柯潔(가결) 인터뷰 :승리 후의 쾌감을 즐긴다
출처 :새파도체육(新浪체육) 2014.11.14 ☜
점점 강해지는 가결
들어가는 말 :偶像(우상)이 없다고, 가결은 말한다. 대부분의 90後들로 말하자면, 그들 자신이야말로 진실로 자기들 자신의 대변인이기 때문이다. 바둑판 위 가장 광채로운 순간을 우리가 예측 불가능함과 마찬가지로, 또한 가결 개인의 결정적 장면을 우리가 설계할 순 없다. 바둑 안에서든 바둑 밖에서든, 다 그러하다.
가결, 1997년 절강(浙江) 려수(麗水) 출생. 2003년 바둑 배우기 시작. 현재 프로 四단.
2007년 전국아동바둑선수권 우승, 2008년 응씨배세계청소년바둑선수권 소년부 우승, 2011년 응씨배세계청소년바둑선수권 청년부 우승.
2013년, 가결은 갑조리그에서 21전 15승의 전적으로 ‘갑조리그 신예상’을 획득한다. 2014년 갑조리그는 지금 진행 중인데 이 記事 작성 때까지 20차전 중에 19번 출전하여 놀랍게도 17승을 거뒀다.
2014년 9월 20일, 제2회백령배세계바둑공개대회 준결승에서, 가결은 강적 박정환을 2:0으로 격파하며 결승에 올랐다.
2014년 10월 24일 제16회 아함동산배 결승에서, 가결은 세계선수권자 당위성(唐韋星)에게 승리, 그의 프로 생애 첫 국내타이틀을 따냈다. 동시에 일본 아함동산배 우승자 이야마 유타(井山裕太)와 中日우승자 대항전을 벌일 자격을 획득하였다.
가결의 思考
“당신이 날 두고 신동이라 말할 수야 있겠지만,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바둑을 잘 두는 아이라면 다들 매우 총명하다. 다만, 國手 행렬에 끼기 위해선 보통 이상의 굳은 의지와 끈기가 매우 중요하다.”
“(승리를 위해서) 별다른 비결은 없다. 단지 압박감을 최대한 피하고 긴장을 풀고, 그리고 기회를 기다린다. 마음을 반드시 잔잔하게 가다듬어야 한다. 무슨 생각이 있어선 안 된다.”
가결이 진하게 異彩(이채)를 띠는 지점은, 한 소년 棋士가 바둑 안 바둑 밖에서 풍기는 질감의 솔직함이다. 전통적 특징과는 거리가 멀다 느껴지는 가결, 솔직한 대화를 통해 하나 하나 초점을 모아보았을 때 그는 그야말로 딱 90後 소년의 이미지다. 다만 棋士는 결국 棋士, 이 지점에서 그는 보통의 소년들과 달라진다. “우리 세대 棋士 중의 NO.1이 되고야 말겠습니다.” 가결은 자기가 정해놓은 인생 理想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問 :듣기로 바둑 학습이 태교 시절부터 시작되었다던데? (역주 :가결 아버지는 엔지니어로서 바둑광. 어머니는 市운동회 바둑 부문 여성부 6등 경력자. 가결을 임신하고는 辭職(사직), 이 당시 남편이 바둑교실을 열었는데 아내는 대부분 시간을 바둑교실에서 보냈다. 그리하여 가결이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딱 딱 바둑돌 소리를 들었다더라... 어느 신문에 난 記事 중의 내용인데, 이게 소위 ‘가결이 바둑胎敎설’의 연원이다.)
가결 :넷상에서 말해지는 태교니 뭐니 하는 것은 사실 그렇지가 않았다. 과장된 것이다. 다만, 바둑을 배우기 위해 일찌감치 북경살이를 시작하긴 했다. (역주 ;북경 호적이 없는 외지인이 이런 저런 사정으로 북경살이를 하는 경우를 일컬어, 北漂(북표). 의미는 ‘북경 떠돌뱅이’ 정도. 즉, ‘우리 집안이 저 때문에 일찌감치 北漂가 되었어요’ 라고 말하는 가결이다. 중국 프로棋士라면 아주 흔한 사례.)
최초엔 섭위평도장이었다. 당시 도장은 기숙사 체제였다. 아빠엄마는 날 집어넣어놓고 바로 가버렸다. 당시 난 어렸는데, 엄마가 한 달에 한 번씩 날 보러 왔다, 엄마는 떠날 때마다 한바탕 울었다.
問 :언제쯤 입단하게 되었나? 당시 무슨 특별한 소감은?
가결 :북경에 온 지 2,3년 후였다. 당시 나는 도장에서 전심전력으로 공부했고 바둑에 아주 미쳤었다. 또한 다른 사람을 격파하는 쾌감과 성취감을 특히 즐겼다. 이게 입단의 원동력이 되었다.
다만 내가 단증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운이 좋아서였다. 강력한 바둑운이 그때 갑자기 폭발했다. 노력이 중요함은 당연한 거고, 다만 당시 나의 棋力은 확실히 부족했다. 입단대회 전에 어느 프로 선생님과 두었다, 날 두 점을 깔게 했는데, 내가 졌다. 입단대회 후에도 그는 나를 두 점을 접었다. 두 점이란 치수는 매우 큰 차이이다.
問 :입단하고선 뭘 했나?
가결 :입단 이후에도 여러 도장을 돌아다녔다. 이런 경험이야말로 내 전진 행로 상의 불가결한 단련이다. 어느 프로棋士가 나에게 한 말을 기억한다 :‘아마추어 때는 네가 보석일 것이다. 그러나 프로로 들어선 후엔 넌 한 포기 풀이다.’ 프로의 난이도가 아마추어보다 크기 때문에, 아마추어 정상급 棋士가 프로 중에 맨 밑바닥 棋士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봉황 꼬리보다는 닭대가리, 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입단하고 프로바둑계에 들어가서 내 성적은 그저 그랬다. 다들 내 실력을 안된다고 보았다. 난 승복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게 뭐 나쁘지만은 않았다. 반대로 나에게 자극을 주었으니까. 입단대회를 마친 후 원래는 진학을 할 생각이었는데, 명예를 바로세우기 위해 생각을 바꾸었다. 반드시 정상을 정복하여 이 분을 풀겠다고. 그렇다고 무슨 앙심을 가진 것이 아님은 당연하다. 단, 실력이 남보다 떨어지면 확실히 무시당한다. 성공하면 王이고 실패하면 도적이라고, 바둑이 바로 그렇다. 만약 네 실력이 떨어진다면, 아무리 잘 생겨도, 그 어떤 재주가 있어도, 안된다.
問 :바둑을 배우는 사람은 많은데 지속해나가는 사람은 적다.
가결 :‘將帥(장수) 하나 출세 뒤엔 白骨이 일만’이라고, 바둑이 딱 그렇다. 배우는 사람이 많은데 대부분 중도에 포기한다. 사실 나 또한 그런 매우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입단대회 이후 도장의 교습비는 디게 비싸고 내가 뭐 재벌2세도 아니고. 집안이 극심한 경제적 압박을 견뎌야 했다. 훈련비에 집세까지, 지출이 아주 컸다. 당시에 심지어 지하방에 산 적도 있다. 힘들었지만 이겨내긴 한 셈이다.
젊다, 겁이 없게 마련이고, 어리다, 까불게 마련이다. 난 중도포기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되돌아가 진학하는 건 내 못남을 증명하는 꼴일 뿐. 당시 난, 나는 반드시 된다, 반드시 결과를 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해야만, 영예롭게 해내는 자기증명만이 후회 없는 청춘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사실 바둑의 길은 高地를 향한 쉼 없는 등반의 과정으로서, 두려움 없는 용기와 굳센 의지를 필요로 한다. 당신은 아마추어부터 시작하여 우선 프로라는 업계로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 당신은 또 그 路程(노정) 도중 대다수 경쟁자를 뛰어넘어야 한다. 이건 일종의 피라미드와 같다. 꼭짓점에 서야만 군웅들을 내리 깔아볼 수 있다.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길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아무리 험하더라도,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가야 한다.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한다. 난 나다, 난 반드시 王이 될 수 있다. 과정은 매우 무미건조하며 또한 매우 잔혹하다.
問 :바둑 공부하는 사람에게 국가팀이란 간단히 넘기 어려운 장벽이다. 너는 어떻게 뛰어넘었나?
가결 :맨 처음 참가한 국가팀 선발전에선 뒤에서 몇 번째인 성적으로 미끄러졌다. 이후 이,삼 년의 노력 끝에 마침내 일등인 성적으로 국가팀에 뽑혔다. 그러나 진입 이후 몇 년 동안은 좀 흐리멍덩하게 보냈다. 대략 적응과정이랄 수 있겠는데, 이런 과정 또한 자기 단련 과정이다.
問 :국가팀 훈련과 도장 훈련은 어떤 차이가 있다고 보나?
가결 :국가팀은 도장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棋士들이 죄다 모여 있기 때문에, 이전에는 보기 쉽지 않다고 여겼던 高手들을 늘 보게 된다. 예를 들어 고력(古力) 상호(常昊) 이런 최일선 高手들이다. 또한 棋士들 간 교류할 기회도 많고 국제대회 참가 기회가 있을 수도 있다. 이런 점들이 棋士에겐 매우 중요하다. 대다수 棋士들은 競技(경기)를 통해서만 자신이 쓸 만한지 아닌지, 자기가 둔 바둑이 잘 둔 바둑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프로 진입 이후의 棋力 향상은 기본적으로 자기에게 달렸다. 어느 정도 경험이 누적된 이후라면, 각 棋士는 각기 자기 棋風(기풍)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바둑에 대한 자기 고유의 이해가 있어야 한다. 타인이란 내게 어떤 일깨움을 줄 수 있을 뿐, 타인의 방식을 판 내내 답습할 순 없다. 棋力을 제고할 생각이라면 역시 자기 깨달음에 의해야 하고 스스로가 탐색해가야 한다.
問 :정체기가 있었나?
가결 :입단 전후로 몇 년 동안 계속 정체기였다. 눈곱만큼의 그럴 듯한 성적도 없었다. 내 실력 폭발은 딱 요 2년 기간 동안이다, 이전에는 어떻게 두어도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다. 실력도 안 됐고 운 또한 없었다. 몇몇 대회에선 첫 판에 나가떨어지곤 했다...... 내 바둑이 이렇게 엉망이라니, 당시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거기다 심적으로도 미숙하여 바둑 둘 때 늘 긴장을 했다. 때문에 남들이 날더러 천재라 말을 해도 나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問 :상대하기 어려운 棋士가 있는지?
가결 :전부 다 어렵다. 현재는 다들 강하고 특별히 앞서가는 강자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시대적 원인이다. 현재는 정보가 발달했고 대회는 완전히 공개되고 경쟁은 공평하다. 두각을 드러내는 棋士가 많을 수밖에 없다.
棋士들이 다들 일인자가 되고자 함은 당연하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다. 단, 일인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 바둑이 강해서 남들보다 한 차원 뛰어나야 한다. 그래야만 일인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問 :바둑에서 가장 널 끌어당기는 지점은 무엇인가?
가결 :그것의 승부적 측면이다. 내가 남보다 강함을 증명할 수 있다는 그 점이다. 때문에 남자애가 바둑을 더 좋아할 것이다. 또한 다른 일련의 무엇을 바둑에서 배울 수 있음은 당연하다. 예를 들어 흉금이 너무 좁아지지 않게 된다. 그러나 바둑에서 나를 가장 끌어당기는 부분은 역시 이긴 후의 쾌감과 승리자로서의 허영심이다. (역주 ;원저자가 굵게 하였음)
나는 가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생각이 이거면 말도 이거다. 만약 누군가 자기가 하루 종일 바둑을 두었다 말한다 치자. 나는 그런 말을 그다지 믿지 않는다. 얼마나 따분하겠나. 다만, 바둑은 생계수단이기도 하니까, 일단 시작했으면 벗어날 수가 없다. 왜냐면 다른 걸 한다 해도 결국 안될 테니까. 좀 할 줄 아는 건 이거뿐이니까. 棋士 역시 하나의 직업이다. 직업으로서, 처음엔 좋아할 것이고 나중엔 결국 염증을 느낄 것이고 단조롭기 그지없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혹시 다른 사람은 안 그럴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다.
나는 소위 '일생에 걸친 열정'이란 걸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어쩌면, 바둑계 내에서 보통에 매우 근접한 ‘별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問 :우수한 棋士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할 소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가결 :강심장이 매우 중요하다. 먼저 심리적 타격을 견뎌낼 수 있어야 하고 그런 다음에 바둑이 강해야 한다. 매우 간단한 이치이다. 바둑이 안된다면 다른 부분이 아무리 좋아도 소용없다.
바둑이 강해지고 싶다면, 내 생각에 20%는 타고난 재능이고 80%는 노력이다. 재능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부모들에게 말하고 싶은데, 만약 아이가 바둑을 제대로 못 배운다면 억지로 계속하지 말길 바란다. 분명히 재능과 큰 관계가 있다. 하물며 프로로 들어가는 길은 외나무다리처럼 좁아서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이다.
問 :너의 취미에 대해 얘기해 본다면?
가결 :대체로 집에 틀어박혀 지내는 편이다. 취미 또한 그런 쪽이다. 어떤 때는 나가서 돌아다니기도 한다. 영화를 좀 좋아하는 편이고, 게임은...... 할 줄 아는 게임이 상당히 있는데 잘 하지는 못한다. 한 가지를 오래 하면 지루해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쉽게 싫증을 내는 편이다.
問 :목표가 무엇인지?
가결 :목표란 보통 궁극적인 과제 같은 게 아닐까? 나의 목표라면~, 많은 타이틀을 따고 싶고, 그리하여 돈을 많이 벌고, 바둑계의 일인자가 되고 싶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