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혼’에 손색없는 조치훈의 노익장 // 누리꾼은 聶 棋聖을 조롱한다
-譯註-
투혼 :조치훈의 대표하는 말, 조치훈의 별명
노익장 :原文은 老驥伏櫪(노기복력) -늙은 말이 마구간에 엎드려 있어도 여전히 천리를 달리고 싶어한다 -천리마驥(기), 말구유櫪(력)
출처 :金陵석간(금릉은 중국 南京의 옛 이름), 2010.04.02 Tom.com으로 轉載(☜)
얼마 전 막을 내린 춘란배 첫째 마당에서 이미 54살의 일본 棋士 조치훈이 富士通(후지쯔)배 우승자 강동윤과 삼성배 준우승자 邱峻(구준)을 연파하고 8강에 진입하여, 사람들을 敬服(경복)하게 하였다. 동시에 적지 않은 중국 바둑팬들마저도 그의 노익장(老骥伏枥)에 감탄하였다.
이미 知天命(지천명)을 넘겼음에도 불구, 조치훈은 여전히 일선 승부 현장에서 분투중이다. 확실히, ‘투혼’이란 그의 별명에 전혀 손색이 없다.
누리꾼이 聶기성을 조롱하다
조치훈과 동시대의 중국 棋士들은 이제 거의 세계대회에 출장하기 어려운 현실은, 일면으로는 일본 바둑 후배들의 역량부족의 반영이고 또 다른 일면으로는 중국의 老 기사들이 일단 功을 세워 이름을 떨치고 나면 쉬이 승부의 끈을 놓아버리는 현상 때문이기도 하다.
조치훈이 춘란배 8강에 진출 후, 국내 유명 바둑논단에서 한 누리꾼이 「현재의 조치훈이 섭위평을 몇점이나 접을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에 2점쯤이지 않을까」란 게시물을 올려 많은 누리꾼의 찬동을 얻었다. 두점은, 보통의 상황이라면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에 해당한다. 금년 제1회 「중국 프로아마 대항전」(등급 점수에 의한 전국 순위 1~6위 아마추어와 국내 일선 프로 6인 간의 대결)에서는 ‘프로가 2점 접힐 수준이군’ 할만한 판이 몇 판 있었다.
(譯註 ;‘국내 유명 사이트 바둑논단’이라 함은 역시나, Tom.com 바둑논단이었으며 바로 이 글(☜)이다. Tom 바둑논단에 하루 올라오는 글은, 예를 들어 4월3일 하루에만도 약 80개.
글들은, 대략 두 가지 유형으로 大別(대별)되는데, 하나는 '일본 2ch 방식’-향불을 피워 올려 귀신을 부르는 유형, 즉 관심사에 대해 주인이 한마디 늘어놓고 한마디씩 거들어 놀아줄 답변자를 불러 모으는 유형- 의 글이요, 또 하나는 자기가 하고픈 말을 길게 또는 짧게 쓰는 글인 논설 형식의 글이다,
휙휙 지나가는 각 글들의 조회수는 천차만별인데, 적게는 100 미만에서 많게는 2,3萬에 이른다. 本 記事가 소개하는 해당 글(☜)은 2ch 방식의 글로서, 조회수는 3千을 약간 상회하였으며, 달린 꼬리글은 총 31개였다. 꼬리글의 반응으로는, 이 어이없는 발제에 맞장구치며 노는 경우도 있고 프로 바둑 수준에 대한 몰이해를 겨냥한 진지한 힐난/반박도 있었으며, 찬동 일색이라 할 수는 없다.
한편, 記事의 傳言(전언)과 달리 실제 게시물에는 게시자가 생각하는 두 사람 간 차이가 2점이 아닌 3~4점으로 기재된 상태였다.
해당 글을 찾을 겸, 검색어 ‘조치훈’의 상황파악도 해볼 겸 사이트 內 자체검색을 해보았다. 목록 여러 페이지 중 첫 페이지 부분이다. 제일 아래가 해당 글, 끝에 '3-4개子'가 보인다.
記事에 나오는 프로아마 대항전은 중국의 특정 인터넷 바둑망(‘棋魂(기혼)’)이 마련, 개최한 단발성 대회로서, ‘프로와 아마추어 간의 실력차 규명’을 旗幟(기치)로 내걸고 初~4단의 프로(無名 프로 일색) 7인 vs. 등급 점수 순위에 의해 뽑힌 전국 7대 아마추어 고수를 붙인 이색 대결이다. 7:7, 총 호선으로 각 한 판 씩 두어 다승으로 일개 마당의 승부를 가리는데, 전체 세 마당(3월에 두 마당, 4월 4일 -오늘이네- 에 마지막 마당)을 두어 이 중 두 마당을 이기면 전체 승리를 가져가는 방식이다. 이채로운 사항은 아마추어 출전자 중에 작년에 뼈나이 검사에 걸려 입단대회 자격을 상실하였던 白寶祥(백보상)도 끼어있었다.
이미 두어진 두 개의 마당에서의 결과는, 첫째 마당 아마 측의 5:2 승리, 두 번째 마당 프로 측의 6:1 승리였다.
被(피) 번역 記事에서 ‘찬동이 매우 많았다’란 표현은 ‘반박 또한 많았다’ 가 곁들여져야 마땅하며, 6人은 7인의 오류였으며, ‘프로가 2점 접힐 수준이다 할 판이 몇 판 있었다’란 표현은 만약 譯者의 번역 잘못이 아니라면, 記者의 의도적 誇張(과장) 또는 무지에 의한 과장이란 생각이다. -譯註 끝)
주의할 사항은 조치훈과 섭위평은 동 시대 棋士로서 섭위평은 조치훈보다 고작 4살 많다는 사실이다. 두 사람의 전성기 당시의 수준은 당연히 막상막하로서 서로 승과 패를 교환하였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바둑 童(동) 조치훈은 실력이 여전한 반면에 섭위평의 실력은 예전에 비해 크게 손색이 있다.
敬服(경복) 또 敬服
바둑계에서 조치훈은 棋士들이 가장 탄복하는 선생이다. 조치훈은 6살 때 숙부의 손에 이끌려 일본으로 건너가서 木谷實(기타니 미노루) 문하에 들어갔다. 한국인으로서 그는 바둑 강국 일본에서 71차례의 우승을 하였고 일본 棋聖전 최다 우승자이며, 이외 각종 기록을 양산하였다.
아주 어릴 적부터 조치훈은 바둑에의 집념을 표출하였다. 어린 조치훈이 바둑을 배우던 당시 그는 자신보다 큰 일본 애들로부터, ‘이불을 뒤집어씌워 정신없게 만들어놓고 마구잡이로 때리는 짓’을 자주 당하곤 하였다. 만약 그것이 바둑이 아니었다면 그는 더 계속해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즉, 바둑판 앞에만 가면 그는 마치 入定(입정 :불교도의 수행 방법 중 하나로 눈을 감은 채 正坐하여 심신을 다스리는 것을 가리킴-譯註) 老僧(노승)과 같아, 일단 앉으면 하루 온종일이었다. 때문에 11살에 입단할 수 있었고, 25살에 九단이 되었으며 이는 일본기원 최연소 九단 기록이다.
이번 춘란배에서 54세의 조치훈은 참가 棋士중 최고령이었다. 헌데 중국 기사 중 제일 연장자인 常昊(상호)가 34살, 最연소자인 古靈益(고령익)이 18살이었다. 때문에 그의 8강 진입은 사람들을 탄복케 한다. 조치훈과 동시대 기사들은 이미 현역에서 보기 어려워졌는데 반해, 그는 현재도 매일 바둑에 10시간 이상을 투자한다고 한다.
춘란배 개막식에서 많은 棋士들이 조치훈에게 박수를 올렸는데, 조치훈은 답하기를,
“저는 이미 늙었습니다. 중국 棋士들은 다들 젊습니다. 이 늙다리가 上席(상석)에 서 있으려니 부끄러운 마음입니다. 그런데 중국인들은 연장자를 존중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저는 즐거운 마음으로 춘란배에 참가하였습니다.”
목숨을 걸고 두는 趙선생
목숨을 걸고 둔다, 조치훈의 바둑 생애 좌우명이다. 1986년 일본 棋聖전 도전 7번기 직전 조치훈은 교통사고를 당한다. 사람들은 조치훈이 기권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의사가 말림에 불구하고 조치훈은 對局(대국)을 두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에 小林光一(고바야시 고이치)에게 타이틀은 내주었지만 그가 보여준 정신력은 ‘투혼’이라는 칭호를 가져다주었다. 조치훈은 당시에 말하기를, “무슨 일이 생기든 간에 나는 도전기를 두겠다.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포기는 바둑판 앞에서 죽느니만 못하다. 나는 두뇌와 두 눈이 멀쩡하고 두 팔이 있다. 神(신)께서 나에게 바둑을 둘 기본조건은 남겨주셨다.”
조치훈의 바둑 탐닉은 偏執狂(편집광)에 가깝다. 그의 바둑 둘 때면 세 가지 습관이 있다. 하나, 수읽기 할 때면 수건을 잘근잘근 씹는다. 둘, 머리카락을 쥐어뜯는다. 셋, 성냥개비를 분지른다. 때문에 조치훈의 두발은 줄곧 깨끗하지 못하며 전혀 이발이라고는 한 적이 없어 보인다. 이번 춘란배에서도 趙선생은 마찬가지였다. 만약 그가 유명하지 않았다면 그는 심지어 保安(보안) 요원들에게 시합장 입장을 제지당했을지도 모른다.
사진 :讀賣(요미우리)신문
조치훈이 말한 적이 있는 바, 살아 있는 동안 일본에서 우승 100개를 달성하고 싶다고, 현재 그의 우승 횟수는 71개인데, 비록 나이가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 말들 하긴 하지만 그의 바둑을 향한 열정이라면 그 누가 ‘투혼’이 기적을 창조하지 못한다 말하겠는가?
간략 소개
성명 :趙治勳
국적 :한국
생일 :1956.06.20
소속 :일본기원
단위 :九단
우승횟수 :71회(세계대회 2회)
일본기원 타이틀 보유 횟수
棋聖 :8회
名人 :9회
本因坊 12회
十段 6회
天元 2회
王座 3회
碁聖 2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