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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080714 [소개] 중국여자탁구와 승부조작(讓球양구)


이번 춘란배 8강 대진은

이창호 vs 고력古力, 상호常昊 vs 황혁중黃奕中 

공걸孔杰 vs 정위丁偉, 주학양周鶴洋 vs 사혁謝赫이다.


이런 가정을 해 보자. 대진표에서 위 두 판과 아래 두 판이 각각 같은 조이다. 국가 대표팀 감독조 조장 마효춘은 중국의 우승을 위하여 우선, 고력의 패배에 대비하여 그 경우 이창호를 막을 기사로 최근 대 이창호 전적이 좋은 상호를 선택한다. 황혁중은 당연히 讓棋양기(양보하는 바둑;고의로 져줌)를 두라는 지시를 받고 이행한다.


다음, 다른 조의 4인 중 ‘이창호에게 이길 가능성이 높은 기사’로 마 조장과 화이강 부원장이 격렬한 토론을 벌인다. 결국, 한동안 이창호를 괴롭혔으나 최근에 두 판을 내리 진 공걸을 제치고 통산전적 5:5로 아직 수평을 잃지 않고 있는 주학양이 선택된다. 그래서 또 사혁에게 讓棋양기를 두라는 지시가 하달된다.


이창호는 고전 끝에 고력을 이기고 4강에 진출한다. 상대는 예정된 대로 상호가 된다.


맞은편 조의 공걸도 정위를 이긴다.

공걸은 세계 대회 결승전 진출이 생애 한 번도 없다. 게다가 이런 비슷한 상황에서 ‘국가의 영예’를 위해 이미 두 번이나 讓棋양기를 둔 적이 있다.  당시 얼마나 눈물을 흘렸던가. 꼭 결승에 가고 싶었던 공걸. 기사생활에 이런 기회가 몇 번이나 오겠는가. 공걸은 이번만은 讓棋양기를 두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주학양에게 상대전적 8:1의 절대 우세가 아닌가.


이런 상황 설정 아래, 감독조의 강권에 못 이겨 공걸이 주학양에게 양보하였다고 하자. 그런데 만약 맞은편 조에서 이창호가 상호에게 져버렸다면? 그리하여 애꿎은 공걸만 희생된 결과가 되었다면?

아마 공걸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5년 동안  세 번의 讓棋양기를 두었다. 여기 (중국 위기 국가대)분들에게 큰 신세를 졌고 다들 좋은 분들이다. 그러나 이번만은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못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바둑을 둘 맘이 나지 않는다. 국가대표에서 은퇴하겠다.” -이 변辯은 원문의 것을 흉내낸 것이다.


줄거리를 약간만 바꾸어,

맞은편의 이창호가 상호를 이기고 결승에 진출하였다고 하자. 주학양은 이창호와 국가의 명예를 건 최후 결전을 벌이게 되었다. 과연 중국이 이창호를 이길 확률은 그래서 높아졌을까? 두 명의 희생자를 필요로 하는 이런 작전은 전략적으로 현명할까? 과연 국가란 것의 명예, 국가란 것의 위신은 희생자 두 명을 무시할 만큼 최우선의 것일까?


이런 일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 모양이다. 가만히 보면 탁구는 똑딱똑딱과 각자 한수, 리그나 토너먼트, 전형과 기풍, 기본적으로 개인전이나 이들의 집합으로 단체전도 가능.. 바둑과 많이 닮아 있다.

형세는 많이 다르긴 하다. 중국일통 형세와 한중 무한대전 형세.


이하 우연히 인터넷에서 흥미롭게 읽은 사연을 요약 소개한다. 연결시켜놓은 원문이 아주 제대로 재미있으니 웬만하면 원문을 읽어보시길 권한다. 탁구에 조금이라도 흥미가 있다면 더욱 좋고..




- 일부 요약 -

탁구를 좀 아시는 분들에게, 더구나 서울 올림픽 세대라면 초지민焦志民, 안재형의 마누라 자오즈민은 익숙한 이름이다. 글에서 양구讓球(고의로 져주는 탁구)는 초지민부터이다.(焦는 생애 5번의 ‘져주는 탁구’를 쳤다고 한다.)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 탁구 개인전 결승에서 초지민과 하지려何智麗가 결승에서 만난다. 이유는 불명이지만 중국 탁구 대표팀의 감독진은 하지려에게 져주라고 지시한다. 우승은 초지민의 것이 되었다.


아시아 탁구 선수권대회는 아시안 게임이 끝나고 바로 열린다. 그 해 중국 심천에서 열린 아시아 탁구 선수권대회 결승에서 얄궂게도 초지민과 하지려가 또 만났다. 감독진은 하지려에게 또 져주라고 지시한다. 참을 수 없었던 何는 스승이자 중국탁구계의 유력인사인 손매영을 창아가서 하소연한다. 손매영은 총감독에게 따지게 되고 격론 끝에 총감독이 양보한다. 우승은 하지려의 것이 되었다.


원문에 의하면 양구讓球는 중국 탁구계의 ‘우량전통’이라고 한다. 무대는 1987년 뉴델리 세계선수권대회로 옮겨간다. (이것이 제일 유명하고 후유증도 큰 양구讓球 사건이라 한다.)

위의 하지려何智麗가 4강에 갔다. 상대는 관건화管建華라는 동료. 맞은편 조에는 이미 한국의 양영자가 결승에 가 있었다. 감독진은 管의 ‘깍는 타법’ 전형(일명 커트형)이 양영자에게 더 통하리라 판단하였다. 何에게는 양구讓球지시가 떨어졌다.

何는 그러나 꼭 이기고 싶었다. 첫 세트를 이겼고 경기 중간의 감독진의 지시조차 불응하고


-바둑이었다면 마 조장이 대국장으로 들어가  바둑을 구경하는 척, 절대 우세의 공걸을 눈짓으로 불러내었으리라. 화장실에 가는 척 잠시 나온 공걸에게 마 조장이 이렇게 속삭이리라. ‘이창호를 물리치려면 네가 이 바둑을 져야 돼!’'져야 돼"... -


하지려何智麗는 管을 이겨버렸다. 우리가 아는 대로 그 대회에서 양영자는 은메달에 머물렀다. 우승은 何의 것이었지만 동료와 감독진의 외면 속에 얻은 것이었다. 何는 명령에 불응하고 탁구계의 전통에 반기를 든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는 다음 해 서울 올림픽 대표팀에 끼지 못하게 된다. 대신 실력도 아래 전적도 아래인 선수가 선발되었다.


서울 올림픽에 출전한 중국 여자대표팀원 3인은 아까 위의 초지민과 이혜분李惠芬, 진정陳靜이었다. 개인 단식에서 셋 모두 4강전까지 갔다. 대진은 초vs.리, 진vs.체코선수(양영자, 현정화는 모했냐?) 초vs.리 전이 먼저 행하여졌는데, 감독진은 체코선수에게 한 번 진 적이 있는 焦에게 고의로 져주라는 지시를 한다.

焦는 지시대로 하였으나 우스운 일이 생기고 말았다. 맞은편의 진정 선수가 체코 선수를 이겨버렸네. 감독진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것이라 강변하겠지만 선수의 입장에선 매우 속이 상할 것이다. 더구나 초지민은 3인 중 최고수였다.


당시 초지민의 변을 그대로 옮겨 본다.


“나는 이렇게만 말하겠다. 나는 지금까지 4번의 양구讓球를 쳤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연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원래 2,3년 운동을 더 하고 싶었으나, 이제 더 이상 탁구를 하고 싶지 않다.”   -'중국인들은 왜 아직도 小山智麗를 용서하지 못하는가?' 중에서 


초지민은 은퇴하고 안재형에게 시집을 갔다.


하지려의 뒷이야기는 더 길다. 그 해 何는 올림픽 대표에서 탈락하자 국가 체육위원회 주임에게 한 통의 편지를 남기고 국가태표팀을 자진 사퇴한다. 그리고선 小山이란는 성을 가진 일본인에게 시집을 간다. 하지려는 소산지려小山智麗가 되었다.

1994년  廣島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일본의 소산지려小山智麗는 중국이 자랑하는 탁구 ‘마녀’ 등아평鄧亞萍을 이기고 금메달을 목에 건다. 그로서는 전통과 감독진을 향한 통렬한 복수였으리라.


경기중 지르는‘요시’ ‘요시’하는 일본식 고함, 말끝마다 우리 일본팀 운운.. 소산지려小山智麗의 행동거지는 중국인들의 속을 더 긁어 놓은 모양이다. 연결된 원문 중 하나는 이런 智麗의 행태를 비난하는 등 부정적 시선이다.

다른 하나는 불합리한 전통에 거부감을, 그리고 선수로서의 고통과 집단보다는 개인, 그 개인의 선택이라는 것들에 초점을 맞추고 智麗에게 온정적 시선을 보내고 있다.

아주 옛날에 신문에서 이런 류의 기사를 본 적이 있는 듯한데 기억이 가물가물...하튼 우연히 읽은 이 글이 퍽이나 재미가 있어서 소개한다.




두 원문이다.


중국여자탁구와 허즈리(何智麗)사건 


중국인들은 왜 아직도 小山智麗를 용서하지 못하는가? -위와 같은 글이 나온다. 목록열기를 클릭하면 제목에 해당하는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연결시키기에서 이 비밀은 모냐구요..히구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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