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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펌譯] 兪斌, '반드시 권토중래하겠다' (중국청년報) -101126

 

古力 -떨리는 목소리로 인터뷰 /孔杰 -이런 식의 패배, 士氣에 큰 타격이 온다



출처 :중국청년報  2010.11.27 tom.com에 轉載






“유감이무니다”광주기원의 시합장에서 휴식실로 통하는 조용한 통로에서 시합 후에 중국바둑팀 총감독 兪斌(유빈)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오늘 시합의 결과를 평가했다.


***譯註 ;유감이무니다 -殘念이라는 일본말에 빗댄 표현. 유빈이‘zan nen’이라는 (일본말) 원음대로 발음했을지 殘과 念의 중국말 소리대로 발음했을지는 알 수는 없지만, 하튼 유빈은 殘念이라는 일본말로 표현했다. 일본말 ざんねん[殘念]의 의미는 ‘유감스러운’‘분한’이라고 한다. 중국 web을 보면 중국 板 ‘지식in'에 해당하는 「百道지식」에는 '殘念의 뜻이 뭐에요' 하고 묻는 질문이 있고 殘念이라는 제목의 중국노래도 있고, 중국 web의 용어사전에 일본어 殘念이 올라있고, 중국 검색엔진에 殘念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검색어가 아주 많고... 殘念이라는 일본말이 중국 대중문화에 못 돼도 한쪽 발 정도는 걸친 듯하다. 결론적으로, 유빈이 자신의 심정을 유행어로 표현했다는 얘기. ***


막 끝난 아시안게임 바둑 남자단체 결전에서 고력은 이창호를 당하지 못하고, 劉星(류성)은 강동윤에게 지고, 謝赫(사혁)은 박정환에게 패배하고, 周睿羊(주예양)은 최철한에게 참패하여, 비록 공걸이 이세돌에게 다시 한 번 승리하였으나 결국 1:4로 중국 棋士들은 또다시 진땀을 흘려야 했다.


류성과 주예양은 공동취재구역을 고개를 푹 숙이고 후다닥 지나갔고, 도망가지 못한 고력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또 진다는 생각은 못했다. 나의 상태는 특히나 좋지 않았다. 현재 기분이 너무 아니다.”라고 말했다. 유일하게 승리한 공결의 태도는 그래도 평온한 축, 그는 이런 대회에서는 승리도 패배도 가능한 결과이다 라고 말하면서도 단, “이런 식의 패배로는 士氣에 큰 타격이 온다.”라고 말했다.


中韓바둑이 이렇게 대규모로 대항전을 벌이는 기회가 생김은 전적으로 바둑이 아시안게임에 처음으로 들어간 덕분이다. 쌍방의 참혹한 백병전은 이번 아시안게임 中韓대항전이 양국 바둑 역사상 상징적 사건이 되도록 만들었다. 이전에 中韓 최고수들을 딱딱 줄을 세워 겨루도록 하는 大戰은 2008 제1회 세계智力운동회 바둑 남자단체전에서 딱 한 번 있었을 뿐이었는데, 중국 棋士들은 (이번과) 마찬가지로 1:4로 한국팀의 손에 참패했다.


“최근에 常昊(상호)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그를 출전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를 보면 우리는 모두가 상태가 좋지 않았다.” 유빈의 말이다. “이번에 우리는 한국 棋士들과 도합 10판을 두어 공걸의 두 판 이세돌에 대한 승리를 제외하고 나머지 8판을 모두 졌다. 바둑 내용으로 보았을 때 우리들은 전부가 열세에 있었다. 우리는 기술에서 분명히 한국만 못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번은 아시안게임 中韓바둑 남자단체전의 두 번째 전면전이었다. 한국과의 첫 번째 대결 1:4라는 결과는 줄곧 취재에 협조적이었던 國手들의 입을 봉해버렸다. 고력은 인터뷰에서 목소리가 조금 떨려나왔는데, 이런 상황에 경험이 풍부한 고력으로서 정말 보기 드문 일이었다. 그 대결에서는 상태가 안정적인 공걸만 이세돌을 이겼다. 허나 팀의 참패에 공걸 또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中韓대결에서는 어떠한 결과도 나올 수 있다. 그들이 큰 차이로 우리를 이김도 정상이고, 우리가 큰 차이로 그들을 이기는 일 또한 있을 수 있다.” 유빈이 말한다. “굳이 무슨 이유를 찾으려 한다면 못 찾을 것도 없다. 예를 들어 긴장감, 적응실패, 그러나 그런 것들이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다.”


中韓결승전 직전에 사람들은 중국이 ‘패배 후의 武勇(무용)’을 발휘하여 한국여자팀처럼 기적을 창조하리라고(譯註 ;예선 패배 -결승 승리라는 기적), 최소한으로 쳐도 두 판은 이기리라고 기대했다. 즉, 결승전에서 또 한 번 일방적 결과가 나오리라곤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 시합 전에 한국기원 허동수 이사장이 특별히 와서 한국 棋士들을 격려했다. 이에 또 유빈이 이미 자리에 앉은 고력에게 특별히 몇 마디 소리를 질러서 신신당부를 했다. 그러나 전투가 시작되자말자 중국 棋士들이 또 全線(전선) 위급 상황이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시합 전에 압박감이 있을 수 있다. 이번 대회는 이전의 개인전이나 승발전보다도 압박감이 더 크다.” 공걸의 말이다. “압박감이 없다는 말은 이치 上 맞지 않다, 다만 이번에는 모두가 제대로 실력발휘를 못해 유감스럽게 되었다. 실제로 근래 2년 동안에 우리는 주요 대회 성적에서 한국 棋士에게 근소하나마 우세였다.”


근래 약 20년에, 옛것을 固守하는 일본바둑이 점점 覇者(패자)의 지위에서 물러남과 동시에 中韓대결이 바둑계 불변의 연주곡이 되었다. 1989년에 조훈현이 응씨배에서 우승을 하여 한국바둑의 강력 擡頭(대두)를 이끈 이래, 10년 동안, 중국바둑의 대빵 섭위평과 마효춘은 차례로 사라져갔고, 상호 등 몇몇 ‘小龍(소룡)’만 남아 세계대회에서 몸부림을 쳤다. 그 10년 동안 마효춘이 5번, 상호가 2번, 섭위평이 한 번 총 여덟 번을 한국 棋士와 세계대회 결승에서 만나 모두가 功 (공)을 이루지 못했다. 한국 棋士들에게 완전히 압도당했다 할 수 있다.


2000년 유빈이 LG배 결승에서 한국 天王 유창혁에게 승리함으로써 중국 棋士들의 눈물겨운 ‘碎氷旅程(쇄빙여정)’에 드디어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상호는 8년 동안 세계대회 여섯 번의 준우승 후, 2005년에 최철한을 격파하고 응씨배를 들어 올렸고, ‘작은돼지’羅世河(라세하)는 2006년 삼성배 결승에서 ‘石佛’이창호를 쓸어버렸고, 고력 또한 이 해의 LG배 결승부터 시작하여 4년에 6연속 우승이라는 절정기를 맞았다. 이 10년은 中韓바둑 간의 진정한 대결시대가 되었다.


17개의 세계대회 우승을 거머쥔 이창호는 중국 棋士들의 차례차례 도전뿐만 아니라 한국 국내의 이세돌 박영훈 최철한 등 새로운 역량들의 끓임 없는 추격에 대응해야 했다. 이로 인하여 최근 2년에 이창호가 대회 참가하는 ‘상징성’은 더욱 커졌으며, 이창호에 대한 중국 棋士들의 심리적 장애 또한 기본적으로 사라졌다.


그렇긴 해도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중국 棋士들의 낙관은 과했다. 시종 1장으로 포진한 ‘石佛’은 강력한 에너지를 발산하여 상호와 고력을 차례차례 이겼다. 자연히 한국의 우승 또한 당연지사가 되었다.


“중국 棋士들이 왜 이렇게들 많이 졌는지 모르겠다. 이번 대회에 무슨 특별한 점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시합에 무슨 거북한 점도 없었다.”시합 후에 이창호가 한 말이다. “우리는 이번 승리를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다. 결과에 매우 행복하다.”


2014년 아시안게임은 한국 인천에서 거행된다. 중국기원 당당직원이, 한국이 이번 아시안게임 금 세 개를 모두 땄으니까 바둑이 정식종목으로 남을 가능성이 최대화되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유빈은, 만약  ‘복수전’기회가 있다면 중국 棋士들은 절대로 이번처럼 엉망 답안을 쓰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반드시 권토중래하겠다.”



廣州(광주)에서 11월 26일 보도