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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090714 [펌譯] '뼈나이 관문’은 억울한 사안을 만드는가? -白寶祥 사례


‘뼈나이 관문’은 억울한 사안을 만드는가? -白寶祥 사례

출처:李都이도, 金陵晩報금릉만보  2009年07月14日 (원문 바로가기)




7월11일 전국 바둑 입단대회가 절강성 소흥에서 시작되었다. 입단대회는 매년 적지 않은 화제를 일으키는데, 금년은 사람들을 더 놀라게 했다. 뼈나이 초과 때문에 19명의 소년 棋士들이 대회 참가 자격을 잃었다. 이 중에는 이미 아마추어 바둑계에서 제법 이름을 날린 白寶祥(백보상)이 포함된다. 아들 앞의, 프로 대문이 닫히는 것을 보면서 백보상의 아버지 白光(백광)은 마음이 급해졌다. 자신의 블로그에서 억울함을 하소연함과 동시, 중국기원의 일처리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이리하여 중국바둑계에 ‘뼈나이 관문(骨齡門)’사건이 발생하였다.


어제(;7월 13일) 기자는 백광을 전화취재하였다. 의외로 백광은 매우 평안해보였다. 그는 말하기로, 자신은 줄곧 기원의 답변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만약 최종적으로 아무런 방도가 없게 된다면 그는 아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법적 수단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뼈나이 관문’은 억울한 사안을 만드는가?

  

중국기원은 명확히 규정한다. 올해 입단대회에 참가하는 기사들은 반드시 아마추어 5단 이상 단증을 구비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자연연령 1992.1.1이후 출생이어야 하고 뼈나이 검사값이 18세 이하여야 한다.  

백광은 기자에게 말해주기로, “나는 책임지고 말할 수 있다. 내 아들은 1992.12.31 출생이다. 내쪽에 신분증과 호적자료가 있다. 의사가 발급한 출생증명도 있다. 근데 기원 측은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중국기원 측정에서 나온 백보상의 뼈나이는 18.6세, 기준인 18세를 넘었다. 이를 두고 백광은 매우 분개하여,“뼈나이 측정은 한 사람의 뼈 발육 상황을 보는 것 아니오? 바둑 두는 일에도 필요하단 말이오? 당신은 뼈나이가 곧 실제나이임을 설명할 수 있소?  현재 신분증법이 있는데 어째서 법은 인정하고 기원은 인정 않는 것이오?

 

백광은 또, 자신은 줄곧 바둑관련 직업에 종사중이다, 나이 변조 사례도 적잖이 안다, 때문에 입단대회 뼈나이 측정 요구를 완전 이해한다, 단 “몽둥이 하나로 모두를 때려죽일 수는 없는 법이다”고 생각한다 고 하였다. 

(註;不能一棍子把所有人打死, 몽둥이 하나로 모두를 때려죽일 수는 없는 법이다. 백광은 이 말을 비유적으로 사용한다. 여기서‘몽둥이 한 개’란 뼈나이를,‘모두’란 백보상을 말한다. 요컨대, 오직 뼈나이로 백보상의 바둑 인생을 때려 죽여(;입단대회 참가자격 박탈)서는 안 된다는 의미.)


백광은 말한다.“당시 기원 측은 총 19명의 아이에게 뼈나이 초과라 통지하였습니다. 그들의 부형과 나는 당시 함께 기원과 교섭하였습니다. 그러나 종국에 이르러 나 한 사람만이 감히 일어서서 견해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백광은 현재 백보상을 데리고 진황도(:섬 이름)에 있는 중이다. 그의 얘기, “휴가를 즐기는 게 아니라 전열을 정비하는 것입니다.”그는 여전히 기원 측의 회답을 기다리는 중이다.  



계속 바둑의 길로 가야 한다.

  

백보상은 여러 해 입단대회에 참가하였는데, 몇 번이나 근소한 차이로 실패하였다. 이번에는 드디어 뼈나이 값이 기준 초과로 나와버렸는데, 이는 장래 그가 프로바둑에 완전히 인연이 없음을 뜻한다. 어쨌거나 중국에서는 프로기사가 되기 위해선 반드시 입단대회에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프로기사가 되는 길이 막힌 이제, 향후 백보상은 어떤 길로 나가야 하나? 백광의 대답은 기자를 놀라게 하였다. 

  

“사실 프로가 되고 안 되고를 나는 그리 크게 맘에 두지 않습니다. 이번에 기원과 다투는 이유는 오로지 아들에게 설명해주기 위해서입니다. 그 외는 내가 결백하면 족하고 기원이 방책을 논의하기를 원할 뿐입니다.”백광은 말한다. “아들은 아직 어립니다, 아들은 내게 말하기를 17살인 그들은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데 16세인 나는 무엇 때문에 참가할 수 없습니까?.. 나는 아들에게 무슨 말로 대답해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아들의 미래에 대해 백광은 솔직하게 말하였다. 현재 보상이의 棋力은 약하지 않다, 우리 애는 아마추어 대회라도 참가하여 상금을 탄다. 제 몸 하나 건사하면 족하다. 게다가 바둑 교습을 하면 먹고 사는 건 문제가 안 된다. “때문에 설사 프로가 될 수 없다 하더라도 보상이는 향후 바둑의 길로 갑니다.”

사실 설령 프로가 된다 하더라도 상당한 발전이 없다면 아마추어 기사보다 못하다. 백광은 설명한다. “만약 당신이 프로대회에 참가해서 번번이 조기 탈락한다면 상금은 매우 적습니다. 아마추어 대회 좋은 성적을 내어 많이 버느니만 못합니다. 때문에 적지 않은 프로들이 단증을 버리고 아마추어 신분으로 되돌아가기도 합니다. 이런 예들이 국내에서 결코 적지 않습니다.”  


당연히, 세계대회 우승은 줄곧 백보상 부자의 꿈이다. “프로가 된다는 건 당연히 좋은 일입니다. 아들이 향상 발전할 기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입단제도 변혁을 야기할 지도

  

백광과 중국기원 간의 교섭에서 중국기원도 “뼈나이 측정치와 실제 연령 간에 확실히 오차가 있을 수 있다. 단 뼈나이 검측이 있어야 기본적 공평성이 보증된다.”고 인정하였다. 때문에 이후의 바둑 입단대회에서도 뼈나이 검측은 이전처럼 계속될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백광의 생각은 역시 다음과 같다. ‘「뼈나이 관문」으로 오늘날 이 소란이 왔다. 기원 측 설명이 꼭 있어야 한다. 해서 나야말로 상소(註;알다시피 백광이 소송 중은 아니고 유사한 상태일 뿐이다. 아마도 다른 수단에 호소하는 상황을 ‘上訴’라 표현한 듯)가 급하진 않다. 오히려 계속 끈기 있게 기다릴 뿐이다.’

종국에 어떤 방도가 도출되어 나올지에 대해, 백광은 마구잡이로 내려진 결론은 원치 않는다. 아마도 입단제도 변혁의 시기가 되었노라고 백광은 믿는다.


기자가 알기로, 한국과 일본의 바둑계에는 특별 입단제가 있어서 아마추어 시합에서 출중한 성적을 낸 자는 프로 단(증)을 받는다. 한국은 거기다 18세 초과 棋士들을 위한 입단대회까지 있는데, 단지 입단 정원이 좀 적을 뿐이다.  

그런데 백보상이 비록 나이는 많지 않지만 棋力은 이미 상당하다. 2007년에 황하杯 전국 아마추어 바둑대회 준우승과 동시에 아마추어 6단증을 땄고, 2008년에는 신목(神木)배 전국 아마추어 棋王대회 우승을. 2009년에는 전국 만보(晩報)배 3위를 하였다. 백보상의 실제 나이가 18세를 넘겼는지 안 넘겼는지는 차치하고서 보자, 이런 정도의 실력을 가진 소년 기사가 뭔가 조금 ‘특별대접’을 받아야 할까 말아야 할까?


해서, 어제 대화 마지막에 백광은 기자에게 말하였다. “만약 아들이 능력이 안 돼서 프로가 못 된다면 난 어떠한 원망도 안 합니다. 그러나 만약 현재 우리 모양이‘원통한 죽음’과 마찬가지라면 나는 여하 간에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계속 투쟁할 것입니다다."

 

요 몇 년에 바둑열은 갈수록 뜨거워졌다. 바둑을 배우는 아이들도 갈수록 많아졌다. 프로기사들의 파이는 이 정도로 커졌다. 그래서 매년 벌어지는 프로 입단대회는 ‘천군만마가 외나무다리를 지나는’격(註;병목현상)이 되어버렸다.

  

18세를 기준으로 삼았는데, 중국기원의 처음 의도는 나쁘지 않았다고 말해야 할 것이니, 필경 바둑에는 주의해야 할 한 가지가 있는데 타고난 자질이다. 만약 18세가 되도록 프로가 될 수 없어서는, 바둑을 직업으로 삼는다 해도 큰 발전을 볼 수 없으리라. 그러니 이런 경우에 다른 교과서를 잡는다 해도 늦지는 않으리라.


사람들 생각이 미치기 힘든 것이, 나이 기준이 가지고 온 부정적 영향이야말로 극히 크다는 점이다. 그 첫째가 나이개조로 역대 입단대회에서 금지령이 끊이지 않았다. 예컨대 금년 입단대회에서는 소흥에 취재 간 기자와 동행한 사람이 폭로하기를, 1992년생 및 1993년생 棋士는 반드시 검측을 받아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누군가는 아예 1994년생으로 고쳐버렸다고 했다. 이래서는 공평성이 심각히 손상되었다. 뼈나이 검사야말로 상대적으로 공평한 방책인 셈이다. 

 

이밖에, 격렬한 경쟁 때문에 아주 많은 가장들이 솥을 부수고 배를 가라앉힌다(;배수의 진을 치고 임하다). 직장을 그만두고 애를 데리고 북경에 와서 聶馬도장(섭위평 도장과 마효춘 도장)에 맡기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한 학기 학비는 만(元원;위엔) 이상 필요하며, 가장들은 게다가 아이가 공부할 방을 세(租) 얻어야 한다. 백보상 부자는 백보상이 매우 어렸을 때에 직장을 그만두고 북경에 왔다. 백광은 그래도 운이 좋아 자신이 바둑을 둘 줄 모름에 불구, 聶도장에서 관리직을 얻었고 바둑을 배우도록 아들을 데리고 있는 중이다.

李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