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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저작권-저2-바둑4

050216 기국은 저작물인가


바둑/본질,저작권(1)-왕적신(王積薪)의 고사


는 당나라 현종 시절 기대조(棋待詔)를 해묵던 왕적신이란 자가 있었는데...

난을 피해 어찌어찌 혼자서 길을 잃고 헤매다 깊은 산속 시어미와 며느리만 사는 오두막에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되어...이윽고 불꺼진 깊은 밤인데,


"우리 잠도 안 오는데 바둑 한 수 할까?“ ”예, 어머니"

기대조, 궁중표 백수생활이 몸에 배어 역시 잠이 안 오던 왕적신은 두런두런 이상한 소리에 벽에 귀를 바짝 들이대었다.

"동의 5, 남의 9에 두었습니다.“ ”동의 5, 북의 8에 놓았다." 

 

그래도 한 바둑 하는 왕적신, 눈은 똥그래~해가꼬 머리속으로 억지로 놓아 보니 재미가 있는지라  더욱 귀가 쫑긋해지는데.. 

 

"그러면 서의 9, 남의 10으로 하지"

......................그러다가 36수에 이르자

시어머니가 "자 그러면 내가 이겼지"하니,

며느리가 "예, 그렇습니다."라고 말했다.

왕적신, “...우쒸, 머하자는겨? 시방"......


날이 밝자 왕적신은 시어머니에게 정중하게 바둑 지도를 부탁했다.

몇 마디 묻던 시어머니 왈,

“이 자가 보통의 기술은 배워가겠구나”.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시켜 공(攻),수(守),살(殺),탈(脫),구(救),웅(?),방(防),거(去)의 8가지 기술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고 보니 오두막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이후 속세에 왕적신의 바둑실력에 견줄 상대는 없었으며, 그 유명한 위기 십결을 만들기도 하며 영화를 누리며 잘 살다가....

(여기까지는  http://www.geojejc.or.kr/zboard/view.php?id=jau&no=246 를 참고하여 적당히 윤색한 것이고 아래부터는 우격다짐으로 개발 새발 쓴 것임;필자 註)


문득 세상사 모두 권태로와져서 엉덩이 간질간질한 자극을 찾던 중 꿈에서 21세기 조선 땅에 바둑부처가 나타났다는 소리를 듣고 “이래 뵈도 내가 신선에게 배운 솜씨인데....크흠!”하고 타임머신을 타고 와서는

“창호! 너 돌도르 부처? 나~~ 신선! 뛰바.”

이러고선 돌부처고 조․서고 쎈돌․구리․콩쥐고 머고 다 깨부셔 버렸다.-_-

신선에게 배운 솜씨니 오죽할까? 아니 어쩌면 그도 이미 신선이 되어 버렸던 거이다.


이 와중에 신과 인간과의 치수가 선에8집이라는  서봉수 아자씨의 주장이 옳은 것으로 드러났대나 어쨌대나. 근데 ‘돌부처’ 만은 선에7집이었다나 어쨌대나...


어쨌든 왕적신이

이들 ‘선에 7~8집’ 뭇 ‘하수’들을 앞에 놓고 그날 그 시어미와 며느리의 바둑을 바둑티비 명국탐방 하듯이 “며느리가 던진 이유는 37수가 어찌 되고...그 전에 어떻고 여차저차 뛰바뛰바 해설하여 주었는데....

이들 수강생들 수준도 보통이 아니라 그 때 그 오두막에서 맨치로 그냥 또 “제1착은 동의 5, 남의 9,제2착은 동의 5, 북의 8 ..... 몇 착은 서의 9, 남의 10 이런 식으로 진행을 하네?...


자. 왕적신은 그 신선 시어미 며느리에게 저작료라는 걸 치러야 할까? 입 닦고 말어도 좋을까?




바둑/본질,저작권(2)-棋局은 저작물인가?

1.논의의 시작에 부쳐-‘기보’는 우상이다

2.바둑과 악곡의 類比(유비:유사하게 견줌)-바둑의 본질,복기식 검토하기

3.棋局(기국)은 저작물인가?

4.끝내기

-棋局(기국)의 저작권은 누구에게?

-왜 보상하는가?

-신수,신형,신정석은 돈 주고 써야 하나?

-매직 존슨의 훅슛

-끝-


1.논의의 시작에 부쳐-‘기보’는 우상이다

[답변] 바둑기보에관한 저작권은 누구에게?
연구실  2002-07-18  master@copyright.or.kr 

조회수 : 21 

법적 보호대상이 아닌 것은 누구나 이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저작권법의 보호대상은 저작물입니다. 그러나 바둑기보 자체는 저작물로 보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 경향이라고 보여집니다(바둑기보의 저작물성 여부에 관한 국내판례는 아직 생산되지 않았습니다). 주의할 것은 바둑기보를 해설한 것은 저작물이라고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저작권은 그 저작물을 창작한 저작자가 원시적 귀속주체입니다만, 이전 등을 통하여 다른 사람이 저작권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여부는 개별적으로 알아보아야 합니다.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 연구실

● 본 답변은 우리 위원회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이 문답이 필자에게 경악과 고심을 주었다. 기보가 저작물이 아니라? 기보가 저작물이 아니라? 황당.... 그런데 명색이 大!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 연구실의 답! 어째서 저런 답변이 나왔을까?)

필자의 결론부터 말하자. 올바른 인식은 올바른 명칭에서 주어진다는 정명론(正名論)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기보는 저작물인가?]는 애초 출발부터 틀려먹었다.  애초 명칭이 잘못되었다. 지금 저작물성이 문제되고 있는 대상은 ‘기보(棋譜)라 불리어서는 아니 된다. 왜냐? 우리는 ’음악을 창작한다‘ 고들 말하지 ’악보를 창작한다‘ 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태연히 ’기보를 창작한다‘고 말하는가?


저작물이라 함은 인간의 정신활동에 의한 소산물인 어떤 관념물을 말하는 것이지 그 관념의 표현매개체에 불과한 유형물이 아니다. 예를 들어 소설의 경우에 원고!, 악곡의 경우 악보!,무용의 경우 무보(舞譜)!, 이들 자체는 애초부터 저작물성을 논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注:악보를 도형이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물론 저작물성을 논할 여지가 있다.도형은 당연히 관념물이니까. 다만 도형으로서의 악보는 여기서의 논의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스토리,악곡,안무 등의 (유형물이 아닌 무형인) 관념물을 두고 저작물성을 논하는 것이요 저작물인 것이다.(이런 원리는 저작권 뿐만 아니라 이를 포함하여 특허니 상표니 하는 모든 지적재산권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그래서 지적재산권=무체!재산권이다. 지재권의 대상은 무체물.)

바둑의 경우도 마찬가지. 기보 자체는 하등 저작물성을 논의할 가치가 없다. 우리가 논의해야 할 대상은 기보라는 유형물이 아니라‘한 판의 바둑’이라는 관념(물)이다. 애초 이를 두고 논의하려 하였으나 불행하게도 이를 ‘기보’라 이름하여 버린 바람에 원래의 대상을 몰각한 채 엉뚱한 대상(기록 내지 기록지로서의 기보)을 들고 씨름하는 격이 된 것이다.


물론 상당수가 ‘기보’를 ‘한 판의 바둑’이라는 정신적 창작물의 의미로 제대로 인식하고 사용하기도 한다. 어쨌든 논의의 대상을 직시하고 있기에 그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훨씬 다수가 ‘기보’를 유형물인 ‘기록지’로 인식하거나, 지(紙)까지는 아니더라도 ‘단순한 기록‘이라고들 하면서 ’한 판의 바둑‘이라는 정작 필요한 논의대상을 놓쳐버리고 있다. 심지어는 동일한 글에서 어떤 경우는 정신적 창작물로, 어떤 경우는 기록지로 인식하는 경우도 보았다.

이런 경우 ’기보‘는 그야말로 우상에 지나지 않는다. 시장의 우상!(:언어에 의하여 기만당하기 쉬운 우리의 경향을 이르는 말. 베이컨이 말하는 인간이 사로잡히기 쉬운 4개의 우상 중 하나.)


위에서 보았지만 저작권법 내에서는 이러한 우를 경계하여 그 어떤 저작물을 ‘악곡’(또는 음곡)이라 칭하지 절대로 악보라 하여 혼용하지 않는다는 의식이 정립되어 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우리는 지금 기보란 용어를 쓸 것인가?

강조하건대 우리가 (저작물성 여부를) 문제로 삼고 있는 대상은 ‘한 판의 바둑’이다. 그것을 기록한 기록지도 아니요 그것의 기록도 아닌, 한 판의 바둑 그 자체다.


고심 끝에 필자는 이를 ‘기국(棋局)’이라 이름하였다.(이런 이름을 선택한 연유는 차차 나올 일이다)우선은 이 글의 제목을 상기하는 정도만 하자.

棋局은 저작물인가?


서두의 저조심위 연구실의 답변,

바둑기보 자체는 저작물로 보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 경향이라고 보여집니다(바둑기보의 저작물성 여부에 관한 국내판례는 아직 생산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위 문답에 들어간‘자체’의 의도는 그런 대로 이해가 간다. 하지만 괄호 부분을 포함하면 답변자의 의도가 여전히 모호한 구석이 남아 있어 필자의 견해와 전적으로 상응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그 답변자의 문제일 따름이다. 필자는 확신한다. 필자의 견해를.


2.바둑과 악곡의 類比(유비:유사하게 견줌)-바둑의 본질,복기식 검토하기

*복기식 검토:돌을 들어내 가며 하는 복기처럼, 미리 결론를 정해 두고 그 타당성을 역으로 찾아가는 거꾸로 식의 논리전개 방식(;필자 註)    

(여기선 바둑의 본질을 정공법으로 구명(究明)하려는 것이 아니라 바둑과 악곡의 유사성을 드러냄으로써 바둑의 본질 구명(究明)에 어떤 시사를 얻는 정도로 만족하려 한다. 정작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여기서의 작업은 3.棋局(기국)은 저작물인가? 의 사전포석이 된다 는 사실이다.)


바둑이 만약 예술이라면 기존 예술 형식 중 어느 것에 유비(類比)될 수 있을까?(필자는 학술로서의 음악에는 전혀 문외한이라)절대적 거리란 측면에서는 자신 없지만 상대적 거리란 관점에서는 각종 예술형식 중 단연 악곡이 바둑에 가장 가깝지 않을까 싶다. 어째서 악곡이 바둑에 가장 가까울까?(注:많이들 혼용하지만 정확히는 음악=악곡+가사 / 결론적으로 지금 바둑과 대비되고 있는 대상은 악곡이다. ‘음악’이 아니다. 다만 음악 쪽은 인용을 많이(문외한이라) 하는 사정상 두 단어는 혼용될 수 있음에 주의.)


악곡은 시간예술이다. 시간적 흐름에 따라 생성/전개되어진다.1장이 있고 3장,4장이 있고 또는 도입부와 종결부가 있다.

바둑에도 시간이 관련된다. 시간적 흐름에 따라 수수가 진행된다. 포석이 있고 중반과 끝내기가 있다. 다만 바둑에는 (관념적)공간도 또한 관련된다. 바둑은 판(板)에 두기 때문이다. 판이란 2차원적 공간이다.(판도 사실은 관념적 판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실제 나무판은 관념적 판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악곡은 시간이 리듬(박자)의 형태로 관여한다. 다시 말해 시간의 관여가 리듬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악곡이 시간예술’이라는 말은 ‘리듬은 악곡의 근원적 요소’라는 말과 상통된다.(*악곡의 3요소는 리듬/멜로디/화음)따라서 리듬만의 악곡은 가능해도 리듬 없는 악곡은 불가능하다. 다만 악곡저작물의 창작성은 리듬이나 화음에 보다는 멜로디에 주로 구현된다.

바둑은 시간이 수순의 형태로 관여한다. 다시 말해 시간의 관여가 수순의 형태로 나타난다.

바둑은 그리고 관념적 공간이 모양의 형태로 관여한다. 다시 말해 공간의 관여가 모양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럼 결국 바둑의 구성 요소는 수순과 모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마 그럴 것이다.

이제 바둑의 요소 중 근원적 요소는 수순일까? 모양일까? 단연코 수순이다. 왜냐 하면 모양이 좀 찌그려져도 바둑은 바둑이지만(하수바둑일 지언정) 수순이 뒤바뀌면 그 바둑은 바둑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수 맞고 나가야지 먼저 나가고 단수 맞는 바둑은 바둑이 아니다. 붙이고 젖히지 젖히고 붙이는 바둑은 없다.

그렇기에 바둑은 공간적이면서도 그보다는 더 시간적이다. 공간예술보다는 시간예술 쪽에 더 가까이 있다.

정리하자. 바둑이 시간적 무엇이라는 말은 ‘수순은 바둑의 근원적 요소’라는 말과 상통된다.다만 리듬이 멜로디에 비해 변화의 여지가 제한되므로 악곡의 창작성은 리듬보다는 멜로디에 주로 구현되듯이 특정한 모양은 수순까지 결정시키므로 바둑의 창작성은 수순보다는 모양에서 주로 구현된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멜로디에는 영감, 모양에는 감각.  


개별적 소리 하나하나로서는 악곡이 되지 않는다. 솔라솔미레도에서 ‘솔’은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전후의 솔라와 미레도가 존재함으로서 악곡으로서 유의미하다. 그리고 악곡에서 소리의 고저는 디지털적이다.(특정한 높이 ,단속적인 높이의 음만 사용된다. 피아노 건반의 예를 보라.)

악곡은 소리(악곡의 소재;매개체)가 일정한 질서 하에 계기(繼起;시간적으로 잇달아 발생)하여 조화됨으로써 성립하는 예술이다.

계기(繼起)하는 소리의 길이에 일정한 시간적 질서를 부여하면 리듬(律動)이 생기고, 높이가 다른 둘 이상의 소리를 수평적 ·계기적으로 결합하면 멜로디(旋律)가, 수직적 ·동시적으로 결합하면 넓은 뜻에서의 하모니(和聲)가 생긴다. 이들 리듬 ·멜로디 ·하모니를 보통 악곡의 3요소라 하여 악곡작품의 필수 불가결한 구성요소로 치고 있다.

바둑 판위에 놓인 착수 하나하나로서는 바둑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바둑에서 착수점은 디지털적이다.(오로지 361개의 착수점만 존재한다.)

바둑은 19×19의 관념적 제한공간 상의 361교차점(바둑의 소재:매개체)이 일정한 질서 하에 계기(繼起;시간적으로 잇달아 발생, 발생이란 여기선 착수)하여 조화됨으로써 성립하는 그 무엇이다.

착수점의 선후에 일정한 질서를 부여하면 수순, 공간상 위치가 다른 둘 이상의 착수점을 비계기적(;선후무시)으로 결합하면 모양이 생긴다.

     

악곡은 고정(fix)가능하다. 그것이 악보이다. 악보는 악곡이 쉽게 재현(;연주)가능한 예술물이라는 산 증거이다. 더구나 악곡의 음은 디지털적이므로 악보 아닌, 수치화된 고정 즉 디지털 고정에 매우 친하다.

바둑은 고정(fix)가능하다. 그것이 기보이다. 기보는 바둑이 쉽게 재현(;복기)가능한 무엇이라는 산 증거이다. 바둑판 상의 좌표는 수치에 다름 아니므로 착수점은 수치 그 자체다.


바둑은 축구일까? 축구이니 악곡이 아닐까?

바둑은 악곡일까? 악곡이니 축구가 아닐까?

바둑은 축구이자 악곡일까?


필자는 이 답이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바둑의 스포츠화에 대하여 논란이 많지만 이 시대 풍조상 지금이 승부처이며 ‘알기 쉽게 닦을 국면’이 아님은 확실하다. 다시 말해 무언가 승부수를 던져야 할 국면이라는 이야기다. 다만  필자가 어줍잖게 딱 한 마디만 거들자면 ‘바둑은 오직 바둑일 뿐’이라 형세판단했을 때 현 국면을 타개할 최선의 수읽기는  차용이라는 감각(마인드)로부터 비롯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쯤만 하고 여기서 정작 우리가 하여야 하는 작업을 상기하자. 이 글의 제목! 棋局(기국)은 저작물인가? 필자는 우리의 논의대상을 기국이라 칭하면서 기보가 아님을 이미 말했다. 이제부터는 기국과 기보를 엄격히 구분한다. 그렇다면 왜 하필 기국이라는 용어를 선택했는지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설명은 따로 악곡vs악보, 기국vs기보에서 드린다. 그냥 넘어가도 좋다. (언어의 사회성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동시에 언어는‘우상’이다. 이 글에서 만큼은 제대로 쓰고자 한다.)


3.棋局(기국)은 저작물인가?


(정공법이라면 저작물의 정의를 앞에 놓고 棋局(기국)이 저작물의 정의에 부합하는가를 논하는 방법이리라. 그러나 정공법이 아니다. 다만 棋局(기국)을 기존의 저작물인 악곡에 대비시킴으로써 棋局(기국)이 저작물성을 가지고 있음을 체감적으로 납득시키려 한다. 다만 棋局(기국)과 악곡의 유사성은 이미 살펴보았는 바 이제는 物(물)이 아닌 행위, 창작행위에 초점을 맞춘다. 왜냐 하면 棋局(기국)이란 物(물)은 대국이란 행위의 소산이요 악곡은 작곡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당연히 대국과 작곡을 대비시키게 될 것이다. 비유적으로.)


기국은 악곡이요 기보는 악보다. 그러므로 대국은 작곡이다.

작곡에 의해 리듬과 멜로디와 화음이 창조된다. 대국에 의해 수순과 모양이 창조된다.

리듬/멜로디/화음의 전체적인 조화에 인간은 미를 느낀다. 인간이 창조한 어떤 관념물이 소리를 매개로 나의 감성을 깨울 때 미를 느끼는 것이다.

수순과 모양의 전체적인 조화/결합에 역시 미(?아니면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이 역시 어떤 관념물이 공간적 구조(?)를 매개로 나의 悟性(오성)을 깨울 때 미를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작용은 바둑에 승부 이전의 그 무엇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바둑에서 미와 승부는 어느 것도 버릴 수 없는 요소이다.


대국은 2인의 상호작용으로서 창작 외에도 승부가 필수적으로 개재되는 행위이다. 그리고 바둑에서는 착수함으로써 창작이 구현된다. 악곡으로 말하면 연주함으로써 작곡된다. 연주 없이는 작곡되지 않는, 다시 말해 연주와 작곡의 분리가 없다.(이를 즉흥연주라 한다.)대국은 작곡이자 연주, 즉 즉흥연주이다.


작곡에서 악상을 전개시켜 음악적 통일체인 작품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음악적 법칙에 따른 음의 구성기술이 필요하게 된다. 이것이 작곡기술이다.

체계로서의 작곡이론은 일반적으로 과거 대가(大家)의 작품에서 추출된 것으로, 작곡가는 그것을 습득한 다음에 자기의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이 보통이다.

수읽기와 수보기의 구별

단선적이고 필연적인 수순, ‘수의 단선적 경로’(정수현의 표현)는 프로라면 누구나 일백여 수 이상 볼 수 있다는 데에는 그다지 이견이 없는 듯 싶다.사카다는 이를 두고 ‘수읽기이면서도 진정한 수읽기가 아니다’ 라고 하면서 ‘수보기’라 달리 부르고 있다. 

어쨌든 음의 구성기술이 ‘작곡기술’이듯이 바둑수 나열능력(;수보기)을 ‘수수기술’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따라서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프로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체계로서의 수수기술(;수보기능력)을 극한까지 습득할 것이 요구되며 그 다음에 자기의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것이 프로의 기풍이다 라고.


일반적으로 작곡은 무정형(無定形)의 충동이라고 해야 할 창작기분·주요한 악상(樂想)의 구상·내적 정련(內的精練)·외적 완성이라는 과정을 취하는데 이 과정에서는 영감사고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오해되고 있듯이 작곡은 결코 영감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기의 표현에 어울리는 주제를 완성하여 그것을 전개시켜 전체의 구성을 정하기 위해서는 음악적 논리에 따른 음에 의한 사고가 요구된다.    

 감각과 수읽기의 구별

음의 모색이 작곡이며 수(手)의 모색은 수읽기다. 일반적으로 ‘바둑의 본질은 수읽기’라고들 한다.수읽기란 무엇일까?

정수현의 표현을 빌자면 수읽기란 수의 변화를 읽는 것, 구체적으로 말해 ‘상대방이 둔 수의 의미를 해석하고 자신의 대응방법을 찾아 장차 일어날 변화를 머리 속으로 추리하는 것’으로서, 바둑을 두는데 있어 거의 필수 불가결한 기술이다.(이 설명은 악상(樂想)의 구상·내적 정련(內的精練)·외적 완성의 구조와 유사하다)

조훈현은 수읽기를 ‘필연적인 수순의 결과가 전국에 미치는 영향을 비교/검토/연구하는 것이라  하고 있다.


정수현은 ‘수읽기를 하지 않고 감각적으로 두는 바둑은 수의 기능을 대국자가 올바로 조절할 수 없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바둑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하여 감각과 수읽기를 구별하고 있(고 동시에 수읽기를 감각보다 우위에 놓고 있는 듯 보인)다.

“육감에 의해서 또는 감각적으로 매듭(‘영향’에 대한 비교/검토/연구에 대한 매듭;단초이리라;필자 註)만 찾으면, 꼬투리만 잡아내면, 그 다음엔 일사천리거든요. 그야말로 실타래가 풀려 가듯 좍 풀리는 것이죠."

라고 하여 조훈현 역시 감각과 수읽기를 구분하는 사고방식을 취하고 있으며 단지 그의 말을 씹어 보면 감각을 수읽기보다 꼭 하위에 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유창혁 역시 “애초에 아무런 감이 없다면 수읽기 자체가 안되는 것”,“맥은 수읽기의 영역이라기보다 감각의 영역”라고 하여 마찬가지로 감각과 수읽기를 구분한다는 점에 있어 동지(同旨)이며 나아가 脈(맥) 찾기를 산삼캐기에 비유하고 있는데 뉘앙스상 정수현 쪽보다는 조훈현 쪽이다.

(정수현의 말이 바둑을 별 생각 없이 뚜닥뚜닥 두어 치우는 타성을 경계하는 말로 해석될  수도 있고 보면 감각과 수읽기는 우열을 따질 문제가 아닌 것 같다.)

필자는 감각수읽기, 이 둘을 ‘넓은 의미의 수읽기’라 보고 싶다.(‘수보기’는 이에 포함시킬 수도, 따로 구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작곡가란 작곡기술에 능숙한 자이며 작곡에 있어 영감과 사고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문기사란 수수기술(;수보기)에 능숙한 자이며 바둑에 있어 감각과 수읽기가 그 본질이다.  

 

 

4.끝내기

 

-棋局(기국)의 저작권은 누구에게?

저작물을 저작한 자,棋局(기국)의 경우 일차적으로 대국자에게 귀속한다.(일단 그렇다는 말이지 이 놈의 권리는 얼마든지 옮겨 다닐 수 있다.)


-왜 보상하는가?

조훈현처럼 기보만 휘리릭~ 보든, 우리들처럼 기보를 따라 바둑판에 돌을 놓아보든, 바둑 사이트에서 화면을 보며 마우스로 딸깍딸깍 하든, 모두 복기라 할 수 있으며 이는 棋局(기국)을 감상하는 행위이다. 이미 비유하였듯이 이는 악곡을 감상하는 행위와 유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복기는 감상자가 직접 연주하여 감상하는 격이요, 악곡의 경우는 악보를 보며 직접 연주하여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녹음된 연주를 수동적으로 듣는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그러나 모차르트 정도라면 악보를 보는 것만으로도 감상하였노라 감히 말할 수 있으리라.조훈현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어찌되었건 대국자들은 감상자에게 창작의 대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작금의 MP3사태를 생각해 보라)그게 자본주의니 말이다.


-신수,신형,신정석은 돈 주고 써야 하나?

저작물 중 무엇이 보호되고 무엇은 만인의 공유에 속하는지에 대한 이론적인 접근은 그리 간단하지 않은 문제이다. 다만 예를 들어 보려고 한다.


기보를 보자.

 



이른바 ‘신 고바야시류’! 내가 개인적으로 좀 밝히는 포석이다.(상대가 저 모양까지만 ‘협조’해 준다면 그 바둑은 땡 잡은 걸로 친다. 그만큼 좋아한다.)근데 棋局(기국)에 저작권이 있다 하여 나(랑 상대 대국자)는 저 포석이 나올 때마다 누군가에게 허락을 받거나 대가를 주어야 할까? 마찬가지로 눈사태 정석에서 유명한 안쪽 꼬부림을 창안한 오청원은 진즉에 떼부자가 되었어야 할까?

이 부분에 대한 오해 때문에 棋局(기국)의 저작권 인정에 거부감을 보이는 경우가 제법 있다. 안심하길. 저작권이라는 게 그렇게 막되어 먹은 개념이 아니다. 원래 저작권 영역에서 이론/사상이나 관념 자체는 보호되지 않는다. 바둑이 과학이라면(그렇다!)  포석법은 이론(ex.상대성 이론),정석(定石)은 정리(定理)(ex:피타고라스 정리)라 비유할 수 있다.(다만 그 정합도에 있어서 불안정성이 상대적으로 크긴 하겠지만)

누군가 이론이나 정리를 창안하였다 하여 이론/정리 자체를 지적재산으로 보호를 줄 수는 없는 일이다. 하긴 피타고라스나 아인쉬타인은 좀 억울할 런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신수/신형에 권리가 부여되지는 않는다. 만약 그런 법이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낫다.

-매직 존슨의 훅슛

10년 쯤 전이던가 어떤 신문 기사에서 이후로는 매직 존슨(지금 알기로 원조는 압둘 자바라지만 그 기사는 하여튼 그랬다.)의 훅슛도 사용료를 지불하고 써먹어야 한다는 소리를 보고 황당해 하던 생각이 난다. (이 글을 제대로 읽었다면 그게 터무니 없는 소리란 걸 이제쯤은 아실게다.바로 위 신수,신형...참조) 무엇이 만인의 공유에 남겨져야 하고 무엇에 대하여 창작자에게 보상되어야 하는지, 창작자와 공중의 이익조정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그 기사를 쓴 기자나 읽은 나나 제대로 개념정립된 상태가 아니었으니 작금 기국(棋局)의 저작권 문제에 뜨악해 하시는 분들과 피장파장인 셈이다.

그런데 만일 매직 존슨의 훅슛 장면만을 모아 영상물을 만들었다고 하자. 이 경우 존슨에게

허락을 받거나 보상을 하여야 할까? 당연히 예스다. 단지 그 이유가 매직이 훅슛이라는 관념을 창안(필자도 할 수 있다. 주성치의 ‘소림축구’를 떠올려 보라)하였기 때문이 아니며  그보다는 그러한 행위를 실행한 대가, 즉 실제로 몸으로 보여 준 대가를 받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즉 보상근거에서의 양자간 차이가 예술과 스포츠의 구별로 나타난다.

자. 그렇다면 매직의 훅슛 장면도 보상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공통되므로 저작물일까? 아니다. 보상근거가 다르다.

자. 바둑은 예술이 아닐까? 아니다가 아니다. 같다. 보상논리가 같다.



(도움이 된 문헌들)

*조훈현과의 대화-이광구

*수읽기의 본질과 절차에 관한 고찰-정수현 

*수읽기란 무엇인가-사카다(프바사 버전)

*월간바둑 2001년 12월 호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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