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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070429 호리병 껴붙이기


 

‘바둑은 연결이다‘는 말은 한 칸이든 마늘모든 ’한 칸‘이든 날일자든지 간에 돌의 나아가려는 속성을 전제 삼는 말이다. 제자리를 맴도는 돌, 뭉치는 돌은 얼마나 훌륭한 연결인가, 허나 나아가지 않는 돌이니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나아가라. 나아가되 끊어지지 말고 나아가라. 그리하여 바둑은 연결이되, 그 전에 바둑은 돌의 나아감이다.


 







 

조금씩 또는 성큼성큼 나아가는 돌은 마치 수목이 하늘에 키 닿을 듯 올라가는 모습과 닮아 있다. 바둑승부의 기본은 내 돌은 쑥쑥 자라게 하고 적의 나아감은 한사코 가로막아, ‘나무의 성장’이 비틀리게 강요함에 있다. 그래서 행마의 기본은 내 돌의 효율적인 연결이고 맥의 발상은 어떻게 하면 적의 진로를 가로막거나 연결을 차단하느냐 하는 고심에서부터 비롯하여야 한다. 고로 행마는 연결의 효율을, 맥은 효율의 허점추궁을 지향한다.

18급의 코붙임, 10급의 두점머리, 5급의 모자, 3급의 두점머리(코붙임)가 다 그러하다. 진로의 가로막음이다.


 

꼬부리니 젖혀왔다. 하나의 선분 위 세 개의 돌을 보자. 나아가니 나아감을 막아온 셈이다. 막았으니 충돌을 피할 도리가 없게 되었다.
 



 









나아감이 막혔으니 한 줄 비껴서 나아갈 방도밖에 없는데, 한 번 비킨 자의 고민은 날 비키게 만든 자, 적이 나보다 더 쑥쑥 나아간다는 데 있다. 이건 흑이 백의 등을 미는 격, 그럴 순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두어야 할까. 








 

젖히면 단수요, 안 나가면 막고 나가면 끊는다. 수의 모습을 보자면 마치 상대가 원래 갈 길목을 떡하니 먼저 차지하고서, 길도 아닌 곳, 가시밭길 두 개만 열어주면서 하나를 강요하는 격이다. 두 개의 흑돌 사이에 끼인 백돌은 호리병 입구에 진퇴양난으로 놓인 형상, 주둥이 밖으로 나가면 기자는 절야라 호리병 뚜껑이 얼른 닫힐 터이요 도로 들어가자니 병 안에 갇혀 버리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처지가 되었다. 호리병 껴붙이기다.


여기까지 배우고 (「날붙이기」-문용직) 카아 감탄한 어느 하수, 나도 꼭 두어 보리라 큰 결심을 한다. 그러나 바둑 기억력이 칠칠치 못한 이 하수, 수의 모양도 희미해지고 결심도 점점 희미해져 가던 차 또 한 번 호리병 껴붙이기를 목도한다.
 

(지난 1월의 삼성배 2국이다.)
앞의 것과 약간은 다르나, 기본적으로는 같다. 이 수의 발상은 밀어주기 싫다는 고민에서 비롯됨을 꼭 새겨야 한다. 이 고민에서 출발하여야만 적이 나아가고 싶은 자리, 적이 밀리고 싶은 자리를 역으로 내가 둔다는 착상이 자연스레 일기 때문이다. 

카아 또 감탄한 이 하수, 나도 꼭 두어보리라 또 한 번 결심한다.





자, 어느 진탕 마시고 한 판 둔 다음날, 도대체가 어제 둔 수가 하나도 기억이 안 나 자기가 뭔 바둑이를 두었나가 괜히 궁금해졌다. 해서 ‘생전 안하던 짓‘ 복기를 하게 되는데, 요상한 수 하나가 눈에 띄어 이게 먼 수댜 고민을 하게 되고, 이럴 수가 이 수가 그 수잖아! 잠이 덜 깬 머리통을 촬촬 흔들고 흐린 눈을 비비고 대국자를 한 번 더 확인하고..., 아무리 봐도 지가 둔 바둑이네.. 이 하수, 허 내가 이런 수를 두었다니이.. 하며 자못 크게 감탄한다.

하!

하!!

하!!! 


그런데 어느 하수로 하여금 호리병 껴붙이기를 얻게 해준 프로께서 며칠 전 LG배 예선에 참가하신 모양이다. 자기 판을 두면서 옆판 바둑도 곧잘 구경한다면서 그 날 보고 감탄한 기보를 소개하였다.(「바둑한수」국민일보,문용직) A로 찌르면 B로 비켜 받을 것이요 1로 밀면 2로 늘어 흑이 좋다. 곤란에 처한 백을 웃게 하는 맥은? 힌트, 백A 흑C 교환이 있다고 가정한다. 더 힌트, 아까 말한, ‘적이 밀리고 싶은 자리를 내가 둔다’. 


흑이 2로 나오면 백A로 찌른다. 그냥 찌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흑은 역시 C로 비켜 받지만(그 외 수의 경우, 백은 불문곡직 끊는다.) 백이 끼워 두 점을 차단해버리면 한 번 나온 흑2가 보태준 셈이라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그래서 백1에 흑은 그냥 C로 뛰어야 하고 2는 백 차지가 된다. 상대 돌이 나아갈 그 자리를 나의 돌이 빼앗은 셈이다. 햐 그렇네 그게 또 여기까지  진도가 나가는구나. 가히 호리병 껴붙이기의 진화형이라 할 만하구나.

흠 이것도 꼭 두어 봐야징.
근데 이거,
또 진탕 마시고 둬야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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