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바둑저작권-저2-바둑4

090622 바둑은 단지 '아름다운 꽃'인가 1

***
당신이 오랜 세월에 걸쳐 「세상에 다시 없는 진귀하고 아름다운 꽃」을 키워내었다 고 치자. 그리하여 당신이 이 꽃을 가지고 돈을 좀 벌고 싶다고 치자. 말하자면 여기서, 꽃을 이용하여 돈을 버는 행위는 당신의 재산권, 재산적 권리이다.

당신은 사람들에게 관람을 시킨다. 관람을 시키되 돈을 내는 사람만 입장하도록 한다. 당신은 관람객의 출입을 통제함으로써 당신의 재산적 권리를 관철시킨다. 여기까지는 간단하다.


당신은 꽃을 촬영하여 그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서 하는 영리행위도 하고 싶어질 것이다. 꽃의 사진을 돈을 내는 사람만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젠 문제가 좀 복잡해진다. 사진이 일단 인터넷에 올라가면, 기술적으로 누구나 복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꽃 사진을 복사한 다른 사람이 당신처럼 영리행위를 한다 했을 때, 이제는 현실공간적/물리적 출입을 통제하는 식으로는 당신의 이익 관철이 불가능해진다. 이 때 당신은 무엇을 수단으로 하여 재산적 권리를 지킬 것인가?


저작권이다. 당신은 당신이 올린 「세상에 다시 없는 진귀하고 아름다운 꽃의 사진」의 저작권자로서 다른 사람들이 당신과 같은 영리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한다. 이렇게 저작권적 통제에 의하여 당신의 권리는 보호된다.


이런 식으로 법은 당신의 권익보호를 위한 수단이 된다. 법은 이런 식으로 기능한다. 


그런데 독한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어떤 사람이냐 하면 당신의 「세상에 다시 없는 진귀하고 아름다운 꽃」을 몰래(;합법적으로) 찍어가는 사람이다. 그는 인공위성으로 당신의 「세상에 다시 없는 진귀하고 아름다운 꽃」이 햇볕을 쬐는 틈을 타 사진촬영을 해버렸다. (인공위성이 돈이 얼마나 드니 마니, 밖에서 안 보이게 햇볕 쬘 수도 있니 마니, 이런 건 접어두자. 우린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상황에 집중하면 되니까. 분명한 건 몰래(;합법적으로) 촬영하기가 불가능하지는 않기 때문에.)


그는 당신의 집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당신이 인터넷에 공개한 사진을 복사하지도 않았다. 그는 과정의 불법 없이 당신이 그토록 아끼는「세상에 다시 없는 진귀하고 아름다운 꽃」사진을 갖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권익보호를 위한 수단(;법)중 기존의 것이 무력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자 「세상에 다시 없는 진귀하고 아름다운 꽃」을 당신이 키웠다. 그런데 저 이상하고 독한 녀석이 나의 「세상에 다시 없는 진귀하고 아름다운 꽃 사진」을 법적 저촉이 없이 손에 넣었다. 나아가 그것으로 돈을 벌려 한다. 당신은 이제 막을 수 있을까? 무언가 법적 수단을 강구해서 말이다.


‘법 자체를 고찰해봐, 근거가 있다면 막을 수 있는 거고 흠.., 근거가 없으니(내가 알기로는 없다. 내 꽃의 사진임을 들어 남의 사진 이용을 막는 그러한 법은 없다. 어떻게 해도 그 사진은 ‘내 꽃의 사진’일 뿐이지 ‘내 사진’은 아니니까. 초상권이 나중에 나오겠지만 꽃에는 초상권이 없으니까. 당신은 마치 미술관 직원들이 그러하듯이, 그 꽃을 촬영하지 못하도록 애쓰는 수밖에 없다. 미술관은 다른 수단이라도 있지만 당신은 맨 위에 예로 든 두 가지 수단밖에 없다.

또 부정경쟁 방지나 영업비밀 보호를 들이댈 여지가 없지는 않지만 주인이 꽃을 영업상 목적으로 키운 것이 아닌 경우 영업비밀 법리가 무력화, 또는 영업비밀이란 정보이어야 하는데 꽃은 정보가 아닌 사물이므로 무력화된다. 부정경쟁 방지 법리, 어느 정도라도 맞아 떨어지는 조항이 없을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꽃 주인이 경쟁행위 자체에 나서지 않는 경우에는 100% 무력화된다. 우리 논의 상 꽃 주인에게 필요한 법리는 ‘나의 행위에 무관하게 그 어떤 듣보잡도 어쨌거나 나의 꽃으로 덕을 보지 못하도록 규제해주는 법리’이다.
마지막으로, 민법 741조 부당이득 법리를 적용할 수 있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있을 수 있다' 이 말은, 꽃 주인은 그렇다 치고 바둑인에게는 가혹하다. 간단히 말해, 만약에 민법 741조가 바둑꾼에게 이미 충분한 무기가 되고 있다면 이 글 자체가 이미 쓸 데 없는 글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이 글을 열심히 쓰고 있지 않은가!
) 막을 수 없네 뭐.’ 라고 대답해버리면 간단은 하다. 그치만 그것만으로는 뒤끝이 개운치 않다. (여러분은 그렇지 않은가?) 생각해볼 문제가 남는 것이다. 법을 둔 고찰뿐만 아니라 세상과 사물을 어떻게 볼 것이냐의 문제가 남는다.


법이란 사후 대처이고 수단이다. 무슨 말이냐면 법 이전에 당위의 문제가 있고 이 당위를 만족시키는 수단이 법이라, 이것이 나의 소박한 생각이다. 따라서 우리가 무시로 접하는 어려운 문제일수록 문제의 법적 해석으로 성급히 들어가려 들기보다 법 이전에 일반인의 상식/도덕으로 답을 (1차) 구해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법은 이런 식으로 사전에 구해둔 답을 합리화하는 수단(= 2차)이 된다. 그래야 한다.


1차, 일반적 도덕관념과 근대 시민적 상식으로 생각해보자. 남이 키운 「세상에 다시 없는 진귀하고 아름다운 꽃」을 인공위성으로 촬영하여 그 사진으로 덕을 보는 행위는 과연 합당한 행위인가? 공평한가? 



***

지금까지 한 얘기는 바둑저작권을 생각하던 와중에 나온 착상들이다. 바둑이란 것을 지금까지 얘기하던 「세상에 다시 없는 진귀하고 아름다운 꽃」에 해당한다 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제 거추장스러운「세상에 다시 없는 진귀한」은 빼고 얘기하자.)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기를,

아무런 보탬도 기여도 없는 이는 덕을 보지 못하도록 막는 법적 규제가 바둑이란 것을 위해서는 없다,

다시 말해 (내가 그들의 주장을 해석하자면)
바둑은 단지 「아름다운 꽃」에 해당할 뿐이다 라고 한다.


그러냐, 그렇지 않으냐, 과연 어떠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바로 우리가 고민할 문제이다. (다음 편에서)






蛇足 :말 그대로 사족이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각자에게 달렸다.

나의 생각은 이렇다. 일단 남이 키운 「세상에 다시 없는 진귀하고 아름다운 꽃」을 아무런 보탬도 기여도 없는 내가 무단으로 덕을 보는 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보기에 합당한 일은 못 된다.


그런데 상대에게는 이렇게 말할 여지는 있다.

‘당신이 키운 건 맞소. 당신이 씨를 구해 싹을 틔게 하고 물을 주고 햇볕을 쬐게 하였소. 그런데 그 씨는 누가 만든 것이며 당신이 준 물은 어디에서 온 것이며 꽃이 숨 쉬게 하는 공기는 누구의 것이며 햇볕은 누구의 것이오? 「세상에 다시 없는 진귀하고 아름다운 꽃」이 전적으로 당신의 것이오? 근본적으로 조물주와 당신의 공으로 꽃이 있게 되지 않았소? 당신의 공은 일부에 지나지 않소. 그리고 그 공은 당신은 이미 충분히 받고 있소. 나머지 공은 나도 받을 자격이 있소. 당신이 가장 많이 받아야 하지만 나도 조금은 받을 자격이 있단 말이오. 나는 법을 어긴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렇다 해도 수단(법)이 따라가지 못해서일 뿐이다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아!‘일반적 도덕관념과 근대 시민적 상식 상 정당’하구나아.. 생각되어지지는 않는다.

아까 ‘세상과 사물을 어떻게 볼 것이냐’거창하게 문제제기는 하였지만 결국 결론은 이렇다. 에구, 세상에는 정리가 쉽지 않는 문제가 많구나..특히 법이란 놈이 그렇구나..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