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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000000 나이가 들면 왜 바둑이 늘기 어려울까?(무명씨)

출처:작자 미상,어느 신문 칼럼

 

나이가 들면 왜 바둑이 늘기 어려울까?


 

나이가 들면 왜 바둑이 늘지 않을까. 누구나 갖게 되는 의문이다.

중학교나 고등학교 시절에 바둑을 배운 사람이라면, 그래서 바둑 에 정진하는 시간을 가진 사람이라면 거의 예외 없이 1급(아마5단 정도)까지는 간다.그러나 나이가 들어 군대 가서 바둑을 배운 사람 은 실력이 좀 더 낮아지고 서른이 넘어 바둑을 배웠거나 어려서 바둑을 익혔더라도 계속 덮어두었다가 훗날 어른이 되어 다시 시작한 사람들은 3 - 5급 언저리에서 멈춰 더 이상 진보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젊었을 때는 총기가 좋았는데 나이가 먹으니 머리가 흐려진 탓일까? 그 말도 일리는 있을 것이다. 나이 들면 근육에 힘이 빠지듯 두뇌도 힘이 빠질 수 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군대 시절이나 30대는 인생의 어느 때보다 파워가 강한 시절이다. 한데 이때 배운 바둑이 왜 가냘프기 짝이 없는 중학생들의 바둑에 상대가 안되는 것일까. 사회 경험이나 판단능력이 증가하면 바둑도 더 잘 둬야 마땅한데 왜 중학생보다 진도가 느린 것일까.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은 1년이면 아마1급이 되고 2, 3년이면 아마 강자가 되는데 대학 때 바둑을 배우면 두 배가 걸리고 30대에 바둑을 배우면 강1급이 되는 게 거의 불가능해진다.


또 평생을 바둑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도 대개는 '보통 1급' 수준에서 실력이 딱 멈춰 10년, 20년이 지나도 거의 그대로인 경우가 많다. TV도 보고 책이나 신문기보도 간간 보지만 그때 뿐이지 바둑은 늘지 않는다. 그 이유를 나름대로 생각해봤다. 나 역시 아마추어로서 실력을 자랑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은 잘 알기 때문에 일류기사들에게 질문도 해 봤다. 그래서 오늘은 바둑계의 진정한 애호가라 할 <만년5급>들의 실력증진을 위해 한마디 하려고 한다.

먼저 몇 가지 단어에 대해 정리를 해보자.


▶ 화초바둑 - 그 진정한 의미

화초바둑이란 단어의 의미를 모르는 분들은 없을 테지만 바둑 실력을 키우려면 이 화초바둑에 대해 재삼 생각해봐야 한다.여기서 화초(花草)란 '아름답게 잘 가꾸어진'이란 수식어와 통한다.행마 좋고 모양 좋아 보기엔 근사한데 한판 붙으면 영 힘을 못쓰는 바둑을 일러 화초바둑이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화초바둑은 좋은 것이다. 거기엔 원칙이 있고 기본기가 숨어있다. 따라서 두면 둘수록 진보한다. 아직 날고 기는 꼼수나 암수에는 전혀 대처할 능력이 없지만 조만간 그것들을 손쉽게 물리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도장에 다니는 어린이들은 으레 화초바둑이다. 그들은 선생님이 가르쳐 준 대로 두 칸 벌리고 한 칸 뛰고 하며 멋진 행마와 포석을 보여주지만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거듭되는 반복과 암기를 통해 그들은 의미를 터득해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화초바둑은 갑자기 몇 단계를 뛰어넘어 강자로 탈바꿈하게 된다.

화초바둑은 고수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할 필연의 과정인 셈이다.


▶ 또 하나의 화초바둑

화초바둑은 모양이 좋기 때문에 일단 실력이 쉽게 늘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화초바둑 중에도 영 실력이 늘지 않는 부류가 있다. 애석하게도 계급이 높은 사람들 - 사장님이나 정치인, 장성등 - 중에 많은데 그들은 프로기사 같은 유명한 고수들에게 바둑을 배워 모양이나 행마는 흠 잡을데가 없다. 하나 일단 그 과정 다음엔 혹독한 수법들에 의한 단련이 필요한데 계급이 높다보니 어느 누구도 혹독하게 다뤄주질 않는다. 어느덧 본인 스스로도 그런 혹독하고 노림이 강한 수법들을 꼼수라 하여 경멸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피나는 수상전이나 진흙밭 이전투구 등은 해보지도 못한 채 맨날 모양만 예쁘게 그리다가 바둑을 끝낸다. 이건 가짜 화초바둑이다. 대학공부를 끝냈으면 실전을 맞봐야 하는데 실전은 지저분하다며 계속 학교만 다니는 학생과 비슷하다. 이런 분들 중엔 자기 실력이 매우 높은 것으로 착각하는 분들도 많다. 이런 착각은 더더욱 실력 증진을 방해한다.


▶ 만년5급

기원에 가보면 내기로 단련된 바둑 중에 '만년5급'들도 흔하다. 오랜 세월 바둑은 뒀으나 죽어라 바둑이 늘지 않는 분들. 굳이 5급이라 한 것은 한 예일 뿐 만년3급도 있고 만년4급도 있을 수 있겠다. 어쨌든 이들 '만년5급'은 '화초바둑'을 우습게 안다. 모양은 근사한데 이리 끊고 저리 끊으면 금방 비몽사몽이 되니 어찌 재미있고 우습지 않겠는가. 급수는 소금처럼 짜서 말만 5급이지 웬만한 아마초단은 쉽게 메다꽂는다.


이분들의 특징은 남의 가르침을 여간해서 따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수들에게 배우지도 않을 뿐더러 어쩌다 배웠다 하더라도 절대 그대로 따라 하지 않는다. 하물며 정석조차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화초바둑이 그대로 따라하는 특징이 있다면 이들은 매우 개성적인 바둑을 둔다. '분재'라는 것이 있다. 화분 안에서 자라는 그 작고 구부러진 그 나무들은 아주 신기하다. 바위 틈에서 풍상을 견딘 소나무처럼 비틀린 생명력을 전해준다. 그걸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쨌든 이 분들, 즉 '만년 5급'에서 멈춘 분들을 보면 분재 생각이 난다. 상수들과의 수없는 접전 속에서 나름의 수법을 익히게 됐지만 그 수들은 비틀리고 뻗지 못한 모습을 띈다.


▶ 고정관념 - 바둑실력을 가로막는 최대의 적

다시 나이가 들면 왜 바둑이 늘지 않나 하는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가짜 화초바둑과 만년5급을 잘 검토해보면 하나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게 된다. 바로 고정관념이다.


고정관념이란 예를 들자면 정치에서의 최대 장애요인으로 꼽히는 학연, 지연 등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우리 후배는 남의 후배보다 유능하고 착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느끼고 있다.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이 같은 정서가 사람들 머리속에 들어있다. 어린이나 청소년의 머리속엔 없고 어른들 머리속에만 들어있다. 지역감정이 세상을 풍미하고 있지만 이것 역시 지극히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예를 또 들어 보자. 바둑에서 화점파와 소목파가 있어서 화점파는 소목파를 경멸하고 소목파는 화점파를 우습게 안다면 여러분들은 웃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 세분화되어 삼연성 포석파와 중국식 포석파가 바둑계의 주도권을 놓고 매일 싸운다고 생각하면 배꼽을 잡고 웃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바둑이 10급만 되어도 화점이든 소목이든 상관없다는 것 정도는 알게 된다. 하지만 세상엔 실제로 화점파와 소목파가 싸운다. 학연이나 지역감정이 바로 그런 것이며 그 외에도 이런 사례는 비일비재다.


이 세상엔 잘못된 고정관념이 득시글거리고 있는데 바둑에선 그런 사고방식이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데 큰 방해가 된다. 왜 어른이 청소년보다 바둑이 늘기 어려우냐. 그 해답이 나온 셈이다. 세상 경험은 사고를 유연하게 하기보다 어느 한쪽으로 고정시킨다. 그런 사고방식이 보이지 않게 바둑에도 작용한다. 그 장면의 최선을 찾는 게 바둑인데 "기왕이면 다홍치마"식의 사고방식이나 "나는 이런 사람이다." 식의 고정관념이 몸에 배어있다면

최선은 제쳐두고 소위 "나의 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 정석을 잊으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기자

정석을 외우되 곧 잊으라. 프로를 지망하는 소년들에게 선배들이 되뇌이는 얘기다. 정석은 모든 행마의 정수(精粹)이고 고수들이 깊은 연구 끝에 도출해 낸 초반의 모범형이다. 따라서 이 정석을 외우는 것의 중요성을 모르는 프로는 없다. 하지만 왜 잊어야 하는 것일까. 바로 고정관념에 사로잡힐까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바둑판의 상황은 한 수 한 수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


그러니 어떤 정석의 수순에 너무 얽매이어 있다 보면 흐름에 적응할 수 없다.

바로 이런 연유로 프로기사가 되려는 소년들은 정석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항시 새롭게 생각하고자 애쓴다. 사범들도 그렇게 지도한다. 만년 5급에 멈춰선 분들은 혹시 자신이 세상에서 터득한(?) 고정관념을 바둑에 그대로 적용하고 있지 않은지 잠시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또는 바둑을 어떤 정해진 틀 안에서'고집으로'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지나 않은지 돌이켜볼 일이다. 새롭지 않으면 변할 수 없고 변하지 않으면 진보할 수 없다.

-출처 : 신문 칼럼에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