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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펌譯] 석불은 시금석 (장문휘) / 이창호 최대의 승착은 (사예) -한글only


LG배 연패의 꿈 -영웅은 피를 흘리고 / 새 우승자에게 석불은 시금석

출처:張文輝(장문휘) 羊城양성석간 2011.06.17 Tom.com으로 전재




저주는 현재진행형이다. (1회전에) 이어서 벌어진 제2회전 16강전에서 朴文垚(박문요)는 김지석에게 져 탈락했다. 제16회 LG배세계기왕전은 여전히 ‘우승방어자’에게 악몽이다. 거기다 바둑팬들을 제일로 황당하게 만드는 것은, 이 시대 ‘최강3인’으로 불리는 古力(고력), 이세돌, 그리고 孔杰(공걸)의 몽땅 1회전 탈락이다. 간단히 말해, 강자가 추락하는 LG배, 한국 언론은 ‘현 바둑계에 절대 강자가 없다’고 탄성을 질렀다.

시도 때도 없이 이변이 일어나는 LG배는 테니스 4대 메이저 중 하나인 프랑스오픈에 닮은 감이 있다. 예를 들자면, 제2회 王立誠(왕립성)의 역전우승, 제11회 周俊勳(주준훈)의 청천 외줄기 섬광, 심지어 이번 기에는 보물섬(대만을 지칭 ;역주) 6관왕 陳時淵(진시연)의 광분, LG배에서 대만 기사는 홀로 피어나는 기이하고 화려한 꽃을 방불케 한다. 근래 여덟 번 대회 중에 겨우 두 번 우승한 한국 기사들에겐 지워지지 않을 오점이 남았다. LG배, 가슴 가득한 연패의 꿈, 그러나 영웅은 피를 뿌렸다.

8강의 나이 분포를 보면, 70년대생 이창호가 6人의 80년대생 및 90년대생 1인에 맞선다. 전적 上으로 보자면, 8강에 우승 경험자는 이창호 하나만 남았고, 4사람은 결승 경력조차 없다. 이는 역시나, ‘70년대생은 길을 막고, 80년대생은 길을 차지하고, 90년대생은 길을 빼앗으려 달려든다’ 는 현 시대 바둑계의 추세에 부합한다. 비록 고력, 이세돌, 공걸의 1회전 동반 탈락이란 확률 희박한 사건이 발생하긴 했지만, 80년대生이 현 바둑계를 좌지우지한다는 큰 그림은 손상되지 않았다.

이창호 이후 바둑계에 절대강자가 없었다. 과연 어떠해야 절대강자라 불리는가? 즉, 석불처럼 1992~2003년 기간에 세계대회 10연속 결승 진출(오류임 ;역주) 및 연속 우승, 16회 결승 진출에 15회 우승이란 절대적 전적이라야 한다. ‘절대강자 없음’란 논조를 바라봤을 때 내가 느끼는 흥취는 :이 논조가 과연 ‘새 시대 강자’가 (드디어) 출연하는 ‘꿈의 극장(Dream Theater)'을 재촉하고자 하느냐 여부이다. 석불이 중일의 제일인자 고력 및 井山裕太(이야마유타)를 연속 넘어뜨리자, ‘왕의 귀환’이란 말이 나왔다. 허나 석불의 하향곡선을 되돌리기란 매우 어려운 노릇이며, 후욱~ 분다 한들 8연속준우승이란 그림자는 떨쳐지지 않는다. ‘왕의 귀환’이라 말하기보다는, (이제) 석불은 신진들의 단련석이다 라고 말함이 낫다. 현 바둑계에서 이창호의 지위는, 하나의 잣대로서 ‘후배 중 누군가가 과연 왕의 패업을 이뤄낼 능력이 있는가’여부를 측정하는 척도이다. 석불은 결국에 쓰러지겠으며, 점차 뜸해지겠으며 다만, 그를 추월해가는 모든 자들은 마음으로 그에 대한 경의를 간직하리라.

강자가 줄줄이 꺼꾸러지고 석불이 역류하여 올라오는 이 시점, LG배에서 ‘강자축출폭풍’이 더더욱 맹렬해짐도 무방하다. 세계대회 새로운 우승자에게는 이창호라는 시금석이 반드시 필요하다. 다음 단계인 8강전의 상대 진시연부터 시작하여, 최연소자인 江維杰(강유걸), 그리고 김지석이 (시금석에 부딪쳐보는) 바통(baton)을 이어받는다. 절대강자가 존재하지 않는 순간이 어쩌면 새로운 절대강자 탄생 전야일지도 모른다.

장문휘




이창호 최대 승착은 이도윤 동반

출처 :謝銳(사예) 기자 2011.06.17 Blog로 가서 이씨 부부 사진 보기




한국 경기도 곤지암은 이창호와 그의 애처 이도윤 연애의 ‘증인’이다. 2009LG배 제1마당 1~2회전 시합이 처음으로 곤지암에서 펼쳐졌는데, 당시 그들은 막 열애 진입 단계였다. 2010LG배에서도, 그들은 이곳에서 정감 가득한 모습이었다. 2011년, 이제는 아내가 된 이도윤은 대회에 출전하는 이창호와 동행하였고, 이창호는 두 개의 관문을 연속 돌파하여 8강에 진입했다.

2009년, 당시 한국기원 인터넷 회사 기자였던 이도윤은 대회 취재 차 곤지암에 왔다. 시합 휴식일 아침, 우리와 고력 일행은 서울에서 거행될 예정인 BC카드배 시상식 참석 차 올라가던 길이었는데, 차창 밖으로 ‘그 광경’을 보았다. 산 위로부터 수류가 흘러내리는 계곡 가, 자그마한 바위 위에 이창호와 이도윤이 앉아서, 둘만의 세계에 한창 빠진 모습이었다. 산어름으로부터 아침햇살이 비춰와 고요하고도 생기어린 이른아침 세상이 꽤나 돋보였다. 우리는 바삐 길을 재촉하는 중이었으되, 그들은 조용히 흐르는 계곡물을 즐기고 있었다. 이 미려한 아침은 바로 그들의 것이었다.

일 년이 지난 후 또 곤지암에서 그들 둘을 보았는데, 언제나처럼 이창호는 부끄러움을 탔고 늘상 식당이 터엉 비는 순간에야 이도윤과 같이 와 밥을 먹었다. 사람들이 없는 때면 둘은 손을 잡았으며, 면전으로 다가오는 우리를 보고 이창호는 수줍어하며 이도윤의 손을 놓았다. 두 사람은 식당에서 언제나 구석진 자리를 잡았으며 조용히 둘만의 세계를 즐겼다. 이도윤이 이창호를 변화시켰음을 우리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도윤은 웃기 좋아했으며 기분이 고조될 때면 두 뾰족한 덧니가 드러났다. 이창호는 다른 사람한테는 혀가 짧고 말이 적지만 확실히 이도윤한테는, 마치 마르지도 닳지도 않는 밑천에서 나오듯 언변이 도도히 흐르는 강물처럼 끊이지 않았다.

금년은 이창호 부부 신혼 이래 첫 곤지암 나들이다. 경치는 예와 다름없는데 두 사람의 정감은 더욱 깊어졌다. 이제는 전업주부인 이도윤은 이전의 직업 동료들과 얼굴 보기가 용이하지 않은 바, (오랜 만에 만나) 마치 언니 동생처럼 웃고 떠들었다. 그리고 이창호의 시합이 얼른 끝나기를 기다려 대국실 입구로 다가가 이창호가 나오기를 조용히 기다렸고, 함께 사라졌다.

이제는 잘 할 수 있는 요리 몇 가지를 배웠다고 이도윤은 말한다. 이창호가 격렬한 시합 후 귀가하여 좋은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며, 이창호는 그녀 요리솜씨의 쾌속 진보를 대폭 찬양하였다고 한다. 꼭 별스럽다 할 일이 아닌 것이, 일찍이 이도윤 역시 한국기원 원생이었던 바, 그녀는 승부세계에 20여 년 발을 담궈온 이창호의 내심세계로 능히 들어갈 수 있으며, 이창호에게 편안하고도 알맞은 반외 생활을 조성해주고자 함이다.

결혼 후 이창호는 아직 우승이 없는데, 다만 이제는 엄연히 그 옛날의 강력한 석불로 돌아왔다. 2011LG배 예선에서 그는 연속 다섯 관문을 뚫고 본선에 짓쳐 들어갔으며, 본선에서도 고력九단과 井山裕太(이야마유타)9단에게 연승하여 8강으로 진군했다. 이세돌, 최철한 등 한국 강자들이 이미 탈락한 바, 이창호는 한국의 LG배 우승에 최대 희망이다. 2004년 이전에 이창호는 LG배를 네 차례 우승한 바 있다.

대만 대표 진시연9단이 이번에 LG배 시합에 왔을 때, 신혼 아내 張正平(장정평)2단이 늘상 붙어 있었다. 둘은 일찍이 한국에서 바둑 수업을 하였으며, 또한 애정의 씨앗을 심었더랬다. 진시연이 시합을 둘 때에 장정평은 마치 촬영기자처럼 남편 주변에서 각종 사진을 찍는다. 촬영 허용시간이 끝나면 그녀는 곧바로 검토실로 가 진시연의 바둑을 늘어놓는데, 전심몰입, 한판 바둑의 진행을 처음부터 끝까지 주시한다. 그리하여 바둑 형세의 변천기복이 그녀의 얼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난다.

애처의 정신적 응원 하에 진시연은 먼저 한웅규4단을 이기고 다음 박승화4단을 이겨 처음으로 세계대회 8강에 짓쳐 들어갔다. 대국실을 나오자마자 진시연은 급히 검토실로 가서 애처를 찾고, 같이 프로기사인 장정평과 진시연은 컴퓨터로 복기를 하는데, 진시연은 득의의 수 유감스러운 수 하나하나를 말로서 풀이해주고, 때때로 장정평은 당신의 몇몇 착점에 내가 아주 맘졸였다며 진시연을 나무란다(장정평이 진시연보다 네 살인가 ‘누나’ ;역주). 이렇게 둘은 오랜 동안 소곤거리며 둘만의 세계로 빠져들어가 외부 일에 눈귀를 닫는다. 바둑은 그들의 공동 언어이다. 바둑으로 사랑이 싹텄으며 사랑은 단순하되 깊다.

BC카드배 5번기 최종국을 기억한다. 이세돌의 부인 김현진 역시 대국 현장에 와서 남편을 응원했다. 결과 이세돌은 고력을 이겨 연패를 이뤄냈다. 이번 LG배에서 이세돌은 일치감치 1회전에서 박영훈에게 패배하였고 밤을 도와 귀가했다. 본래 그는 고력과 약조하기로, 2회전 종료 후 가볍게 한 잔 하자 이랬는데, 이젠 고력에게 미안하단 말 말고 달리 할 말이 없게 되었다. 이창호 및 진시연과 비교했을 때, 이세돌의 패착은 현장에 어 부인을 모셔놓지 못 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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