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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저작권-저2-바둑4

080720 악곡vs악보, 바둑vs기보 - 終.암흑바둑(盲棋)


암흑바둑


 

맹인바둑은 맹인들이 맹인용 바둑판으로 두는 바둑을 말한다. 암흑바둑 또는 맹기盲棋는 바둑판 없이 두는 바둑을 말한다.(왕적신의 고사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둔 바둑이다.) 둘 간의 차이는 맹인들만이 정확하게 알 수 있겠는데, 큰 차이는 없지 싶지만 후자인 암흑바둑으로 한정해 보자.


암흑바둑이니 암흑상태(바둑판만 없으면 되니 굳이 눈을 가려 암흑상태로 만들 필요는 없지 싶긴 한데)라 수순을 멀리 진행하기가 쉽지 않다. 한참 년 전에 목진석이 눈을 가리고 121수까지 진행하였다 한다.

포운 鮑云(6단)이라는 아마추어 기사가 암흑바둑을 끝까지 둔다고 하는데 중국에서는 그가 암흑바둑의 세계 1인자로 여겨진다고 한다.


암흑바둑을 (혼자서) 실제 도전해보았는데, 이것은 바둑판 없이 하는 복기와 거의 같다. 사실 나는 평소에, 이긴 바둑을(특히 극적으로) 바둑판 없이 복기를 많이 하긴 한다. (얼마나 달콤한가!)

하긴 하는데 수십 수 안쪽에서 불가피하게 중단된다. (일백여 수 이상의 장면을 되새기고 싶을 시는 특정 모양만 떠올린다.)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 주로 모양(과 관계)으로 한다. 첫 수 우상귀 소목, 제2수 좌상귀 화점, 제 3수 우하 돌아앉은 소목, 제4수 우상 화점에 상변쪽에서 날일자 걸침. 협공, 한칸 뜀.. 이런 식으로 시작 몇 수는 좌표로 말하고 그 다음부터는 날일자, 걸침, 협공 등 모양과 관계로 말하게 되는데, 한 3,40수만 가도 진행불가다.


끝까지 가려면 그래서 좌표로 일관하여야 한다. 목진석이나 포운의 암흑대국에선 좌표를 사용하였을 거고 그 좌표란 기존의 방식인 q4,d4,p17..의 방식이겠다.

가만히 생각해 보았을 때, 몇 수까지 진행할 수 있느냐 여부는 (좌표를 듣고 상대의 수를 내 머리속에 재현再現해내는) 재현력과 지금까지 둔 모든 수를 기억해가는 기억력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q4,d4,p17..방식은 手의 재현에 최선일까. (음표기보가 등장할 순간이 바로 지금이다.) 내가 보기엔 음표기보에서 연유,차용한 방식의 좌표가 재현력에 최선이지 싶다. q4,d4,p17보다는 A34,B44,D43 방식이 훨씬 낫다는 얘기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왕적신의 고사를 보자.


"우리 잠도 안 오는데 바둑 한 수 할까?“

”예, 어머니"

"동의 5, 남의 9에 두었습니다.“

"동의 5, 북의 8에 놓았다.“

...  

"서의 9, 남의 10으로 하지"

...

"자 그러면 내가 이겼지"

전편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소리로 또는 악곡으로 암흑바둑을 둘 수 있을까?

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왕적신의 고사를 능가하는 셈이다. 만약 가능한 이가 있다면 그는 절대음감과 극한의 기감棋感을 동시에 갖춘 사람이리라.


"우리 잠도 안 오는데 바둑 한 수 할까?“

”예, 어머니"

띵~ 띠잉~ 디디딩....

"자 그러면 네가 석 집을 졌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