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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060829 단상, 스승복 제자복


어느 사이트에 올린 글, 본문만으로는.., 꼬리글이 무척이나 아깝기에 함께 올린다. 그 님들께 (__)


당대의 최고 권력자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비록 누이의 외손자이지만 귀족신분과는 거리가 먼, 그래서 이름도 고작 두 개짜리를 쓰는,  가이우스 옥타비아누스가, 에스파냐의 산야 행군중 강건치 못한 몸으로 핼쑥해진 얼굴이 되었으면서도, 기를 쓰고 따라 붙는 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는다.





글쓴이 맹물국수 날짜 : 2006-08-28조회수: 607번호 : 5533
글제목 단상, 스승복 제자복

당대의 최고 권력자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비록 누이의 외손자이지만 귀족신분과는 거리가 먼, 그래서 이름도 고작 두 개짜리를 쓰는,  가이우스 옥타비아누스가, 에스파냐의 산야 행군중 강건치 못한 몸으로 핼쑥해진 얼굴이 되었으면서도, 기를 쓰고 따라 붙는 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는다.


-카이사르가 암살되었다는 소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불의의 타격이었던 것처럼 18세의 젊은이에게도 청천벽력이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슬픔에 잠겼듯이 옥타비아누스도 깊은 슬픔에 잠겼을 것이다. 하지만 곧이어 전해진 유언장 내용을 알고 젊은이의 가슴에 솟아오른 감정은 그 한 사람밖에는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카이사르는 그를 상속인으로 지명했을 뿐만 아니라 양자로 삼았고, 게다가 성까지 물려주겠다고 유언장에 적었다. 옥타비아누스의 친아버지인 가이우스 옥타비우스는 원로원 의원까지 지냈지만. 이름이 두 개뿐인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분명한 평민출신이다. 옥타비아누스란 이름도 작은 옥타비우스, 즉 옥타비우스의 아들이라는 뜻에 불과하다. 로마인은 그 이름만 들어도 출생신분이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카이사르도 그를 양자로 삼는 것만으로는 후계자가 되기에 불충분하다고 생각하여, 로마 제일의 명문가인 자기 성을 이어받으라고 유언장에 쓴 것이다. 카이사르의 이 같은 배려를 누구보다도 정확히 이해한 사람은 옥타비아누스 자신이었을 것이다. 카이사르의 유언장은 일개 지방유지의 아들에 불과한 옥타비아누스를 로마에서 손꼽히는 명문 귀족의 후계자로 끌어 올렸다...(중략)..아직 아무 업적도 쌓아 올리지 못한 그를 벌써 인정해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옥타비아누스가 감격한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18세의 젊은이를 뒤흔들었을 게 분명한 이 감동이 그 후 그를 지탱해 준 강렬하고도 지속적인 의지의 원천이었을 것이다. 옥타비아누스의 이런 감정을 알아차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브루투스도,카시우스도,안토니우스도,키케로도 끝내 알아차리지 못했다....(이하 략)-

-로마인 이야기,시오노 나나미-


그 시대의 양자는 오늘날처럼 단순한 육체적 핏줄의 징검다리가 아니라 정치적 핏줄의 연결로서 그 계승이었다.


옥타, 여덟 번째 자식이라 옥타비우스가 된 촌구석 평민, 그 평민의 아들 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의 아들이 됨으로써 대천재 카이사르의 인정이라는 선물, 그로선 최고의 선물을 받는다.



조훈현, 그이의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일이 무엇인지는 감히 모르겠지만, 그이가 가장 잘한 일은 알 수 있을 듯하다. 그를 제자로 삼은 일이 아니었을까. 엊그제 그의 육성은 나를 잠시 생각에 잠기게끔 하였다.


“1인자 자리를 다른 기사 아닌 제자에게 내줬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자랑스럽다. 이창호란 인재를 제자로 만나 키워낸 것이 내 평생 최고의 보람이다.” 

-26일자 조선일보 인터뷰-


얼떨결인지, 홀린 건지, 알 수 없는 영감에 떠밀린 것인지 지금도 선명치가 않은, 20여 년 전 그 날, 갓 삼십의 스승은 만 아홉 살 낯선 아이를 그에게 단 한 명뿐인 내제자로 받아들인다.


으뭉함이 특히 돋보이되,  사람들이 말하기를 흔치 않은 신동이되, 아직은 가능성으로 머물러 있는 그를, 그의 미래를 믿어 보인 것이었다. 

시오노의 표현대로라면 그 의미를 누구보다도 심장 깊숙이 느낄 수 있었던 오직 한 사람은 열 살의 어린아 자신이었을 것이다. 당대의 일인자의 인정이란 황홀, 필경 그를 설레도록 가슴 떨리게 만들었음이 분명한 그 황홀이 열 살의 의지로 부모와 할아버지 곁을 감히 떠날 용기를 내도록 만들었을 것이고 그 후 그를 지탱해 준 강렬하고도 지속적인 에너지에 보탬이었을 것이다. 열 살의 감정은 아직도 가슴 깊숙이 남아 있을 것이다. 


아우구스투스가 되어간 옥타비아누스가 가진 불굴의 의지력, 절제와 끈기의 천성에 카이사르의 천재적 권위가 날개가 되어 주었듯이, 석불이 되어간 열 살이 가진 무심과 끈기의 천성에 최고 천재의 단 한 명뿐인 제자란 자부도 역시 날개가 되어 주지 않았을까.

물어 보면 답해 주려나...


 


나/도/한/마/디 인신공격, 심한욕설, 유언비어 등의 내용은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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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행복
  2006.08.28
참 알 수 없는 일이 조훈현 국수가 그 당시 이창호를 그리 천재로 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 아이를 내제자로 받아들인 일이 우선 이상합니다. 물론 전영선 프로가 추천헀다지만요.

그 다음으로 이상한 일은 그러면 조 국수가 그리 신통치 않게 본 이창호를 한 달에 두어 번 바둑 줘주고 몇 마디 해주었다는 데 그 정도로 이창호가 그렇게 클 수 있었다는 게 또 이상합니다

끝으로 이상한 것은 맹물국수 님 지적처럼 당대 최고수가 그를 제자로 삼아주었다는 사실을 그 어린 아이가 깊이있게 깨달을 수 있었을까 하는 점입니다.

결국 조 국수의 지도보다도 이창호 본인의 천재성과 노력이 더 중요했다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절*딴지
  2006.08.28
[에궁~ 딴지는 아니고...] '옥타'라면 여덟 아닌가여?...
원래 로마 달력은 7월이 September, 8월이 October, ... 였는데(어라? 영어넹~ ㅋ)...7월에 태어난 카이사르가 자기 이름을 따서 July, 8월에 태어난 아우구스투스가 August로 바꾸는 바람에두 칸씩 밀렸다는 전설이... 믿거나말거나 통신...=3=3=3
절*딴지
  2006.08.28
후환이 두렵습니다. 추천! 추천! 추천!
맹물국수
  2006.08.28
어 그러네? 딴지 아닌거 맞고요.
정정하게 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구벅 ^^
j*njin
  2006.08.28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술바*운동
  2006.08.29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오링*골♨
  2006.08.31
그렇다면... 9월은 세프쳉코 때문인가...? 오오... 무셔무셔.... 빨갱이 달력...
아아... 10월은 더 무섭다...독 문어 옥토퍼시가 침노하도다....
아으으... 뒷골땡귄당...
절*딴지
  2006.08.31
오링신골님을 위한(?) 뚱딴지... 카이사르랑 아우구스투스 땜시 2월이 2집 손해(28일)봤다는...ㅋ
=========================3=3=3
오링*골♨
  2006.08.31
오오 딴지公께서 내려주신 하교, 가슴속 깊이 새기겠소이당...^^
무릇 하나를 배우면 열은 깨쳐야 장부라....(쿨럭)

오비디우스가 귀향간 연고로 골프의 OB 룰이 생겼고
옥타비아누스가 8음계를 만들었다는..... 음화화홧
단자론派.... 아낙시만드로스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아... 낚시 만들었소?]라는 질문 끝에 생긴 낚시..!
갱(羹/국)을 너무 좋아하신 老子선생을 기리기 위해
프랑스 대석학은 스스로 [스프老子]란 이름을 취했고?
이태리의 포르노 국회의원 [치치 올리나]는 한국형 사*지연제
[칙칙이를 뿌려야만 치마를 올리겠소]란 뜻으로 지은 이름이었던가?

고만하자....(쿨럭)..... 수업 잘받았숨돠......@@.....^^

sji*629
  2006.08.31
아마도 여러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으리라 봅니다. 조9단이 이창호를 처음 만났을 무렵은 확실히 아직 천재 (여기서 말하는 이창호의 천재란, 종래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바둑계의 천재들이 보여주던 재기발랄하고 번뜩이는 화사한 형의 천재기질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천재의 자질을 말하는 것임)가 미처 싹을 틔우기 전이었을 겁니다. 그런점에서는 이미 9살에 프로가 되버린 조숙한 조9단의 천재와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sji*629
  2006.08.31
우선, 어떠한 경로(여러 고마운 분들의 물심양면의 노력)를 통해였든지간에 일단 일인자의 문하에 유일한 내제자로 들어간 이상, 어린 나이의 이창호에게도 분명 상상을 초월하는 각오와 인내의 다짐이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일인자의 약간의 의구심 섞인 기대, 바둑계의 시선, 조기 입단에 대한 중압감 등.. 이러한 여러가지 요인들이 어린 이창호를 날마다 새벽 2시가 넘도록 까지 방에 불을 밝히게 (뭐, 이창호 자신이 말하기로는 체질적으로 올빼미형이라서 그렇다고는 하지만..) 만들고, 스승의 집 서가에 꽂혀 있던 엄청난 양의 바둑서적을 섭렵하게 만드는
sji*629
  2006.08.31
동인이 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비범한 각오와 노력만으로 누구나 당대 일인자가 되는건 아니라는 점에 바로 이창호의 비밀이 있다 하겠습니다. 김종서라는 조9단의 외조카 (어릴때부터 조9단의 집에 자주 드나들면서 어린 이창호를 가까이서 오래동안 봐았다는)의 말에 의하면 이창호는 일면 의뭉한 구석이 있다고 합니다. 굉장히 수줍음을 타고 내성적인 것 같으면서도 자신의 고유 영역안에서는 한치의 타협도 없는 외곬수적인 기질이 있다구 말이죠.
sji*629
  2006.08.31
조9단 역시 세고에 겐사꾸 문하에서 10여년을 내제자로 지내면서도 스승에게서 직접 실전을 통해 지도 받은 적은 서버번 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으로 봐도 알 수 있듯이 원래 엄격한 스승은 제자가 스스로 탐구하여 바둑의 진리를 터득하게 하지 이러쿵 저러쿵 미주알 고주알 가르쳐 주질 않습니다. 기타니 미노루 9단도 내제자들에게 수를 가르쳐 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스스로 알때 까지 몇날몇일이고 탐구하게 하고서야 겨우 한 두마디 알려주는 정도였답니다.
sji*629
  2006.08.31
뭐 별로 아는 것도 없는 주제에 이야기 하자니 그렇기도 하고, 장광설이 될것도 것 같아 가끔씩 틈날 때 이야기를 이어 볼까 합니다.
도배*판
  2006.09.07
헐..기원가에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기원 1급이 되려면 기원1급과 같이 생활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생각과 행동 하나하나마저도 기원 1급처럼 하고 기원1급들과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먹고...하라는
말입니다..그러면 당연히 바둑도 1급들과 자주 둘 수 있겠죠..물론 바둑 수도 배울테구요..
중요한 것은 고수들과 생활함으로써 동화되어 간다는 겁니다..프로가 되려면 프로기사님들과 자주 어울려야 하고.. 최고수가 되려면 최고수와 같이 자주 어울려야 합니다....
도배*판
  2006.09.07
좋은 스승을 만나고 .멋진 호적수를
또 만나고..마지막으로 무서운 후배나 제자를 만나는 것을 군자의 3가지 즐거움이라고 하지요~~^^
이런 점에선 조훈현9단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바둑이 아닌 다른 그 어떤 분야에서도 위의 3가지를 충족한 당대1인자는 없었으니..
작게는 조훈현9단의 크나큰 행복이요..크게는 한국 바둑의 홍복이 아닐까요..
또 이창호9단 역시 위대한 스승과 ..유창혁9단이란 불세출의 호적수(사실 엄밀히 말하면 9살차이라서
호적수라고 부르긴 민망함)와 이세돌,최철한,박영훈같은 (단위생략) 무서운 후배들을 두었으니 어찌
행복하지 않으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