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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091230 矛盾(모순)


어렸을 때 처음 본 신문 기보의 棋士 이름을 보고 서봉수와 조훈현을 처음 접했다. 마치 홍길동과 김개똥처럼 낯선 두 이름은, 알고 보니 당대 최고의 바둑꾼이었다. 내 다음 세대 처음 바둑 배우는 사람들이 이창호란 인물을 접하고 조금씩 알아가다 그의 팬이 되곤 하듯, 나는 曺徐조서를 먼저 알았고, 서봉수와 조훈현을 제대로 알게 되는데 몇 년 이상의 세월이 걸린 끝에, 결국 나는 그 중 한 사람에게 ‘꽂혔다.’


어리버리함과 의뭉함이란 괜찮은 매력의 소유자 이창호에게는, 좋아는 하지만 이상하게도 꽂히지가 않았다. 어쩌면 그가 조훈현을 너무 많이 이겨서인지도 모른다. ‘또 반집인가.’... '나으 원쑤’ 조훈현이 제자에게 질 때마다, 나는 조금씩 아픔을 느꼈다. 새끼가 젖과 심장박동으로 엄마에게 초기화되듯 그래도 조훈현은 '나를 초기화시킨 기사'의 ‘영원한 라이벌’이었으니까.


徐名/서국쑤/봉수성 다음으로 또 누군가에게 꽂히기 시작했다.

존경스런 그의 아버지, 호리호리한 몸매, 쇳소리, 소주 일곱병, 큰 승부를 지고 한강다리를 걸었다는 지독한 승부욕, 그의 당참, 기세, 기세...

뭔가 있다는 의혹이 처음에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그가 내는 기특한 발언과 기특한 승리를 몇 해를 두고 접하다 보니,..

어느새, 양李가 두면 이창호가 아닌 그가 이기기를 바라는 내가 되어있었다.

(이창호와 최철한이 응씨배 결승을 둘 때, '야야 누가 이겨야 좋겠니?' 아무리 물어도 나의 내면은 답을 가르쳐주지 못했다.)


나는, 매체들이 전하는 이세돌의 생생한 발언과 행동, 그리고 정용진 기자의 ‘고발’및 김지명 씨의 ‘하소연’을 믿지 차 회장의 ‘평가’라든지 팬의 ‘보고서’는 수용하지 않는다.

동료의 눈을 담배로 지졌다는 영국 축구 선수도 자기 좋다는 팬과의 만남에서는 예의껏 처신할 것이며, 상호 간의 이익을 매개로 만난 사이는 필경 어느 정도 粉飾분식(;분칠하여 곱게 화장함)이 없을 수 없다.


갈수록 자문하게 되었던 것이 지금까지 나는 허상을 만들어 꽂았을지도 모른다 하는 의심이었다. 팬이란 존재가 다 글치 뭐, 그럼 니가 徐名을 만나보고 꽂힌 거니?..

...맞다. 그래도 徐名 칭찬하는 기자는 무수히 질리도록(사실은 전혀 안 질린다.^^) 보았어도 이세돌 제대로 칭찬(바둑 실력 말고)하는 기자는 전혀 기억이 없다.

기자야말로 棋士의 팬도 아니고, 이익을 매개로 만난 사이도 아니고, 자신의 밥벌이인 업무로 棋士를 접하는 존재 아닌가?


중국바둑을 이기는 것이 최우선인가? 괴롭지만 차선으로 접어둘 수도 있는가?

해보는 데까지는 해보는 거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훔, 그래? 어쩌면 바둑도 탁구처럼 될지도 모르는데..그래도?

그래도.

그에게 의존하여 중국바둑을 잠시 누른들 그것이 몇 발자국이나 가겠는가? 이것이 지난여름을 스쳐갔던 생각이었다. (한국기원을 변호할 생각은 없다. 내가 한국기원을 때렸으면 때려주었지..)


한 사람의 천재의 값어치는 크다. ‘천재 하나가 10만을 먹여 살린다’는 몰상식에 찬성해서가 아니라, 천재는 한 폭의 명화, 한 곡의 명곡처럼 그 자체로 세상 사는 기쁨을 우리 평범한 사람에게 주기 때문이다. 당연히 평범한 사람들은 한 사람의 천재를 아껴주어야 한다.


참 모순은 모순이다.


복귀 선언 후 한게임 인터뷰() 中 ‘이세돌이 부드러워졌다’를 보고 든 내 생각이 바로 모순이었다. 어?‘천재의 개성’이 압살되어버렸나? ㅅㅅㅅ

이것이 粉飾분식인지 내면의 실제적 변화인지는 이세돌만이 알리라. 어쩌면 이런 것이 칼같이 구분 가능한 것이 아닌지도 모르지.


우옛든가눼 분식이면 좋겠는데, 그걸로 충분한데.., 그거 하기가 그렇게 힘이 들어서 애써 홍역을 치러야 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