沒敗(몰패), 처음 아니다 / 山下酒醒何處, 일본은 또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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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下酒醒何處 :
詩句에 빗댄 표현임. 柳永이 지은 시 「雨霖鈴우림령」에
‘今宵酒醒何處?’(오늘밤 술 깨면 어디로?)==>山下酒醒何處산 아래 술 깨면 어디로?/야마시타는 술 깨면 어디로?
<==두 가지 해석이 모두 가능한즉, 漢子의 특성을 이용한 언어유희임.
출처 :☞楊誠(양성) 搜狐체육(수호체육, 찾을 수 여우 호) 2011.12.02
12월 2일, 농심배 아홉 번째 판에서 山下敬吾(야마시타게이고)가 김지석을 당해내지 못함으로써 일본팀은 1승도 거두지 못 하고 탈락했다. 몰패 탈락은 농심배 13회 동안 처음인데, 단체전에서 이러한 결과는 일본팀의 처음은 아니다. 사실 중국팀 또한 예전에 단체전에서 全敗(전패) 탈락한 적이 있다. 지금은 다만 일본바둑의 누적된 약체화가 단체전에만 한정되지 않을 뿐이다.
中日슈퍼대항전이 특수한 시대적 환경 下에서 聶선생의 때맞춘 용맹스런 활약으로 일단의 전설과, 그리고 중국에 몇 십 년의 바둑열기를 일으켰다. 또한 한국인들이 中日슈퍼대항전의 뜨거운 열기를 보고 손발이 근질근질해졌고, 그리하여 한국 주최의 三國승발전이 자연스레 시작되었다. SBS배로부터 진로배, 그리고 농심배까지 벌써 19번의 三國승발 大戰이다.
삼국 쟁패 초기에 일본 棋士의 성적은 중국보다 나았는데, 비록 일본의 ‘六超(6명의 초일류)’는 쇠퇴하는 중이었지만 그 餘威(여위)는 여전했고, 거기다 依田紀基(요다노리모토)나 小林覺(고바야시사토루) 등 강호가 있었기에, 일본 기사들은 단체전뿐만 아니라 세계대회 개인전 우승 횟수 또한 중국의 여러 배였다.
첫 삼국승발전인 SBS배 역시 팀당 다섯 사람이었다. 중국 일본은 각 3승이었고 한국이 7승, 대회는 서봉수 손에서 마무리되며 한국 주장인 조훈현은 출전조차 안 했다.
삼국승발전 두 번째 대회는 진로배였다. 진로 측은 총 다섯 번 후원했는데, 제1회 진로배에서 한중일의 승수는 각 6,3,5승이었다. 중국의 3승은 모두 曹大元(조대원)이 이룬 승리였다.
제2회 진로배에선 依田이 5연승, 서봉수가 4연승으로 韓日이 각 7승을 거두었고, 최종전은 이창호와 武宮正樹(다깨미야마사키)의 결전이었다. 그런데 중국팀은 한판도 이겨보지 못한 채 ‘빵점’(알을 품다(抱蛋품을포,새알단)란 표현이다. 알이 동그란 형태이니까 빵점이란 뜻으로도 쓴다 ;譯註)을 맞고 돌아왔다. 당시 진용은 조대원 兪斌(유빈) 劉小光(유소광) 馬曉春(마효춘) 聶衛平(섭위평), 상대의 진용이 어쨌거나간에 저토록 정예가 나서서 저런 성적이었으니, 기술과 심리상태에 모두 문제가 있었다.
제3회 진로배에서는 중국과 일본이 각 4승이었고, 6승을 거둔 한국이 대회 2連覇(연패)를 이루었다.
제4회 진로배에서는 일본이 단 1승, 중국이 6승이란 최고 성적을 거두었다. 결승국에선 마효춘이 조훈현에게 졌다.
제5회 진로배에서 일본은 처음으로 0勝-삭발 당했다. 중국 또한 별달리 나은 구석이 없었는데, 첫 타자로 나선 유빈이 김영환과 淡路修三(아와지슈조) 두 사람에게 거둔 연승이 전부, 그리곤 한국 2번 타자 서봉수가 나와서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9연승, 독탕 싹쓸이를 해버렸다.
***삭발 당하다 :역시,‘0점 맞다’의 비유적 표현임
1회 SBS배로부터 5회 진로배까지 한국은 6連覇(연패)를 이루었고 中日은 각 한 번씩 0승이었다.
2년간 중단 후, 1999년에 승발전이 농심社 후원으로 재출발했다. 이후 12회를 지나오며 중국과 일본은 각 한 번, 한국이 이창호의 용맹에 힘입어 10번을 우승했다. 근년에 들어 중국 棋士들이 개인전에서 우세를 점했지만 더욱 중요시하는 단체전만큼은 계속 열세로서, 우승 겨우 한 번에 게다가 10회와 12회에선 한국팀 주장 얼굴조차 보지 못 했다.
중국팀이 삭발을 당한 1993년 진로배 당시엔 (중국팀에) 그래도 개인전 4강이나 심지어 결승에 오른 棋士가 있었는데, 지금의 일본은 2007년 초에 張栩(장허)가 제3회 豊田(토요타)배 결승에서 진 이후 더 이상 결승 진출자가 없었으며, 올해 富士通(후지쯔)배에 와서야 井山裕太(이야마유타)가 4강에 진입했다. 그때까지 오래도록 8강에서조차도 일본 棋士의 그림자를 찾을 수 없었다.
聶馬세대가 치욕을 당할 당시 중국에는 그래도 7소룡이란 희망이 있었으나. 지금의 일본은 희망이 어디에 있는가? 山下, 羽根直樹(하네나오키), 坂井秀至(사카이수지) 모두 현 타이틀 보유자이고 앞 두 사람은 ‘天王’이라 불리는데, 이러한 전적은 참으로 일본바둑을 두고 통탄케 한다! 일본 근대 바둑 역사상 그렇게 많은 棋士, 그렇게 많은 흥미진진한 얘깃거리, 심후한 문화적 밑바탕에 中韓 바둑팬들은 선망의 눈길을 보냈다. 그런데 오늘에, 4500만엔 3600만엔 등 고액 상금을 거머쥔 棋士들이 ,실로 국제대회를 이렇게 버려버리다니, 자국 바둑팬들의 감정은 전혀 돌보지 않는단 말인가?
공걸(공걸)九단이 어젯밤 한 말, “山下가 받는 압박감은 엄청나다!” 오늘 참상은 山下 한 사람만의 잘못이 아니다. 그래도 주장으로서, 그는 오늘밤 필시 한 잔 괴로운 술을 마시리라.
예전에 읽은, 섭위평 九단의 자서전 「내 바둑의 길」에, 제1회中日슈퍼대항전에서 小林光一(고바야시고이치)가 노동자체육관에서 바둑을 이긴 후에 천여 명 중국 바둑팬들 앞에서 , “일본바둑은 전통이 있다. 승발전에서 나는 이길 수만 있을 뿐 질 수는 없다”란 無道(무도)한 소릴 했다고 적혀 있다. 오늘에 일본바둑에 그 누구에게 이러한 覇氣(패기)가 있는가? 언제가 되어야 이러한 패기를 다시 볼 수 있는가?
책임편집 :月影월영(달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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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기사를 쓴 楊誠 기자의 다른 記事☜에서-
韩国队另外两名队员元晟溱和李昌镐,前者正迎来职业生涯的顶峰,后者一到团体赛就变成了“加强版”。
한국팀의 (김지석 말고) 나머지 둘은 원성진과 이창호, 前者는 바야흐로 프로 생애 절정기이고 後者는 단체전만 가면 ‘업글판’으로 바꿔치기 돼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