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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070731 바둑난해 세태무상 - 후지쯔배 결승국의 여운


바둑난해(難解)

고작 이십여 일 전의 바둑이지만, 마치 몇 년 전의 일에서와 같은 희미함이 느껴짐은 그 바둑이 명국이기 때문이리라. 다른 한편으로 아직도 생생하게 한 수 한 수, 한 장면 한 장면이 떠오를 수 있는 이유는 그 바둑의 여운이 진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리라.



바둑은 어렵다. 프로에게도 어렵다. 그리고 아직도 바둑은 어렵다.

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나.


후지쯔 배 결승대국, 해설과 판의 결과가 도저히 정상적인 조합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흑은 중반 승부처에서 ‘보통의 감각에서 이해할 수 없는 수’를 두었고 중종반 판세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딴짓‘을 했고, 그래서 ’덤이 부담되는 판국‘(흑이 한두 집 불리, 어쩌면 두세 집 불리할 경우 반드시 이런 식으로 표현한다.)에서 끝내기가 시작되었고, 끝내기 돌입 직전에 (설상가상의) 대악수를 두었고, 끝내기 들어가서(조차!) 선수인 이선의 마늘모를 하지 않아 역으로 당하였다.(대국 당시 한다 하는  해설들의 조합이다.)


국후 해설은 어떤가.

42무렵, 일찌감치 바둑의 흐름이 백한테 넘어갔다.(집중조명,사이버오로)

55는 팽팽하던(위 오로의 분석과는 약간 다르다) 승부의 추를 백에게 기울게 한 문제수로서 지나친 몸조심. 이 때문에 상변 일대 (때 아닌) 대설이 내리면서 바둑은 아연 백의 페이스,

(이미 흑이 불리한 형세. 그런데도) 69,71로 또 한 번 완착을 두어 침입 기회를 놓치고 (중앙집이 완성되면서) 백은 승세를 확립한다. 이후 흑은 혼신의 추격을...(하이라이트,타이젬.)

(과장하여 말하면 흑이 둔 수는 죄다 엉터리다. 끝내기에서 백의 잘못은 딱 한번 있었다는 모양인데 응당 밟고 가야 할 수순을 놓쳤기 때문에 잘못이다 는 이세돌의 설명이다.)


대국이 마무리되어가는 당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 의문은 이것이었다.

그런데도 왜 반집 승부이지?


한경 인터뷰 - 판세는 시종일관 팽팽했으며 종반에 이 9단의 미세한 실수 때문에 승패가 갈렸다는 것이다.

타이젬 인터뷰 - "대국했을 당시에는 잘 몰랐는데 복기를 해보니까 역전승이었던 것 같아요. 확실히 끝내기 들어갈 때만 해도 제가 나빴어요."

오로 인터뷰 - "유리한 바둑이 아니었기에 힘겹게 추격해야 했다. 결승에서도 반집 정도는 불리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 박영훈 -


한쪽은 흑이 혼신의 추격전을 펼쳤다고 하고 또 한쪽은 백이 힘겹게 추격하였다고 한다.

수도 그렇고 형세도 그러하고 대국자가 가장 제대로 본다는 말이 맞다 하였을 때 박영훈의 말이 제대로 된 진상일 터다. 필경은 제3자에 불과한 관전자는 판의 분위기에 휩싸일 경우 냉정한 판단을 못할 경우도 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대국자와 관전자의 소감이 이렇게 극명하게 갈리다니, 매우 놀랍다.

참으로 바둑은 난해하다 할 도리 밖에.

 

바둑은 난해하다. 난해함에도, 신산, 소신산이라는 별명이 괜히 있지는 않은 모양이다.

"계가는요, 프로기사면 다 되요. 프로면 다 할 수 있어요." 라고 박영훈이 말하였듯이 프로라면 누구나 집은 제대로 센다. 그러나 문제는, 누구나 ‘집을 세긴’ 하지만 ‘집을 느끼는 건’ 아무나 가지는 능력이 아니라는 점이다.

300수부터는 10급도 세고 200수부터는 웬만한 아마추어도 세고 100수부터는 프로라면 전부 다 제대로 센다. 이창호와 박영훈은 그보다 몇 수 더 전부터 셀 수 있는 능력을 가졌는데, 남들은 이즈음에 와서는 집을 느끼는 정도로 족하지만 그들은 센다. 수수가 더 이전으로 가면 남들은 느끼지도 못하지만 그들은 느낀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 대국에서 거의 모든 관전자들(이세,최철 포함)에게는 ‘딴짓‘으로 보였겠지만 실은 이창호는 그만의 느낌으로 팽팽한 국면에서 이기는 길을 좇아, 제대로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의 전성기 시절 기풍이 제대로 묻어 나와서 말이다. 물론 다른 길도 있었겠지만.


상대, 또 다른 신산 박영훈도 당연히 느끼고 있었다.

64의 귀를 압박하는 선수행사 후 백은 66으로 변의 날일자로 집을 짓는 수가 아닌 중앙을 향하여 최대한 넓히는 수를 둔다, 그것도 한칸이 아닌 더 넓게 날일자로 둔다. 흑더러 반드시 들어와 달라는 유혹인데, 이창호는 그처럼 중대한 시국에도 태연히 이선을 젖혀 잇고 있다(69,71)

이 언저리 장면에서, 55의 쌍립수는 몰라도 이 69,71에 대한 비판은 수긍할 수 없다. (이런 만용은 박영훈의 국후담이 있기에 가능하다.)

지금 와서 보면 이창호는 69,71로 나쁘지 않다고 본 듯하다. 만약 그렇지 않다 보았다면 ‘기풍이 치열해진‘ 이창호가 빤히 보이는 패배를 감수할 리는 없을 테니까. 형세가 나쁘다면 들어오지 말라고 말려도 들어가야 하는 게 바둑이 아닌가.

그 날 현지와 국내 검토실, 국후 관전기... 대부분이 본 대로 어쩌면 컨디션 부조, 요즘 와서는 계산이 안 되는 이창호의 판단착오였을까. 

이세돌만 해도 그랬다. 현지 검토실이 놀라고 있다는 윤국수의 전화에, “일단 집으로 커요. (저라면 들어가겠지만)그렇게 둘 수도 있겠는데요.라고 해설했다.

대국당사자인 박영훈의 반응이야 말할 것도 없다. “제가 나빴어요.”

...

그 날의 바둑, 그 국면에서 이창호는 정확하게 집을 느끼고 있었다.


세태무상(世態無常)

바둑도 어렵지만 세태는 더 무상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인들은 이창호의 바둑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놀라면서 한편으로는 믿었다. ‘허어 저런 수를, 허어 저런 수를..그래도 이기겠지.’ 그리고 이창호는 이겼다. 그 때의 수들은 가장 ‘이창호다운 수’, ‘이창호 아니면 두지 못하는 수’가 되었다.


중요한 승부를 한 번 두 번 이창호가 지기 시작한지가 제법 지났다. 상대들의 바둑이 예전의 상대보다 탄탄해지면서, 게다가 이창호 본인이 끝내기 무렵 꼭 결정적인 실착을 범하기 시작하면서 그런 판의 패배가 잦아졌다.

(승부가 오리무중에 있던 그..마지막 순간 미세한 실수로 한 집 정도 흑이 당하였고 그것으로 비로소 승부의 윤곽이 확연해지기 시작했다. 이세돌의 설명에 의하면 흑은 순간 패배를 직감하고 정상수순을 비틀었는데 그래서 조금 더 손해를 본 듯하다. 최종 결과는 집반이었다.)

이런 속사정은 접어둔 채로, 단지 지는 판이 잦아지면서부터 이창호의 바둑을 보는 세인들의 반응이 이제는 ‘아니 저런 수를 아니 저런 수를.. 그러고도 이길 수 있을까’ 이렇게 되었다.

극명한 예를 하나 보자.

고비 때마다 모험을 피한 채 안전을 택했던 이창호로선 다소 무력한 완패, 견실 일변도의 이창호 바둑의 한계가 드러났다고 할까.(하이라이트,타이젬)-아무리 이기는 게 실력이고 이기는 자가 강한 거고 승자에게 조명을 비추는 게 인지상정이라지만 이건 좀 사람을 뜨악하게 만든다.


그날 영훈과의 결승전, 이창호의 바둑은 (근래 보기 드물게도) 예전 이창호의 본령  그대로였다. 바둑은 그대로인데, 변했다면 한 번의 그 실착인데, 감상은 달라지고 있다. 세태는 그대로가 아니다. 하긴 변하지 않는 세태는 세태가 아니니, 세태는 덧없을 뿐이다.


뒷공배:한 가지 해결이 안 되는 의문이 있다. 끝내기에서 ‘이선의 마늘모’는 보통 책에서 양선수 6집이라 설명하는 그 마늘모이다. 꼭 여섯 집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날 결승 대국에서 흑이 좌상귀를 잡는 수(107)를 두기 전에 우상변에서 이선의 마늘모를 얼마든지 선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창호는 그 마늘모를 하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일까. 이 때문에 흑은 거꾸로 백에게 선치중 후 끝내기(108,110)를 당하고 말았다. 실전의 결과는 흑의 손해인가 그러고도 손해가 아닌가. 이창호의 실수인가 아닌가. 이곳의 처리가 승부에 영향을 주었는가 아니 주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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