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이세돌과의 放談 - 십번기, 古力을 두둔하다
출처 :람렬(藍烈) bbs.lianzhong.com(聯衆논단) 2014.10.30 ☜ 관련사진 있음
10월27일 오후 2시, 이세돌이 중국국제항공을 타고 수도공항(북경공항 ;역주)에 도착했다. 오후 4시45분, 같은 항공의 정기편으로 경덕진(景德鎭)으로 날아갔다. 경덕진은 광서화람(廣西華藍)의 제17차전 안방으로서, 광서화람은 매년 한 번씩은 경덕진을 안방으로 잡는다. 이날 수도공항 국제선터미날은 ‘흰모자’를 머리에 쓴 사람들로 온통 북적거렸다. 원래 이날이 중국이슬람 성지순례단이 귀국하는 날이었다. 게다가 북경에서 갈아타는 이슬람 단체가 막 들어오는 참이라, 한쪽은 들어오고 한쪽은 나가고,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다행히 이세돌이 검은 윗도리 검은 바지 검은 장발에, 어깨에 검은 가방 손에는 노트북 담은 검은 가방이라서 눈에 잘 띄었다. 이번 출행에서 필자의 신분은 첫째로 이세돌의 통역이고 그 다음이 lianzhong(聯衆련중)의 기자이다. 전자에 충실하기 위해 이번 출행에 사진기를 들고 나오지 않았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신분을 교환함으로써 마중 임무를 완성. 비행기에서 두 시간을 시달린 이세돌이 니코틴이 필요함을 필자는 알기에, 그에게 바깥으로 나가 한 대 굽자고 제의했다. 담배라는 신기한 물건은 생면부지의 남자들을 쉽게 친숙하게 만든다.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에서 주인공은 동굴 속의 유격대원들에게 담배 한 개비를 돌려 피우게 한다. ‘플래툰’에서 주인공은 비 맞은 생쥐 꼴 행색의 패잔병이 건네주는 쭈글쭈글한 돗대를 거절하지 못한다. 이제 이세돌의 말보따리가 터지기 시작했다.
삼성배 8강전의 영향, 한국 國手전 8강전 패배
이세돌은 쓰게 웃으며 한국 國手전은 포기한 것과 마찬가지다, 라고 말했다. 10월21일, 한국 제58기國手전 8강전에서 박영훈에게 흑으로 272수 불계패했다. 이세돌의 말, 불현듯 제어할 수 없는 권태를 느꼈다, 국수전은 3시간짜리 장고바둑으로서, 설령 4강에 진출한다고 해도 많은 관문이 남아 도전권을 딸 보장이 없다, 대충 두어 져버렸다.
필자가 물었다 - 삼성배 시월(時越)에게의 패배 영향인가?
10월16일, 이세돌은 2014삼성배 8강전에에 시월에게 역전패 당했다. 이세돌 왈, “그건 반드시 이겨야 할 경기였다, 게다가 이길 수 있는 경기였다, 그런데 져버렸다.” 필자가 물었다. “마지막에 패를 걸며 잡으러가지 않았다면, 이길 수 있지 않았나?” 이세돌 왈 :“그 판 초반에 내가 작은 실수를 했다, 결과 시월의 더 큰 실수를 불러왔다. 그리하여 국면이 내가 대마를 잡을 수 있는 진행으로 흘러갔다. 그런데 필살의 그 끼움은... 문제는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전에도 이따금 멍해져갖고 한 수를 잘못 보는 경우가 있긴 했다. 그런데 열몇 수를 멍해지는 경우는 없었다. 시월과 두면서 그런 식으로 멍해졌다. 어쩐 일인지 정말 영문을 알 수 없다.”
이세돌은 그 판의 패배가 큰 타격이었다고, 지금도 생각나곤 한다고,.. 또 후회하기를 :“16강전을 마친 후 서울로 돌아갔고, 거기서 가볍게 한잔했고, 8강전 새벽에야 유성으로 돌아왔다. 서울로 가지 말고 쉬었어야 했다. 왜 유성에 머무르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필자가 둔하긴 하지만, 아마도 십번기의 후유증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십번기 때문에, 이세돌은 꼬박 반년 이상을 정상적인 시즌과 유리되었고, 名人전 준결승 3번기에서 이동훈에게, 天元전에서 제자 변상일에게 졌다. 이어서 삼성배에서 시월에게, 國手전에서 박영훈에게 졌다. 필자는 이세돌에게 십번기가 다른 대회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냐고 물었다. 이세돌은 간단하게 부인했다. 다만, 십번기 이후 삼성배 직전에 ‘살짝 흥분’했음을 시인했다.
십번기, 이세돌의 평가
이세돌과의 한담(정식 취재가 아님을 상기하라 ;역주)에서 당연히 십번기가 가장 중대한 화제였다. 이세돌의 기본적 입장은 고력 변호였는데, 필자는 이 점이 놀라웠다.
이세돌 왈 :“십번기를 이겨서 당연히 기쁘다, 다만 판 외의 요인이 십번기에 영향을 미쳤다.” 이세돌이 말하는 판 외의 요인이란, 대회 개최지의 문제이다. 이세돌이 말하기를 :“십번기의 초반부 3판은 정상적이다. 단 제4국에서 제7국은 다 비정상이다.” 필자가 물었다. “제4국은 당신의 안방 경기이다. 그런데 비정상?”이세돌 왈 :“대회 개최지가 비록 신안군이긴 했지만, 나로선 서울에서 대여섯 시간을 차 타고 가서야 현장에 도착한다. 사실 한국 이 모퉁이에서 한국 저 모퉁이로 달려가는 것이다.”
금년 3월에, 이세돌은 招商(초상)부동산배(항주) 춘란배(태주) 및 성도(成都)의 십번기 제3국까지, 채 열흘이 안 되는 동안 고력에게 3연속패배했다. 이세돌은 초상부동산배 참가를 후회했으며, 대회 일정 배치가 그렇게 빽빽함을 불만스러워했다. 이세돌 왈 :“십번기가 다른 대회 때문에 지장을 받아선 안 되었다.”이세돌이 이어서 4월에 자기의 ‘안방’에서 고력에게 패배하면서 십번기는 2:2가 되었고, 이세돌은 두 달에 걸쳐 고력에게 4연속패배했다.
이세돌 왈 :“고력은 나에게 4연승을 했고 십번기 점수를 2:2로 만회했다. 그가 한창 기세를 탄 바로 그때, 주최 측은 당연히 고력을 위한 최대한의 좋은 환경을 조성해야 했다. 대회 개최지야 물론 사전에 정해진 것이고, 高山病이 對局(대국)에 그렇게 큰 영향을 주는지를 나와 고력이 미처 몰랐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샹그리라와 라싸는 근본적으로 십번기를 치를 장소가 못됨이 판명되었다. 샹그리라에 도착한 후, 나는 곧바로 객실로 들어가서 컨디션을 조절했다. 그런데 고력은 객청의 초대에 응해야 했다. 당시 고력의 표정은 매우 난감해 보였다.
이세돌은 또 말하기를 :“샹그리라 대국에서 고력이 승리할 기회가 세 번 있었다. 그런데 그는 하나도 잡지 못했다. 高山病이 그에게 준 영향은 매우 컸다.” 륙안(六安)에서의 제6국에 대하여도 이세돌은 불만이 있었다. 對局이 벌어지는 奧地(오지)는 차를 타고 덜커덩 덜커덩 몇 시간을 가서야 도착한다. 게다가 대국장 주변엔 기분 전환할 풍경조차 없어 산책도 불가능했다. 고력이 제5국을 패배한 후에는 기본적으로 승리가 불가능하다고, 이세돌은 말했다. 그의 이런 판단은 승부 추이에 대한 승부사의 예민한 직감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중경(重慶) 對局... 필자는 이세돌이 “일찍 끝낼수록 서로가 해방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 이세돌은 가부 대답 없이 웃기만 했다.
‘피차 져서는 안 될 경기’라고 이세돌은 십번기를 정의했다. 그는 자기의 승리를 다행스러워함과 동시에, 고력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하며 그를 변호했다. 이세돌의 이런 일련의 발언은 결국 십번기를 치른 경험이자 교훈으로 간주할 수 있다. 만약 몇 년 후에 시월과 박정환이 십번기를 둔다면, 반드시 십번기 자체를 중시하여, 대회 일정 및 대회 장소를 결정함에 있어서 棋士의 입장을 서서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이며, 棋士가 여하한 지장도 받지 않고 유감없는 바둑을 둘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할 것이다. 이세돌은,“십번기 중 일곱 판을 중국에서 둠은, 사실 고력에게는 일종의 압박이다”라고 말하면서도, 자신 입장에서 ‘안방에서 딱 한 판’은 자기 역시 불만이라 말했다. 이세돌이 만족한 부분은, ‘한 달에 한 판’이란 대회 일정, 그 외에 그는 다른 대회 對局이 십번기에 지장을 주지 않기를 원했다. 마지막으로, 고력이 십번기 이후 받을 타격에 대해서 이세돌은 :“만약 내가 졌어도 뭐 별다를까...”라고 말했다.
경덕진에 도착한 시각은 저녁 7시, 기온 섭씨22도였다. 잠시 후의 저녁연회에서는, 경덕진 市政法위원회 書記(서기) 조웅태(曹雄泰), 광서화람그룹 이사장이자 중국바둑협회 부주석 뢰상(雷翔)이 광서 및 산동 두 팀을 위한 환영회를 열었다. 연회에는 산동팀 감독인 조대원(曹大元) 九단과 화이강(華以剛) 八단 및 진영(陳盈) 초단, 그리고 故진조덕(陳祖德) 九단의 부인 하채연(夏彩娟)도 함께 했다. 조웅태 서기는 진조덕 九단의 친구로서, 그 인연으로 경덕진은 광서화람의 ‘제2의 집’이 되었고, 매년 한 번씩 경덕진에서 광서화람 안방경기가 벌어지게 되었다. 경덕진, 이곳 천년의 瓷器(자기)색 가득한 고즈넉한 도시, 바둑과의 결연으로 또 다른 천년의 운명을 알렸다. 경덕진, 그리하여 사실상 이세돌에게 축복의 땅이 되었다.
경덕진 금래(錦萊)국제호텔 도착은 저녁 여덟시가 넘어서였다. 이세돌은 바로 8층 객실로 올라가 쉬었다. 필자의 방 또한 8층이었는데, 방 안 공기가 건조한데다가 우릉우릉 소음이 끊이지를 않았다. 필자는 참지 못하고 한밤중에 나가 거리를 한 바퀴 돌았다. 호텔 옆은 경덕진대학.
이튿날 아침 9시15분, 필자는 시간을 맞춰 입구에서 이세돌을 기다렸다. 對局이 있는 날엔 이세돌은 아침을 먹지 않는다. 이세돌은, 소음 때문에 잠을 못 이뤄 새벽 3시까지도 깨어 있었다고 툴툴거렸다. 이 소음은 자정이 되어서야 멈췄는데, 문제는 또 이때부터 온수가 안 나온 것이다. 필자 또한 새벽 3시 넘어서야 잠이 들었다. 잠을 그래 잤지, 찬물로 씻었지, 아침 못 먹었지, 근데 필자는 대회 출전을 안 하지.
‘先手필승’, 그리고 中韓신예 中韓대결
필자는 ‘한국대표팀 탐사-신민준의 하루’라는 글을 편역한 적이 있다(사이버오로 記事 ;역주). 신민준의 방 책상 위에 ‘先手필승’이라는 액자가 걸려 있다. 신민준은 입단 약 일 년 전에 이세돌의 제자가 되었다. ‘先手필승’은 이세돌이 신민준에게 준 ‘바둑要訣(요결)’이다. 그런데 ‘先手필승’이 어떤 의미인지, 字句 상으로 그 해석은 여러 가지가 가능하다. 다행히 이세돌 본인에게 물을 수 있었다. 이세돌의 고견을 얻어낼 수 있으리라곤 미처 생각도 못했는데.
이세돌의 말 :“신민준은 수동적 棋風(기풍)에 속한다. 그래서 난 그를 과감히 출격하는, 공격적인 바둑을 두도록 이끌고 싶었다. 포커 또는 탁구든 바둑이든, 최고수의 속성은 모두 공격적이다. 실력의 증강은 이런 순환을 따른다. :공격적(수비적)인 사람이 실력이 늘은 후 수비적(공격적)이 되고, 이어서 어느 정도 시간이 쌓인 후 공격적이 되고, 이후에 다시 수비적, 이어서 다시 공격, 이후에 다시 수비... 단, 마지막의 최고 수준은 반드시 공격적. 요컨대, 수비만으론 최고가 될 수 없다.”
--이창호는 수비적 棋風으로 최고가 되지 않았는가? 필자가 물었다.
이세돌의 말 :“이창호가 의존한 것은 정확한 형세판단과 과학적 끝내기이다. 이창호 이전에는 그렇게 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현재는, (과학정확적) 형세판단과 끝내기는 이미 프로棋士가 반드시 가져야 할 기본 자질이 되었다. 이런 전제 하에서, 현재의 바둑에선 과감하게 공격하고 (自己流를) 과감하게 표출하여야만 최고가 될 수 있다.”
변상일 또한 이세돌의 제자이다. 나는 핸드폰을 열어 농심배에서 변상일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10월21일의 제19회농심배 제1국에서, 변상일은 선봉으로 출장하여 이치리키 료(一力遼)에게 졌다. 필자 왈, “변상일은 긴장한 듯 보였다. 아직 애 같다고 느꼈다.” 이세돌 왈, “될지 안 될지는 일 년 더 지켜보아야 한다.” 이세돌은 돌아가서 한 달 동안 집중적으로 변상일을 가르칠 작정이었다. 中韓신예에 대해 이세돌은 그 나름의 견해가 있었다.
이세돌 왈 :“한국의 차세대 신예로 먼저 ‘양申’을 보아야 한다. 그중에, 신민준은 내년 한 해가 중요하다. 만약 내년에 ‘될지 안 될지’를 보이지 못한다면, 기본적으로 희망이 없다. 신진서는 금년에 15세이지? 그에겐 2년의 시간이 있다. 내후년이 그에게 매우 중요하다.”
필자가 말했다. 나현이 금년에 두각을 드러내었다고, 물가정보배를 획득했다, 잘 둔다고. 그런데, 이세돌은 나현을 그다지 유망하게 보지 않는 듯했다. 이 문제는 결국 中韓신예 층의 문제로 귀결되었다.
이세돌 왈 :“(작년에 중국의 신예들이 세계대회 우승을 여러 개를 했지만) 韓中신예의 층은 현재 대체로 세력 균형을 이룬다. 나현의 실력과 중국 최강의 신예의 실력은 비슷하다. 문제는 ‘비슷’으로는 안 된다는 거다. 한국은 나현 하나이고 중국은 열 명의 나현이 나올 것이다. 한국이 만약 중국을 압도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모든 중국신예보다 강한 신예 하나가 나와야 한다. 그리고 그 하나면 된다.”
이세돌 생각에, 작년에 중국신예들이 세계대회 우승을 많이 하긴 했는데 도대체 누가 진짜 차세대 王者인지 알 수가 없다 한다. (이에) 주제넘게도, 필자는‘시월’을 언급했다. 이세돌은 정색하고 말했다 :“시월은 이미 최강이다. 재작년에 나를 이긴 후 세계대회 우승을 했다(LG배16강전), 이미 당시에 나는 시월이 최강이라고 말했다.”(문맥상, 시월이는 현세대로 여기지 차세대로는 포함시키지 않음이 이세돌의 의도인 듯, 시월은 91년생 ;역주)
--박정환 후에 반드시 박정환 급의 棋士가 나와야 한다는 말인가? 한국의 누가 그런 잠재력을 가졌는지 눈에 띄는 棋士가 있나? 필자가 물었다.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고, 기다려봐야 한다고, 이세돌의 말이었다. 변상일 신민준은 일 년을, 신진서는 이 년을 기다려봐야 한다. 이세돌은 ‘희망에 부풀어’ ‘양申’과 변상일의 활약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최소한, 기다려볼 만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나현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마찬가지로 중국의 한 무리 신예들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필자의 유감은 가결(柯潔)을 어떻게 보는지를 물어보지 못한 것이다. 가결은 때마침 24일에 아함동산배를 획득했다. 오늘인 28일에는, 한국 棋士가 갑조리그 제17차전에서 6전 전승을 거뒀고, 그중에 이동훈은 주장전에서 가결에게 승리했다. 돌아오는 길에서 필자는 보충질문으로 이동훈을 어떻게 보는지를 물었다. 이세돌 왈 :“열일곱 살이죠? 두는 게 질기긴 한데...” 분명, 마찬가지로 이동훈에게 부정적이었다.
이년 전에, 이세돌은 경덕진에 온 적이 있다. 그는 고력과 ‘도자기도시 論道 -정상대결’을 벌였고 이세돌이 이겼다. 28일 갑조리그 제17차전에서 광서화람은 산동팀과 안방경기를 시작했고, 이세돌은 강유걸(江維傑)과 주장전 대국을 두었다. 지금까지 이세돌은 강유걸과 2무1패이다. 이날 이세돌은 그지없이 빠르게 두었고 경기 종료 후에도 40분이 남았다. 강유걸은 초읽기 들어갈 즈음에 불계패를 선언했다. 복기에서, 필자가 통역을 했다. 초점은 우상귀에서의 패싸움으로부터 시작된 중앙전이었는데, 이세돌은 ...... (중략) (이세돌 승리 ;역주)
中韓대결에 관하여, 그 自身에 관하여
이세돌은 올해와 내년 中韓대결의 형세에 대해 매우 낙관적이었다. 더욱이 내년은, 한국이 중국을 압도할 것이라 보았다. 이세돌의 이런 결론은 필자를 놀라게 했는데, 올해 ‘유창혁 新정권’이 들어선 이후 확실히 한국의 성적이 살아나긴 했지만, 결국 연말의 끝내기 시점에 이르러 한국은 백령배 등 대회에서 뒷심이 딸리는 모습을 드러냈다. 게다가 필자가 보기에 박정환 김지석 이 쌍은 대회에서의 심리에 다소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박정환은, 실력만 놓고 보자면 진작 두 번째 우승을 했어야 했다.
단, 이세돌의 말은 :“박정환과 김지석은 아직 세 개 대회가 남았다(삼성배 LG배 춘란배), 그중에 하나만 잡으면 된다. 내가 보기엔 그들은 분명히 해낼 수 있다. 만약 그 우승 하나를 해낸다면(가장 좋기로는 삼성배), 한국이 내년에 중국을 압도할 것이다.” (삼성배를 들먹인 이유는 아마도 시월 때문인 듯 ;역주)
필자는, 다음 달 삼성배 준결승에서 박정환이 꼭 당위성(唐韋星)을 넘어설 것이라 보지 않는다. 심지어 당위성이 더 유망하다 여긴다. 이는 박정환이 응씨배 결승에서 범정옥(范廷鈺)에게, 금년 백령배 준결승에서 가결에게 지게 된 ‘심리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기미가 없기 때문으로, 이런 것은 분명 실력의 문제가 아니다. 다른 한 판, 김지석이 정말 시월을 넘어설 수 있을까? 김지석을 두고선, 이세돌도 이세돌의 걱정이 있었다.
이세돌 왈 :“올해와 내년이 김지석에게 매우 중요하다. 25세는 棋士 최후의 절정기이다. 김지석이 만약 세 개 대회 중 하나를 잡지 못한다면, 급격한 하강이 있을 뿐 더는 기회가 없을 것이다. 만약 잡는다면, 일 년은 더 갈 것이다. 박정환은, 아직 2년의 기회가 있다.
필자는 불현듯 이세돌에게 어떤 ‘시간강박증’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예 문제이든 中韓대결 방면이든, 그는 언제나 일 년 또는 이 년을 들먹이며 셈했다. 게다가 對局 중이든 비행기 좌석에서든 혼자 있는 순간에, 이세돌의 ‘蓮花指(연화지)’는 끊임없이 각종 모양을 짓는데, 마치 佛子들이 結印하는 모습 같다. (結印결인:眞言宗의 수행자가 손가락 끝을 이리저리 맞붙임 ;역주) 필자는 그가 密宗(밀종)(불교 종파의 하나 ;역주) 高手의 가르침을 얻었는가 의심하는데, 그의 검지는 끊임없이 까딱까딱 무언가 셈을 한다. 그럼, 이세돌은 자기의 ‘시간’은 어떻게 볼까?
蓮花指
이세돌 왈 :“올해 나에겐 Let's Run PARK배 하나만 남았다. 이 대회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 내년, 나 역시 내년 한 해 남았다. 반드시 잡아야 한다.”
십번기 때문에, 이세돌은 금년에 국내외 대회들을 포기하거나 포기해야 했다. 십번기 외의 유일한 수확은 TV아시아속기전이다. Let's Run PARK배는 한국마사회가 금년에 내놓은 대회로서 우승상금이 8000만원, 이에 비하면 國手전 우승상금은 4500만원이다. 내년 이즈음에도, 이세돌은 검지를 까딱거리며 내후년을 셈하고 있을까? 필자 생각에, 내후년 이즈음에도 이세돌의 蓮花指는 여전히 그의 시공 안에서 우아하게 노 저으리라.
이세돌과 강유걸은 복기를 마치고 경덕진대학 공개해설장으로 갔다. 생각지도 못하게 강당이 만원이었다. 화이강 八단과 진영 초단의 공개해설이 한창 절정에 달한 듯, 분위기가 뜨끈뜨끈했다. 이세돌이 感想(감상)을 말했다. :“경덕진에 온 적이 두 번이다. 게다가 다 이겼다. 그래서 즐거운 마음으로 경덕진에 왔다. 경덕진에서는 운이 따른다(통역하면서 필자는 ‘경덕진은 나의 축복의 땅’이란 말을 붙이지 못함을 후회했다).” 진영 초단이 이세돌에게, 현장의 바둑아동들에게 조언 한마디를 부탁했다. 이세돌 왈 :“여러 번 현장에서 이 질문을 받았습니다. 제 생각에 바둑은 일단 즐거워야 합니다. 그리고 많이 두어야 합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바둑을 즐기십시오.”진영 초단이 큰 소리로 복창했다. “즐기자! 바둑을” 현장의 열렬한 박수가 터졌다.
공개해설장을 나와 다면기 현장으로 갔다. 경덕진대학의 운동장 또한 인산인해였다. 즉각 본부석에서 ‘세계챔피언 이세돌 九단 현장 도착을 환영합니다’라고 방송을 했다. 이세돌은 곧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합동촬영을 하고 싸인을 했다. 현장의 다면기 판은 20판, 이세돌은 그중에 8판을 두었는데, 각각 10수 정도를 두었다. 이즈음에 이세돌의 표정엔 모처럼 ‘즐거운 바둑’의 웃음이 터졌다. 아까 강유걸과의 복기에서 필자는 그야말로 그가 졌나 생각할 정도였는데.
귀로에 오르기 전, 이세돌은 연회에서 적지 않은 술을 마셨다. 이세돌은 화이강 八단에게 공개해설에 감사하며 삼가 술을 권했다. 이세돌은 또 광서화람의 팀동료들을 모아 축하주를 마셨다. 이날 광서화람은 리그 2위인 산동팀을 3:1로 이겼다. 그는 또 삼성배 16강전에서 팀동료 료행문(廖行文)을 이겨 미안하다며 그에게 술을 권했다. 연회에서 이세돌은 또 술을 논했는데(사실 담배도 논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맥주를 마시지 않으며, 한국의 소주는 도수가 낮아서 겨우 포도주보다 나은 정도라며, 중국의 배갈이 최고라고 했다.
--필자,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세돌은 최소 ‘반 중국인’. 어찌 아니겠는가?
끝
***저자인 藍烈이 밝히기를, 이 ‘취재’는 정식 취재가 아니다. 본문에도 보이다시피, 그는 갑조리그 선수로 온 이세돌을 맞아, 李의 통역 겸 안내인으로서 갑조리그 현장으로 향하는 동행 길을 함께 하며, 無 형식의 대화를 나누었다. 다만 藍烈은, 자신이 또한 記者 신분이기도 함을 이세돌에게 밝히며 둘 간 대화가 記事화 될 수도 있다고, 미리 양해를 구했고, 이에 이세돌은 동의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