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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알파고] '컨닝페이퍼'에 없는 手 -철벽, 일순간 붕괴하다


 '컨닝페이퍼'에 없는 手 -철벽, 일순간 붕괴하다





컨닝페이퍼에 없는 手


:신경망 정책망 가치망 몬테카를로....

이놈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우리로선 암만 설명을 들어도 눈알만 똥글똥글해진다. 패쓰!

 

이 기계의 작동원리를 그나마 대략적으로 이해하기로, 한마디로 말해 이놈은 무제한의 컨닝페이퍼를 장착한 계산기가 아닌가 한다. 다만 이게 다가 아니고 거기에 신비의 능력을 발휘하는 점쟁이가 추가된다. 마지막으로 여기에 극강의 계산력을 지닌 주판이 추가된다. 이건 즉 그 옛날 장기판의 그 딥블루, 나아가 바둑 영역에서 이게 진화한 몬테카를로 어쩌고에 해당.

 

이 세 가지 요소.

 

(16만이니 3000만이니 하는 숫자가 이 컨닝페이퍼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이 세 가지 요소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느냐면 세돌의 에 대응할 나(알파고)컨닝페이퍼의 비슷한 장면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것이다. 그럼 나의 이 대응에 대해 점쟁이가 나서서 세돌이 어떻게 두어올 것이다 예측하고 나아가 나의 승리 확률까지 계산하게 된다.

주판의 임무는 컨닝페이퍼가 추천한 手를 우선적으로 하여 다양한 경우의 手를 탐색하는 것. 마지막 단계로 점쟁이의 조언을 참고하여 실제 착점을 선택.


***강화학습 :알파고의 獨學(독학)’. 알파고는 스스로 학습하며 진화한다. 독학을 통해 컨닝페이퍼를 포함하여 기능이 강화된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거쳐서 나오는 는 모든 초점이 오로지 승리 가능성에 맞춰지기 때문에, 언제나 판 전체를 전제로 (나의) 를 선택하게 되며, 따라서 근본적으로 수읽기니 사활이니 이런 修辭(수사)가 무의미해진다. 말하자면 사활책도 본 적 없고 맥 공부도 하지도 않고 입단을 하고 최고수가 되었다는 얘기다.

, 말이야 인공지능이지만 지능의 작용인 思考(사고)를 하는 것이 아니고, 기계적 작용을 거쳐 思考의 결과물과 동일한 결과물을 내놓을 뿐이란 소리가 된다.어떻게 말하면 얘는 바둑을 두는 게 아니다. 결과가 바둑일 뿐이다.

 

1국에서 우하귀, 인간(프로)은 한눈에 보는 사활을 몰라서 여러 집을 눈뜨고 손해를 본다든지.

2국에서 (논란이 됐던 그) 패 수단을 허용한다든지.

3국에서 하변 세돌의 장렬한 침입 후 공방전에서 인간(프로) 최고수급이라면 쉽게 내주지 않을 를 내준다든지.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알파고는 좁은 의미의 수읽기, ‘부분전 수읽기를 안 한다, 나아가 못한다는 것이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놈 기계는 언제나 넓은 의미의 수읽기만 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지 하느냐는 의심이다. 다만, 이 능력이 워낙에 강력해서 단점이 가려진다는 얘기.

 

16만개의 棋譜, 거기에서 추출된 3000만 개 장면도, 결국 인공지능의 근원은 인류 知性. 그 집합체. 이세돌은 이 컨닝페이퍼(바둑인 지성의 집합체) & 컴퓨터 기술에 진 셈이고, 따라서 그쪽 전문가의 표현대로 인간과 기계의 대결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대결이 정확한 관점.

 

16만개 棋譜/3000만 개 장면도의 질적 수준은? 당연히 평균 프로 수준에도 못 미칠 것이다. 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인 이상, 데이터 양이 아주 아주 막대한 이상, 그 중에서 잘만 고르면, 이 과정에서 점쟁이의 도움을 받는다는 말이고, 그렇게 추출한 가 인간계 최고수를 이기기에 충분했다, 결과적으로 막대한 분량에서 최상급의 품질을 추출한 셈이 된다는 얘기다.


여기서, 우리가 하고자 하는 얘기인 부분전만 놓고 봤을 때는, 양으로 질을 압도하기엔 데이터가 아직은 불충분하다. , 컨닝페이퍼가 부실하다, 이게 나의 결론이다. 덤으로 알파고가 항상 넓은 수읽기만 하고 좁은 수읽기의 시행 자체가 없다면 결국 어제 같은 참사가 빚어지게 된다.

 

4국의 백78은 인간 중에서도 프로급이라야 볼 수 있는 이다. 또 중요한 거, 그 수보다 4수 6수 8수 10수... 이전에 볼 수 있는 인간은 극히 제한된다는 점. 간단히 말해, 바둑을 그런 식으로 몰아갈 수 있는 인간, 그런 식으로 몰아가서 그런 장면도를 제조할 수 있는 인간은 이세돌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쯤이면 확실해지는데, 16만 개의 棋譜 중에 소위 신의 한수급 묘수가 등장하는 棋譜가 몇 개나 될까? 같은 소리로, 백병전(사활, 수상전을 말한다) 장면이야 충분하겠지만 세돌-알파고 대결에서 나올 만한 고급의 백병전 장면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그런 데이터의 존재가 어느 정도라도 있기만 하다면, 비록 좁은 수읽기 없이 넓은 수읽기만 동원하더라도, 주판점쟁이의 도움을 받아 78을 예상했을 터이고, 백의 집적거림(흑집을 좀 줄이고자 하는)에 그렇게 최강수만 동원하진 못했으리라. 예를 들어 점쟁이가 야 너무 세게 받지 마, 그건 51%고 조금 물러나면 52%...’ 

 

지금까지의 내 판단이 맞다면 알파고의 과제는 :1차로 고급/최고급의 부분전 데이터 보강, 2차로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필요한 순간의 좁은 수읽기를 프로그래밍 시키느냐, 이를 또 어떻게 넓은 수읽기와 적절히 결합시키느냐,

마지막으로 승리 확률이 어느 이하로 떨어졌을 때 나타나는 기계적 당황’(어제 우변에서부터 터지기 시작한 실수 떡수,..좌하 신의 끼움수 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


메커니즘이 다르지만 기계도 당황하는 모습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우쒸 컨닝페이퍼대로 잘 뒀는데 갑자기 왜 일케 된 거야, 야 이 엉터리 점쟁이야 그런 수가 있으믄 말을 해줘야지 이게 뭐냐고요...’

'님아, 컨닝페이퍼에 없는 게 왜 내 탓이냐고요.'(점쟁이)

 

이와 별개로 장면을 그렇게 몰아간 세돌의 예민한 후각, 피어린 고심과 무서운 집념은 무슨 칭찬을 해도 부족할 정도로 대단하다. 15년을 세계 최고수로 군림한 저력이란 게 바로 이거구나, 이렇게나 대단하구나, 정말 실감했다.




 

! ! !


大野望(대야망)이라는 만화가 있다. 고우영 화백의 작품인데 어렸을 때 참 재미있게 보았다. 거기 한 장면, 연전연승하던 최배달이 중국인 어마어마한 高手를 만나 악전고투 끝에 승리하는 내용인데, 어제 이세돌의 壯擧(장거)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이 만화가 떠올랐다.

 

최배달 앞에 등장한 쿵푸 高手. 결과부터 말하면 비공식 대결 11패 끝에 공식 대결이자 최종 대결에서 승리를 거둔다. 아무튼, 이 중국인의 첫 수작이었다. 최배달 앞에서 쪼매난 나무를 手刀로 자르겠다고 설치다가 실패하는데, 즉 고의로 허접한 모습을 노출하며 최배달을 방심시켰다.


다음, 비공식이지만 첫 대결이 벌어지는데, 기자들 앞에서 무례하게 시비 비슷하게 걸다가 분개한 최배달의 정의의 正拳(정권)지르기에 코피가 터진다. 여기선 얼떨결에 한 방 먹은 그도 설욕을 다짐한다. 고우영 화백은 그의 설욕 의지를 앙다무는 이빨로 표현한다. 다음 장면, 도장에서 벌어지는 또 한 번의 비공식 대결, 이 대결에선 최배달이 혼쭐이 난다. 겨우 겨우 KO만 면했을 뿐, 첨부터 끝까지 일방적으로 얻어터진 것이다. 최배달 인생에 처음으로 당하는, '구타'에 가까운 참패였다. KO를 면한 건 어쩌면 본격 대결을 앞두고 베푼 선심일지도 모를 정도로.

 

떡 벌어진 체격의 최배달과 달리 호리호리한 이 중국인의 실력은 송곳 같은 날카로움, 엄청난 속도, 그런 것이었다. 특히나 바람개비처럼 돌아가며 나오는 발차기(旋風腿선풍퇴)는 이놈이 다리가 8개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만들었다.

! ! ! 태울 소, 꺾을 요, 죽일 살. 3단계. 마무리인 이란 ! !에 당해 기진맥진한 상대의 머리 위를 날아 등 뒤로 떨어지면서 척추 쪽에 치명적 일격을 가하는 것, 알고 보니 그런 식으로 당하고 불구가 된 사람이 하나 둘이 아니었으니.

 

이를 알게 된 최배달. 공포에 휩싸인다. 공식 대결 시간은 시시각각 다가오고...위기의 최배달, 두려움, 두려움을 못 떨쳐내는 스스로에 대한 자책... 어느 순간 어떤 계기로 최배달은 패배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되고, 정신이 맑아지면서 상대를 분석하고 전략 전술을 하나하나 세워간다.

 

전략은 균열이었다. 맘모스 같은 철벽은 어떠한 힘으로도 무너뜨릴 수 없다. 이걸 무너뜨리려면 뭔가 계기가 필요하다. 그게 균열이요 최배달이 생각한 균열이란 상대의 방심이었다. 실전에서 최배달은 저번 비공식 대결과 마찬가지로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다만 그때와 다른 건 그렇게 의도적으로 당하면서도 최후의 한 방을 숨겨둔 것. 그걸 위해 최후의 기력을 아껴 둔 것.


인내 인내 인내...

 

!

 

드디어 그가 등 뒤로 날아왔을 때 최배달의 최후의 한 방이 터진다. 이 한 방으로 맘모스 같던 단단한 벽은 일순간에 와르르 무너졌다. 대결은 그렇게 끝났다.











                                  인내 인내 인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