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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옥집도 집인가?(下) -101006

 

舊 한국기원 바둑규칙에 의하면 바둑은, <對局==>對局종료==>공배메우기==>終局==>계가==>승패확인및相互인정>의 과정을 거친다.

(對局종료를 相互 인정하면 ‘對局종료합의 상태’. 이하, 舊 한국기원 바둑규칙 제15~18조 및 부칙 4조 참조)


현행 규칙은 첨부문서 참조.



對局종료합의! ‘對局종료합의’가 있었음을 류시훈은 증명하지 못했다. 비디오를 돌려도 판정불가능이었다. 때문에 류시훈은 ‘대국종료합의 有’를 증명하지 못한 불이익을 안았다. 柳의 불이익은 왕립성의 이익으로 돌아갔다. 이로써 !가 과거보다 조금 왼쪽으로 옮겨졌다.
(舊규칙이 현행규칙으로 달라졌다. 그래서 현행규칙 12,13조는 유효착수와 공배착수를 분리하지 않고 단순히 <對局==>공배메우기==>終局==>계가==>승패확인및相互인정>의 과정을 상정하여 규정한다.)

계가도 시합의 일부?
終局이 되고서(되었다 믿고서) 계가에 들어갔는데, 옥집이 메워지지 않았고, 김윤영이 사석 하나를 옥집에다 메웠다. 반집승이 반집패로 둔갑했다. 아니, 판정이 그렇게 되었다.


김윤영은 1.단수를 따 먹지도 않았고, 2.종국도 인정했다. 게다가, 3.사석 하나의 효용을 찾아먹지 못했다.(옥집에댜 메웠다.) ‘당사자 해결의 원칙’에 의하면 김윤영의 실수는 전적으로 김윤영의 잘못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난 의문을 제기한다. ‘당사자 해결의 원칙’이 도대체 어디까지 관철되어야 하냐고? 설마 무한정?


축구에서 ‘오심도 게임의 일부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고 그건 물론 FIFA에 물어보아야겠지만, 아마추어도 알 수 있는 한 가지 이유, 즉, 경기의 연속성 때문이다. 바로 이것, 경기의 연속성이란 놈 때문에, 그 순간이 지난 후에는 판정 번복을 할 순 없게 되었다. 경기의 연속성이란, 축구라는 종목이 필요로 하는 속성이요 바로 축구의 근본적 속성이다. 간단히 말해, 축구라는 종목은 ‘오심도 게임의 일부이다’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게끔 그렇게 생겨먹었다는 소리이다. 그럼 바둑의 속성은? 바둑이란 놈은 어떻게 생겨먹었나?




내가 생각하는 답. 먼저,
바둑은, <對局==>공배메우기==>終局==>계가==>승패확인및相互인정>의 과정을 거친다 를 상기하자. 그리고 당사자 해결의 원칙도 상기하자.


1에 대한 답 :현재는 종국상태. 가일수가 필요한 장면임에 불구하고 수를 내지 않은 당사자의 의사가 우선. 여기까지는 다수의 바둑팬도 동의하리라.

2에 대한 답 :아래

(축구)낭만..!..신의손........................,.....................승부

(바둑)낭만..옥집no집..!............................................승부


수가 날 자리를 수를 내지 않음은, 이창호가 잘 하는 짓인데, 어찌 바둑의 속성에 어긋나랴.  ==>1에 대한 답 즉, 1번 사안은 !오른쪽에 있다.




그러나, 집이 아닌데 집으로 만들어줌은 故 조남철 선생이 그렇다고 우겨도 단호하게 no라고 답하겠다. ==>
2에 대한 답


즉, 옥집을 사석으로 메우느니 마니 하는 의문은 근본적으로 의문거리가 못 된다. 그것은 바둑이 아니기 때문이다. 승부가 속성을 깨뜨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의문거리가 되는 현상이 있느냐. 더구나 프로들은 더!(2,3번 의문을 제기한 김성룡 九단을 비롯해서 ‘모르겠다’고 대답한 두 프로)


승부에 소홀할 수 없는 입장 때문이다. 승부의 압박감을 이해한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그렇다고 하여, 찬성한다고 말하지도 못하겠다.

프로들은 아마추어의 악플에 충격을 먹는 모양이지만, 우리 아마추어는 !를 지나치게 왼쪽으로 옮겨놓는 그네들의‘승부사 면모’에 충격을 먹는다. 이것이 그간 일주일여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안 쓰려고 안 쓰려고~ 결국에 쓰게 된... 


2에 대한 답 :2에 답이 나왔다면, 3에 대한 답은 반복할 필요 없다. 반패 자리가 집이라면 그건 바둑이 아니다.

!의 적절한 위치는 어디인가. <對局==>공배메우기==>終局==>!==>계가==>승패확인및相互인정>

!의 위치는 바로 저기라고 생각한다. 즉, 간단히 말해 ‘계가는 對局의 일부가 아니다’.


개정 한국규칙 제13조 計家
終局 후 집 속에 있는 상대방의 죽은 돌을 들어내어....(중간생략)..메운 후 남아 있는 쌍방의 집 수를 비교하는 것을 계가라고.


위 문장에서 '계가는 종국 후'라고 말한다. 그런데 終局이란 낱말의 문언상 의미는 무엇인가? 終+局, 局의 終, 對局의 끝이다. 그렇다면 계가는 對局이 아니다! 

때문에 심판(또는 입회인)이, ‘윤영 初단, 거긴 옥집이니 메우지 마소’라고 부담없이 지적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김윤영이 이의를 제기하여 받아들여질 時點(시점)은 어느 시점까지라고 봐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기원에서 방내기를 했다. 사석 하나가 돌통에 깔려 안 보이는 바람에 김윤영 같은 일을 당했다.(상대도 고의는 아니다.) 그래서 내가 돈을 받아야 함에 불구, 내가 거꾸로 돈을 주었다. 여기서, ‘당사자 해결의 원칙’과‘계가는 대국의 일부가 아니다’가 반드시 충돌한다. 충돌을 어떻게 조정해야 할까?
비록 계가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지만,‘계가는 대국의 일부가 아니다’를 무한히 관철할 순 없다. 방내기는 승부이기도 하므로.
설마 낼모레 되어서 '내돈돌리도고' 할 순 없는 일 아닌가.


나는, 당사자가 일단 바둑판 앞에서 일어서 돌아섰으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에 알아차렸다면 돈 달라는 요구가 불가능하다고 본다. 상대의 선처는 물론 별론이겠고.


그럭저럭 잠잠해질 찰나 김성룡 九단이 뒤늦게 이 일을 끄집어낸 이유,

「뜨거운 감자」라는 記事포맷,「기권할 이유? 왜?」라는 제목 및 이하 본문 내용, 그리고 댓글에서의 응대, 등등을 보자니, 아마도 그는 이번 사태에서 아마추어들의 아우성, 安프로의 ‘억울한’기권 등등 흐름에 ‘총대를 메고’서라도 한마디를 하겠다는 인상을 받는다.


記事 밑 댓글에서 누군가,('실수카고'는 金프로이다.)

‘이창호9단이나 조국수라면 어떤 견해일지 궁금한데, 추측이지만 계가 실수를 인지한 후에 아마도 깨끗이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을까요?’  

실수카고  ‘절대 아니죠 큰 착각하시는거예요 


아마추어들이 프로를 동경하는 이유는, 나의 낭만을 强者에게 투영하기 때문이다. 이 바쁘고 辛酸(신산)한 삶에 뭣 때문에 한방울 물기라곤 없는 팍팍한 승부사에게 내 몸을 기대려 하겠는가? 내 차라리 축구를 사랑하고 말지...

프로들은 악플에 놀랐다지만, 과연 내노라하는 國手들마저 저렇게 생각할까 의문을 가지며 속상해하는 아마추어들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보았는지...


나는 착각이든 아니든 간에,


적어도 바둑판 앞에서 일어나 돌아서기 전에는, 徐名은 물론 曺국수 李국수 모두, 상대의 계가 실수를 알게 되었다면 망설이지 않고 바로잡으리라 믿는다.

정말이지 착각일까? 설마 그럴 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