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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080512 (세계대회) 가장 □□한 □□는?


 

대회란 대회는 다 겹치는 올해 세계바둑, 시즌은 아직 초반이다. 봄 춘 자 춘란배와 함께 시작된 시즌은 이제 고작 춘란배, 부사통富士通배, 응씨배가 일정의 절반 정도만 진행된 상태이고 삼성배, LG배, 도요타 덴소배는 시작도 하지 않은 상황. 이 달 말이면 LG배가 있고 다음 달엔 또 부사통富士通배 8강, 또 다음 대회.. 축구로 친다면 지금은 리그의 전반기도 아직 끝나지 않은 시점이다.

그런데도 뭔가 많은 일이 일어난 듯 느껴지는... 우리가 축구팬이라면 누가 만약 벌써 베스트 11을 뽑는 작업을 하였다고 했을 때, 틀림없이 그는 성급한 팬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겠지만,

성급한 팬이 될 각오를 하고 몇 개의 감상을 적어보자. 물론 바둑은 축구가 아니니, 베스트11이 아닌 다른 걸 꼽아 보아야겠다.


●가장 치사한 규정의 대회:춘란배○

시즌 개막, 춘란배 출전 명단은 눈을 의심케 하였다. 국가별 출전 定員정원이 8(中):4(韓):5(日) (전기 1-3위 시드자를 합쳐서 중국은 총 11명).

8:4:5 이건 뭐..‘이 뭐병’도 아니고..우쨌거나 인해전술로라도 밀어붙여 보겠다는 심보가  아닌가 너무 심한 거 아닌가 말이다. 그럼 응씨배를 보자. 6:3:3 이 삼국별 참가정원이란다. 치사하기로 오십 보 백 보인데, 어느 쪽이 더 치사한가 살짝 고민이.. 한국보다 일본에게 한 자리 더 준 어이없음죄로 춘란배가 「가장 치사한 규정의 대회」로 선정되었다.

이미 하였는지는 모르지만 차제에 한국기원에서는 이러한 상식 외의 불균형에 대해서 강력한 항의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가장 안돼 보이는 팬들:일본 팬

올해 일본의 성적은 춘란배에서 1회전 1승 4패, 8강 진출자 전무, 자국 주최 부사통富士通에서는 16강전에서 1승 5패 및 8강 진출자 1명, LG배 통합예선 51명 참가하여 예선 통과자 전무였다. 응씨배에서도 일본 기사들은 떨어질 단계에 가면 (예상대로) 다 떨어졌다. 그리하여 8강에 남은 기사 중에 일본과 끈이 닿는 이는 그나마 조치훈 뿐. (타국에서 보면 울며 겨자 먹기로 보이겠지만) 그래도(그래서?) 일본 팬들은 열성으로 조치훈을 응원하였다. 그리하여 일본 팬들이 가장 안돼 보이는 팬들 부문을 수상.

일본 사이트 2ch의 「바둑 국제 기전 통일 스레 part26」은,

“일본 바둑계의 조락을 한탄하면서도, 이따금 이기면 소란을 피우는 스레입니다.”을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가장 통쾌하게 해 준 棋士:이세돌

가끔씩이지만, 그의 앞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사들도 ‘하수’처럼 보인다. 사실 이전에도 간간이 볼 수 있는 장면이긴 하지만 이세돌은 이번 응씨배에서는 특히, 「엄청 불리한 바둑을 온갖 무리수와 꼬시는 수, 꽁수를 동원하여 결국에는 뒤집는」, 상수만의 특권을 만끽(?)하였다. 마치 접바둑의 그것처럼. 그 상대가 중국랭킹 2,3위권의 초일류들이라 팬들은 한층 통쾌하다.

(사실 호요우胡耀宇와 공걸孔杰 이들 둘은, 세계대회는 그렇다 치고 세돌이 그동안 꾸준히 참가해온 중국리그에서 모올래 몰래 세돌에게 매를 맞아 왔다. 호요우胡耀宇 0:2, 공걸孔杰 0:4)

또 하나, 세돌은 김치 없으면 밥을 못 먹고 기름진 음식을 아주 싫어한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에서 두어지는 대국에서 세돌의 성적은, 세돌 표현으로(04년 말 인터뷰) ‘LG배 춘란배 포함해서 아주 멍청하게 졌’단다.

대 중국기사 승률이 또한 그렇다. 세돌의 세계대회 승률을 중국기사가 끌어내리고 있다는 건 비밀 아닌 비밀이다. (필자가 직접 조사한 바 05-06년 대 중국기사 세계대회 전적은 7:8)한 마디로 말해 「중국에서 두어지는 중국기사와의 대결」은 세돌에겐 그야말로 쥐약에 다름 아니다.

옛날 시골에선 돼지고기라든지 기름진 걸 먹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필자뿐만 아니라 세돌도 그랬던 모양인데 명절이라든지 하여 돼지고기를 먹었을 경우 필경 설사를 하고, 이건 짜장면을 처음 먹었을 적에도 마찬가지였다, 이 약점은 유년기를 벗어나 기름진 음식을 자주 접하면서 극복(?)이 되는데,..

순전히 필자의 소설이지만 그래서 그런지 세돌이 죽어라 중국리그에 간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뭐 하러 갔나? 기름진 중국음식 즉, 쥐약 먹으러. 그래 가지고 설사하는 버릇을 기어코 극복하였는지 몰라도 믿거나 말거나 하여튼, 작년에 중국리그 성적도 준수하였고 이킬레스건이던 대 중국기사 전적도 많이 좋아졌다.(07년도 대 중국기사 전승)  

 

가장 안쓰러웠던 기사:공걸孔杰

목진석도 가본 세계대회 결승을 조한승이 못 가본 것도 그렇지만 호요우도 밟아본 결승무대를 공걸이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일은 하나의 얘기거리가 된다. 공걸의 세계대회 최고 성적은 (고작) 3위. 한참 옛날인 2회 춘란배에서 거둔 성적인데, 그게 데뷔전, 당시의 공걸은 그야말로 콩쥐 내지 신데렐라였다. 그러나 그게 다. 그 옛날 함께 삼검객으로 칭해지던 고력古力, 호요우, 공걸.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셋이 나름대로들 이창호를 힘들게 하고 그 중 한 명인 고력은 우승도 하고 호요우도 결승만큼은 가 보았는데..공걸만 유독..명성과 실력은 그대로인데 전혀 세계무대의 결과가 없다. 

공걸이 그렇게 되어야 했던 그 분수령이 된 바둑이 두 판이 있는데 그 한 판이 5회 응씨배 8강전 대 상호常昊 전이요(응씨배가 어떤 대회인가. 공걸은 패감 하나 차이로 그 바둑을 져야 했다.), 또 한 판이 초읽기 연장수를 두다 대마가 사냥당한 2회 도요타 덴소배 4강전 대 세돌 전이었다. 특히 도덴배 판은 그 명암이 얼마나 극적이었나. 그 판 때문에 4년 동안 공걸은 ‘맛이 갔다’,‘국내용’이란 소릴 들어야 했다.

이번 응씨배 8강전에서 또 다시 세돌과 만난 공걸, 이번에는 지난 번 판보다 더 좋은 판을 만들었는데...평소의 침착함은 다 어디로 갔는지 오히려 서두르다 역전을 허용하고 만다. 마지막 장면 상대의 단수(252, 가일수를 강요하는 이런 수는 사실상의 단수이다.)를 외면하고 분노의 자충(253)을 해버리는 공걸,..


*공걸의 자충, 분노의 자충, 이 부분, 그게 그냥 저냥한 헤프닝에 지나지 않았는지, 아니면 정말로 분노의 자충이었는지..그런 게 왜 이렇게 궁금한 건지. 그 날 현장에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여튼 분노의 자충 여부에 대한 긍정, 부정 판단은 각자에게 미루고 각 입장에 하나씩 근거 비슷한 걸 소개해 둔다.

저번 글 「기보에 남은 슬픔」에서도 말하였지만 필자는 기보를 보고 강한 (슬픔의) 냄새를 맡았다. 그래서 추리를 했고 소설을 썼다. 그런데 이번 글을 Tm다 기보를 한 번 더 디비게 되었는데 웬 걸..기보가 그 때와 다르다.(정확히는 T사와 H사 것이 지난 번 생방 때 것 그대로이고, 오로 것이 그것들과 다르다!) 그래서 중국 사이트 것을 디져 보았더니 이건 오로 것과 같다. 어느 것이 제대로 된 기보일까. 아무래도 현지에서 잡아 올린 기보(중국 사이트와 오로 것)가 맞겠지. 그렇다면 대회 당시에 기보를 잡아 한국으로의 전송을 담당하는 이가 지 맘대로 (공배 메우기 국면의 수순을, 정확히는 240수 이후의 것이다.) 수순을 변형시켜서 보내주었다는 얘기인데, 그 변형된 기보가 방송되었다는 얘기다. 필자에겐 좀 야속하지만 실제 수순은 공걸이 (일단) 단수도 제대로 받고 한참 후에야 문제의 자충을 했다. 이건 헤프닝쪽으로 기울게 하는 근거. 

다음으로, 분노의 자충 심증에 응원이 되는, 톰닷컴 「기우논단」- 얘네들도 역시 이런 게 있구나 글도 엄청 많네? - 에 올라온 어느 평론의 마지막 문장이다.

看来孔杰不堪半目负,而选择了更“悲壮”的死法. - 보아하니 공걸은 반목패를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또 다시 悲壮的 死法비장하게 죽어버리는 (방)법을 선택하였다.(엉터리 번역임을 감안하기 바람)

..그렇다는 얘기.


가장 안정적이었던 棋士기사:이창호

부삼엘춘도응. 올해 열리는 6개의 대회 중에 3개가 반환점에 이른 상태이다.(춘란배와 부사통배가 8강, 응씨배가 4강까지 가려진 상태.) 이 3개 대회에 모두 다리를 걸치고 있는 기사는 이창호가 유일하다. 안 그래도 이창호 하면 안정인데 올해는 특히나 안정적이다. 이창호에겐 세돌과의 응씨배 4강전과 고력古力과의 춘란배 8강전이 올해 성적의 1차 고비가 될 듯하다.

(참고로 세 대회 중 두 대회에 살아남은 기사는 세돌,고력,상호,류성劉星 등이다.)


가장 대견스러웠던 기사:최철한

(바둑 말고) 최철한의 본성이 독사가 못 된다는 사실은 이제는 세상이 다 아는 비밀이다. 인생도 그렇고 바둑도 그렇고, 괜찮은 집에서 별로 아쉬운 것 없이 잘 자란 청년이 최철한이 아닐까..인생도 그렇고 바둑도 그렇고 그의 일들은 웬만하면 잘 풀렸다.(이창호를 이긴다는 게 어디 보통 일인가.) 그러니 뭐 죽을 둥 살 둥 할 것까진 없고 그렇다고 열심히 안 한다는 건 아니지만..이런 느낌..

‘크리스마스에 놀지도 못하고 이렇게..’‘응씨배를 성탄선물로 받고 싶다.’응씨배의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상대방의 16년의 한을 아는지 모르는지 최철한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4년 전의 일이다.) - 크리스마스라..잘 봐주면 천연덕스러움이겠지만 또 우리가 曺徐조서를 생각해보면, 아무리 물정을 몰라도 그렇지 하는 생각, 승부에서 지나친 경직도 문제이지만 잘 자란 천연덕스러움도 또한 문제..아무튼 승부는 어렵구나야 -

잘 자란 중국 청년,‘새가슴’상호가 그랬듯이 잘 자란 한국 청년, 순둥이 최철한도 물정 몰라 진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 했다. 여섯 번의 준우승에 질려 끝이 없는 침체에 빠졌으면서도 상호는 응씨배를 준비했고 마침내는 쟁취하였다. 이미 패배 당해버리고서야 중대하게 다가오는 응씨배의, 그 엄청난 무게에 짓눌려 잘 자란 우리의 순둥이 최철한 또한 비슷하게 아득한 침체에 빠졌다. 그래도, 그래서 최철한도 이번 응씨배를 제대로 준비했어야 한다. 준비해 왔으리라 믿는다. 이제 다행히 두 판을 이겨 또 다시 4강에 갔으니 그걸로 부담을 떨친 정도는 되었을 게다. 나머지 준결승과 결승, 마무리를 어떻게 하느냐는,

3년 전에 상호에게 지고서‘이 쓰라림으로 좀 더 독해질거야..’(직후에 최국수가 직접 쓴 글에서 한 말이다.)라고  다짐했던 대로 과연 단련이 되었는지에, 정말로 더 독해졌는지에 달려 있다. 


가장 태평스러웠던 기사:최철한

원래 최고의 잠꾸러기, 대국시 상습 지각자 하면 박영훈이라는데, 이번에는 최철한이었다. 응씨배 8강전에 최는 늦잠을 자는 바람에 지각을 하였다. 다행히 이겨서 별 일 아닌 걸로 넘어갔지, 만약이라도 졌거나 거기다 혹시라도 시간벌점이 문제가 되어서 졌다면 팬들의 원성(4년간의 원성. 무려 4년이다 4년)을 어찌 감당하려구 그랬는지 원, 하여튼 잠꾸러기들은 못 말린다.


가장 절박한 처지의 기사:조한승

꽃미남도 군대는 가야 한다. 이게 한국의 법이다. 그래서 지금 조한승이 가장 절박한 처지의 기사가 되었다.

「갔다 온 군대 또 한 번 가기」는 필자의 악몽 목록 제 1번이다. 꿈에서도 싫은 이 군 입대를 우리의 조한승은  미루고 미뤄 이제는 더 미루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나 보다. 그래서 이번 부사통배가 꽃미남이 병역혜택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대회가 되어버렸다는데 대회 출전을 위해 현해탄을 건너는 조의 심정은 과연 어땠을지.

‘혜택’을 위해선 이제 두 판이 남았다. 


성사된 최고의 대결:空席공석

춘란배에선 창호-고력 전(8강)이, 부사통배에선 세돌-고력 전(8강)이, 응씨배에선 세돌-창호전(4강)이 성사되었다. 다 빅카드로서 흥미진진한 건 인정하는데 하나 불만인 건 이 사람들이 왜들 이렇게 성질들이 급할까 하는 점이다. 누가 뒤에서 쫓아오나?

세돌과 창호의 결승대결이 03년, (참 오래도 되었다.) 나머지 둘, 세돌-고력, 창호-고력 간에 결승 대결은 아직도(!) 없다.

올해 벌어질 6개 대회 중 셋은 이제 틀렸고(어 그렇지도 않나?), 나머지 세 대회에서 세기의 대결이 성사되기를 바래보자.

   

가장 엽기적인 중계:원성진 vs 가브리엘 아마7단 戰(춘란)-흑백이 바뀐 방송사고

몇 년 전에 일본의 부사통배에서 어느 일본의 프로가 푸른 눈의 아마추어 기사(아마 남미대표였을 게다.)에게 져서 웃음거리가 된 적이 있었던가. 이번에 원성진이 그런 웃음거리가 되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아마추어 고수급이 그럴듯하게 둔다면 기보만 보고는 프로의 눈으로도 프로 아마 구분이 쉽지 않다는 걸 안 게 소득이라고 해야 되나..하긴 ‘자자 이거 사활문제야’ 그러고서 주어지면 해답을 찾아내겠지만 실전에서 쉭 흘러가는 순간에선 답을 놓치기 일쑤인 게 우리네 수읽기 아니던가. 고수이든 하수이든.

자 지금 누가 원성진 프로이고 누가 가브리엘일까요 처럼 문제식으로 출제되었으면 해설자(춘란배의 바둑티비 중계진을 말한다. 김영삼과 김효정?한해원인가..그랬다.)들도 맞추었겠지만 전송기보를 갖고 온 피디가 흑이 누구요 백이 누구요 하는데 그대로 믿어야지 재간이 있겠나.

해설자 둘이 내내 하던 소리가 그랬다. 아하 가브리엘 잘 두는 군요...네에 잘 둡니다아.. 왜 이렇게 잘 두죠? 원성진, 큰일 났습니다아. 가브리엘 가브리엘 오 가브리엘...

그래도 나중에 착오가 밝혀진 다음에 의례적인 사과 한 마디 시키지 않았다는 건 좀 심했다. 제작자 측에 하는 말이다.


-연말이면 위 많은 것들이 바뀌어져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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