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나? 잘 생기고 지적인 남자가 작업을 거는 중이다. 남자는 장미를 선물한다. 요새 저런 건 너무 상투적이지 않나? 하긴.
싫지 않은 눈치의 여자가 막 받을 듯 하는 순간 갑자기 뒷자리에서 나타난 사내,
“얼마를 걸었지?”
“무슨 소리야”
“내기에 얼마를 걸었냐구?”
“내기라니? 당황하는 남자.
“이백달러였어? 오백달러였어? 전에 저쪽자리에서 둘이서 수군거렸잖아.”
일그러지는 표정의 여자. 일이 틀어지자 남자는 쓰게 웃으면서 말한다.
“이백달러. 그것도 비싸지만”
순간, 재빠른 동작으로 멱살을 틀어잡는 사내. 남자의 눈을 부서져라 응시하며,
“다시 이곳에 나타나면 재미없을 줄 알라구!” 말을 던지고 잡았던 멱살을 홱 뿌리친다.
땡큐 하는 여자에게, “이러지 않았다면 후회할 것 같아서요” (실로 진정한 작업 대사였으니,) 한 마디만을 남긴 채 미련 없이 등을 돌린다. 팔랑팔랑 손짓하며 빨리 쫓아나가라 채근하는 웨이트리스의 동료.
마음은 채 소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몸은 벌써 노년에 들어가 버리는가. 전날 숙취 때문에 도저히 기운이 없어 대낮에 자리를 깔고 잠을 청하는 판국, 그 와중에 영화가 걸렸다. TV를 얼른 꺼야 했지만, 흔치 않은 소반전(小反轉)에 약간이지만 흥미가 당겨서 조금만 더 볼까? 아니 말까?
사내는 더 잘 생기고 지적이었다. 게다가 부자였다. 아하 그런 스토리구나 싶은(바야흐로 본격적인 로맨스 스토리가 벌어지겠지 하는) 순간, 영화는 때 이르게도 식장으로 가 버린다. 결혼행진곡이 울려 퍼지고 쌍쌍이 춤추는 피로연 잔치로 가고 작고 귀여운 아이와 함께 해변으로 간다. 뭐하자는 거냐? 저건 또 여자배우냐 남자배우냐 광대뼈에다 이제 보니 어깨까지 우람하네.
자자. 제발 자자 하던 참, 사내(이젠 남편)의 휴대폰에 문자 메시지와 함께 단축번호가 떠고, 이상한 낌새에 여자는 ‘33번’ 단축키로 콜을 한다. 마를린, 사내에겐 숨겨진 여자가 있었다. 아내는 남편을 추궁한다.
“당신이 어쩌면 이럴 수가 있어요! 흑흑.”
“미안해. 그게..그게 말이야..”
어쩌고 저쩌고 옥신 각신. 그거였군. 그런 스토리였군.
눈을 감자꾸나 마지막으로 시계를 보는 순간,
“짜악!”
여자가 뺨을 부여잡고 있다. 사내의 손이 올라간 모양이다.
외도에 손찌검까지 하다니. 어이없어하며 눈꼬리가 파르르 떨리는 여자. 얼굴에 얼굴을 들이대는 사내.
“왜? 때려서? 더는 못 때릴 거 같애?”
하더니 도전적인 눈을 거두지 않는 여자에게 급기야는 주먹을 날린다.
여자는 경악으로 몸을 떤다. 사내의 말은 빈 말이 아니다. 니까짓게 별 수 있냐 그런 표정으로 다가오는 사내, 공포로 질린 여자. 저항을 요구함은 가혹하다.
이거 깨는데.
슬림(;여자;제니퍼 로페즈)은 가정폭력 피해자가 하는 전형적인 구조요청을 해보지만 이 모두가 소용이 없다. 사내의 본색은 구타남편 정도가 아니었으므로. 실상 영화는 일상적인 드라마라기보다는 스릴러 복수극이다.
야구 방망이와 권총, 아이를 안은 채 심야의 탈주극, 사소한 흔적으로 은신처를 알아내는 치밀함, 전화를 걸고 통화를 하며 유유자적 덮치는 지독함 , 슬림이 믿고 의지하는 옛 친구의 거처는 물론 이미 잊고 살던 친부(親父)까지 찾아내는 무시무시함. 미치(;사내)는 악마였다.
미치. 이런 쳐 죽일 놈. 분노지수가 상승한다. 핏대 올리다 보니 나도 모르게 피곤이 사라진다. 늘어졌던 몸둥아리 어디에서 나오는지 엔돌핀이 팍팍 돈다. 활력이 솟는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보니 제니퍼는 어린 딸을 안 뺏기려 숨어야 하는 신세가 되고. 미치는 조직과 경찰(이 넘은 아까의 진짜 작업의 공범, ‘내기를 걸고 작업으로 장미를 바치려다 들통이 나서 내빼는 남자’이다.)을 동원한다. 쫓기고 쫓는, 약간은 지루하다 싶을 즈음, 영화는 살짝 반전한다.
인과율상 필요하다 할, 장면 장면의 주도면밀한 배치는 생략되었지만 큰 줄거리로 보아 이 반전의 개연성은 충분하다. 감독이 제니퍼 로페즈의 광대뼈와 어깨를 일부러 강조한 이유가 비로소 납득이 간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무는 법. (약간은 느닷없는) 무술인의 등장, 훈련, 흥미를 위해 미리 배치하는 약간의 극적 암시 등 준비를 마치고 영화는 절정을 향해 간다.
분노와 몰입. 피곤은 싹 달아났다.
수작(秀作)이라기에는 어딘가 못 미치는 구석이 있고 시간 죽이기용 컬트로는 타란티노보다 못하리라. 허나 눈 붙이지 못한 두 시간이 전혀 억울하지 않다. 절인 배추가 되살아난 기분이라 할까. 일상의 흥분이 이런 활력을 주는 이유는 마음이 채 소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뒷공배 - 영화는 Enough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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