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중국바둑계 유명 기자인 사예(謝銳)의 글이다. -그의 블로그에 실렸다. ☜
◆이 글의 본래 제목은 ‘快意恩仇十番棋 何必苦吟長恨歌’이다. 대문에 붙인 제목은 보다시피 ‘人生長恨水長東’
◆바로 위도 그렇듯이, 어? 이 양반이 漢字들 독음조차 안 달아줘? 그렇다. 독음이 안 달린 게 많다. 그런 경우 일단 넘어가실 것. 그리고 계속 차분히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독음은 있다(어떤 경우는, 결국 없긴 없다). 사실 독음이 뭐 중요할까. 어차피 의미 모르는 독음은 거의 무의미. 결국 어떤 문장의 의미가 즉각 안 보인다 하더라도...결국 그 의미들을 이 글 어디엔가 풀어놓았다. 다만 읽는데 어느 정도 인내가 필요할 뿐, 읽고자 하는 분이라면 읽을 수 있다.
다 읽고 나면 자연히 알게 되겠지만, 사실 이 글은 딱 두 개, 좀 욕심 내자면 세 개 글귀만 이해하면 충분하다. 아래 세 문장 참조.
快意恩仇十番棋 何必苦吟長恨歌 (사예 to 고력) -동생, 털어버려
天意從來高難問, 況人情, 老易悲難訴 (고력) -하늘씨, 암 말도 안 함? 나 괴로베~
自是人生長恨水長東 (고력) -인생은 고통이야
저거 세 개. 이제 바로 본문으로 가도 좋다. 읽다 막히면 올라와서 찾아서 참조...
최대한의 독자를 품기 위해 그 나머지 것들까지 가능한 한도 내에서 漢字풀이를 시도했을 뿐, 모르는 부분, 이해 안 가는 부분에 절대 부담 갖지 말고, 그러려니 넘어가면 된다. (사실, 이렇게 쓰고 있는 사람도 제대로 소화하기란 벅찬 일이다.)
일단 글을 소개하려면 全文(전문) 소개가 원칙이기에, 안 하면 안 했지 기왕 하는 바, 이번 [펌譯]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 -일단 그렇고, 어쨌든, 위 세 개에 일단 집중하자.
◆무협소설 ‘書劍恩仇錄’을 번역할 수 있는가? 의미를 설명할 수 있을 뿐, 알맞은 번역은 참으로 쉽지 않다. 결국, 그냥 서검은구록이다.
◆마찬가지로, 소개되는 글의 본래 제목인‘快意恩仇십번기’ 또한 그 의미를 설명할 수 있을 뿐, 번역이 참으로 곤란하다. /은혜엔 은혜로 원한엔 원한으로. 快意(쾌의)란 시원스럽다란 의미. ‘快意恩仇(쾌의은구)’;은혜/원한을 거침없이/시원하게/후련하게 갚는다란 의미. 무협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글귀이다. 결국, 그러한 십번기. 본 뜻에서 상당히 벗어나지만 이렇게 이해해도 좋다. 그까짓 십번기.
◆何必苦吟長恨歌 ;苦吟(고음);고심하여 읊음. 하필 고심하여 長恨歌(장한가)를 읊는가. 위와 보태어 ‘快意恩仇十番棋 何必苦吟長恨歌’의 의미가 조금은 잡힐 것이다. 고력(古力)을 바라보는 사예기자의 안타까움의 표현으로 짐작된다. 사예기자는 고력에게‘승패는 兵家(병가)의 常事(상사)’라 말해주고픈 심정인거다. '그까짓 십번기. 古사부, 長恨歌 그런 거 읊지 말어. 털어버려.'
◆글 내용 중에 다수의 漢詩(정확히는 詞)가 등장하는 바, 번역자는 이(것들의 배경/대략적인 의미 등)를 소개할 수 있을 뿐, 그 문학적인 의의를 잃지 않도록 적절히 번역하여, 글 속에 딱 녹여넣어서, 한 입에 떠먹일 능력은.... 없다(고전중국어-漢文-가 갖는 근본적인 한계라서). 따라서 평소의 [펌譯]에 비추자면 이례적으로 이렇게 글 앞에 잡설을 깔아 놓을 수밖에 없다. 이걸 미리 읽든, 본문을 읽다 찾아서 참고하든, 난 漢字가 싫어! 난 패스야 이러든,...각자 편한 대로 읽으면 된다.
◆關西大漢 銅琵琶 鐵綽板,唱‘大江東去’/執紅牙板,歌‘楊柳岸,曉風殘月’
:(출처는 南宋 兪文豹 ‘吹劍錄’):해당 내용은, 소동파(蘇東坡=蘇軾소식)가 어느 관직 복무 당시에, 어느 아부 잘 하는 막료에게 ‘나와 류영(柳永), 둘의 詞를 비교해보시게’시킨 일화로부터 유래했다고. 여기서 詞(사)란 文學(문학)의 일종. 동파의 명령 아닌 명령에 이 부하가 즉석에서 읊은 것이 위 구절. 즉, 두 사람이 이미 지은 千古名句를 각각 끌어와 자기 나름으로 조립한 구절이 ‘關西大漢 ...어쩌고’ 저 구절이다. 그리하여, 호방하고 기개 드높은 소식의 詞 vs. 부드럽고 절제된 류영의 詞, 두 사람의 詞의 특징을 절묘하게 대조적으로 표현. 아부는 아부지만 정곡을 찔렀기에, 듣고 앉았던 소식이 크게 감탄.
關西大漢관서대한;관서지방의 사내, 銅琵琶;동으로 만든 비파, 鐵綽板;철로 만든 작판, 작판이란 박자 맞추는 악기의 일종,唱‘大江東去’;‘장강은 동으로 흐른다’를 노래하다. 호방하고 기개 높지?
執紅牙板;아판 역시 박자 맞추는 악기, 홍아판의 紅은 이 악기의 재료 나무가 홍색이므로. 執은 잡을 집. 歌‘楊柳岸,曉風殘月’;양류안-버들 늘어진 강변, 曉風효풍;새벽바람, 殘月잔월;곧 질 달. 스산하고 처량한 이별 정경. 今宵酒醒何處,楊柳岸,曉風殘月의 일부;오늘 밤 술이 깨면 또 어디일까? 버들잎 강변엔 새벽바람이 쓸쓸히 불어오고, 하늘엔 희미한 달빛만이 남아 있네;임을 보내는 심정을 읊었다고. 宵밤 소. 醒술깰 성.
현대식으로 풀어보면“柳낭중의 사는 십칠팔 세 아녀자에게는 어울리는, 거 뭐 아판을 집어 들고 버들잎 강변 새벽바람에 달이 어쩌고 이런 수준이고요. 學士(동파를 말함)의 사로 말하자면, 모름지기 관서사내라면 동비파 철작판을 들고 장강은 동으로 흐른다, 이런 걸 읊어야지요.”...이 말에 좋아 뒤집어지는 소동파.
◆對酒當歌,人生几何。譬如朝露,去日苦多,慨當以慷,憂思難忘。何以解憂?唯有杜康
:조조(曹操)의 短歌行(단가행) 중 일부, 묵직한 필치로 통일천하의 웅심을 표현했다는 평. 短歌行의 일부인 위 구절은, ‘너 술, 인생 아침이슬처럼 잠깐, 인생 많은 날 지났쓰, 기분 꿀꿀, 이 근심을 뭘로 풀어? 오직 술’대략 이러한 (천박한) 해석.
◆三杯兩盞淡酒,怎敵他、晩來風急?雁過也,正傷心,却是舊時相識
:이청조(李淸照) :宋나라 시대 才女. 중국의 허난설헌. ‘몇 잔 술로 늦은 밤 찬 바람을 어찌 견딜까. 기러기 날아가는구나. 옛 그 기러기.. 아아 더 상심.’ ;적막한 늦은 밤 여인이 홀로 남편을 그리며 깊은 傷心(상심)에 빠진 정경.
◆底事昆侖傾砥柱,九地黃流亂注。聚万落千村狐兎 :
底事;어이하여, 昆侖;곤륜산, 傾경;무너지다, 砥柱지주;天柱. 하늘을 괴는 기둥(전설), 底事昆侖傾砥柱;송나라 붕괴를 은유. 九地;중국/온세상, 黃流亂注;황하범람 ;금나라 병사 난무. 聚万落千村狐兎;여우 토끼(狐兎)만 득실대는, 村落(촌락)의 황폐함
◆林花謝了春紅,太悤悤。無奈朝來寒雨,晩來風。臙脂淚,相留醉,几時重. 自是人生長恨,水長東 :
林花림화;수목의 꽃, 謝사;시들다. 林花謝了春紅,太悤悤태총총;꽃 순식간에 시들 듯 봄도 그렇게 총총(바삐). 봄은 南唐을 은유. 朝조;아침, 無奈朝來寒雨,晩來風;아침 찬 비 저녁 바람에 불가항력(無奈무나;대책 무,불가항력). 朝(아침)=宋나라 趙씨 같은 발음을 노린 은유일 수도(趙씨 쳐들어옴에 남당 망했다). 臙脂淚연지루;망국 당시 宮人들의 눈물. 相留醉상류취;회상에의 몰입. 重은 재회를 의미. 几時重;언제 다시 볼지,.. 한탄.
長장;항상/늘/always. 水長東수장동;장강은 언제나 동으로 흐름. 만고불변/거역불가의 현실. 人生長恨인생장한;인생은 고통. 이 또한 마찬가지.
(본문/사예 글)
快意恩仇십번기 何必苦吟長恨歌
(글 -사예)‘天意從來高難問, 況人情, 老易悲難訴.’ 만약 어떤 사람이 한 판 大승부를 치른 후 저런 탄식을 발한다면 당신은 어떤 느낌일까? 또, 그 사람이 자기 카톡닉네임을 ‘인생은 고통이야(원문 :自是人生長恨水長東 ;역주)’로 바꾼다면, 당신은 또 어떤 기분일까?
겉으로 보기에 고력(古力)九단은, 강건하고 꾸밈없고 시원스럽고 대범하여, 그 무슨 才子佳人(재자가인) 류의 완곡 절제된 애탄은 그와 거리가 멀다고 하겠다. 따라서 그에게 설령 무슨 비탄 무슨 애한이 있다 한들, 당연히 ‘關西大漢 銅琵琶 鐵綽板,唱‘大江東去’’이지 ‘執紅牙板,歌‘楊柳岸,曉風殘月’’가 아니다. 혹은 ‘對酒當歌,人生几何。譬如朝露,去日苦多,慨當以慷,憂思難忘。何以解憂?唯有杜康’이지 ‘三杯兩盞淡酒,怎敵他、晩來風急?雁過也,正傷心,却是舊時相識’가 아니리라.
당신도 이미 알아챘으리라. 우리가 얘기할 주인공이 고력이란 것을. 고력의 이런 탄식을 본 ‘神猪(신저; 갓돼지)’라세하(羅洗河)九단 왈 ;“이렇게 문학적으로?!”
‘天意從來高難問, 況人情, 老易悲難訴’는 南宋의 詞人(사인≒시인) 장원간(張元干)의 ‘賀新郞(하신랑)’의 일부인데, 이 구절은 두보(杜甫)의 ‘000’중 ‘天意高難問, 人情老易悲’를 변화시킨 것이다. 원문(두보)에서 말하는 바는, ‘하늘의 뜻(天意)이 높은 고로, 여쭈어 알기 어렵다 ;사람의 정이 오래됨에, 이별은 언제나 쉬이 상심케 한다’란 의미이다.
장원간의 詞에서, ‘天意從來高難問’의 앞 구절은 ‘底事昆侖傾砥柱,九地黃流亂注。聚万落千村狐兎’로서, 강산이 부서지고 백성이 떠돌아다니는 정경을 묘사한다. 시대적 배경은 南宋. 당시 조정이, 황제는 어리석고 무능, 권력은 간신이 농단, 밖으로는 金나라가 침입하는, 내우외환의 위태로운 시절이다. 시인은 고개를 들어 하늘에 묻지만 하늘은 드높기만 하고 아무 일이 없더라. 그 뜻을 알 길이 없더라. ( =天意從來高難問.)
‘況人情, 老易悲難訴’의 의미는, 우정이 오래라 이별의 슬픔과 상심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다른 해석으로는, 사람의 감정은 변하기 마련이라 나라의 원수를 잊기 쉽고 가문의 원한도 희미해지기 쉽다. 이런 슬픔을 (어디에) 호소하기 어렵다.
‘自是人生長恨水長東’은 南唐(남당)의 詞人 이욱(李煜)의 ‘相見歡(상견환)’이 출처로서, ‘林花謝了春紅,太悤悤。无奈朝來寒雨,晩來風。臙脂淚,相留醉,几時重. 自是人生長恨,水長東’의 일부이다. 마지막 구절인 自是人生長恨,水長東은 ‘인생은 본래 한스러운 일이 많다, 마치 동으로 흐르는 강물처럼, 쉼 없이 그침 없이, 영원히..’로 이해 가능하다.
(상자 아래 계속)
(역주 ;남당 이욱 :南唐의 마지막 군주. 남당은 宋에게 멸망. 이욱은 宋의 수도로 끌려가서 여생을 보냄. 위 詞의 내용은 망국 군주의 한탄 ;인생 회한이 표현됨. (宋태종에 의해 독살당했다는 설이 있음)
역주 ;이 글이 인용하는 고력의 感懷(감회)는 ‘天意從來高難問천의종래고난문, 況人情황인정, 老易悲難訴로이비난소’ 및 ‘自是人生長恨,水長東자시인생장한,수장동’. 이에 대한 사예기자의 해석은 본문 글에 충분히 반영. 그런데 사예기자는 위 구절이 나온 典故(전고)를 충실히 소개하고 그 해석까지 그대로 인용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천의/인정 부분) 원래 송별시였다는 것. 따라서 한 가지 부분, 況人情, 老易悲難訴의 ‘老易悲難訴’부분의 해석은 꼭 典故대로(석별의 정이니 나라의 원수/국치니) 따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역자가 생각하기에는 고력의 의도는 ‘(하물며 사람의 감정은,) (살다보면) 원래 이렇구나. 괴로베, 하소연도 쉽잖애 ㅠ’가 아닐까. 8국 종료 순간 현장에서 총총 사라져 부인 전화조차 못 받던 심정이라면...)
(상자 위에서 계속)
2014년9월28일, 古李십번기제8국 중경(重慶)전이 종결, 고력이 흑으로 두집반의 차이로 이세돌에게 패배, 종합 2:6으로 번기를 내주었다. 이세돌은 500만원의 우승상금을 차지하고 고력의 보수는 빵원. 먼저 두 판을 내준 후 고력이 연속 두 판을 만회했으나, 이후 4連敗(연패), 전체 경기를 패배하였다.
이것이 바로 고력의 ‘天意從來高難問, 況人情, 老易悲難訴’라는 탄식의 배경이다. 고력은 격조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닌 바, 이런 옛사람 식의 그윽한 탄식이라니, 더욱 비감스럽다.
고룡(古龍)(무협작가 ;역주) 소설 속의 서문취설(西門吹雪)이 愛妻(애처)와 자식을 갖게 된 후, 그 검에는 더 이상 차가운 한기가 서리지 않았고, 속념이 싹트면서 檢神(검신)에서 인간으로 돌아왔다. 허나 다정한 남편이자 아비가 아내와 자식을 잃고 결국 무적의 냉혈한으로서 검을 멨을 때, 한 떨기 매화를 칼날 위에다 훅 불었을 때, 왕년의 劍神이 다시 돌아왔다.
하늘은 한 사람에게 천부의 재능을 부여함과 동시에, 그에 값하는 불행도 함께 준다. 고룡, 이 술에 미친 탕아, 걸핏하면 하늘에 맞서더니, 결국 완벽한 劍神을 창조했다. 절세의 검법을 부여하고, 도도한 차가움을 부여하고, 세속에 물들지 않은 萬梅(만매)산장을 주고도 모자라, 동화 같은 애정까지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복은 하나하나 그로부터 떠나갔으니, 당연히 그 이후 劍神은 망가지기 시작했다.
바둑도 劍과 마찬가지임에, 최고의 棋士와 최강의 검객은 결국 모두 한편 인간이면서 또 한편 神이다. 바둑계 요 백년에 두 神이 존재했으니, 먼저가 오청원이요 나중이 이창호다. 지금 백 살이 넘은 오청원은 두 世紀(세기)를 넘나드는 바둑계의 전설이다. 그 당시 中日전쟁 시기에, 어느 십번기였든, 오청원은 일단 지면 바로 만 길 심연으로 추락하며, 프로기사 생애가 끝장날 가능성이 극히 높았다. 그가 기타니(木谷實)와 십번기를 벌일 당시에는 심지어 생명의 협박까지 받았다. ‘혹여 죽어야 한다면, 차라리 바둑판 위에서 죽으리라.‘ 이러한 신념이란 이미 승부 그 자체를 한참을 초월한 경지이다.
일생 동안 신앙에 집착한 오청원에게 바둑은 그의 전방위 求道(구도)의 일 경로일 뿐이었다. 신앙을 위해, 그는 심지어 2년 동안 바둑을 완전히 놓아버리고 도처를 방랑했다. 이로 미루어 보았을 때, 승부란 단지 승부일 뿐, 연연할 대상이 아니었다. 그의 부인 가즈꼬(和子)가 일찍이 말하길, 吳선생이 귀가할 때면 언제나 마치 여행 갔다가 돌아오는 것처럼, 시합 얘기는 일체 꺼내지 않았다, 이겼는지 졌는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어찌 승부뿐이랴. 오청원은 상금이며 집이며 세속의 물건에는 일절 무관심, ‘요미우리(讀賣)신문’이 그에게 집을 주었으나 그는 기어코 사양하며 받지 않았고, 무수한 상금을 벌었으나 집은 여전히 바람 막아주는 네 방향 벽밖에 없었다(;매우 가난). 일본기원 총재 오쿠라(大倉喜七郞)가 오청원을 가즈꼬(和子) 부인에게 건네주면서 말하기를 :“이 사람은 우리 바둑계의 보물입니다. 한평생 잘 보살펴주셨으면 합니다.”
‘易經(역경)’과 ‘中庸(중용)’을 탐독, 오청원은 무의식중에 동양문화의 經脈(경맥)을 뚫었다. 그는 ‘평상심’‘中的精神(중적정신)’을 제창하여, 한낱 작은 기예에 지나지 않던 바둑을 내면의 수련 차원으로 승화시켰다. 이를 위해 그는 바둑판 위에서 거침없이 돌을 뿌렸고 경계에 얽매이지 않고 가없이 상상했다. 설령 백 살을 맞이해서도 바둑에 대한 초심은 변함이 없어, 매일 파고들어 궁구하길 멈춤이 없다. 반세기 이상 동안 그가 남긴 한 장 한 장 기보가 지금도 빛살을 반짝이며 눈길을 잡아끈다. 그라는 사람 이후 무수한 고수가, 무수한 타이틀 무수한 꽃다발 비단더미를 가졌으되, 세상에 남아 전해지는 기보를 남길 수 있었던 자 그 몇이던가?
이창호 바둑계 독보 십여 년은, 곧 靑燈孤影(청등고영)(등잔불 푸른빛 아래 홀로 그림자 ;고독하게 수행하는 모습 ;역주) 십여 星霜(성상 ;해)이니, 그 또한 술을 하고 그 또한 사랑을 속삭이고 결혼을 하지만, 그의 내면은 티 없이 깨끗하고 무심해서, 17개 우승을 쟁취하던 영광스러운 순간이든 ‘9연속 준우승’이란 처참한 순간이든, 그의 표정은 한결같이 담담하여, 비애도 환희도 드러내지 않았다. 일찍이 그가 참가했던 각종 대회의 결승전이 끝났을 때, 언론기자들이 대국실에 물샐틈없이 들어차고, 크고 작은 렌즈들이 그를 향해 찰칵거리기를 십 분, 이창호는 마치 눈앞에 아무것도 없는 것 마냥, 부처가 그러하듯 산이 그러하듯 침묵할 뿐이었다. 이러한 부동심, 이러한 무심함, 세속에 물든 자 결코 다다를 수 없다.
오청원 이창호 이후, 바둑계에서 ‘인간과 神 사이’에 가장 근접한 인물이 이세돌이다. 어느 바다 위 궁벽한 작은 섬에서 출생, 부족한 학식이었지만 스스로 자부하며 쉼 없이 진보했던 아버지, 자질을 알아보았고 그 자질에 맞추어 가르친 스승, 棋士가 王인 재단법인 한국기원... 이 모든 것의 합이 이세돌을 만들어냈다. 그가 물건이 될 확률이란 지난 세기 초에 북경에서 오청원이 튀어나올 확률에 뒤지지 않는다.(어려운 문장. 오청원이 물건이 될 운명이었듯, 이세돌 또한 물건이 될 운명이었다, 라는 의미로 이해 ;역주) 바둑판에서의 그의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상상력, 승부에 임해 때가 닥쳤을 때 命을 걸고 생사결전을 벌이는 결단력, 이 모두가, 이세돌에 비해 완곡한 얽맴을 쉽게 못 떨쳐내고 우정, 사랑, 축구, 술, 노래 등 세속의 낙에 더 잘 沈溺(침닉)하는 고력이 갖지 못한 것들이다.
십번기의 진행 과정을 보았을 때, 2:2 동점이 된 후 제5국인 매리설산(梅里雪山)전이 분기점이었고 제7국 라싸戰이 또 백마고지 쟁탈전이었다. 두 차례의 고산지대 대결에서 두 번 다 고력은 좋은 판을 아깝게 놓쳤고, 그리하여 국면은 수습불가능으로 치달았다. 애써 몇 개의 대회를 포기하고 오로지 십번기만을 위해 준비했으면서, 어이하여 좀 더 일찍 북경의 안락한 집을 떠나 고산지대 적응을 시도하지 않았을까? 이왕에 대국장소를 바꿀 수 없음이 객관적 현실이라면, 어이하여 자기자신을 바꾸어서 홀로 먼저 가서 훈련하지 않았을까? 이세돌은 고력과 달리 하루 일찍 매리설산에 올라 적응을 하였으며, 금년에 고력보다 한 차례 더 라싸엘 갔다 왔다. 이게 도대체 무슨 홈그라운드의 이점이란 말인가?
매리설산 제5국에서 일선 묘수를 놓치고, 라싸 제7국에서의 경솔한 젖힘, 중경 제8국에서의 엉뚱한 자리 단수. 바둑판 위에서 고력의 예민함은 이미 예전 같지 않다. 세 번의 승부처 중에서 단 한 번이라도 잡아채냈다면, 결말은 달라졌으리라. 바둑판에서의 낯설음, 그 근본 원인은 강훈련의 부족이라고 보면, 십번기를 위하여 다른 대회를 버리는 바람에 외려 손이 설게 되었다면, 이건 바로 무겁고 가벼운 것을 뒤바꿔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한 감이 있지 않은지?
십번기 승부에 앞두고 착실한 심적 준비이든, 며칠 미리 산에 올라 행하는 고된 적응 훈련 등의 세세한 실전 대비이든, 이세돌이 죄다 더 잘했다. 설령 그 승리에 행운적 요소가 있긴 하지만, 결국 근본으로 돌아가서 보았을 때, 그 정신적 준비와 실전 대비에서 앞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게 바로 고력이 반성해야할 지점이다 :만약 십번기를 생명과 마찬가지의 중요한 대회로 간주했다면, 오청원 이창호 같은 정신적 차원에서 그것에 대처했어야 했다 ;만약 십번기를 단지 거액의 상금이 걸린 상업적 이벤트로 여겼다면, 지금 이런 식으로 패배했음에, 그걸 (차라리) 일종의 해방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인생은 여전히 길고, 십번기 못지않은 곤경, 헤쳐 나가야 할 곤경이 아직 얼마나 많은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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