘조치’를 취하였고(세돌의 돌을 가능한 한 백번으로 고정시킨 때가 이 시기였을 거다) 이후 전적 3-1 (류성劉星에게는 한 번 더 진다)을 보태어 받아든 04년 최종 성적표는 「3승-4패, 대략 망신」이었다.
05년
「진 판은 대국료를 받지 않기로 한다」였다는 소리가 있긴 있는데.. 05년의 계약 조건은 정확한 확인이 불가능. (어차피 여타 해와 크게 다르지 않을 터이고 이 해에 진 판수가 딱 한 판이라 실제(수입)적으로는 큰 차이는 없긴 하다.)
연초, 도덴배에서 어렵게 이긴 상호(常昊창하오)를 4월에 만나 또 역전승(진 자로선 기가 막힐, 그런 판이었다. 세돌이 어렵게 어렵게 계가로 끌어갔는데 막바지에 상호가 2집 손해수를 두어 반집승)을 하고. 8월에 고력古力을 만나 역시 반집을 이기면서 중국리그에서의 세 번째 백번 반집승에다 대(對) 고력(力) 전(戰) 4연승.
05년은 총 네 판, 상호(常昊창하오)와 2판 고력(古力구리)과 2판, 결과는 3승-1패였다. 2:2일 경우 주장전(세돌은 매판 주장이다) 결과에 가중치를 주는 당시의 리그 제도상 나름 짭짤한 성과라 볼 수는 있는데, 판 수가 적어 그 정도로 소속팀 우승에 기여하기는 부족하였다. (귀주 해속정은 내내 선두권을 달리다 막판 부진으로 우승을 놓친다. 특히 20라운드 대 중경(重慶충칭)전, 주장 세돌도 지고 팀도 패배하는데 이는 그해 시월 LG배 4강전에 이어 고력(古力)에게 연속 패한 세돌에게나 리그 우승 다툼의 막바지 고비에서 당하는 바람에 우승 전망이 암울해진 팀에게나 심대한 타격이었다.)
결국 ‘그런대로의 성적이나 (바둑 자체도 그러하고 팀이 리그 우승을 놓치는 등) 내용이 불만' 이며 '전년도의 망신을 만회함과 동시에 나 자신을 증명하는 데에 충분하지 못했다. 내년에 더 많은 판수로 다시 오겠다' 고 다짐한다. (씨에루이,體檀周報)
06년
번역되어 들어오는 중국 평론은 대면(對面) 접촉에서 (그들이) 받은 이세돌의 인상에 대해 ‘점점 겸손해지고 예의바르며 팀에 대한 충성심도 좋다’고 적고 있다. 조금은 의외였던 모양인데, 그동안 그들에게 세돌은 아마 「또 하나의 요도(妖刀)의 천재」정도로 비쳐왔을 테니 이것도 소득이라면 작은 소득이다. 하나 재미난 건 술 잘하는 능력은 중국 가서도 유감없이 발휘했다는 사실이다.
06년 계약은 8+2(기본 8판에 상황을 보아 2판 추가 가능). 세돌은 ‘6승2패면 그런대로 괜찮다고 보며 7승1패이라면 만족이다.'(씨에루이,體檀周報)고 선언함과 동시에, 지는 판은 대국료를 받지 않고, 대신 7승 이상이면 보너스라는 파격적인 조건에 합의, 신발끈을 더욱 조인다.
06년도의 첫 판에서 류성劉星에게 직전 2패를 설욕하는 승리를 하였으나 예의 「숙적(고력)의 관문」에서 자빠진다(대 고력 전 4연패). 이어 상호와 공걸에게 승리. 받뜨 골치 아픈 상대 나세하(羅世河뤄시허)에게 1패, 주예양(周睿羊저우루이양)에게 1패. 그리고 이제는 안팎에서 제법 자주 만나는 고력, 불리한 바둑을 기수(奇手)로 뒤집어서 연패를 간신히 끊어 놓는다. 다음 공걸(孔杰콩지에)에게 승리, 상호常昊에 이은 또 하나의 밥으로 자리매김시키면서 연도를 마감한다.
총 6승-3패. 팀은 우승팀에게 크게 뒤지는 준우승.
07년
06년 이세돌의 대국 수는 106+9(중국리그). 본인은 ‘115판 정도‘라고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으며 ’매우 힘들었다' 고 말하고 있다. 올해, 마감을 두 달여 남겨둔 10월 25일 현재 84+9, (최다 대국자 목진석 101판) 판수는 조금 적어졌지만 앞으로 남은 일정에는 세계대회 8강전 및 4강전, 3개의 국내 도전기가 끼워져 있어 지금 이후가 어느 해의 어느 순간보다도 중요한 순간이다. 또 귀주 팀(타국 팀이긴 하지만 그래도 제 2의 친정이라 할)까지 하필(?) (첫) 우승 가도를 달리고 있어 한두 판의 추가 출전이 있을 수 있다. 결국 올해도 작년 못지않게 힘든 일정이다.
중국 출전. 매니저도 없이 혼자 몸으로 여행 가방을 들고 해야 하는 10시간 이상의 비행은 무료한 그 시간을 무협지로 때우든 어쩌든지 간에 고단한 여행이다. 늘어나는 그 판수 때문에 국내 일정이 켜켜이 압축되고 이를 중국 일정과 맞추어야 한다든가 기타 여건상, 현지에 도착하여 바로 출전해야 한다. 어떤 때는 오늘 한국에서 두고 바로 출발하여 내일 중국에서 두어야 하는 경우 또는 그 반대의 경우도 생긴다. 이런 상황에서 컨디션 조절은 바랄 상황이 못 된다. 영향이 간다 는 본인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쨌든, 07년도 중국리그 전적은 공걸에게 또 2승, 고력에게 1승, 상호에게 또 1승, 호요우(胡耀宇후야오위) 또 1승 등 나세하(羅世河뤄시허) 등을 제외한 하노라 하는 중국의 상위권 강자들에게 골고루 승리하며 현재까지 6승-3패.
결산
◆ 흑으로 12판, 백으로 17판을 두었다. 팀이 정책적으로 백을 배려한 흔적이다. 결과는 흑으로 7승-5패, 백으로 11승-6패로서 58.3% v. 64.7%. 몇 판 안 되는 와중에 ‘의도한 결과’는 있었다.
◆ 총 29판 중 불계가 21판, 계가로 간 판이 8판, 초기 9판 이후의 20판은 한 판을 빼고는 모두 불계로 끝났다. 현재 13연속 불계 승부 중.
◆ 많지 않은 계가 승부(8회) 중에 반집승부가 좀 많은데, 총 다섯 번으로서 3승-2패.
◆ 3연패 한 번, 2연패 두 번, 4연승 3번.
◆ 고력과 3:3, 나세하에게 0:2, 류성에게 1:2,
◆ 상호와 공걸에게 각 4:0, 호요우에게 2:0
(얼마 전 끝난 삼성배 세돌 v.상호 선수 소개 모든 기사, ‘통산 5:5로 팽팽’운운. 흥 밥 잘 먹고 있던 세돌이 체할라..통산 9:5, 삼성배 이겨 최근 8연승!)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 발을 디뎠다가 (첫해) ‘망신’을 당한 이후 이세돌은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 결과 본인이 원했던 만큼의 만족스러운 성적을 얻었을까. 위에서도 나왔지만 이세돌은 8판 중 6승을 한다 해도 그런대로의 성적이라고만 하지 만족한다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총 18승-11패(62.1%), 첫해를 제외한다 해도 15승-7패의 전적은 뭔가가 조금 부족한 느낌이 드는데.. 이세돌, 그가 달리 세돌인가. 그 냉냉한 쇠목소리로‘뭐 그럭저럭’이라 말할 게 뻔하다.
그런데, 천하의 이세돌이긴 하지만 상대도 몇몇만 빼고는 다들 천하의 모모씨이다. (이세돌이 둔 모든 판이 주장전이니 의도적으로 「주장 빼돌리기」를 하지 않는 한 그럴 수밖에 없다.) 장거리 원정의 불리와 일정 기타 불편과 일류 강자들만을 상대하는 까다로움 속에서의 결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위에서 보듯이, 팽생의 숙적인 고력과 3:3, 나세하에게 0:2, 당사자 세돌이 까다롭다 느끼는(세돌 말로 두 이씨와 최독에게 8연승 중) 사혁(謝赫셰허)에게도 1패가 있긴 한데..이 기사들과 관계된 패배 외에는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하는 정도의 패배들이다. 나머지 상호나 공걸, 호요우 등은 확실하게 이겨주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도 ‘그럭저럭’이긴 하지만 이세돌이 풍기는(그렇게 짐작되는) 비만족의 뉘앙스보다는 그래도 「나름 분투한 성적으로서, 할 만큼은 했다」에 더 마음이 기운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우선, 현존하는 여러 가지 여건의 어려움 속에서 앞으로도 이 정도 이상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싶은 점(올해의 판이 다 끝난 건 아니지만, 세돌은 2년 연속 6승-3패를 하고 있다. 더불어, 이창호도 중국리그에서 좋은 전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무엇보다도 소속팀인 귀주 해속정이 올해 드디어 첫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어 그간 분투의 결과를 남길 수 있다는 점, 순조로이 우승한다면 「명예로운 철수」(욕심 많은 이세돌, 너무 바쁘다)가 가능하다는 점 때문이다.
자. 귀주 해속정, 꼭 우승해라.
(뒷공배)
잉글랜드 리그의 축구 선수 웨인 루니가 짬을 내어 바르셀로나 선수로 스페인 리그에 출전하여 5골을 넣었다. 이 다섯 골은 잉글랜드 리그의 다득점 순위에 넣어서는 안되겠지만, 웨인 루니의 통산 득점에는 집계해 주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마찬가지로, 이세돌이(여타 기사도 마찬가지) 중국 리그에서 분투한 기록(엄연히 중국의 공식 기록이다)이 그의 개인 통산 전적으로 집계하여 주어야 함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일찍이 한국기원이 조국수의 일본기원 시절 전적을 소홀히 여기는 바람에 1000승을 한참을 늦게 찾아 먹지 않았는가. 그런 일을 반복하고 싶은 건지..한국기원 관계자 님, 여기 단수 받으세요.
*071115 추가 기입 - 071110 16라운드 백 불계승 상대는 왕요王堯왕야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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