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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080923 최-劉 戰 감상感想

바둑에 원래 ‘下手의 호구이음 高手의 꽉 이음’이라는 말이 있다. 조금 풀어보면 호구만 칠 줄 알면 하수, 꽉 이을 줄도 알면 중수, 이 둘을 알맞게 구분하여 두면 고수란 얘기이다.



오늘, 이선 젖힌 돌의 이음에 관해서 생각해 보자니, ‘하수의 호구, 고수의 빠짐’이란 말도 말이 되지 않나 싶다.

이 말을 위에 식으로 풀어보자. 이선 젖힌 돌의 처리에 있어 팔 구급은  호구 칠 줄만 알고, 5급은 빠질 줄을 알고, 약한 일급은 그 맛을 알고 빠지고, 제대로 일급은 호구와 빠짐을 적절히 사용한다. (오른쪽은 오히려 빠졌다가 망하는 사례이다.)


웬만하면 꽉 이어서 맞고 웬만하면 빠져서 맞는데, 호구의 유혹이 늘 만만찮아서 꽉 잇기 어렵고 빠짐 이건 깜빡하기가 일쑤여서 또한 어렵다. 그래서 아직도 나는 늘상 헤맨다.




나야 뭐 이렇게 헤매는 수지이지만 무릇 프로라면 이런 정도의 수에는 그야말로 빠삭하기 마련이겠는데...
그런데 어쩌랴, 프로도 사람인 것을. 이창호도 흥분하면 깜빡하는 게 일선 빠짐인 것을.







오늘 류성劉星은 이 일선 빠짐 때문에 바둑을 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와, 나나 이창호와의 차이라면 깜빡해서가 아니라 너무 생각이 깊어서 실수가 나왔다는 점, 깜빡해서 호구를 친 게 아니라 혼자만의 杞憂에 빠져 빠지지 말아야 할 곳에서 빠졌다는 점이다.


그런데 류성의 패배는 53의 실수 하나 때문만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고 인생에서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차이라면 실수를 어떻게 수습하느냐 인데, 보통은 그게 잘 안 된다. 그래서 우린 누구나 凡人이지만...

인생과 마찬가지로, 바둑도 실수의 게임이다. 그런데 바둑에 인생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바둑에서는 그나마 中手의 수준일지언정 나름대로 실수를 인정하고 수습할 줄도 안다는 거다.

오늘 류성은 바둑의 고수답지 못했다. 아마 그는 빵때리지 않은 53이 사활에는 빵때림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차렸을 것이다. 일단 그 실수 때문에 내내 대마 사활을 신경써야 했고,.. 그런데 어느 순간에 완생할 기회가 왔다.

바둑은 실수의 게임, 「실수의 법칙」에 충실해야 한다. 실수의 법칙이란 겸손히 실수를 인정하는 태도를 말한다. 류성은 오늘 겸손히 눈(目)을 내었어야 했다. 물론 아까 적에 빵때려 두었다면 지금 머리를 내밀 수 있었겠고 그게 그냥 눈만 내는 것보다는 백번 나았겠지만,..


문제의 101 장면에서, 류성은 실수를 인정하기 싫었을까?

그 장면에서 (약간의 수모를 감수하고) 실수를 수습하였다면 바둑은 흑이 한결 둘만한 형세였다. 대마가 그렇게나 시달리다니...

역시 바둑은 실수의 게임이다.


세 번째 그림은 5년 전 LG배 결승전 최종국 李-李 전인데 흑이 이창호이다. 이 바둑을 지고 이창호가 남긴 말이 인상깊었다.
대략,‘상대방을 긁는 것도 실력이다. 평정심을 잃게 하여 실수를 유발하는 능력도 실력이다.’이런 인상을 주는 발언이었는데, 나에게는 기보의 수가 「대국 중에 삔이 돌은 상태」에서 나온 것이다 하는 뜻으로 들렸다.(실전에서 흑은 기보처럼 빠지지 않고 꽉 이었다.)
삔이 돌면 깜빡하는 게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