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런저런

090610 난독증

글 이전의 설명:이 글은 「전 국민적 난독증, 객관식 교육이 원인이 아닐까?」에 대한 반론이다.

「전 국민적 난독증, 객관식 교육이 원인이 아닐까?」(연결)의 내용을 요약하면,


의사인 필자의 현장경험을 예화例話로 든다, 

‘전 국민이 난독증’이라 규정 짓는다, 

‘그 원인은 객관식 교육이다’ 고 결론 내린다.




글을 시작한다.


「전 국민적 난독증, 객관식 교육이 원인이 아닐까?」는 의료 현장에서 환자들을 대하면서 겪는 답답함을 실 사례를 들면서 문제제기를 한다. 관심을 끌었으니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글쓴이는


'대화가 안 되고, 이해를 못함‘ =‘난독증, 즉 책이나 문장을 읽고 이해를 하는 능력이 심각하게 낮다’


로 본다. (동일시하는 듯하다. 다만 글쓴이는 전자의 ‘연원’으로 가정교육을, 후자의 ‘연원’으로는 학교교육을 들며 약간 달리 취급한다. 그러나 글의 전체적인 취지로 보아 이는 사소한 문제로 보아도 좋을 듯하다.) 


말과 글은 작지 않은 차이가 있으나 근본적으론 언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따라서,


「'대화가 안 되고, 이해를 못함‘ =‘난독증, 즉 책이나 문장을 읽고 이해를 하는 능력이 심각하게 낮다’


글/글쓴이의 시각은 충분히 가능하다 하겠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다음 세 문장으로 요약된다.

[글/글쓴이의 문제제기는 성공하였다. 제기된 문제란 이것이다. 글쓴이가 접한 사람들은 난독증이 있었다.]

여기서 내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글쓴이가 접한 사람들’이란 제한적 표현을 하였음에 유의하자.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난독증을 위한 친절이다.)


도입부‘글쓴이가 접한 사람들은 난독증이 있었다.’는 바로 글의 결론부로 이어진다. 글/글쓴이는「우리나라 사람들은 난독증이 있다, 객관식 교육이 원인이다」라고 결론으로 주장한다. 그럼, 이 주장의 성공 여부를 따져 보자.




첫째,


글/글쓴이는 이렇게 말한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난독증이 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내가 삽입한 ‘특히’에 글쓴이가 반대할 리는 없다. 반대한다면 그는 「전 국민적 난독증, 객관식 교육이 원인이 아닐까?」을 쓰지 않았을 테니까.)


아까 뽑아놓은 글의 도입부와 위 문장을 연결시켜보면


‘글쓴이가 접한 사람들은 난독증이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난독증이 있다’

‘글쓴이가 접한 사람들’==> ‘우리나라 사람들’


내가 보기엔 억지스럽다. 만약 내가 ‘아파서 병원에 오는 사람들은 대체로 난독증이 있다’라고 말하면 글쓴이는 펄쩍 뛰면서 그런 억지가 어디 있느냐 말하겠지만 ‘글쓴이가 접한 사람들’==> ‘우리나라 사람들’의 도출 또한 제법 억지스러움은 마찬가지다.

(참고로 내가 생각하는 난독증을 자주 접하게 되는 이유는 아래에 있다. 보면 아마 억지스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점을 의식적으로 의식하고 말하는지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의식하고 말하는지 모르지만 글쓴이는 하튼 이렇게 말한다.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익히 알려진 사실?, 어 그게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던가? 혹시 글쓴이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고? 흠,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난독증이 있다’생각하는 사람들이 제법 되긴 하지. 제법 된다 하더라도, 아니 설사 많다 하더라도 ‘그래? 그럼 진실이군’ 말할 수는 없는 법이지만.


이제 간단히 말하자.

나는‘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난독증이 있느냐 없느냐 여부’의 ‘특히’를  의심한다.


「전 국민적 난독증, 객관식 교육이 원인이 아닐까?」의 글쓴이는 개인적으로 외국인과 대화/글을 많이 접해 보았을까?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난독증이 있다’라고 말할 정도로 말이다. 아니면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난독증이 있다’라고 논증한 학술서를 접한 적이 있을까? 아! 그렇다면 글에서 썼겠지..현장 경험만 썼겠어?

혹시 말이지, 많은 사람들이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난독증이 있다’라고 말하니까 별 저항 없이 믿지 않았을까? ‘많은 사람들의 말’에 무의식적으로 의존하지 않았을까? 의료현장에서의 개인적 경험이 그 믿음을 강화시켜 주었을 것이고.


참고로 나 또한 개인적으로 난독증을 자주 접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그나마 조금은 배운 사람이니까 나의 난독증은 대체로 남보다 덜할 것이다. 그러니 남의 난독증이 내 눈에 간과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또한,‘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난독증이 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 역시 제법 접한다. 내 생각이지만, 배운 사람일수록 특히‘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난독증이 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그 ‘배운 사람’눈에도 남의 난독증이 간과되기 쉽지 않을 테니까.


지금까지 말한 정도면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난독증이 있다’는 충분히 의심해볼 만한 명제가 아닐까? 아 내가 개인적으로 외국인과 대화나 글을 많이 접해 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난독증이 있다’라고 말할 정도로. 또는 아니다 라고 말할 정도로.


중간 결론, 적어도 난독증을 말하고 그 원인을 분석하고자 한다면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난독증이 있느냐 없느냐 여부’부터 의심하였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전 국민적 난독증, 객관식 교육이 원인이 아닐까?」를 읽는 독자의 아쉬움이다. 그러나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난독증이 있다’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라고 간주하는 사람이 제법임이 현실이니 그 정도의 게으름은 이해한다. 다만 ‘특히 한국인의 난독증’이라는 진지한 주제를 다루는 논증자의 진지함에 의문을 갖게 하는 점은 있다.




둘째,


‘우리나라 사람들은 난독증이 있다’==> ‘객관식 교육이 원인이다’다시 말해 「객관식 교육 ==>난독증」 의 논증을 보자.

「전 국민적 난독증, 객관식 교육이 원인이 아닐까?」에서 들어놓은 논거를 찾아보자.


[즉, 유학이 유교가 되어버리고 관상, 풍수지리가 판치어 금수강산을 무덤이 점령한 나라, 음양오행으로 천지만물에 꿰어 맞추는 무지와 오만함이 의학의 영역까지 버젓이 횡행하는 한방의 나라, 거대 개신교 교회와 여타의 각종 종교단체의 거대 권력화, 각종 사이비 종교의 난립...... 아직도 열심히 on-off활동을 하시는 황빠의 나라.

상대적이며 변화가능한 모든 세상의 이치와 과정을 이해 못하고 암기하고 이에 꿰어 맞추려만 들고, 또한 상대를 적(악)으로 규정하는 속편한 투쟁만을 하는 인간을 만들어온 것은 아닐까요?]


-논거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은 위 정도가 모두인데...


참고로 「객관식 교육 ==>난독증」은 하나의 가설일 뿐이다. 제법 많은 사람들은 가설 수준 이상으로 믿는 모양이지만.


부연한다.

「객관식 교육 ==>난독증, 특히 우리나라 사람」의 논증을 위해서는,


1.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난독증이 있음 

2.「객관식 교육 ==>난독증」


을 보여야 한다. 논리적 정합성의 완벽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의 객관성 획득은 필요하겠는데, 그러자면 「객관식 교육==>난독증」의 논증을 위해 다음이 있어야 한다. 객관식 교육==>암기에의 몰의존현상==>논리능력 결여현상 간의 연관성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있어야 한다. 또한 그 고찰에 집중해주어야 한다.


글쓴이가 말한 ‘상대적이며 변화가능한 모든 세상의 이치와 과정을 이해 못하고 암기하고 이에 꿰어 맞추려만 들고’가 그러한 고찰의 한 예이다. (내가 보태자면, 암기우선은 다층적/분석적/종합적..끝이 없다 하튼, 이런 류의 사고능력을 취약하게 만든다.)


내가 말하고 싶은 요지, 글이 객관성( 또는 설득력)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글쓴이는 그가 제시한 ‘암기교육의 폐해’에 계속 집중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객관식 교육이) 상대를 적(악)으로 규정하는 속 편한 투쟁만을 하는 인간을 만들어온 것은 아닐까요?’가 나온다.

- 나중에 나도 ‘진영의식陣營意識’을 난독증 원인으로 들겠지만 ‘상대를 적(악)으로 규정하는 습성’과 난독증은 관련이 없지 않다. 그런데 ‘상대를 적(악)으로 규정하는 습성’이 객관식과 관련이 깊나?‘상대를 적(악)으로 규정’하는 대표적인 사람들인, 미국 남부 침례교도들도 그럼 객관식 교육을 받아서? 조지 부시까지?


다음은 더 심하다. 견강부회 급.

‘즉, 유학이 유교가 되어버리고 관상, 풍수지리가 판치며 금수강산을 무덤이 점령한 나라, 음양오행으로 천지만물에 꿰어 맞추는 무지와 오만함이 의학의 영역까지 버젓이 횡행하는 한방의 나라, 거대 개신교 교회와 여타의 각종 종교단체의 거대 권력화, 각종 사이비 종교의 난립...... 아직도 열심히 on-off활동을 하시는 황빠의 나라.’.

- 유학/유교와 객관식, 관상, 풍수지리와 객관식, 금수강산 무덤과 객관식, 음양오행과 객관식,...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나? 설마 풍수지리설이 성행하기 시작한 신라시대부터 한국교육이 객관식이었던가? 전 신라인/고려인/조선인이 난독증이었던가?


글/글쓴이는 말하고 싶은 결론을 내놓는다. 나는 그 논증/논거를 찾는다. 찾아보니 약하다. 약한 논증/논거 대신에 글에는 글의 명목(대표적으로 제목)상 결론과는 관련성이 매우 약한, 글쓴이 자신이 평소 하고 싶은 주장만 있다.

글의 명패, 글의 제목을 주장하고 싶은 건지, 유교/풍수지리...어쩌고를 주장하고 싶은 건지?.. 이런 집중력 결여, 견강부회를 亂筆症이라 한다. 정확히는 난필의 한 증상이다.


난필이나 치밀하지 않은 논증습관 또한 객관식 교육의 폐해일지 모른다. 가능성이 적지 않은 그러나, 증명하기 쉽지는 않은.

높은 개연성을 갖는 것이 있다. 저어기 위에서 나온 적이 있는,‘많은 사람들의 말’에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의존하는 현상은 어디에 닿을까? 암기위주 객관식 교육에 닿는다. 타자에의 비주체적 의존습성을 키우는 발판이 바로 암기위주 객관식 교육이기 때문이다.



추신1:「전 국민적 난독증, 객관식 교육이 원인이 아닐까?」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전 국민적 난독증’에 동의하지 않는다. 「난독증을 많이 접하는 이유」는 전 국민이 난독증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다른 이유 때문일 수도 있다. 이 차이는 크다. 그러니 언제나 유념해주기 바란다. 하튼 「난독증을 많이 접하는 이유」를 말해본다.

더불어 「난독증의 원인」까지 말해본다.


난독증의 의 원인으로 가장 큰 것은 역시 논리력/종합적 사고 능력 부족이다. 「전 국민적 난독증, 객관식 교육이 원인이 아닐까?」는 객관식 교육이 원인이라 했지만 정확히는 논리력/종합적 사고력의 문제이다. 객관식 교육이 논리력/종합적 사고력 부족을 가져올 공산이 높긴 하지만 모든 객관식 교육이 논리력/종합적 사고력 부족현상으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이는 數學을 객관식으로 출제하되 가르치기는 이해(물론 논리과정의 이해)를 강조하며 지도해보면 금방 드러나는 일이다. 입시위주 교육은 앎 자체보다는 점수를 우선시한다. 겉으로 드러난 점수가 앎이라 오인되고, 따라서 이해보다는 암기를 강조한다.

말하자면, 난독증에 객관식 교육도 문제가 되고 뿐만 아니라 입시위주 교육도 문제가 된다. 이들이 뒤엉켜 있어서 우린 보통 ‘입시위주 객관식 교육’이라 싸잡아서 비판하지만 개념적으로 둘은 분명 구분되어야 한다.

그렇다 해도, 객관식 교육이 난독증의 일 원인은 된다. 이 점에 동의한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원인 또한 빠뜨리지 말아야 한다.


난독증의 다음 원인은 비판적 읽기의 부족이다. 비판능력의 부족이 아니라 비판적 읽기의 부족이다. 비판능력을 가졌으되 비판적 읽기가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사람이 자신이 속한 진영을 의식하는 경우이다. 적대적 읽기, 그리고 우호적 읽기이다.

독자가 필자에게 우호적 감정을 가졌다면 그 필자의 웬만한 주장에 쉽게 공감한다. 또 평소 듣고 싶은 주장이 있는 글이라면 우리는 오독誤讀을 하여서라도 공감하고 싶어 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글에 거슬리는 주장이 있으면 다른 부분 다 빼고 그 부분만 확대 수용하여, 모질게 비판한다. 글의 전체적인 논지는 그 독자에게는 전혀 관심사가 아니다.

그러한 비난을 들었을 때 나오는, 글을 쓴 자의 대표적인 항변이 바로 이렇다. 당신 난독증이지?

나는「전 국민적 난독증, 객관식 교육이 원인이 아닐까?」을 읽고 그 분석에 쉽게 동의하는 독자 중 일부는 우호적 읽기를 하기 때문이라고 추론한다. 전 국민이 난독증이라서? 아니다. 「의료와 사회」에 오는 독자들이 특히 난독증이라서? 아니다. 「의료와 사회」에 온 분들 중 일부는 「의료와 사회」의 글에 우호적 읽기를 하기 때문이다.


난독증의 다음 원인은 인터넷 속성이다. 가벼움과 귀차니즘이다. 인터넷에서 우린 대체로 가볍다. 즉물 즉자적으로 행동한다. 실생활에서 우리가 가볍든 무겁든 간에 그 실생활보단 인터넷에서 가볍게 행동함은 우리들 대부분의 행동양식이다. 왜냐하면 인터넷은 그 특성상 진지함보다는 유희추구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글을 가볍게 쓴다. 글을 소비하는 자 또한 가볍게 소비한다. 진지함은 귀찮을 뿐이다. 가볍게 소비한다, 귀찮다는 말은 난독도 불사한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결국 우린 서로서로의 난독증을 많이 접할 수밖에 없다. 전 국민이 난독증이라서? 아니다. 인터넷 속성 때문이다.


난독증의 다음 원인은 「배움 수준의 문제」그리고 「자기중심적 사고 습성의 문제」이다. 더 배우고 덜 배운 것이 무엇인지 간에 우리들 중 일부에게 ‘나는 다른 누군가보다 더 배웠다’고 생각하는 습성이 있음은 분명하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이 습성을 조금 더 갖고 있다.

독자들 간에도 마찬가지다. 제1의 독자는 제2의 독자를 두고, 제2의 독자는 제1의 독자를 두고 ‘나는 저 사람보다 더 배웠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 하더라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는 자기중심적 사고 습성이 있다. 때문에 실제로는 내가 난독중임에도‘ 저 사람이 난독증이구나’ 생각하는 경우가 당연히 있다.

결국 우린 난독증을 많이 접할 수밖에 없다. 전 국민이 난독증이라서? 아니다. 사람의 습성 때문이다.



추신2:

일본의 교육방식은 우리와 비슷하다. 일본 사람들도 논리력이 딸릴까? 일단 그렇다고 할 수 있겠다. ‘일단’이라 보류하는 이유는 대학교육까지 우리 방식과 비슷하다 말할 자신은 없기 때문이다. 하튼 일본 사람들도 그들이 공부한 양에 비하면 논리력이 딸린다고 본다.‘공부한 양에 비하면’라고 말하는 이유는 韓日 정도라면 서양과 비교해도 공부량은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근거는 없지만 나의 인식은 그렇다.)

이 정도 말하였으면 한국 사람들의 논리력을 타국과 비교하여 어느 수준으로 보는지 잠작이 갈 것이다. 그렇다면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난독증이 있다’에 왜 의문부호를 던지지 않겠는가?


‘한국인에게 특히 있다’여부는 우리나라 교육 방식의 폐해(입시위주 교육의 폐해 및 객관식 교육의 폐해)가 과연 어느 정도이냐, 우리나라 사람들의 교육열이 그 폐해를 (논리력에 있어서) 벌충할 만큼이 되느냐 여부이다.

간단히 말하면, 한국사람들 많이 배우긴 하는데 논리력은 좀 띨띨하게 배우긴 한다. 그래도 타국 사람보담은 논리력이 덜 띨띨하지 않나? 아님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