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에 이어)
보았다시피 1/3, 1/4 이런 거 몰라도 경우의 수가 간단한 경우이기만 하면 우리들 누구나 제대로의 수순으로 둘 수 있을 정도로 쉽다. 미세한 계산은 모를지언정 이기는 수순만 찾아낼 줄 알면 되고,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미세한 값을 제아무리 정확하게 안다 해도 경우의 수가 복잡해져버리면 도저히 '해독'이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다. 국면이 복잡하다면, 모든 값이 심지어 정수값이라 해도 쉽지 않다.
바둑은 수순이고, 수순은 수읽기의 힘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숫자매니아 1급, 숫자 오덕호(매니아보다 더한 사람;오타쿠) 2급, 수학자 3급이 프로기사보다 끝내기가 강할 수 없다고 하겠다.
그러나 수순을 짜는 능력(;수읽기 능력)이 크게 쳐지지 않는다면 끝내기에서는 숫자 매니아가 낫다. 비슷한 수읽기 수준에서 박영훈이 유독 끝내기가 센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예전에 한동안 박영훈이 끝내기 외에는 미세하지만 좀 딸린다는 소리가 있었다. 물론 사천왕들 수준에서. 이번의 인터뷰를 잘 살펴보면 아직도 그런 느낌이 남아 있음을 본인도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낯 뜨거운 소리를 하자면 ^^;;) 필자도 아래위 비슷한 ‘수지’에게서는 ‘끝내기가 세네요’ 하는 소리를 좀 듣는다. 숫자에 대한 감각이 약간이나마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근데 박영훈은 이제 힘까지 좋아졌다는 소리를 듣는데...ㅠㅠ다 ㅠㅠ)
박영훈은 위 마지막 문제의 답을 알까? 웬만큼 충분한 시간이라면 아마도 찾아내겠지. 이창호는 어떨까. 그러나 이렇게 따로 물을 이유는 없다. 둘의 끝내기는 비슷한 수준이니까.
옛날에 벌캄프 교수가 복잡한 끝내기 문제를 만들어 이창호에게 제시했더니 한참을 걸렸다나 못푼다고 했다나 그런 일화가 있었다. 여기서 그 푼 사실 못 푼 사실은 말하려 함이 아니고..
이창호의 숫자감각에 대해서는 어떤 정보도 들은 게 없는데 아마 특별나지는 않은 듯싶다. 그렇다면 이창호는 두터움에 대한 그만의 감각으로 끝내기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박영훈은 숫자에 대한 남다른 감각으로 끝내기를 하고.
이건 둘 간에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얘기지 아까도 말했듯이, 고수의 끝내기 능력은 99% 수읽기 힘의 바탕에서 오며 이것에 관계된 둘의 능력은 원래 대동소이함을 잊지 말기 바란다.
결국 어떤 수순이 이기는 수순이 되느냐를 제대로 휙 찾아내는, 신비한 능력은 1/3, 1/4..이런 지점이 아닌 다른 지점에서 온다는 얘기가 된다. 아무튼 이창호를 돋보이게 하는 상대적인 요소는 두터움에 대한 예민함, 박영훈을 돋보이게 하는 상대적인 요소는 숫자에 대한 감각이다.
생각이 이쯤 오다 보면 바둑과 컴퓨터의 ‘그 시끄러운 문제’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수학을 동원하면 (위의 '그럼 이거는'문제의 답은 원본글에 있다) 또는 다르게 말한다면, 컴퓨터는 ‘그럼 이거는’ 하는 복잡한 그 문제보다도 더 복잡한 문제도 풀 수 있는 모양인데 우리의 李국수와 ‘박 오타쿠’는 땀을 뻘뻘 흘린다 말이지. 그런데 또 왜 바둑에서 컴퓨터는 인간을 ‘이기지 못할’(주;인용부호임)까.
우선적인 이유는 바둑은 끝내기가 다가 아니기 때문이겠지. 말하자면 포석과 중반전은 도저히 끝내기 계산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고, 따라서 제아무리 계산대왕(;켬퓨터)이라 해도 계산 아닌 것까지 할 리는 없다. 바둑이 계산이기는 하지만 계산이 안되는 게 바둑이기 때문이다.
두터움에 대한 예민함과 끝내기의 정치함에 있어서 예전에 이미 ‘인간’ 이창호가 홀로 높은 경지에 도달하여- 李국수 바둑의 평가로, 둘 중 어디에 방점을 찍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전인미답의 길을 걸어 보였다. 그 세례를 바탕으로 오늘날 이제 또 ‘컴퓨터’ 박영훈이 끝내기의 정점에 이르렀고 그런 박이 ‘두터움을 많이 의식하려 노력한다’ 고 말한다. 박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말하자면 진짜 컴퓨터가 인간 수준에, 진짜 컴퓨터도 인간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든 두터움에 대한 감지력을 높여야 한다는 결론이다. 등택수행(藤澤秀行;후지사와 슈코)이 그랬지,
넌 나한테 안되거든
현대 바둑의 발전사는 「두터움에 대한 이해도」의 점증(漸增) 도정(道程)과 겹친다고.
컴퓨터는 두터움을 계산으로 환치시킬 수 있을까? ‘두터움을 이해하는’ 기술은 가능할까? 끝
(마지막 공배) 내가 의도한 바로「컴퓨터는 바둑에서 인간을 능가하지 못한다」라는 결론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우연히 어떤 블로그에서 벌어진 '이 시끄러운 논쟁'을 구경한 적이 있는데, 바둑을 모르는 프로그래머, 프로그래밍 문외한인 바둑계 사람, 바둑을 조금 아는 프로그래머 등이 뒤섞여 아주 난리를 치고 있었다(몇 년 전 타이젬에서 벌어진 일방적인 논쟁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반가워서 열심히 보았는데 모르는 소리가 많아(프로그래밍, 망할 놈의 어려운 전문 용어들) 고생은 많았으나 얻은 것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나는 원래「컴퓨터는 바둑에서 인간을 능가하지 못한다」라는 근거가 명확하지 않고 범위가 두리뭉실한 확신을 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두터움을 ‘이해’하지 못하고 ‘계산’해야 하는 현재(의 컴퓨터)는 초일류 수준까지는 안 되겠지, 안 되겠지만 현재의 기술로도 바둑을 잘 알고 프로그래밍을 제대로 아는 프로그래머들이 자본의 뒷받침을 받아 만든다면 적어도 아마추어 고수급 정도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멀지 않은 미래에 초일류 수준에의 도달이 가능할지 여부는 컴퓨터가 두터움이라는 모호한 바둑적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술(학문을 포함한)의 뛰어난 계산력을 일차 밑바탕으로 하여 그 위에 과연 어떻게 (인간적인) 이해력을 덧씌울 수 있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이 여부도 결국은 기술상의 문제이며 이런 기술이 가능할지 여부는, 바둑을 아주 잘 알고 프로그래밍을 제대로 공부한 전문가라면 판단가능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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