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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옥집도 집인가?(上) -101006


낭만. 물기 어린 낱말. 승부라는 잎살을 반짝거리게 만드는 이슬.


승부 고통을 온몸으로 받은 사람이라면 이름하여 서봉수다. 그 고통을 존심 하나로 받아낸 사람이 바로 서봉수다. 그런데 만약 이번 ‘옥집사건’과 비슷한 상황이 서봉수에게 일어났다면? 그리고 상대가 조훈현이라면? 서봉수의 존심은 그런 승리를 원하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내가 생각하는 낭만이다.

마라도나의 ‘신의손’에, 아르헨티나人을 빼고는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한다. 앙리의 ‘신의손’에 프랑스인들조차 추악함을 느낀다. 이미 축구에는 승부의 팍팍함만 남았고 물기는 거의 사라졌다. 바둑에서도 물기는 점점 말라간다. 나는 그것이 아쉽다.


축구가 그렇게 된 이유는 ‘오심도 게임의 일부이다’란 원칙 때문이다. 그러한 원칙이 자리잡게 된 이유는 축구라는 종목의 근본적 속성 때문이다. 그래서 박지성 같은 물기 축축한 心性조차 ‘오심도 게임의 일부다’라고 말하게 되었다. 물론 박지성의 잘못이란 얘기는 전혀 아니다.


이렇게들 반문하는데, 예술도 아니라면서 바둑에 무슨 저작권(예술에만 있는)이냐,
내 생각은, 바둑이 일단 스포츠라 치고, ‘바둑은 저작권이 인정되어야 하는 스포츠이다’라는 입장이다. 바둑은 스포츠이되, 몸동작 스포츠와 다른 속성을 갖기 때문이다.


승부라는 점에서 바둑이 축구와 마찬가지이지만, 바둑의 招手(초수;행마나 착수 등)는 몸동작이 아니란 점에서 바둑이란 물건은, 스포츠이되 축구와는 궤를 달리 하는 스포츠이다. 때문에 모든 것을 축구와 등치시키려 해선 아니 될 일이다. 즉, 오로지 승부만 남긴 스포츠가 되어선 안 되겠다는 믿음이다.


축구에서‘오심도 게임의 일부’이듯이, 이긴 바둑도 당사자가 띨띨하면 진 바둑으로 둔갑한다는 ‘바둑에서 당사자 해결의 원칙’은 일단 타당하다. 왜냐면 축구와 마찬가지로 바둑도 승부이기에.

허나, 바둑의‘당사자 해결의 원칙’은, 축구의 ‘오심도 게임의 일부’처럼 무대뽀로 모든 경우에 관철시킬 놈은 못 된다. 바둑은 바둑 고유의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축구)낭만..!......................................................승부

(바둑)낭만...........!.............................................승부


축구처럼 느낌표!가 지나치게 왼쪽으로 가지 말아야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