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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揚州十日記(양주십일기) -下 -귀신도 몸서리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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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秀楚의 이 日記는 청나라 왕조 시대엔 失傳(실전)되었다. 당연하게도, 淸왕조에 의해 禁書(금서)로 지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청나라 말기, 일본에 유학 간 중국 유학생이 일본 무슨 도서관에서 ‘발굴’했다 한다. 그리하여 淸왕조에 대한 反感(반감) 및 공화혁명 분위기 조성에 일조했다.




(上편으로부터 계속)
세 병사는 곧이어 모든 부녀자들을 안으로 들어오게 하여 젖은 옷을 벗도록 명령하였는데, 겉에서 속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였다. 동시에 옷 짓는 부인네에게 명령하여 각 사람의 길고 짧음과 넓고 좁음을 재도록 하여, 새 옷으로 갈아입혔다. 이들 부녀자들은 계속되는 위협에 못 이겨, 나체가 되어 마주보게 되고, 은밀한 곳이 다 드러나니, 그 죽고 싶을 지경의 치욕은, 말로 설명하기 곤란할 지경이었다. 옷을 다 갈아입힌 후, 병사들은 부녀자 몇을 골라 좌우에 싸안고 술을 마시며 즐기며, 시끄러운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 하나가 갑자기 칼을 빼고 일어서더니, 후청의 남자들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오랑캐, 이리 와, 오랑캐, 이리 와!” 내 부근의 몇 명은 묶여서 움직일 수 없었는데, 그중에 우리 큰형님도 있었다. 둘째형님이 말하기를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또 무슨 말을 하리오?”내 손을 꽉 쥐고 앞으로 나아갔고, 내 아우 또한 뒤를 따랐다. 이때 그들에게 붙잡힌 남자들이 총 오십 여 人이었으나, 칼 든 병사의 한 번 호통에, 사람들은 혼백이 달아나서, 누구 하나 감히 앞으로 안 나오는 사람이 없었다. 둘째형님을 따라 후청을 나오는데, 밖에서 병사가 사람을 차례차례 죽이는 것이 보였고, 사람들은 모두 차례대로 운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처음엔, 달게 죽자 생각했으나, 마치 신의 도움이 있듯이 불현듯 충동이 일어, 이때다 하고 몰래 달아나, 다시 후청으로 돌아갔다. 오십여 사람 중에 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다.

청 뒷건물들 중 서쪽채에는 나이 든 부인들 몇이 아직 있었기에, 그쪽으로 피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중앙채를 가로질러 뒷채에 다다랐는데, 안에는 죄다 말이며 가축이었다. 여기를 넘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갈수록 마음이 급해져서, 몸을 말의 배 밑으로 엎드려, 수 마리 말의 배 밑을 기어서 지났다. 만약 말을 놀라게 하여 이들이 조금이라도 날뛴다면, 나는 바로 밟혀서 짓이겨질 판이었다. 그곳을 떠나, 건물 몇 채를 더 지났지만, 어디에도 나가는 길은 없었고, 다만 근처에 후문으로 통하는 복도가 있었다. 그런데 이 복도의 문은 이미 병사들이 대못을 단단히 박아둔 상태였다.

그곳에서 뒤돌아 다시 앞으로 오니, 前堂(전당)에서 사람 죽이는 소리가 들렸고, 더 무섭기만 할 뿐 대책이 안 섰다. 왼쪽을 살펴보니 주방이 있었다. 안에는 네 사람이 있었는데 아마 이들 역시 붙잡혀와서 밥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나도 껴달라, 불을 피우고 밥 짓는 일을 같이 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 혹 다행히 화를 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네 사람은 단호히 거절하며 말하기를 :“우리 네 사람은 지정되어 일을 하는 것이다. 사람 수가 는 것을 만약 병사들이 알게 된다면, 이것들이 수작 부리나 하고 반드시 의심할 것이고, 화가 우리에게까지 미칠 것이다!” 내가 계속하여 읍소하였으나, 그들은 더 화를 내면서 나를 밖으로 끌어내려 했다. 나는 나올 수밖에 없었다.

갈수록 초조해졌다. 이때 계단 앞에 받침대가 보였다. 받침대 위에는 큰 독이 있었는데, 지붕에서 그다지 멀지 않았다. 그래서 받침대를 붙잡고 기어올라가서, 손이 막 독에 닿는데 그 순간 꽈당 몸이 자빠졌다. 아마도 빈 독인데다 내가 힘을 너무 세게 썼기 때문이리라.

어쩔 수 없이 아까 그 복도 문 쪽으로 급히 돌아갔다. 그리곤 두 손으로 문(의 빗장)에 박힌 대못(의 조금 덜 박힌 몸통 부분)을 붙잡고 죽자고 흔들었지만, 못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돌로 친다면 그 소리가 바깥뜰까지 들릴 것이고, 아마도 병사에게 들키리라. 어쩔 수 없이 또다시 있는 힘을 다해 흔들었다. 손가락이 찢어져 피가 철철 나와 팔뚝을 흘러 옆구리에 이르렀을 즈음에, 드디어 대못이 헐렁해졌고, 힘껏 뽑아, 드디어 못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그리고 급히 빗장을 당기는데, 빗장이 무궁화나무라, 빗물에 젖어 불어서, 그 빡빡함이 대못 뽑기의 여러 갑절이었다. 나는 초조해서 미칠 지경이 되었고, 있는 힘껏 빗장을 뽑았으나, 빗장은 뽑히지 않고 느닷없이 지도리(문짝을 여닫을 때 문짝이 달려 있게 하는 물건 ;문짝의 회전축)가 부러져, 문짝이, 담장째 같이 무너졌고, 마치 벼락 치는 소리가 났다. 나는 급히 몸을 솟구쳐 뛰어넘어갔는데, 도대체 어디서 그런 큰 힘이 나왔는지, 재빨리 후문을 나갔다.

바깥은 성벽 아래였다. 병졸과 마필로 가득했다. 곳곳이 다 그러해서, 통과하기란 아예 불가능이었다. 그래서 喬씨 저택 왼쪽 집, 후문으로 잠입해 들어갔다. 그런데 이 안에 숨을 만한 곳은 죄다 누군가 숨어 있고, 하나같이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걸 허용하려 하지 않았다. 뒤쪽부터 앞쪽까지, 저택 다섯 칸 다 마찬가지였다. 결국 대문 앞에 이르렀는데, 여기는 이미 큰길에 맞닿는 곳이었다.

대로 上에는 만주군 병정들이 끊임없이 오고갔다. 아마도 사람들은 이 지점은 위험하다 여겨서 누구도 이곳에 숨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급히 들어갔다(어디로 들어가? 언급이 없음, 원작 자체가 그러함. ‘대문 근처 적당한 곳’이라 짐작). 침대 하나가 있었고, 침대 위쪽에 지붕보기가 있었다. 기둥을 잡고 지붕보기 위로 올라가서, 몸을 굽혀 안을 보고 누었다. 막 한숨 돌리는 찰나, 돌연 담 너머 아우의 애통한 울음소리가 들렸고, 또, 칼을 들어 내리찍는 소리가 들렸다. 도합 세 번 칼질 소리가 들리고는, 조용해졌다. 얼마 안 있어, 또 둘째형님의 애걸 소리가 들렀다. :“우리집 지하실에 돈이 있소. 날 풀어주시오! 돈을 가져와서 드리겠소.” 칼을 내리찍는 소리가 한 번 들리고, 다시 조용해졌다. 당시 나는 넋이 떨어지고, 가슴속이 불타는 듯하고, 눈물은 말라 흐르지 않고, 창자가 엉켜 끊어질 듯, 심신이 말을 듣지 않았다.

얼마 후, 병사 하나가 한 여자를 끼고 집 안으로 들어와서, 침대 위에서 여자를 강간하려 했다. 여자는 처음엔 한사코 반항하였으나, 병사의 폭압에 못 이겨 나중에는 굴복하고 말았다. 일이 끝난 후에 여자가 말하기를 :“이곳은 큰길에 가까워서 남 눈에 띄기 쉬워요. 오래 머무를 곳이 못 돼요.”병사가 여자를 데리고 다시 나갔다. 그동안 난 하마터면 발각될 뻔했다.

내가 누운 옆쪽으로 대나무자리로 만든 차폐층이 있는데, 사람 무게를 견디지는 못할 듯했다. 하지만 그걸 따라가서 들보를 잡을 수 있었고, 두 손으로 들보 위 도리를 붙잡고 기어올라, 두 발은 들보를 밟고 자리를 잡았다. 아래는 대자리가 가려주니, 들보 위는 칠흑같이 어두웠다.

잠시 후 병사 하나가 들어오더니, 창을 위로 이리저리 찔러보고는, 허공뿐임을 알고, 위에 아무도 없구나 생각하는 듯했다. 이후로 온종일 병사 한 사람도 맞닥뜨리지 않았다. 헌데 지상에선 칼에 맞는 자 그 얼마인지? 대로에 兵馬(병마) 몇이 지나갈 때마다, 반드시 수십 남녀의 애통한 울음소리가 뒤따랐다.

이날 비는 안 왔지만, 해도 뜨지 않았다. (칠흑 속이라) 아침인지 저녁인지 알 수가 없었다. 밤이 되어 兵馬가 다소 줄고, 좌우로 사람들 슬피 흐느끼는 소리만 들렸다. 형제들 중 이미 절반이 해를 입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큰형님은 또 생사조차 점 칠 수가 없고, 아내와 자식놈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 그래 찾아보자, 어쩌면 한번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형님 아우가 죽음을 당했음을 알려줘야지.

그래서 들보를 따라 천천히 내려와, 살금살금 앞거리로 갔다. 길에는 시체가 이리저리 포개져 널려 있었다. 날은 저물어 누가 누구 시체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여기저기 시체더미에 고개를 숙여 불러보았으나, 대답하는 자 하나도 없고 적막만 흘렀다. 멀리 남수(南首 ;지명)쪽을 보니 횃불 여러 개가 떼지어 몰려왔다. 나는 급히 자리를 피해, 성벽을 따라 달렸다. 성벽 아래에는 시체가 물고기 비늘만큼이나 빽빽이 쌓여 있었다. 몇 번을 시체에 걸려 넘어지고, 시체에 부딪쳤다. 발 둘 곳이 없어, 넙죽 엎드려 손을 발로 대신했다. 조그만 낌새에 놀랄 때마다, 시체처럼 땅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한참을 그렇게 기어간 후에야 (다시) 대로에 당도할 수 있었다.

대로에는 앞 뒤 곳곳에 횃불 든 자가 대낮처럼 비추고 있었다. 나는 여러차례 멈칫멈칫 기회를 찾다가, 틈을 보아 대로를 가로질러 소로에 당도할 수 있었다. 소로를 가는데 캄캄한 밤이라, 누군가와 부딪칠 때마다 서로 간에 깜짝 놀라곤 하며, 백 걸음도 안 되는 길을, 酉(유)시에 시작하여 亥(해)시가 되어서야(4시간 걸려) 둘째형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대문이 닫혔고 감히 즉각 두드리진 못하는데, 돌연 부인네 음성이 들려왔다. (둘째)형수임을 알고 그때서야 문을 가볍게 두드리니, 문을 여는 자가 바로 나의 아내였다. 큰형님이 이미 돌아왔고, 아내와 자식놈이 다 있었다. 나와 큰형님은 부여잡고 통곡했다. 헌데 아직은 감히 둘째형님과 넷째의 죽음을 알려줄 수 없었다. (둘째)형수가 나에게 물었고, 나는 거짓으로 답했다. 나는 아내에게 어떻게 다행히 화를 면했는가 물었다. 아내는 말하기를 :“그 당시 병사가 쫓아올 때에, 당신이 먼저 튀고, 뒤이어 다들 튀고 나서 저만 남았어요. 저는 팽아(彭兒)를 안고 지붕 밑으로 뛰어내렸는데 다행히 죽지 않았어요. 제 여동생은 다리를 다쳐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병사는 우리 둘은 데리고 어느 집에 들어갔어요. 집안에는 굴비처럼 묶인 남녀 수십 사람이 있었어요. 병사는 저를 (감시 임무를 맡은) 몇 부인네에게 맡기며 당부하기를 : ‘잘 지켜. 도망가게 하면 안 돼.’그리곤 칼을 들고 나가버렸어요. 잠시 후 또 병사 하나가 들어왔어요. 내 여동생을 끌고 갔어요. 한참이 지났어요. 그동안 안 보이던 아까 그 병사가 왔어요. 여러 부인네들을 나가게 했어요. 나와서 바로 홍(洪)할머니를 만났어요. 서로 붙잡고 여기로 왔지요. 그래서 요행히 화를 면했지요.”洪할머니는 큰형님의 처가붙이이다. 아내가 나에게 경과를 물었다. 나는 사실대로 말해주었고, 둘이 한참을 탄식했다. 洪할머니가 남은 밥을 가지고 와서 권했다. 목이 메어 넘어가지 않았다.

밖에서는 또다시 도처에서 불이 나고 있었는데, 어젯밤의 갑절이었다. 나는 마음이 안정이 되지가 않아, 살그머니 집밖으로 나갔다. 근처 밭에 시체가 이리저리 포개졌는데, 아직 숨이 붙어 헐떡이는 소리도 없지 않았다. 멀리 何씨가문묘지가 보이는데, 수목이 으스스하니, 곡소리가 숲소리에 섞이고, 아비가 아들을 부르는 소리며, 지아비가 처를 찾는 소리며, 으아으아 아이 우는 소리며, 풀숲가며 시냇가며, 구석구석, 그 참혹함이 듣기가 괴로울 지경이었다. 둘째형님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가 나에게 말하기를 :“오늘 일에, 죽음만 있을 뿐이니, 때가 되거든 제가 먼저 죽게 놔두어, 절대 당신은 연루되지 마세요. 팽아가 있으니, 당신은 앞으로 잘 처신하셔야 해요!” 나는 아내가 과단성이 있어 생사에 연연치 않음을 알고 있었다. 生死 이별 앞이라, 밤새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동이 텄다.

27일(10日 중 사흘째), 아내에게 피할 곳을 물었다. 아내는 나를 이끌고 구불구불 가더니 어느 관 뒤쪽에 당도했다. 오래된 기와에 거친 벽돌, 인적이 끊어진지 오래인 듯했다. 나는 썪은 풀더미에 쭈그리고 앉아 팽아를 관 위에 내려놓고, 갈대자리로 덮었다. 아내는 앞에 움츠리고, 나는 뒤에 바짝 붙어 쭈그렸다. 머리를 들면 정수리가 드러나고 다리를 펴면 발이 보이니, 함부로 몸을 펼 수가 없었다. 숨을 죽이고, 팔다리를 싸안았다.

혼을 좀 진정시키는데 사람 죽이는 소리가 바싹 들려왔다. 칼이 향하는 곳에는 처참한 비명소리가 어지러이 일어났고, 이구동성 살려달라 비는 소리가 수십 혹은 백여 사람이었다. 병사 하나를 만나면, 南人(남인 ;明이 망하고 南明)은 많든 적든, 하나같이 머리를 늘어뜨리고 땅에 엎드려, 목을 빼고 칼을 받는데, 도망가는 자 한 사람이 없었다. 자식들이 잇달아 죽어가는 지경이 되자, 입 백 개가 서로 울며, 애통곡이 천지를 울렸다. 더는 말하기가 힘들다! 정오가 가까워지며 도륙 약탈은 더 심해졌고, 시체더미는 갈수록 많아졌다. 귀는 듣기가 힘들고 눈은 보기가 괴로웠다. 급기야 아내는 예전의 그날 밤을 후회했다. 남편 말을 오해했던 그때 그냥 콱 죽어버릴 걸. 다만 우리는 요행히 발각되지 않고 밤을 맞았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탐색을 하며 밖으로 나왔다. 팽아는 관널빤지 위에 누워 달게 자고 있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울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고, 또한 먹을 걸 보채지도 않다니 기특했다. 목이 마르겠다 싶어 기와조각을 집어 개울물을 떠 목을 축여주는데, 살짝 놀라더니 이내 잠들었다. 때가 되어 애를 불러 깨워서, 안고서 둘째형님 집으로 돌아왔다. 洪할머니도 벌써 와 있었다. 나는 또 둘째형수가 끌려갔음을 알게 되었다. 조카놈은 이제 고작 강보에 싸인 애기에 불과한데 그 소재조차 알 수 없게 되었으니, 아아 괴롭구나! 고작 사흘 만에 둘째형님 부부 및 조카, 그리고 아우까지 넷을 잃었다. 애처로이 겨우 살아남은 자 고작, 나와 큰형님 그리고 내 아내와 자식놈 넷!

여럿이 절구에 남을 쌀을 뒤져보았으나 찾지 못했다. 큰형님과 서로 다리를 베고 허기를 참으며 아침에 이르렀다. 이날밤 아내가 자살을 시도해 하마터면 죽을 뻔했는데, 다행히 洪할머니 덕분에 화를 면했다.

28일(10日 중 나흘째), 나는 큰형님에게 말했다 :“오늘 누가 살아남을지 어찌 알겠습니까? 만약 형님께서 다행히 무탈하시게 되면, 팽아놈 한 목숨 숨이 붙어 있는 데까지라도 형님께서 좀 돌봐주셨으면 합니다.”형님은 눈물을 떨어뜨리며 날 위로했다. 그리곤 헤어져서 각자 다른 곳으로 숨었다. 洪할머니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내가 어제 망가진 궤짝 안에 숨었거든, 온종일 아무 일 없었어. 오늘 자네와 바꿔서 숨지.” 그러나 아내는 한사코 원하지 않았다. 여전히 나와 함께 관 뒤로 가서 숨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병사 수 명이 들어오더니 궤짝을 부수고 洪할머니를 끌어내어서는, 주먹질 발길질 온갖 방법으로 구타했다. 洪할머니는 그러나 단 한 사람도 불지 않았다. 나는 깊이 감격했다. 후에, 둘째형님 재산 백 냥, 우리집에 남은 재산이 또 수 십 냥, 전부 다 洪할머니에게 드려, 감사를 표했다.

잠시 후, 병사들이 점점 많이 들어왔으며, 우리가 숨어 있는 곳에까지 오는 자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집 뒤에까지 와서 멀찌감치 관을 보고는 곧 가버렸다. 홀연 병사 수십 명이 공갈 소리를 지르며 오는데 기세가 심히 맹렬했다. 갑자기 누군가 관 앞에 왔고, 긴 작대기로 나의 발을 찔렀다. 나는 놀라 튀어나갔다. 알고 보니 양주사람인 그때 그 내통자였다. 얼굴은 익은데 성명이 생각이 나지 않았고, 그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사 빌었다. 그는 돈을 요구했고 돈을 받고선 나를 풀어주며 말하기를 :“네 마누라는 봐주마.” 여러 병사들에게 말하기를 :“잠시 내버려 두자.” 여러 병사들이 흩어져 갔다.

놀란 가슴이 진정하기도 전에, 갑자기 붉은 옷의 소년이 긴 칼을 쥐고 곧장 나 있는 곳으로 와서는, 큰 소리로 나를 불러냈다. 내가 나가니 소년은 칼끝을 들이댔다. 돈을 바치니, 이번에는 아내를 요구했다. 이때 아내는 임신 9개월이라, 땅바닥에 죽어라 엎드려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말하기를 :“제 아내는 임신한 지 몇 달이나 됐습니다. 어제는 더구나 지붕에서 떨어졌고, 그 때문에 뱃속아기가 잘못되어서, 앉기조차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어찌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붉은 옷 입은 자는 믿지 않고, 아내의 옷을 들추어 배를 보고는, 또 저번에 피가 묻은 바지까지 보고는, 더는 살피지 않고 가버렸다.

이 소년이 노획한 사람은 젊은 부인 한 사람, 계집아기 한 사람, 어린애 한 사람이었는데, 어린애가 엄마에게 먹을 것을 보챘다. 병사가 노하여 퍽 내지르니 머리가 터져 죽었다. 그리고는 부인과 아기를 끌고 갔다.

나는 아내에게, 이곳은 사람들에게 발각되기 쉽다, 더 이상 머무를 만한 곳이 못 된다, 적당한 곳으로 옮겨서 숨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내는 한사코 죽으려 했다. 나는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우리 둘은 밖으로 나와, 나란히 대들보에 목을 맸다.

그런데 목에 맨 밧줄이 동시에 끊어졌고 둘은 나란히 땅바닥에 떨어졌다. 미처 일어나기도 전에 병사들이 가득 대문을 들어와서 곧장 堂上(당상 ;正堂이라고도 함 ;몸체의 대청)으로 몰려갔다. 미처 곁채까지는 오기 전이었다. 나는 아내와 급히 문밖으로 달려 나가 어느 초가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창고 안은 빽빽이 부인네들이었는데, 그들은 내 아내는 받아들이고 나는 내쫓았다. 나는 급히 내달려 다른 초가집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풀더미가 천정까지 쌓여있었고, 나는 그 꼭대기로 올라가서 머리를 숙이고 엎드려 숨었다. 다시 헝클어진 풀로 위를 덮고, 이제 안심이구나 생각했다.

잠깐만에 병사가 들어오더니 풀더미 위로 뛰어 올라와서는, 창으로 아래쪽을 마구 찔러댔다. 나는 풀더미 사이에서 나와야 했고, 또 살려달라고 빌면서 돈을 바쳤다. 병사는 풀더미를 더 수색했고 몇 명을 더 찾아냈다. 죄다 돈을 바치고 화를 면했다. 병사가 가고난 후 사람들 몇은 다시 풀더미 사이로 들어갔다. 나는 그 안을 살펴보았는데, (벽 앞에) 큰 사각탁자 여러 개를 놓고 주위를 풀로 둘러치니 탁자 아래가 널따란 빈 공간이 생겨서 2,30명이 족히 들어갈 만했다. 나도 비집고 들어갔고 ‘됐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썩은 벽이 중간 부분이 부서져버리니, 구멍이 생겨서 뻥 뚫려버렸다. 밖의 병사들이 안을 들여다보고선 구멍으로 장창을 찔러댔다. 구멍 쪽에 있던 자들은 큰 부상을 입지 않은 자 하나도 없었고 나 또한 뒷허벅지를 다쳤다. 그리하여 구멍 근처에 있던 자들은 무릎걸음으로 틈새를 나가서 죄다 포박을 당했고, 뒤쪽에 있던 자들은 뒤로 물러나서 풀더미를 헤치고 도망갔다.

나는 다시 아내가 있는 곳으로 갔다. 아내와 부인네들은 죄다 땔감더미 위에 바짝 엎드려 있었는데, 피로 온몸을 칠하고 숯검정을 머리칼이며 얼굴에 발라 귀신처럼 꾸미고 있어서, 목소리로 겨우 사람을 분간할 수 있었다. 나는 부인네들에게 애걸하여 풀더미 밑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그 위를 부인네들이 우루루 누웠다. 숨이 막혔으나 감히 움직일 수가 없었고 거의 숨막혀 기절하려는 차에 아내가 대나무대롱을 줘서, 한쪽 끝을 입에 물고 반대쪽 끝을 위로 내놓고서야 숨이 통했고, 죽지 않을 수 있었다.

당시 집밖에는 병사 하나가 있었는데, 사람 둘을 죽였다. 그 일이 심히 괴상한 일인데, 글로 실을 수가 없다.

풀더미 위의 부인네들은 하나같이 무서워서 벌벌 떨었다. 갑자기 대거 비명소리가 들렸다. 병사가 집에 들어온 것이다. 병사는 다시 성큼성큼 나갔고, 돌아오지 않았다.

날이 또 점점 저물었고, 여러 부인네들이 몸을 일으켰다. 나는 비로소 풀더미 밖으로 나왔다. 땀이 비 오듯 흘렀다. 밤이 되어 아내와 함께 다시 洪할머니 집에 당도했다. 洪노인 洪할머니 다 있었고 큰형님 역시 와 있었다. 큰형님 말인즉, 낮에 끌려가서 짐꾼 노역을 하였는데, 보수로 천 돈(1냥 =10돈 =100푼)을 주고 令旗(령기)를 주며 풀어 주더라는 것이다. 도중에 목격한 것이, 어지러이 널린 시체가 산더미요, 핏물이 시냇물처럼 흐르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참혹한 지경이라 한다. 또 들은 얘기가 王씨 성의 어떤 군관어르신이 우리동네 소양(昭陽)李씨 집에서, 돈 수만으로 매일 난민을 구조하고, 그 부하들이 살인할라치면 왕왕 말리곤 하여, 그런 식으로 살려낸 자가 상당수라 한다. 이날 밤 슬피 흐느낀 끝에 잠에 깊이 빠져들었다. 다음날, 29일(10日 중 닷새째)이 되었다.

25일부터 시작하여 오늘까지 벌써 5일, 어쩌면 요행히 사면 받을 수 있을지(마지막 순간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가 생겼다. 城 내 전체를 쓸어버린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고, 城 내의 남은 민초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줄을 매달아 성벽을 내려간 자들이 태반이요, 이전까지 있던 垓字(해자 ;성 주위에 둘러 판 못)는 이미 막혀서 불통이라 지금은 평탄도로가 되었으니, 성벽을 내려간 자들이 낮에는 잠복하고 밤에 움직이며 도피하는데, 이 바람에 오히려 엉뚱한 재앙을 당하니, 城밖 불한당들이 城 중의 재물을 탐을 내어, 연일 작당을 하여 밤이면 垓字에 들어가 잠복을 하다가, 사람이 지나가면 잡아다 추궁을 하고 금은을 찾아 뒤지곤 하니, 당하는 사람이 감히 반항을 못했다.

나와 아내의 생각에, 어차피 우리는 위험을 무릅쓰고 도망갈 순 없다, 큰형님 또한 나 때문에 매정하게 혼자 가지를 못했다. 새벽녘이 되면서 그 생각을 완전히 버렸다.

원래의 은둔처에는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었다. 그런데 아내가 임신한 까닭에 번번이 위험을 넘겨온 터라, 나 혼자만 못가의 풀숲 깊숙이 숨고, 아내와 팽아는 그 위쪽에 싸안고 누웠다. 병사 몇이 왔고, 약탈하러 나갔다가 다시 왔고, 돈을 조금 주면 다들 받고 갔다.

이어서 흉악한 병사 하나가 왔는데, 쥐머리상에 매눈으로 그 용모가 추악했다. 이놈이 아내를 끌고 가려 했다.

아내는 노곤하니 일어나지 않고 이전 그 말(;임신)을 그에게 해주었다. 그는 듣지 않고 억지로 아내를 일으키려 했다. 아내가 땅바닥에서 빙글빙글 돌았고, 한사코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 병사는 칼등으로 아내를 난타했다. 피가 옷에 뿌려지고 안팎이 푹 젖었다. 저번에 아내가 나에게 신신당부하기를 :“ 만약 불행한 일이 있게 되면, 저는 반드시 죽을 것이니, 당신은 부부의 연 때문에 애걸하다 당신까지 연루되지 말기 바랍니다 ;제가 죽는 즉 반드시 당신 눈앞에서 죽어서, 당신이 (저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단념케 할 것입니다.” 이 당시 나는 멀리 풀숲 속에서 마치 남의 일인 양 방관했고, 아내가 곧 죽임을 당할 것이다 짐작했다. 그러나 병사는 결코 포기하지도 죽이지도 않고, 아내의 머리칼을 끌어 모아 팔뚝에 몇 바퀴 감더니 성난 호통을 치며 질질 끌고 갔다. 밭가 길에서 골목까지 화살처럼 똑바로 가서, 구불구불 돌아서 대로에 나왔다. 도중에 몇 걸음에 몇 번씩 아내를 가격했다. 그러다 갑자기 기마 여럿을 만났고 그중 한 사람이 병사와 만주어로 뭔가를 얘기했고, 곧바로 아내를 내버려두고 가버렸다. 아내는 그제서야 엉금엉금 기어서 돌아왔고, 대성통곡을 했다. 몸에 성한 곳이 없었다!

갑자기 또 사방에서 맹렬한 불길이 솟아올랐다. 何씨가문무덤 앞뒤로 초가집이 다수 있었는데, 옮겨 붙어 타고 즉각 재가 되었다. 그 사이사이 한 뼘 틈새 땅에는 그물을 빠져나간 자 한둘이 있었는데, 불길에 쫓겨, 사방으로 튀지 않는 자 없었다. 그러나 나오는 즉각 화를 당하니, 백에 하나도 예외가 없었다. 거기다 차라리 문을 닫고 스스로 타죽는 자 수 명에서 수백 명이니, 집 하나 안에 얼마나 많은 인골이 쌓였는지 진정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대략 이때에는 피할 곳도 없고, 피할 수도 없고, 피해도 일단 걸리면, 돈이 없으면 죽고, 돈이 있어도 죽고 ;오직 방법은 길가로 나와서, 혹여 시체들 속에 섞여들어갈 수 있다면, 오히려 生死를 운에 걸어볼 수도 있었다. 나는 아내와 애와 함께 봉분 뒤쪽으로 가서, 진흙으로 얼굴과 다리 등에 발랐다. 꼴이 거의 사람 꼴이 아니었다.

이때 불길이 갈수록 세차지면서, 무덤가 나무들이 죄다 타들어가고, 화광이 마치 번개처럼 번뜩거리고, 우르르 소리가 마치 산이 무너지는 듯하고, 구슬픈 바람이 노여운 소리를 지름에, 입이 딱 벌어질 지경, 붉은 태양이 어두침침해져 빛이 사라졌다. 눈앞 광경이, 마치 지옥에서 수많은 야차 마귀가 수백 수천 사람을 때려죽이고 쫓아가고 하는 듯했다. 너무 놀라 얼이 빠지니, 머리가 어질어질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이 몸이 아직 인간 세상에 있는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저벅저벅! 급속히 커져오는 걸음소리가 갑자기 들렸다. 이어지는 처참한 비명소리에 가슴이 떨렸다. 담장가로 돌아보니, 큰형님이 또다시 붙들린 것이었다. 멀찌감치에 큰형님이 병사와 대치 중이었다. 형님이 원래 힘이 세서, 병사를 팽개치고 벗어나 도망쳤다. 병사는 밭으로 샛길로 쫓아갔고, 한참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가슴이 한창 두근두근거리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내쪽으로 달려왔다. 맨몸에 머리가 풀어헤쳐진 사람인데, 살펴보니 다름 아닌 큰형님 아닌가. 그리고 큰형님을 추격하는 병사가, 바로 저번에 내 아내를 끌고 가다 중간에 버리고 간 그자가 아닌가. 큰형님은 병사의 위협에 못 이겨, 할 수없이 나에게 목숨을 구할 돈을 요청했다. 나에겐 은자가 한 덩이밖에 없었는데, 꺼내어 병사에게 주었다. 그런데 병사는 성내길 그치지를 않고, 칼을 들어 형님을 내리쳤다. 형님은 땅바닥에 굴렀고, 피가 흙모래를 적셨다.

다섯 살짜리 팽아가 병사의 옷을 끌며 울면서 용서를 구했다. 병사는 아이 옷으로 칼에 묻은 피를 닦고서는 재차 내리쳤다. 형님이 곧 죽을 판이었다. 병사를 돌아서서 내 머리칼을 당기며 돈을 요구하면서, 칼등으로 마구 때리며 그치질 않았다. 나는 돈을 다 써버렸다고 호소하며 말하기를 :“반드시 돈밖에 안된다면 죽을 수밖에 없소. 다른 재물이라면 바칠 수 있습니다.” 병사는 내 머리칼을 끌고 洪할머니 집으로 갔다. 내 아내의 옷가지며 패물은 큰 독 두 개에 넣어 계단 아래 엎어두었다. 죄다 꺼내어 바쳤다. 병사는 온갖 금붙이며 보석 종류는 빠짐없이 챙기고, 옷가지는 일부만 골라서 챙겼다. 다 고르고 나서, 우리 아이 목에 걸린 은으로 된 패(:銀鎖은쇄 ;長壽장수, 부귀 등을 기원하는 문구를 새겨 아이 목에 걸어주는 패)를 보고선, 칼로 끊어 가져갔다. 그는 떠날 때에 나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널 죽이지 않는다, 어차피 누군가 널 죽여줄 터이다.” 앞서 城을 몰살시킨다는 소리가 있었는데 이제 확실해졌다. 짐작컨대 반드시 죽게 되리라.

아이를 집에 두고, 아내와 급히 나가 형님을 살폈다. 목 앞뒤 전부 칼을 맞았는데 1촌 남짓 들어갔다. 가슴은 더 심각해서 상처가 벌어져 오장육부가 보일 지경이었다. 우리 둘이 형님을 부축하여 洪씨 집에 들어가서, 형님에게 물어보니, 고통조차 못 느끼고,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형님을 안돈해놓고 우리 부부는 다시 아까 그곳으로 숨었다.

부근에는 널린 시체들 사이 죽은 척 누운 사람들이 많았다. 홀연 시체들 속에서 (아는) 사람 목소리가 나왔다 :“내일 반드시 몰살 작전이 있을 터, 싸그리 죽일 겁니다. 당신 아내는 내버려두고 나와 함께 도망갑시다.” 아내 역시 강권했다. 허나 큰형님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판인데, 어찌 내가 모질게 떠나버린단 말인가? 또한 이때까지 믿을 구석은 오로지 남은 돈밖에 없는데, 지금에 돈마저 다 써버렸으니 아마도 살아남기란 불가능하리라. 순간 극통이 엄습하면서 기절했고, 한참 후에야 깨어났다.

불이 차츰 꺼졌다. 멀리 대포소리가 세 번 들렸고, 왕래하는 병정도 점점 줄어들었다. 나와 아내와 팽아는 변소 밑바닥에 들어가 앉았고, 洪할머니 역시 와서 서로 의지했다. 얼마 후, 부인네 네댓을 노획한 병사 몇이 보이는데, 나이든 부인네 둘은 흑흑 울고, 젊은 둘은 희희낙락 태평스러웠다. 뒤이어 병사 둘이 쫓아와서 부인네들을 뺏으려 들었다. 그리하여 병사들끼리 격렬한 싸움이 벌어졌다. 그러다 한 병사가 만주말로 화해를 권하여 끝이 났다.

갑자기 병사 하나가 젊은 부인을 안고 나무 밑으로 가서 야합했고, 나머지 두 부인네 역시 욕을 당했다. 노부인은 울며 안 된다 애걸하였으나, 두 젊은 부인네는 태연스럽게 수치를 몰랐다. 수십 명에게 간음을 당했고, 게다가 나중에 추격해온 두 병사와도 교접했다. 그리하여 그중에 젊은 부인 하나는 걷기조차 힘들 지경이 되었다. 나는 이 여자가 焦(초)씨 집 며느리임을 알아보았다. 그 집이 평소 한 짓을 생각해보면 이런 지경에 이름이 마땅하리니, 나는 놀란 와중에도 탄식을 금치 못했다.

순간, 붉은 옷을 입고 칼을 찬 사람 하나가 나타났다. 만주모자를 쓰고 검은 신을 신었고, 나이가 서른이 채 안 돼 보였으며, 시원스럽고 수려한 용모였다. 시종이 하나인데, 황색 옷에 갑옷을 둘렀고, 역시 훤칠한 용모였다. 뒤에는 南人(남인 ;南明人) 몇이 짐을 지고 따랐다. 붉은 옷을 입은 자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보아하니, 넌 이들과 한패가 아닌 듯한데, 네가 누구인지 바른대로 대라.” 나는 머리를 굴리기를, 때로 잘난 체하여 만사 보전하는 자가 있지만, 잘난 체하다 목이 달아나는 자 또한 있다, 그런 생각에 감히 이실직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붉은 옷을 입은 자는 크게 웃으면서 황색 옷을 입은 자에게 말하기를 :“자네 승복하겠나? 나는 이미 이 오랑캐가 예사로운 사람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또 洪할머니를 가리키며 누구냐고, 나에게 물었다. 다 말해주니 붉은 옷을 입은 자 왈 :“내일 왕야가 영을 내려 칼을 봉하리라(살륙을 멈추리라). 자네들은 살았음이야! 그러니 행여 자멸하지 말라.” 그리곤 따라온 부하에게 명하여 옷 몇 벌과 금 한덩이를 나에게 건네주며 물었다 :“넌 며칠 동안 못 먹었는가?”5일이라고 답하니 :“날 따라오라.” 나와 아내는 따라가면서도 한편으론 의혹에 빠질 수밖에 없는데, 또 감히 안갈 수도 없어서 따라갔고, 어느 집에 다다랐다.

비록 집은 작았으나 어육이며 양식이며 장작이며 없는 게 없이 풍부했다. 할머니 하나와 열 두셋 돼 보이는 아이 하나가 있는데, 사람들이 오는 것을 보고는, 크게 놀라서는, 땅바닥에 머리가 닿도록 엎드려 용서를 구했다. 붉은 옷을 입은 자는 말했다 :“네 목숨을 잠시 맡아두겠다. 너는 날 대신하여 이 네 사람을 돌보아라. 제대로 못하면 널 죽이겠다. 네 아들은 내가 데려간다.”그리고선 나와 작별을 고하고 그 아이를 데리고 사라졌다.

할머니란 사람은 鄭씨 성이었다. (아들 때문에 불안해서) 나와 붉은 옷을 입은 자가 친척인지 궁금해하기에, 당신 아들은 반드시 돌아올 것이오, 어거지 위로의 말을 해주었다. 날이 저물었다. 듣기로 처남이 재차 병졸에게 끌려갔다 한다. 살았을지 죽었을지? 때문에 아내는 크게 상심했다. 잠깐 사이 할머니가 생선 반찬에 밥을 가져와 먹게 해주었다. 이 집에서 洪할머니 집이 멀지 않았기에, 내가 밥반찬을 가져다 형님에게 먹여주는데, 형님이 목을 다쳐 삼키지를 못해서 몇 젓가락 만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형님의 머리칼을 닦고 피를 씻어내는데, 가슴이 만 갈래 찢어지는 듯하다!

이날에, 붉은 옷을 입은 자가 나에게 한 말을, 아직 城을 나가지 않은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주었고, 민심이 어느 정도 진정되기 시작했다. 다음날은 5월 초하루(10日 중 엿새째)이었는데, 공포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긴 하였으되, 그래도 역시 살인이 없지 않았으며, 노략질 역시 없지 않았다. 오히려 으슥한 외진 곳이 조금이나마 더 안전하지, 富豪大家(부호대가)는 역시나 싸그리 털리고, 그 자녀는 육칠 세부터 여남 살까지 강탈을 당해 씨가 마를 지경이었다. 이날, 흥평백 군사(적에게 투항한 군대임)들이 재차 양주성에 들어왔고, 그나마 헝겊반조각쌀한톨까지 싸그리 범 아가리에 들어가버렸다. 앞에 놈이 얼레빗으로 빗고 나중 놈이 참빗으로 빗나니, 세상사 必有 곡절이라.

초이틀(10日 중 이레째), 전해지기로, 官府(관부)에서 각급 행정구역에 이미 관리를 배치하였고, 관리가 安民패를 쥐고 두루 백성에게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한다고 한다. 관리들은 또 알리기를 각 절의 승려들은 쌓인 시체들을 불사르라 명하였다. 절에 숨었다가 돌아온 부녀자 또한 적지 않고, 공포와 기아로 죽은 사람 또한 다수였다. 시체를 불사를 때 작성한 장부에 기재된 숫자를 뒤져보니, 전후 합계 약 80만 여, 우물에 떨어져 죽거나 강에 빠져 죽거나, 문을 닫아걸고 스스로 불에 타죽거나, 외진 곳에 가서 목매달아 죽은 자는 포함하지 않는다.

이날, 솜을 태운 재 및 인골을 태운 재를 가지고 형님 상처를 치료했다. 저녁에, 그때서야 둘째형님과 아우의 죽음을 큰형님에게 울면서 알렸다. 형님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초삼일(10日 중 여드레째), 양곡 창고를 열어 난민 구제에 나선다는 布告가 떴다. 나는 洪할머니와 함께 결구관(缺口關 ;地名 또는 00)으로 가서 쌀을 받았다. 쌀은 독진(督鎭 ;총사령관 사가법)이 비축했던 군량미였고,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그러나 이 수천 석 쌀이 눈 깜짝할 사이에 싹 없어졌다. 헌데 쌀을 지고 오가는 자 하나같이 얼굴이 엉망이고, 팔이 잘린 자 다리가 부러진 자, 온몸에 칼자국이고, 핏물이 젖어 엉겨 붙었으며, 얼굴이 온통 촛농 자국 같은 것이 줄줄 그려졌고, 옷은 너덜너덜 누더기이고, 비린내 더런내가 코를 찔렀다. 허다한 사람들이 작대기를 짚고 풀 포대를 옆에 끼고, 딱 신묘 안에 지옥에서 뛰쳐나온 원귀 꼴인데 :그나마 조금 보기 괜찮은 자라고 해도 거지꼴에 지나지 않았다. 쌀을 받다 서로 빼앗는데, 이때는 친척이고 친구고 상관하지 않으며, 강자는 받고 갔다가 다시 와서 또 받아가고, 약자는 온종일 한 되도 얻지 못했다.

초4일(10日 중 아흐레째), 하늘이 개기 시작했다. 도로에 쌓인 시체들이 빗물에 젖어 불기 시작했다. 시퍼런 살가죽은 몽고북 가죽처럼 되었으며, 속의 혈육 또한 썩어들어갔다. 악취가 코를 찔렀고, 거기다 햇빛에 굽히자, 냄새는 더욱 심해졌다. 전후좌우 곳곳에 시체를 불살랐고, 그 연기로 실내까지 자욱해져 안개가 낀 듯했으며, 비린내가 100리까지 뻗어갔다. 이곳 백만 생명이, 하루아침에 횡사를 하니, 아마 설령 천지 귀신이라도, 몸서리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초5일(10日 중 10日째), 깊숙이 숨었던 사람들이 드디어 살그머니 나오기 시작하니, 매 상봉마다, 죄다 눈물 흘리며 한마디 말도 하지 못했다. 우리 다섯 사람은 설령 조금 안정을 되찾긴 하였으나, 그래도 감히 집 안에 오래 있지 못하고, 새벽에 일어나 일찌감치 밥을 먹고, 바로 야외로 나갔다. 옷차림과 꾸민 행색은 이전과 마찬가지였다. 난리 틈을 타 오가며 양식을 터는 자, 아마도 수십 패거리 아래는 아닐 것이다. 비록 창칼만 안 들었지, 공갈 협박하고, 재물을 갈취하고, 그때마다 몽둥이에 맞아 죽는 자가 생기곤 했다. 어쩌다 부녀자를 만나면, 희롱하고 강탈하고 겁탈을 하곤 하니, 처음엔 이것이 청나라 군대인지 양주성 방어병인지 난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날, 큰형님이 결국 부상이 심하여서, 칼에 베인 상처가 터져서 죽었다. 비통!하구나. 말할 수 없이 괴롭다. 돌이켜보니, 우리가 처음 피난할 당시에, 형님 아우 조카 나 아내 자식놈 모두 여덟 사람, 지금 고작 세 사람이 남았다. 처제들은 셈에 넣지도 않았다. 양주사람 중에 우리집 같은 집이 도대체 몇이던가? 여러 번을 죽을 뻔,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다행이겠건만 죽지를 않았다. 나와 아내처럼 요행히 살아남은 자 극소수이리라. 그러나 이 백만 천만 고뇌를 어이하리!

4월25일부터 시작하여 5월5일까지, 총 10일. 그동안 직접 겪은 바를, 직접 눈으로 본 바를, 고대로 이렇게 붓 가는 대로 적는다. 멀리 풍문에 들려오는 소리는 적지 않았음이라. 후세 사람이 다행히 태평세월에 태어나, 난리 걱정 없이 사는 복을 누린다면 ;스스로 갈고 성찰하지 아니하고, 무턱대고 삶을 낭비하는 자, 이것을 읽고 마땅히 두렵게 여겨 경계할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