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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趙씨고아] 혼자가 아니야 - 名드라마 명장면


서양사람 혹자는 중국의 햄릿이라 비유했다고도 하고, 아무튼 선명한 그 비극성은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그러나 짙은 비극성을 가졌으되 햄릿과 뚜렷이 다른 점이, 햄릿의 비극적 결말과 달리 조씨고아는 나름대로 해피엔딩이라는 점입니다. (햄릿의 결말이 어찌 되나요? 최후의 결투에서 반전을 거듭한 끝에 칼에 묻은 독이 문제가 되어 햄릿이 죽고, 아마 오필리아 역시 죽죠?)

오늘날에도 생생하게 살아 인기를 끄는, 무려 2500년 전의 이야기. ‘조씨고아(趙氏孤兒)이야기는 아마도 실제의 역사와는 상당한 괴리가 있을 겁니다(대부분의 역사가가 그렇게 말하죠). 春秋(춘추)시대의 大國(대국) ()나라가 ,,(,,)로 분가하며 全國(전국)시대가 열리는데, 조씨고아는 이 중에 나라의, 말하자면 일종의 건국신화에 가깝죠. 마치 조선의 용비어천가처럼 역사적 사실이 그 과정에서 각색되면서 역사 아닌 역사가 되었다, 그런 얘깁니다.

게다가 唐宋(당송) 시대 이후 이 이야기가 說唱(설창) 문예 형식으로 市中에서 소비되면서 극적인 요소가 재차 추가되었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정영(程嬰)이 제 손으로 자식을 죽였다는 내용을 별로 믿지는 않습니다만,.. 잠깐, 저 이름이 참 재미있어요. 정영은 趙씨집 갓난아이(嬰兒영아)를 구출하여 붙들고 키우는 19년 동안의 험난한 路程(노정)을 겪어내고 결국 복수를 해내는데, 정영이란 이름이 갓난아이에 길입니다. 참 묘한 이름입니다. kBS드라마 칠공주떡칠이다음으로 묘~한 작명입니다.

생짜로 만든 가공의 이야기보다는, 역사적 공간의 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야기가, 그게 설령 인위적 가공이 가미되었다 하더라도, 그 배경이 되는 기존의 역사가 훌륭한 인테리어처럼 기능을 하여 우리들 구미를 돋우어 주지 않나 생각됩니다. 춘추전국 5대 자객의 한 사람인 예양(豫讓)이 그토록 죽이려다 실패한 조양자(趙襄子), 아버지의 할아버지가 다름 아닌 조씨고아라는데, 어찌 입안에 침이 고이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훌륭하게 가미된 양념들. 조씨가문의 멸문, 공주라서 홀로 살아남는 안주인, 때마침 임신 , 남자냐 여자냐 만약 여자애라면 멸문 당한 가문의 모든 희망이 물거품, 다행히 사내아기, 이 핏덩이를 죽이려 드는 원수, 수색하고 빼돌리고 쫓고 쫓기고.., 하늘이여, 만일 조씨 종족의 후사를 끓으려고 한다면 아이로 하여금 울게 하시고, 다행히 다시 조씨의 맥을 잇게 하려거든 울지 않게 해주옵소서!”그런 식으로 아슬아슬하게 넘기는 위기...

그리고 古今에 남은 불후의 臺詞(대사),
 

공손저구가 한참을 끙끙대며 생각하더니 정영에게 물었다.

살아서 갓난아이를 키우는 것과 지금 죽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정영 : “ 죽는 것은 쉽고 고아를 키우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겠네.”(生難死易생난사이)

저구 : “ 자네는 어려운 일을 맡고 나는 쉬운 일을 맡게나.  풍몽룡 列國志 양승국 번역-
 

       
동영상 종료 후 광고가 나올지 모릅니다 - 그냥 무시하시면 됩니다(방법은, 재방송        을 누르고 추가로 일시정지를 누르면 됩니다)
       자막 제작에 진땀 뺐습니다 -어색하더라도 이해 바랍니다 

삶과 죽음을 술 한 잔 건네듯 나누는 두 사람 - 운명을 까맣게 모르는 두 아기 - 음악도 좋군요
 

"to be, or not to be?"

"to be."

"not to be to be."

 

둘은 연극을 합니다. 공손저구는 가짜 조씨고아를 데리고 있고 정영은 배신 때리는 척, 도안고에게 밀고합니다. 공손저구는 아기를 지키는 척 저항하다 살해당합니다. 참 쉽죠 잉.

정영에게 남은 건 19년 동안의 온갖 욕됨 속의 중대한 책무입니다.

 

....

 

...그리고 해피엔딩 속의 진정한 비극.

당시 내가 조씨를 따라 죽지 않은 것은 조씨의 고아가 성장하지 않아 그의 뒤를 돌봐 주기 위해서였다. 오늘날 이미 조씨의 관직이 복권되고 원수도 갚았으니 어찌 내가 스스로 부귀를 탐하여 공손저구만 홀로 죽게 만들겠는가? 내가 지하에 있는 저구에게 가서 이 기쁜 일을 알려야겠다!”

정영은 말을 마치고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 풍몽룡 列國志 양승국 번역-

 

프란다스의 개가 결국 얼어 죽었나요 어떻게 죽었나요. 그건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개와 주인이 부둥켜안고 같이 죽은 결말은 아직도 기억이 나는군요. 슬펐어요. 파트랏슈와 함께 걸었네~ 슬퍼.

햄릿이 죽은 결말에 어떤 기분이었는진 기억이 어렴풋해요. 근데 정영의 마지막은 프란다스의 개를 읽고 느낀 기분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무언가 서글프고 기막히고 쌉싸름하면서도,.. 맞아요 고매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훌륭하다란 말로는 다 표현할 순 없어요. 맞아요,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고매함이에요. 우리가 양념을 치려면 저 정도는 되어야 해요.

조씨고아가 중국산으로 드라마화되었습니다. 40분짜리 41, 1600여 분. 우와! 30시간에 가깝네요. 웬만한 주말극 분량이니, 여기서 또 한 번 각색이 필요합니다. 이 정도 분량의 드라마를 소화시킬 각색은, 생짜배기 순수 창작 못지않은 어려운 작업이겠습니다. 그럼 이 중국산 각색, 어땠을까요? 성공이었습니다. 훌륭해요.

작년에 우연히 이 '드라마 조씨고아'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미 국내에 방영되었더군요. 아 근데 과거형 아닙니까. 그 당시 방송되는 게 아니었어요. 게다가 저는 테레비의 일방향성과는 친하지 않아요. 감상시간을 내가 정할 수 없어서요. 그래서 테레비는 당연히 포기.

어쨌든, 다행인 건 이게 중국산이란 겁니다. 화면을 구할 수만 있다면 감상에 지장이 없으니까요. 유투브로 달려갔습니다. ! 조씨고아가 있었습니다. (영화도 있답니다.)

드라마로의 각색, 이미 생생한 인물상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 막대한 분량 인물에 한 번 더 생명을 불어넣어야 하죠. (다른 작업도 장난 아니지만)

원작에 도안고는 악당그 자체입니다. 조씨고아가 나라의 용비어천가 아닙니까. 도안고는 바로 나라의 王家(왕가)의 철천지원수거든요. 씨가문 하마터면 사립문 닫을 뻔하게 만든 원수, 원수 중의 제1급 아니, 특급 원수입니다. 그러니, 무릇 용비어천가라면 도안고를 인정사정없이 조져야 합니다. 헌데 기나긴 드라마에서 도안고를 마냥 악독하게만 그릴 수는 없습니다. 역사 실제가 그럴 수도 없는 일이고 한 인물상이란 것이 그렇게 간단하게 규정될 수도 없으니까요. 일개 인물상의 다채로운 측면, 그런 게 드라마의 생명력일 겁니다.

정영은 醫師(의사)로 설정됩니다. (원작 내용엔 그런 부분이 없어요.) 그리고 길고 긴 이야기의 도입부에 의사 정영이 도안고의 부인을 치료하는 장면이 들어갑니다. 부인에게 침을 놓죠.그, 우리가 침을 맞는 순간 살짝 따끔하죠? ... 부인은 낮은 비명을 지르는데, 곁에 섰든 도안고, 눈을 질끈 감으며 같이 아파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내를 끔찍이도 사랑하는 ‘악인의 다른 일면입니다. 아내 때문에 노심초사하는 악당. 이렇게 드라마에서 도안고는 재창조됩니다. 초반에 이 장면을 보는 순간 드라마 조씨고아에 구미가 더욱 바짝 당기기 시작했습니다.

이 장면입니다.

 

                      도안고와 정영 :치료합니다? - 해요 해요 



정영은 어떻게 재창조되었을까요? 의사란 직업을 안겨줬다는 건 이미 얘기했습니다. 그 외 부분을 일일이 얘기하긴 벅찹니다. 쓰기도 벅차고 읽기도 벅찹니다. 한 가지 인상적인 장면을 소개해보겠습니다.

우선 인물 하나가 등장해야 합니다. 장군이라고, 인접국인 ()나라의 장군인데 우연한 기회에 정영의 그, 혹여 하늘이 알까 두려운 그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되고, 정영의 知友(지우)가 됩니다. 그런데 도안고의, 겸사겸사 간악한 음모로 불행히도 암살을 당하고 그 한 점 남은 혈육인 딸이 천 리 길을 마다 않고 정영을 찾아옵니다. 사실 장군의 유언이었죠. 이 낭자가 초아입니다.

초아는 참으로 기특한 여인입니다. 불과 열대여섯 나이로 정영의 음모에 동참합니다. 그의 역할은 저잣거리에서 說唱(설창)을 하는 것입니다. (說唱이란 북을 잡고 창으로 이야기를 푸는 것입니다. 판소리를 연상하면 되겠네요.) 그런 초아는, 정영의 밀명을 수행하는 행동대원인 셈이죠.

여기서 잠깐, 도안고의 아들 얘기가 나와야겠네요. 그렇습니다. 정영의 부인, 도안고의 부인, 씨 가문 안주인. 이 세 여인이 동시에 출산합니다. 정영의 핏줄은 희생되고, 이후 정영은 주인의 유일한 혈육과 자기 아내, 이렇게 '일가족' 셋이 도안고의 府中(부중)으로 들어가 몸을 의탁합니다. (천룡팔부의 천산동모가 생각나네요. 등잔 밑이 어둡다.) 그리곤 자신의 아들과 도안고의 아들의 훈육을 맡습니다.

저잣거리에서의 초아의 설창은 바로 이 도안고의 아들을 겨냥한 것입니다(물론 정영의 머리에서 나온 지모인데요). 출생의 비밀과 관련한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거죠. 이 고급 낚시는 멋지게 성공합니다. 도안고의 아들은 충격을 받고 가출을 합니다. 그리곤 초아와 어울리게 되지요. 하늘에 닿는 악행도 마다 않는 도안고지만, 아! 아들바보였습니다. 그러니 아들의 '행패'에 속수무책, 채신머리 다 버리고 정영을 협박합니다(이 분란이 다 정영의 농간인 줄은, 물론 알 턱이 없습니다). ‘정영, 내 아들 돌리도.’ 정영은 못 이기는 척 두 사람을 찾아갑니다. 아래 영상은 그리하여 바로 이들 세 사람이 한 자리에 모인 장면입니다.

대화 중간에 도안고 아들이 자리를 잠시 비우게 되고, 두 사람만의 대화 기회가 생깁니다. 밀담이죠.

 

초아, 천천만만 조심해야 해.”

초아, 고생이 너무 많네.”

선생은 조씨가문을 위해 19년이나 忍辱(인욕 ;욕됨을 참음)하셨는데, 이 정도야 아무 것도 아니에요.”

“나 정영은 ()나라 사람이지. 공손저구와의 약속으로 아이를 키우는 건 마땅히 할 일이지.”

낭자는 초나라 사람이지. 이런 곤욕에 겨운 중임을 시키는 건 차마 못 할 짓이네.”

대인의 충성은 사람을 감복시키고 조대인의 억울함은 딱하기 그지없지요.”

선생의 의로움은 저를 감동시킵니다. 선생을 따르겠습니다.”

 


                                   도안무강(도안고 아들), 초아, 정영


아시다시피 정영은 조씨집 혈육을 구하기 위해 제 손으로 자기 아들을 희생시켜야 했습니다. 程嬰의 복수의 路程(노정)艱苦(간고)할뿐더러 극도로 불행한 삶입니다.

늘그막에 겨우 얻은 한 점 혈육을 제 손으로 죽여야 했지, 그 바람에 끔찍이 사랑하는 마누라는 미쳐버렸지, 그러고선 남편을 오라버니(따꺼大哥)’라 불러 쌓지, 유일한 동지 공손저구는 니가 가라 하와이한마디 하곤 낼름(?) 죽어버렸지, 난 죽지도 못 하고 '지 아들을 살리겠답시고 주인집 아들을 팔아먹었다'는 汚名(오명)19년 동안이나 머리에 이고 살고 있지, 사방은 적이요 의지할 데라곤 오직 자기 자신, 망망대해 일엽편주, 비할 데 없이 외롭죠. 허파엔 찬바람이 돌고 속은 아마 시커멓게 타다 못해 하얗게 재가 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의 속 깊숙이 아주 깊숙이 한 방울 남은 물기마저 사라질 순 없습니다. 그 물기 한 방울의 힘으로 지탱해나가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어린 초아의 진심 어린 한마디가 그 한 방울 물기에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혼자가 아니야(워다오부구).”

혼자가 아니야.”(吾道不孤오도불고 :, , 아니, 외로울;나의 길은 홀로가 아니야)

되뇌는 정영의 모습은 외롭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조금은 외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