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력 :90년대生과 共同 화제 없어 / 80년대生이 中樞(중추) 되어야
출처 :☞謝銳(사예), 週刊체육계(體壇週報) 2011.11.04
체단網 記者 사예 한국 大田에서 보도 2:0, 삼성재산배 준결승에서 古力(고력)이 두 판 모두 불계승했다. 더욱이 2국에서는 나현이 고력의 기세에 완전 압도당하였고, 불과 130수만에 대마가 죽음으로써 돌을 거두었다. 고력이 (대국실을) 나와서 말하기를, “나현 정말 완강하다! 두 대마 중에 하나가 죽지 않을 수 없는 국면에서 줄곧 장고하여 초읽기에 몰릴 때까지 버텼다, 실로 아무 수가 없을 때에야 패배를 인정했다.”
나현이 고력에게 남긴 인상은, “기초가 착실하고 끝내기는 더욱 뛰어나다. 대국 과정 중에 줄곧 냉정하며, 이 점은 이창호와 닮은 점이 있다. 단 전투력은 확실히 좀 물렁하다.”두 판 바둑 모두, 고력은 중반에 우세를 잡았으며 상대가 끝내기로 끌고 갈 여지를 허락하지 않았다. 다만 제1국 바둑은 그래도 마지막에 문제가 있었다. “첫판 바둑에서, 간명한 처리를 전혀 못 했다. 내가 일찍이 대마를 보강했어야 했는데, 그랬으면 상대가 어떻게 해도 기회가 없는 바둑이었다. 실전에선 한 판 비극이 거의 일어날 뻔 했다. 만약 첫판에서 그런 식으로 역전을 당했다면 2007년 삼성배 준결승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았다.”
고력이 말하는 2007년 삼성배 준결승이란, 박영훈 九단과 벌인 그 싸움을 말한다. 고력은 한판을 먼저 이긴 후에, 끝내기에 강한 박영훈에게 연속 두 판을 뺏겼다. 그 두 판에서 朴은 많지도 적지도 않게, 각각 딱 반집승, 총합 ‘한 집’의 우세로 결승에 올라갔다. 이 두 판 바둑은 가히 박영훈의 끝내기 最高 力作이라 할 수 있다.
그 패배 후 고력의 아픔은 극에 달했다. 그는 혼자 숙소 뒤편의 산비탈에 올라가 한참을 머물렀고, 우리를 보고서는 끊임없이 ‘죄송하다’를 되뇌었다. 그의 내심의 激痛(격통)은 오직 그 자신만이 알 것이다. 2010년과 2011년 삼성배 준결승도 이곳에서 거행되었고, 그는 그야말로 눈물로 적신 돌멩이처럼(아래 참조 ;譯註) 강력함과 넘치는 재주로, 상대인 한국의 후배 김지석 七단과 나현 초단에게 곧장 두 판을 이겨, 연속으로 결승에 올랐다.
***「刀劍槍(도검창)」이란 소설 중의, 소제목으로 五千年期待,三千年淚水澆灌,是頑石也會開花 라는 구절이 있었다. 사예 기자가 여기에서 빌려온 표현인 듯하다. -오천년을 기다리고, 삼천년을 눈물로 적시니, 돌멩이도 녹이더라
고력이 결승에 먼저 올라간 후, 우리는 삼성연수원 주변의 ‘그 식당’(아래 참조 ;譯註)에 또 갔고, 맥주를 마시며 한담을 나누었다. 고력 느낌에, 현재 90년대生들의 棋力은 이미 매우 강하다, 근데 성격 밝고 남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棋士는 갈수록 적어진다 고. “그들은 거의 모두 컴퓨터 앞에 앉기만 좋아한다, 대회에 나가면 바로 방 안에 틀어박힌다. 얘기하는 것 역시 이런 게임이니 저런 게임이니 하는 것들 얘기요, 나와 그들은 공동의 화제를 찾기 힘들다. 근데 70년대生과는 잘 통한다. 나와 常昊(상호) 형, 劉菁(류청), 王磊(왕뢰) 등과 바둑을 놓아보거나 술을 마시거나 한담을 하거나,.. 생활에 興趣(정취)가 많다!”
***삼성연수원 근처의 어떤 고기집 사장이 차를 보내 고력 일행을 초대, 일행은 몇 년 전에도 ‘그 식당’에서 대접 받은 적 있다고. 식당 사장이 고력의 팬인 듯. 식당에 도착하니 이미 상이 차려져 준비되었고, 상에 고기만 올리면 되고, 그 식사는 식당 사장의 공짜 대접이었고,.. 사장이 이전에 고력에게 받은 싸인을 보이고 어쩌고...
고력은 90년대生들이 아닌, 80년대生들이 바둑계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 때문에 그는 자책하고 있었다 :“방어선을 지켜내지 못 한 내가 먼저 욕을 먹어야 한다. 天元전과 名人전에서 陳耀燁(진요엽) 姜維杰(강유걸)에게 돌파를 당했고 이 때문에 그들의 자신감이 급상승했다. 그야말로 ‘아래 위가 없어’졌다. 내가 최근 몇 년 동안에 지금 하는 것처럼만 全心으로 공부하기만 했어도 그들은 최소 5년은 더 기다려야 했을 거다.”
“80년대生인 나, 공걸, 謝赫(사혁), 王檄(왕격) 등 우리들이 모두 책임을 짊어지고 바둑계의 中樞(중추)적 지위를 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들 80년대生은 사실 죄다 어느 정도 수양이 되어 있고, 생활 내용 또한 풍부하고, 각자 나름의 스토리를 가진 사람들이다. 컴퓨터 게임 말고는 별다른 건 거의 없는 90년대生들과는 다르다. 나 스스로도 모범이 되려 한다. 10년, 내가 현재의 이 상태를 10년 동안 유지해낸다면 10년 후인 38살에도 이곳 삼성연수원에서 당신들과 함께 맥주 먹으며 얘기 나눌 수 있다!”
얘기가 결승에 미치자 고력은 상대가 원성진이든 진요엽이든 그의 승산은 50%라고 말했다.“이건 농담이 아니다. 나의 진심이다. 그들의 바둑은 보기엔 예사롭다 싶겠지만, 정말 두어보기 시작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사실 죄다 모두 매우 까다롭다(골치가 아프다), 단지 상대가 누구든지 간에 이번에 난 반드시 진지하게 준비할 생각이다. 때가 되면 그와 더불어 멋진 싸움을 펼치겠다.”
***고력은 陳과 元 둘에게 각각 0:2 완봉패가 있다(고력에게 번기 완봉승은 원성진이 최초). 또, 陳은 (여러 판을 둔) 중국 棋士 중에서 對고력 승률이 첫 손가락 꼽힌다. 거의 5:5 수준. 이름하여 '고력의 苦手'가 바로 진요엽.
편집:心若陶陶(심약도도) *** 陶陶:a.즐거운,유쾌한 / 若 = 만약 =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