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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070513 어떤 일요일


1

나에게는 ‘꿈속의’ 소원 세 개가 있다. 절대 이룰 수 없는 소원이기 때문이다.

아마 아니, 분명히 누가 들어도 파안대소하리라. 내가 생각해도 우스운데 말이다.



자, 하나는 백억 따먹기 바둑대회를 매 2년 정기적으로 열어보는 것이요, 또 하나는 조회수 십만(얘, 곧 죽어도 만이라고는  안한다.)을 먹어보는 것이요, 마지막으로 자력으로 타이젬 9당을 달아보는 것이다.

첫째 것은 로또가 되어도 어려울 터 로또확률보다 더 힘들겠고, 두 번째 것은 바둑이 축구가 된다 해도 비슷한 정도로 불가능하고 그나마 타이젬 9당은, 8당도 몇 번 가보았으니 한 점만 늘면 어찌어찌 한 번 정도는 될 듯도 하다 싶어서 (하여간에 로또보다는 어마어마하게 확률이 높지 않은가!) 기회만 되면 공부를 하는데, 틈틈이 공부를 하면서 아는 사람들과 잡담이라도 즐길 때면 짐짓 진지한 어투로 나 구당 가고 싶다고 말해보기도 하고, 물론 다 같이 우헤헤 흐흐흐 웃는 기회가 되어 버리지만.

으 머리 굳으니 한 점 늘기가 왜 일케 힘들다냐...ㅠㅠ 진작에 공부 좀 할 걸.


2

9단은 9단이고 정신 차리지 않으면 7단에서 맨날 꼬로록이다. 정상은 커녕 산 중턱에서 눈물로 하산하기를 도대체 몇 번인지, 흐이구메 셀 수도 없지 않냐구. 이번에도 아니나 다를까 7단 올라 온 지 스무 판 언저리에서 7:12, 딱 강단위기가 오네. ..그 날 일이 될라고 그랬는지 7단으로 왠만한 상대를 만나서 저승을 왔다 갔다 하는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았다!


난 이 때부터 필 받기 시작한다. 축 늘어져 있던 바둑세포들이 바야흐로 깨어나기 시작하면서 연승행진이 시작되는 거다.

그리하여 8승 2패쯤 갔나 아 그런데 좋은 판을 덜컥수 한 방으로 날려버리네. 헤구우~ 느낌이 좀 좋지 못하길래 대국실에서 바로 못나오고 바로 그  덜컥수를 따악 따악 놓아 보면서 ‘에구에구 8단 가긴 틀렸나 부다..’ 그게 그저껜가.   


3

일요일 아침 어쩐 일인지 새벽에 깨어 버렸다. 이거 뭔 일이래 안하던 짓을 다하고, 그래 까치머리에 부수수한 얼굴로 고수1방에 접속하여 늘 하던 대로 어제 둔 바둑을 놓아보면서 언제 등정을 시도해볼까 고민을 하고 있었다.(몇 일 전의 ‘넋두리 판’을 포함 5승3패를 보태어서 현재 13승 5패인 상태, 승단기가 보이기도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한 번의 패배도 용납되지 못하는 상태이다.)

근데 음악소리에 섞여 ‘쪽지가 왔습니다‘ 그러네. 어 이 아침에 그런 게 올 리가 없는데 하며 확인해 보니 정중한 말씀으로 서두를 깐 다음에, 지도기 한 판 어떠십니까 요청을 하신다. 대명을 보니 어마 내 못난 글에 한 두 개도 아니고 수십 개의 빨간 하트를 주신 패러건 어르신네다 네 좋지요 그러고서 대국이 성사되었다.

구벅 인사를 하고, ...어 6당이신 줄 몰랐네요. (그럼 그렇다고 말씀을 해요 말씀을 맞바둑에 지도기가 어딨어욧!)


말씀이 많지는 않으시고..‘잘 두시던데요’ 한 마디 하신다. ‘오락가락해요’ 이래 놓고, 어 내가 두던 걸 보셨나? 흐이구메 온갖 주접 다 떨던거 죄다 보셨겠네 좀 계면쩍어지다가, 먼가 이상해서 바둑판 이 곳 저곳을 다 찾아보는데, ‘친선‘ 두 글자가 안보이자나.


‘저’, ‘이거 혹시 승강급인가요?’

‘공짜로 배울 수야 있나요.’

‘헉‘

‘저의 작은 선물입니다.’

아~ 그랬던 그랬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패러건 님께서 주신 선물



4

바둑이 될 때는 바둑이 막 땡긴다. 해서 승단을 하고도 계속 두는데 흐이구메 바둑 배우고 처음 하는 삽질이 오늘이라니..하긴 조국수도 비슷한 거 했대잖아. 국수는 그런 거도 배워야 하느니라~


(패를 집어 넣은 1은 2 왼쪽, 패감 쓰고 아잣! 하고 때린 5는 당근.. 1자리라야 하는데,..흐이구메 찾아보시압. 아 참 제가 흑!흑흑)





-어떤 일요일, 깊은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