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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091118 무언가 조치가 필요해

 

1.키 작은 남자는 열등종자라고 생각한다.

2.키 작은 남자는 실패자라고 생각한다.

3.키 작은 남자는 루저(loser)라고 생각한다.

4.키 작은 남자는 좀 그렇다고 생각한다.

5.키 작은 남자에게 이성으로서의 호감이 생기지 않는다.


loser의 사전적 뜻이 1.패배자, 1.실패자, 1.사회 부적응자 쯤 되는 바, 당사자(‘미수다’에서 문제의 발언을 한 李모씨) 또한 그 어디쯤 되는 의미로 사용하였으리라. 그렇다면 결국 위 2번 문장이 그녀 내심의 정확한 표현인 셈이다.


그럼에도 당사자가 위 2번 문장으로 말하지 못한(않은) 이유는 무엇이냐? 다섯 문장의 글씨 색깔에  주목하자. 빨간색의 진한 정도는 그 말이 불러올 파장(또는 반발)의 강도에 비례한다고 간주하자.

1번, 히틀러라면 모를까, 그럼 2번은? 당사자 李모 씨는 2번조차도 ‘음, 곤란해’ 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때문에 일종의 완곡어법으로서 영어단어를 선택하였으리라.

허나 그 정도로는... 효과는 약했다. loser는 그다지 완곡하지 않았다. 사실 2번 문장이나 3번 문장이나 결국 거기서 거기 아닌가. 그래서 李씨와 ‘미수다’는 분노한 ‘루저’들의 열폭을 지난 한 주 실컷 당하였고.


李씨의 사고방식에 있어서의 몰상식은 제쳐놓고 말해보자. 李모씨는 모호함과 구체성 사이의 줄타기를 실패하였다. 그가 당한 열폭은 그 대가인 셈이다.

李씨가 4번이나 5번 방식으로 말했다면 ‘대란’은 없었을 것이다.

모호함. 배려라 해도 좋고 교활함이라 해도 좋고, 젊은 李씨에겐 아무튼 그런 것이 없었다.


사실 루저논란에 대해 내가 쓸 일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쓰고 있는 이유는 모호함이란 공통된 키워드 때문이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신임 기사회장 선출이란 어제 전해진 소식. 그래서 할 말이 생겼기 때문이다.
위 李씨는 모호함을 이용하지 못해서 대가를 치렀고 아래는 구태의연한 모호함이 참사의 원인이 된 경우이다. 조금 더 사려 깊었더라면 달라졌을 일들..


지금도 이것만은 또렷이 기억한다. 이세돌이 휴직원을 내게 만든 결정적 ‘사고’는 기사회 총회의 표결이었다. (이 표결 소식에 이세돌은 한동안을 철철 울었다고 알고 있다. 이세돌에 대한 나의 감정은 '이랬다 저랬다'인데,..저랬던 상태이다가도 이 당시 이세돌의 심정을 생각하노라면, 음~ 많이 속상하였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소위 「이세돌 사안」은 원래 이세돌과 한국기원 사이의 대립 구도였고 棋士들은 본격 당사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 표결 때문에 상황은 기존의 대립 구도에 보태어 「이세돌 對 여타 기사들」이란 대립구도까지 추가되었다. 이것은 그의 복직이 가장 큰 현안이 된 현재에 와서는 더 문제가 되는데, 그의 복직의 가장 큰 걸림돌은 아마도 당시 표결 때문에 크게 상한 이세돌의 감정일 것이다. 동료를 향한 서운한 감정의 해소가 현 시점에서 가장 긴요하다는 말이다.


송태곤의 글()에 의하면,


세돌이 형 때문에 바둑리그가 1주일 정도 부득이하게 연기되었다. 많은 선후배 기사들이 약간 화가 났다. 그래서 무엇인가 약간의 조치를 취한다. 이게 투표의 내용이었다.

약간의 조치를 취한다란 의미는, 「머 한마디 한다는 거겠지」다들 이런 마음으로 찬성에 표를 던졌다. 그때 기사총회 분위기는 징계? 이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약간의 첨삭/재배치, 그러나 원래 글의 의도/의미는 바꾸지 않음.)


여기서, 각 당사자의 잘잘못(예를 들어 이세돌의 바둑리그 불참)이라든지 사태의 경위라든지 다른 모든 것은 제쳐놓자. 이 글에서는 오직 모호함과 명료/구체성에 대해서만 생각해본다.


1.이세돌을 징계하여야 한다.

2.이세돌에게 무언가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3.우리 일주일 벌섰다. 섭섭하다. 잘 좀 할 수 없(었)나?


색깔의 진한 정도는 이세돌이 피부로 느끼는 아픔에 비례한다. 기사 총회 표결 議案(의안)을 1로 했다면? 당연히 총회 부결이었으리라. 棋士들은 이세돌을 세게 찌를 의도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우리가 알다시피 의안을 2로 했기 때문에 통과되었다.

문제는 둘 간 괴리이다. 찬성표를 던지는 사람은 2.무언가 조치란 모호한/흐리멍덩한 표현을 3번 표현(살짝 알밤 주는 정도)으로 읽고 던졌다. 그런데 그 찬성표의 결과는 1이 되어버렸다. 받아들이는 사람은 징계로(그것도 믿었던 동료들에 의한 징계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래서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알밤 좀 주었더니 피를 철철 흘리더라/뭐? 그게 알밤이나고...이 뭥미!  


(이세돌)‘해서는 안 되는 행위를 했다.’vs.‘징계? 이런 분위기는 아니었다.’(송태곤)

(이세돌)‘오히려 동료기사들에게 사과를 받아야 한다.’vs.‘세돌이 형이 기사들에게 최소한의 사과를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송태곤).


(특정인 간 대립을 조장하려는 의도는 물론 아니고, 그런다고 해서 그들이 그럴 리도 없거니와, 기사 개인의 허심탄회한 토로가 많지도 않고, 송태곤이 쓴 이 글이 다수, 특히 젊은 기사들의 정서를 대변한다고 보아 인용할 뿐이다.)


위 두 대립된 입장은 나름대로의 타당성이 있다. 별도로 송태곤(=이세돌 外 기사 측)의 입장에서 부연하자면, 이세돌이 동료들을 일주일씩이나 벌을 세운 건, 비록 그의 본의는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애꿎게 벌 선 사람들에게 미안한 감정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자. 표결을 떠나서의 잘잘못(나의 의견은 이세돌 및 한국기원 쌍방과실이다.)은 제쳐두고 표결만 놓고 보자. 이세돌이 2번을 1번으로 받아들이는 것,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이라고 본다. 이 점만큼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찬가지가 아닐까. 사람이란 구설수에 오른 것만 해도 창피라 여기기 십상인데...


괴리를 가져온 가장 큰 책임자는 당근 집행부이다. 2번의 모양으로 의안이 통과되면 당사자(이세돌)가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게 될지를, 사안을 주재하는 책임자는 반드시 말이지, 당사자의 입장에 서서 예측을 하여야 한다.
징계 아닌 설사 사형(;제명)이라도 그것이 필요하다면 당해야겠지만, 징계를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징계의 결과가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그런 비의도적 불상사의 책임의 절반 이상은 그런 식으로 의안을 작성하여 올린 부주의함에 있다. 그 부주의란 당연히 집행부의 책임으로 돌아간다.(집행부가 그 ‘괴리’를 의도적으로 노렸다는 설도 없지는 않은데, 나는 그렇게까지는 보지 않는다.)

한편 棋士 개인 개인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신이 3번으로 생각한다면 그에 합당한 표현으로 바꾸도록 1차 요구하고, 그것이 여의치 못하다면 2차 반대표를 던졌어야 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즉, 찬성표를 던지면서 한번쯤, 「만약 내가 ‘무언가 조치’를 당한다면 내 기분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런 차원에서, 타성에 몸을 맡겼다는 차원에서, 3번을 생각하고 찬성표를 던진 기사들 개인 개인은  각자 N분의 1의 책임을 져야 한다. 여기서 책임이란‘무언가 조치’란 모호함을 간과해버린 타성에 대한 책임이다.

‘무언가 조치’라니, 이세돌을 때리자는 것이여? 어르자는 것이여? 빌자는 것이여? 꼬시자는 것이여? 상 주자는 것이여? 도대체 뭐란 말인가?

왜 대충 생각하고 대충 찬성해버리는 것이여?


나는 이렇게 알고 있다. 대체로 말이지, 징계나 벌이란 것은 그것이 구체적이고 명확할수록 좋다. 니가 이러이러한 잘못을 했다,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그래서 저러저러한 벌을 가한다고 명확히 밝혀야 한다. 그래서 당사자가 납득하면 납득하는 거고 그렇지 못하면 못하는 거다. 모름지기 벌을 주는 방식은 그래야 한다. 너 뭐야 임마 따악! 모호함을 동반한 이런 식의 징계는 문제를 확대시킬 뿐이다.


신임 기사회장은 총회 의결은‘의도하지 않은 사고’였다고, 동료들의 진정한 의도는 3번이었다고, 3번이란 무엇이냐? 니가 이러이러한 점에서 동료들을 화나게 했다, 이걸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그래서 동료들은 저러저러한 얘기를 하고 싶었다고, 그게 다수 동료들의 심정이었다고 명확히 밝혀야 한다. 이세돌에게 이러한 사정을 설명하고 이세돌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
서로간 이해가 된다면 좋은 일이다. 만약 위 3번 안이었다고 하더라도 이세돌이 2번의 경우와 마찬가지의 감정(극도의 상심)을 느낀다고 치자.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떠한 해명으로도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럼 어쩔 수 없는 거고. 그래도 가능한 건 다 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신임 기사회장의 '무언가 조치'(컹^^)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