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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펌譯] 박정환 90년대生 최초 우승 (謝銳, Blog) -110815


박정환
90년대최초 우승 / 독특한 기질이 미래 王者

 

출처 :(사예Blog 2011.08.15

  
 

記者사예 보도 바둑계는 바야흐로 90년대生 棋士들이 문턱을 넘어 쏟아져 나오려 한다. 박정환, 周睿羊(주예양), 拕嘉憙(타가희), 江維杰(강유걸) 등 어린 高手들이 바로 그들, 814, 18세의 박정환이 제일 먼저 주머니를 뚫고 나온 송곳이 되어 富士通(후지쯔)를 들어 올림으로써 90년대중에 세계대회 최초 우승자가 되었다.

바둑 세계대회 최연소 우승 기록은 여전히 이창호가 보유 중이다. 1992년 열여섯 살의 이창호는 동양증권배 결승에서 임해봉 단을 3:2로 이겨 세계대회 첫 우승컵을 안았다. 열여덟의 박정환은 이창호의 최연소 우승 기록은 깨지 못했지만, 두 번째로 어린 우승자 기록 보유자가 되었다. 2002년에 이세돌이 부사통에서 세계대회 첫 우승을 하였는데 당시 그는 열아홉이었다. (박정환 이전에 2위 기록은 박영훈으로 알고 있음. 이세돌은 3. 아마 사예 기자의 실수인 듯. 결국 박정환은 박영훈의 기록을 제치고 2위로. 박영훈 3, 이세돌 4. ;譯註)

박정환은 열여섯 살부터 한국바둑의 미래의 별로 간주되었다. 그해 그는 한국 십단전에서 연전연승하며 이변의 결승 진출을 하였고, 결승에서 상대를 격파, 우승이란 기적을 연출했다. 다음해 그는 같은 대회에서 또 결승에 올랐는데, 이번에 이긴 상대는 이만저만한 상대가 아닌 고로 바둑계가 깜짝 놀랐다. 그의 상대는 이창호였다.

박정환의 바둑 학습 경력은 마치 깨끗한 백지처럼, 무슨 우여곡절이며 무슨 감동적 일화며 그런 것이 없다. 어린 시절 바둑을 접하자마자 마치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일직선으로, 바둑과의 연분은 그때부터 그의 一生이 되었다. 말끔하며 얌전한 그, 마치 내향적이거나 심지어 여자애 분위기의 대학생 같다. 그의 棋才가 다른 90년대生 高手와 별다른 차이는 없지만, 그가 일찍이 남다른 가능성을 인정받고 지금에 또 현 시점 최연소 세계대회 우승자가 된 까닭은, 역시나 그의 독특한 기질에 있다.

2009년, 삼성배가 2패탈락제를 도입한다. 박정환은 두 살 많은 陳耀燁(진요엽)과 같은 조가 되었다(陳이 89년生이니 네 살 차이가 맞다 ;譯註). 첫판 대결에서 진요엽이 가볍게 승리, 이후 둘은 각기 일패() 일승()을 하였고, 결국 세 번째 판에서 또 만나 16강 진출권을 다투게 되었다. 결과 진요엽이 또다시 가볍게 승리하며 16강 진출, 진요엽에게 남겨진 박정환의 인상은, 有名無實(유명무실).

2009년 말, 박정환은 한국 天元전에서 또 우승을 한다. 그리고 20107, 中韓 天元3번기는 그와 진요엽 간에 펼쳐졌다. 첫판, 진요엽은 열세 국면에서 역전 불계승한다. 박정환 통산 4연승, 진요엽의 심리적 우세는 이처럼 컸다. 그리고 박정환 입장으로선 연속 두 판을 잡아야만 통합天元전을 이길 수 있는데 그게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일까. 그런데...

둘째 판에서 진요엽은 중반에 먼저 우세를 잡는다. 허나 우세한 바둑 이기기가 어려운 법, 이후 은 부서질까 깨어질까 조심에 조심, 한 발 한 발 양보한다. 드디어 局面이 역전되는 순간이 곧, 더 이상 어떻게 해볼 데가 없어져버린 판국, 박정환은 가장 괴로웠고 어려웠던 한판을 이겨간다. 3국은 2국의 복사판이었다. 박정환은 또 한 번 불리한 형세에서 逆風(역풍)을 일으켰고, 그게 통했다. 한집반 승리.

 판맛을 보기 전에 네 판을 모두 패배했던 상대, 게다가 패배 불허 승리만이 허락되는 역경 하에서 연속 두 판 만회, 박정환은 이 관문을 뚫어냈다. 의 소년적 심성은 이러한 生死 승부를 겪으며 냉정하고 강인하게 단련되었다. 그해 말 은 아시안게임에서 남자단체 및 혼합복식에서 금메달을 땄고, 금년 초에는 中韓대항전에 한국팀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그리고 지금에 부사통를 우승하였으니, 모든 것이 中韓 天元대항전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밖에.

이번 부사통결승에 짓쳐 들어간 棋士 둘은 모두 소문난 棋痴(바둑치), 그들의 세계엔 오로지 바둑돌만 존재한다. 박정환은 낮에는 시합과 훈련에 바쁘고, 밤에는 또 인터넷에 접속해 미친 듯이 단련한다. 그의 이름은 인터넷에 널리 퍼졌는데, 새파도(新浪:신랑) 및 바둑성(弈城:혁성) 양대 對局(대국) 사이트에 모두 그 쩌렁쩌렁한 이름이 널리 알려진 id를 가지고 있으며, 그 이름은 대국실에서 확실한 흥행 보증수표이다. 중국 측 젊은 高手들은 거의 모두 그와 인터넷 대국을 한 적 있으며, 주예양은 그와 무수히 大戰을 벌였으며, 한 번은 수치와 분노로 id를 내버린 적도 있다. 다만 지금에, 박정환은 여전히 바지런히 인터넷 대국을 즐기고 있으되 주예양은 이제 그런 흥미를 잃은 듯하다.

***‘혁성이란 사이트는 (아마도) 다름 아닌 타이젬 중국 제휴, 하튼 我不卡가 바로 박정환의 id이다. 아불카가 타이젬에서 두면 중국에선 혁성에서 관전할 수 있는 듯. 지금 당장 타이젬에 'idontca1'이란 id를 검색해 볼 것. 당신의 모든 의문이 풀린다. idontca1란 물론 I don't calculate. <==이 문장의 깜찍한 축약. idontca1을 중국 사람들은 我不卡로 음/의역했다. 의미상 我不算이 맞지만 발음도 맞추다 보니까... 현재 글의 필자인 사예 기자는 주간체육계(體壇周報) 소속인데, 거기에 我不卡를 다루는 記事가  나왔다. 내용은 물론 我不卡와 주예양 등과의 대결 묘사이다. '외톨이'는 박정환이다.

이창호 같은 순수한 집착, 이세돌 같은 냉정 고독함, 일상의 박정환은 순진하며 부끄럼에 얼굴 붉히는 소년이지만, 그 눈빛은 물빛 같이 안정되고 고요하고 맑다. 헌데 바둑판 앞에 앉으면 그는 곧 老僧入定(노승입정), 외부 일을 완전히 잊어버린다. 바둑이 격렬한 곳에 다다를 때면 이따금 머리를 들어 一瞥(일별), 銳氣(예기)와 깨끗한 번뜩임으로 충만, 이 순간의 박정환에게 승부 말고는 일체가 사라진다.

바둑계에서 성취를 이룬 高手, 천부적 棋才 말고도, 性情(성정)에서 또한 보통 사람과 다르다. 박정환은 인터넷 대국을 할 때면 매 판에 걸핏하면 몇 십 억 사어버머니를 배팅한다. 인민폐로 환산하면 만 원 정도, 어린 나이에 호방한 승부 기질이 그 낭창낭창한 외모와는 판이하니, 승부에서의 승리가 그 어찌 우연일까?

편집인 :月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