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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펌譯] 이창호 있으매 이세돌 (謝銳 Blog) -110701


먼저 이창호 있고 다음에 이세돌 있다
前有李昌鎬  後有李世乭


출처 :謝銳 Blog  (2011-07-01 18:29:32)



    
한국 최강 이창호 이세돌을 취재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石佛의 대답은 이십 년이 하루 같다. 느릿느릿, 부끄부끄, 한참을 지나도 한마디가 안 나온다. 쎈돌(石頭)은 말은 시원스럽게 하긴 하는데, 목소리가 모기 소리만 하고, 어린아이들 목소리처럼 뾰족하여, 알아 듣기가 쉽지 않다.
 
근데 이세돌이 큰 소리로 말하는 때가 없지는 않다. 춘란배 우승 직후에, 주최 측 요청으로 언론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였는데, 얘기가 그의 지치지 않는 우승 쟁취의 動力(동력이 무었인가)에 미쳤을 때 그는, "최대의 동력은 한국기원과 이창호의 지지이다. 우리들 어린 棋士들에게 이창호는, 맨 앞에서 이끌어주는 모범이다. 나는 줄곧 그를 목표로 삼았고, 덕분에 오늘의 이런 성적이 있게 되었다."

이 년 전 한국기원과 알력을 빚던 당시와는 천양지차, 이세돌이 한국기원에 이런 높은 평가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나이를 먹음에 이세돌이 주위 사람과 일을 받아들이는 태도 또한 달라졌다. 단, 이세돌의 이창호에 대한 평가는 內心 그대로임이 확실하다. 이십 여 년 동안 이창호는 盤上(반상)에서뿐만 아니라 盤外에서도, 줄곧 그의 인생方向이었다.

棋士로서, 동료들의 존중을 무엇으로 얻는가, 첫째로는 오직 棋力이리라. 이창호가 획득한 세계대회 우승 갯수(17개)는 여전히 다른 모든 棋士들을 앞선다. 2005년 3월 춘란배 우승 이래 지금까지 더 이상 세계대회 우승컵에 손을 대지 못 하였지만 그는 그래도 8개의 준우승을 획득하였다. 棋力 측면에서 비록 王者의 통치력을 더 이상 행사하지 못하던 시절이었지만, 의연히 그는 세계대회 결승에서 활약했다. 최근에 마무리된 LG배 1,2회전 시합에서 그는 古力(고력)과 井山裕太(이야마유타)九단에게 연승하면서 다시 8강에 들었다.

2001년, 하늘 밖 하늘이 있음을 미처 몰라 하늘 아래 무서운 게 없었던 大魔王 송아지[각주:1] 이세돌, 24연승이란 훈장을 달고 LG배 결승에 짖쳐 들어간다. 시합 전 이세돌은 온갖 장담을 마다하지 않았고 그 중엔 심지어 얕보는 말까지 있었다. 이창호는 언제나처럼 담담, 설령 0:2로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도 털끝만큼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승리를 거의 손에 거머쥔 이세돌 자신이 회의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창호가 설마 이렇게 단박에 무너진단 말인가? 세계대회 첫 우승의 문턱에서 이세돌은 새삼 미심쩍단 생각이 들었다.

3국을 시작으로 이창호의 노도와 같은 반격이 개시되었고, 일승 이승 삼연승, 멋지게 대역전극이  완성되었다. 0:2 벼랑 끝에서 대역전극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은, 棋力 여하를 떠나, '코앞에 태산이 무너져도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갑자기 도깨비가 튀어나와도 눈도 깜짝 안 한다[각주:2]'라는 心理적 소질로서, 凡人(범인)이 도달 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2연승 후 3연패, 이세돌은 '따악!'소리가 나도록 頂門一鍼(정문일침)을 얻어맞았다. 이로부터 이창호를 향한 존경을 더해졌고, 얘기가 제1高手에 미칠 때면 언제나 이창호를 꼽았다. 설령, 나중에 이창호가 우승 한 번이 어려운 (고단한) 신세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여러 차례에 걸쳐 '미친 돌'에게 盤上 교훈을 주었다. (예를 들어) 2008응씨배 준결승 3번기에서, 시합 전 상승세의 이세돌은 이창호에게 연속 2패를 당하여 쓸쓸히 탈락해야만 했다.

(譯註 ;'미친돌', '瘋狂石頭'는 중국 바둑글에서 이세돌을 두고 자주 쓰는 표현. 중국에 같은 이름의 온라인 게임(위 그림)이 있고 영화도 있다. '미친'이란 뜻이라 해서 이세돌을 까는 표현이 아님은 당연..  한편 의자(椅子)가 '사람이 엉덩이를 걸칠 수 있게 만든 물건의 子(아들)' 이 아니듯이 石頭 역시 '돌대가리'가 아니고 단지 '돌'이란 뜻이다.)

이창호는 바둑계의 복제불가능한 一大 기적이다. 1992년부터 2005년 이 13년 동안에, 총합 17개의 세계대회 우승을 하였고 그 중에 아홉 번은 중국 棋士를 이기고 우승을 가져갔다. 馬曉春(마효춘), 常昊(상호) 두 사람, 당시 중국 최강은 그 앞에서 辛酸(신산)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 처량함이 極(극)에 달해야 했다.  '龍'字 항렬의 여타 周鶴洋(주학양), 邵煒剛(소위강), 王磊(왕뢰) 등은 이창호와 붙는 순간, '이창호와 붙어보지 않고선 이창호의 강함을 모른다'는 감탄을 역시나 빠뜨릴 수 없었다. 여타 더 많은 棋士들에겐 이창호와 붙어볼 기회조차 없었다.

譯註 ;처량함이 極(극)에 달해 :원문은 無處話凄凉 (글의 필자 사예는, 蘇軾(소식)이 아내를 여윈(喪妻) 슬픔을 읊은 詩의 일부를 인용. 그 구절은 千里孤墳,無處話凄凉/천리 밖 외로운 무덤, 처량함 하소할 곳 없고-이 구절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아픔의 표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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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최고의 강함은 바로 그 정신세계이다. 이리도 오랜 세월 동안 그는, 겸손 선량하고 조용스레 鎭重(진중)하고 愛心 가득하고 棋道에 만족했다. 여러 십년을 하루같이, 그의 표정이 오랜 세월 한결같음과 딱 마찬가지로, 그의 됨됨이와 처세 또한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겸허君子 玉 같은 溫柔(온유)[각주:3], 이창호는 다수 소년 棋士들 마음 속 偶像(우상)이며, 그의 棋風은 일찍이 광범위하게 모방되었다. 한국의 젊은 棋士들은 심지어 그의 노타이 양복 차림까지도 줄줄이 따라갔다.

쎈돌(石頭) 이전에 石佛이 있었고, 古力 이전에 쎈돌이 있었다. 고력이 말하기를, 이세돌은 그의 목표이자 動力(동력)이라고 했다. 2009년 이세돌이 돌연 휴직하였고, 뒤이어 고력이 일순간 人生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 일단의 시간에 이세돌은 사람들의 시선에서 사라졌고, 고력 역시 전혀 바둑 감각을 찾지 못하고 패배 또 패배, 한 개 또 한 개 타이틀을 잃어갔다. 고력은 결국 2010년 말이 되어서야 세계대회 우승을 (겨우) 추가했다.

앞서 간 사람 있으니 길을 헤매지 않으리 ;同行하는 이 있으니 길이 쓸쓸하지 않으리.
(有個領路人,前行不路;有個同行者,路上不會寂寞.)

 






 

  1. 하늘 밖 하늘이 있음을 미처 몰라 하늘 아래 무서운 게 없었던 大魔王 송아지 ;[百度百科]年少輕狂 :어린 사람이, 갓난 송아지 호랑이 무서워 않듯, 늘상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 일을 행함에 신중하지 않고, 그 뭣도 하찮게 취급. 또는 청춘소년이 단순 혈기에 차서 감히 뛰어들고 감히 행하고 감히 말하고 감히 감당하고자 하는 정신적 태도. [본문으로]
  2. 泰山崩于前而色不變、麋鹿興于左而目不瞬 [본문으로]
  3. 겸허한 君子 玉 같은 溫柔 :'情深不壽,强極卽辱,謙謙君子,温潤如玉。'의 뒷 구절. 작가 金庸(김용)은 자신의 무협소설《書劍恩仇錄》中,건륭(乾隆) 황제가 진가락(陳家洛)에게 선사한 佩玉(패옥)에 새긴 이 문장을 빌어 자신이 인생에서 숭배하는 경지를 표출하였다고. 이를 사예 필자가 자신의 글 內로 인용한 것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